< 일타쌍피 (2) >
“그거야 당연히 합법적으로 해야지요.”
“예! 맞습니다. 요즘 때가 어느 땐데요. 예전처럼 했다가는, 어후! 말도 마십시오.”
된통 당한 기억이 있었던 듯, 한오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반응만 봐서는 다시는 법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을 것처럼 보이긴 했다.
그런데 업종의 특성상 합법적으로만 해서 일이 되나?
“합법적으로 하긴 해야 하는데······.”
굳이?
우리만?
설건우가 아래턱을 매만졌다.
불법을 저지르는 놈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놈들을 상대하는 사람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려라?
누구 좋으라고?
이건 누가 봐도 불공정한 룰이다. 그리고 설건우가 순진한 사회 초년생이었으면 모를까,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그런 불공평한 룰을 따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개울을 혼탁하게 만드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눈에 거슬린다. 그리고 그 미꾸라지를 잡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구정물에 손을 담그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야 잡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추어탕을 끓이든, 튀김옷을 입혀서 튀기든가. 아니면 버리든가 할 것 아닌가.
상대가 김상식 같은 고위 공직자도 아니고, 그저 건물 몇 채 관리하는 바지 사장일 뿐이다.
설건우의 생각이 길어지자, 한오문이 말을 살짝 바뀌었다.
“하하, 사장님도 참······. 저희가 세무소에서 도장받아서 영업하는 합법적인 업체이긴 합니다만······. 사실 저희 일이 어디 그렇기만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사장님 걱정하시라고 이런 말씀 드리는 건 아닙니다. 그러그러해서 저희 같은 전문가가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사장님은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저희한테 맡겨만 주십시오.”
이걸 사업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업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눈치 하나는 귀신같았다.
마치 설건우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의뢰인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고 있었다.
“사장님. 저기 혹시······.”
“예?”
“혹시 저희 말고, 다른 업체를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죠?”
“예? 갑자기요?”
“사장님께서 저희를 못 미더워하시는 거 같아서 말입니다.”
못 믿는 게 아니라, 이들의 합법적 영업 방식이 조금 걱정될 뿐이었다.
‘그게 그건가?’
아무튼 한오문의 눈치와 눈썰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의뢰인이 미심쩍어하는 부분을 정확히 알아차렸다.
‘조금 무서운 친구네?’
일을 맡기는 원청 입장에서 하청 오야지 눈치가 빠르면 가산점을 줄 일이지, 결코 감점 요소는 아니다.
그런데 마침, 생각지도 못한 다른 업체 이야기가 나왔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번 떠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설건우가 미간을 잔뜩 좁혀 놓고 입을 열었다.
“다른 업체라······.”
“사장님! 그러지 마시고 저희를 믿고 맡겨 주십시오.”
“지역 업체를 알아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긴 하네요.”
“······.”
“안 됩니까?”
“됩니다, 되죠. 왜 안 되겠습니까?”
“흐음.”
“그런데 사실 저희 업종이 전국구로 뛰는 업종이지, 따로 지역구가 있거나 그런 업종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저희 쪽으로 의뢰하는 일들이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만한 일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갈수록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는데.
“그거야 어떤 일인지에 따라 다른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드물게 소문을 내야 하는 건들이 있긴 있습니다만······. 지역을 따지는 건 아니라고 제 이름 석 자를 걸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일단 견적부터 받아 봤으면 하는데요.”
“견적이요?”
“일 맡기는 데 업체 한 군데 견적만 받을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사장님.”
“예?”
“그러지 마시고, 이번 일은 그냥 저희한테 맡겨 주십시오. 저희가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흐흠.”
“괜히 어중이떠중이 실력도 없는 업체 맡겼다가 낭패 보지 마시고요. 이 바닥에 사짜들이 좀 많습니까? 안전하게 전문가한테 맡기시죠.”
대한민국 어느 바닥이든 사짜 없는 바닥이 있나? 아무튼, 그건 그렇고,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저희는 사장님께 이미 검증된 업체 아닙니까?”
“그거야 그런데, 다른 업체는 일을 어떻게 하나 궁금하기도 하고요.”
“예산이 문제라면 걱정 마십시오. 저도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실적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저희 실적 쌓는 차원에서! 저희 원가에 거품 쫙 뺀 가격으로 해 드리겠습니다.”
조금 전까지 설건우의 속을 훤히 보고 있던 한오문이 바짝 자세를 낮추었다. 일을 수주하기 위한 오야지의 절박한 몸부림.
손해를 보더라도 일부터 하고 보겠다는 절실함. 설건우 역시 저 마음을 모르고 있지 않았다.
괜스레 미안해지는 설건우. 떠보는 건 이만하면 됐다. 모르긴 몰라도 이만큼 일이 절실한 업체는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아니면, 이것도 저 친구의 계략인가?’
만약 계략이라면 오히려 좋다.
그쪽 일을 하려면 이 정도 계략은 쓸 줄 알아야지.
“좋습니다. 대표님 한번 믿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저희가 가진 노하우를 총동원해서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예. 꼭 좀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제······.”
“아! 잠깐만요. 아까 원가 절감이라고 하셨던 거 같은데.”
“예!”
원가를 절감한다는 말은 일에 소요되는 예산을 축소한다는 한다는 말이다. 예산을 줄이게 되면 반드시 구멍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구멍을 누군가는 메꿔야 한다. 약간의 수고를 들여 그 구멍을 잘 메꾸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구멍을 메꾸다가 자칫 일 자체를 그르칠 수도 있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예?”
“원가 절감 그런 거 하지 마시라고요.”
“무슨 말씀이신지?”
“땅 파서 장사를 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해 놓고 남는 게 없으면 되겠습니까?”
아무리 실적 쌓는 게 목적이라고 해도, 조금이라도 남는 게 있어야 일을 해도 신나게 할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저희는 진짜 감사하지요.”
“견적은 사장님도 적당히 남기시는 거로 보내 주시라는 말입니다.”
동생 사람 만들어 준 대가가 너무 헐값이기도 했고.
“가, 감사합니다! 사장님!”
설건우의 제안에 감격한 듯, 한오문이 연신 고개를 숙였다.
“서로서로 돕는 처지에 감사는 무슨. 하하.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예!”
“혹시 서울에 배방 시장이라고 아십니까?”
“모릅니다.”
“모, 모르시는구나.”
모른다는 대답을 이렇게 당당하게 할 수 있나? 그것도 의뢰인 앞에서? 한오문의 태도에 순간 당황한 설건우.
“예. 모릅니다. 모르는데, 모르는 걸 차차 알아 가는 게 저희 업무 아닙니까.”
“그, 그렇죠.”
한오문이 하는 업종의 형태 때문에 가까이하고 싶진 않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상가가 어떻다는 겁니까?”
“상가 재건축을 하는데, 냄새가 나더란 말입니다. 냄새가.”
“어떤 냄새 말씀입니까?”
“수상한 냄새요.”
“그게······ 다입니까?”
“예.”
여기까지면 됐다. 숙련된 기술자라면 알아들었을 터. A급 목수에게 치수까지 일일이 알려 줄 필요는 없다.
도면을 던져 주면 치수는 알아서 찾아야지.
그리고 이 눈치 빠른 사내가 어떤 정보를 어디까지 알아 오는지, 그게 궁금하기도 하고.
“문제······. 있습니까?”
설건우가 물었다.
“없습니다.”
‘볼 수록 마음에 드는군.’
설건우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 * *
며칠 후 같은 자리. 설건우와 오문 유니온 한오문 소장이 마주 앉아 있었다.
“아무 연락이 없으셔서, 일을 안 하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설건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요!”
“하하! 다행입니다. 근데 무슨 일인데 갑자기 보자고 하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유선보다는 대면 보고가 필요할 거 같아서 부득이하게 뵙자고 했습니다.”
“대면할 일이 있으면 해야지요.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일이 잘못되거나 그런 건 아니죠?”
“현재까지는 순조롭습니다.”
“잘됐네요. 그럼 오늘 보시자고 한 이유가?”
“김상식 의원이라고 아십니까?”
“예?”
한오문의 입에서 김상식이라는 이름이 나올지는 몰랐다. 그것도 첫 보고가 김상식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모르십니까?”
이만하면 하청이라 아니라 협력사로 인정하고도 남음이다. 상호 협력을 위해서는 정보 공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 이상 상대를 떠볼 이유가 없다.
“압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한오문.
“역시 그랬군요.”
“역시라면?”
“사장님 타겟 말입니다.”
“저는 배방 시장, 그 건물에 대한 조사만 부탁드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입니다.”
“앞서 사장님 동생분에게 저희 직원 하나 붙여 드린 적이 있지 않습니까?”
“예.”
그러고 보니 동생 놈이 그 직원을 칭찬했던 기억이 났다. 전문가라나 뭐라나?
“그때 그 프로젝트 때에도 나왔던 이름이 김상식 아닙니까?”
“그랬군요.”
“그렇습니다.”
단골집의 효과인가? 아무튼, 그동안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배방 상가를 조사한 한오문의 입에서 김상식의 이름이 나왔다.
설건우의 추측이 맞아떨어졌다는 뜻이다.
“김상식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나왔습니까?”
“현 시간까지 알아낸 바로는······.”
“바로는?”
“철거 업체 선정에 김상식 의원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정황이 있습니다.”
“철거 업체요?”
준석? 이거 여차하면 둘 다 보낼 수 있겠는데?
“예. 준석이라고, 아! 사람 이름이 아닙니다. 철거 업체가 준석이라는 곳인데, 그 준석이라는 데가 그쪽 동네에서 무섭게 자리 잡아 가고 있다고 하더군요.”
“사람 이름 맞습니다.”
“예?”
“준석 사장이 방준석이라는 사람이거든요.”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아직 사장 이름까지는······.”
“아닙니다. 이제 알았으면 된 거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준석이라는 곳 명성이 대단하더군요. 요즘도 일을 그렇게 하는 놈들이 있다니······.”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한오문의 표정의 잔뜩 구겨졌다.
“명성이라기보다는 악명 아닙니까?”
“철거민 입장이라면 악명이고요.”
설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철거민들 때문에 삽을 못 뜨고 있는 개발 업자들에게는 명성이 맞는 표현이긴 했다.
“그 준석이라는 곳 작업 방식이 너무 재래식이라고 하더라고요.”
“재래식이라? 보셨습니까?”
“직접 본 건 아니고요. 보고받은 바에 의하면······ 불필요한 정보 같아서 사장님께는 따로 보고드릴 계획은 없는데, 보고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예.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한오문이라는 사람이 건설 쪽 일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설건우. 쓸데없는 생각을 덜어 내고 설건우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명성이 있는 곳인데, 굳이 김상식 입김이 필요했을까요?”
“그건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산 개발과 계약된 철거 용역 업체와 계약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 이미 계약된 업체가 있으니, 준석이 아무리 명성을 날린들 들어올 수 없죠.”
“두 번째는요?”
“두 번째야 제가 굳이 말씀 안 드려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돈?”
설건우가 손가락을 말아 보였다.
“예.”
“준석이라는 데가 일 욕심이 많더군요. 뭐, 업자가 일 욕심 많은 게 흠은 아닌데······.”
“아니죠.”
“예.”
“그건 그렇고, 김상식 입김이 어떻게 들어갔다는 건 어떻게 알아냈습니까?”
“저희 휴민트 정봅니다.”
“휴민트요?”
“저희 직원이 그쪽 관계자에게서 직접 입수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들었다는 말인데, 이건 직접적 증거가 되지 못한다. 이번 건은 확실하게 보내 버려야 한다.
“저기 그런데 사장님, 생각보다 거물이 등장하는 바람에 저희가 드린 견적에서 조금······.”
설계가 변경되면 공사비야 당연히 올라가는 것이지.
“몇 할이나 올리시려고요?”
“경비야 어쩔 수 없고요, 저희가 인건비 조금 삭감해서 대략 20% 정도 상승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30% 올리세요.”
쓸 만한 친구인 줄 알았건만. 인건비를 깎아서야 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