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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나니 철종-21화 (21/295)

#21화 쿠데타 (2)

조선의 왕이 된 이후로 가장 길고 긴 밤이었다.

대궐이 넓다고 하지만 무려 이천이나 넘는 군사가 궁에 들어와 있었다.

갑주를 갖춘 병사들의 모습이 곳곳에 피어 놓은 불빛에 어른거렸다. 병장기 소리가 겨울바람이 부는 대궐의 어두운 전각들 사이를 이리저리 휘돌았다.

대궐의 모든 사람이 깨어 있었다. 내가 있는 대전은 물론이려니와 대왕대비가 머무는 수강재를 비롯해 왕대비와 대비가 머무는 전각들에 모두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겁에 질린 내관과 상궁들의 불안한 눈빛이 홍화유 등잔불 사이에서 상전의 불안한 눈빛과 합쳐졌다.

내명부와 내시부에서 내려진 지엄하고 엄중한 명과 영에 궁인들의 대궐 안 이동이 초저녁부터 일절 금지되었다.

궁인들의 처소는 어둠에 잠겼다. 전각의 어둠마다 숨죽인 눈빛들이 두려움과 공포에 짓눌린 채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임금인 내가 있는 희정당에는 앞뒤로 내금위의 갑사들이 검과 활로 무장을 한 채 엄중히 경계를 서고 있었다.

“호중아, 지금 대신들은 어디에 있느냐?”

“지난 낮에 대궐 밖의 비변사를 떠나와 지금은 대궐 안에 머물고 있나이다.”

“추사도 있느냐?”

“우의정은 아직이옵니다.”

우의정으로 임명한 추사 김정희는 내게 시립한 후에 대궐을 나가서 소식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행여나 훈련도감의 군사들이 김정희를 살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내관 김호중이 내게 침수에 들 것을 여러 번 간곡히 권했다.

“전하, 옥체가 상하실까 저어됩니다.”

“역적들이 대궐로 군사를 몰아왔는데 임금인 내가 어찌 잠을 자겠느냐?”

“전하, 그 일은 신료들에게 맡기시고 잠시라도 침수에 드오소서.”

“적의 창검이 눈앞에 있는데 잠을 자는 장수가 고금 어디에 있더냐?”

“전하, 전하는 군주이시옵니다. 대궐의 방비는 장수들이 할 것이옵니다.”

“이 밤에 장수와 병졸들이 눈을 밝히며 임금인 나를 지키는 있는데, 내가 어찌 편안히 베개를 베고 잠을 자겠느냐. 세상에 아비가 자식을 지키는 경우는 보았어도 자식이 아비를 지킨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다.”

“전하…….”

김호중이 넙죽 엎드렸다. 얼굴을 바닥에 댄 김호중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

대궐의 담장을 따라서 배치된 포수와 사수들의 눈이 어두운 대궐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앞에서부터 길게 옆으로 어둠을 메운 훈련도감의 군사들이 진을 친 채 대궐을 향해 창검을 겨누고 있었다.

금위영의 대장이 대신들이 모여 있는 대궐 안의 전각을 찾았다.

“금위대장, 역도들이 범궐할 기미가 보이던가?”

“아직은 고요하오이다.”

“고요하다면 이 밤은 이대로 넘어갈 모양이오.”

“그래도 안심하기는 이르오.”

“대감, 역도들이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이유가 뭘까요?”

“더 많은 군사를 기다리는 게 아니겠소?”

“더 많은 군사라니요?”

“듣기에는 수어청의 군사들이라 하오이다.”

“군세가 얼마나 된다고 하오?”

“오천의 대병이라 하오이다.”

대신들이 크게 놀랐다.

“수어청이 유명무실해진 지가 오래인데 오천의 군사라니요?”

“역도들에게 가담한 수어사 광주유수 백문기가 인근의 고을에서 병졸을 모았다 하오이다.”

“저, 저런 역적 놈이!”

“내일 정오쯤이면 대궐에 도착할 것이라고 하오이다.”

“게다가 이미 어영청의 장졸들도 훈련도감의 군사들과 합류를 했답니다.”

“저, 저런 죽일 놈들이 있나!”

“전하를 보위하는 군대가 대궐 안의 금위영과 총융청 군사가 전부인데, 이리 되면 이거 큰일이 아니오이까?”

대신들의 한탄과 탄식이 전각 안을 가득 채웠다.

조선의 중앙군인 5군영 중 겨우 금위영과 총융청 두 곳만이 임금의 편에 서고, 가장 군세가 크고 정예병으로 이루어진 훈련도감을 비롯해 어영청과 수어청은 반란군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대신들이 절망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대치가 길어져 대궐이 역도의 군사들에게 포위가 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진다면 지방에서 장김에 줄을 대고 관직을 얻은 무장들이 공을 세우기 위해 앞을 다투어 군사들을 몰아올 것이 분명했다.

“어허! 시일을 끌면 끌수록 저들의 군세가 크게 불어날 터인데…….”

“금위대장, 어떻소? 이리 기다리지 말고 대궐 문을 열고 나가 저 역도들을 먼저 치는 게?”

“그렇소이다. 금위영의 기병으로 저들의 전초를 일거에 무너뜨린다면 역도들의 군세가 무너지지 않겠소이까?”

대신들의 이목이 대궐의 수비를 맡은 금위대장에게 집중되었다.

“전하께서 날이 밝을 때까지 절대로 병력을 대궐 밖으로 움직이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주상 전하께서?”

“그렇소이다.”

“주상께서 병법을 아시는 것도 아니고, 무슨 연유로 장수의 움직임을 묶으셨을꼬?”

“어허. 이리 되면 안 되는데…….”

임금의 결정에 대신들이 저마다 근심과 우려를 나타냈다.

금위대장이 다시 군사들을 순시하러 나갔다. 이어서 총융청의 대장이 군사들을 독려하고 전각 안으로 들어왔다.

“잘 오시었소, 총융사.”

갑옷을 입은 총융사가 대신들 앞에 섰다. 대신들의 시선이 모였다.

“총융사도 그리 생각하시오?”

“무엇을 말씀이오이까?”

“금위대장이 이르기를, 전하께서 대궐 밖으로 군사를 내보내지 말라고 하셨다 하오이다.”

“소장도 들었사옵니다.”

“총융사도 금위대장과 같은 의견이시오? 우리도 병서라면 조금 읽어서 아는데, 역도들의 군세가 합쳐지기 전에 먼저 공격을 하는 것이 좋을 것도 같은데 말이오?”

“소장은 그저 어명을 따를 뿐입니다.”

“어허. 이거, 총융사의 의견도 금위대장과 같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앉아서 저 역도들의 군세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만 있기도 그렇고.”

“이렇게들 합시다. 다들 대전으로 나아가 전하를 뵈옵고 우리의 의견을 올립시다.”

“그렇게 하는 게 낫겠소이다. 총융사 대감도 우리와 함께 대전으로 갑시다.”

“금위대장 대감도 얼른 부르시오. 여봐라!”

무장 하나가 순시 중인 금위영 대장을 금방 찾아서 함께 왔다.

*

대궐 수비를 책임진 금위대장과 총융사를 뒤에 세우고 대신들이 내 앞에 부복했다.

“전하, 역도들의 수가 점점 더 늘어 저들이 지르는 함성이 대궐 안팎에 진동하고 있나이다.”

대궐 안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의도로 간간이 훈련도감의 군사들이 일제히 지르는 고함이 대전에도 작게나마 들려오고 있었다.

“그래서요?”

“전하, 소신들이 알기로는 저 역도들이 날이 밝기를 기다려 군세를 더 늘려 범궐을 하려 한다 하옵니다.”

“나도 알고 있소.”

대신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다시 아뢰었다.

“전하, 병서에서 이르기를, 적의 군사가 더욱 늘어나기 전에 적을 치는 것이 최고의 병법이라고 했나이다.”

“그래서요?”

“전하, 금위영과 총융청의 기병으로 하여금 대궐 문을 열고 나가 저들의 군세를 꺾게 한다면 능히 역도들을 섬멸할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오?”

“그렇사옵니다.”

“뒤에 있는 금위대장과 총융사의 생각도 같은가?”

“전하, 소장들은 오직 전하의 어명만 받들 뿐이옵니다.”

“전하, 소장의 뜻도 역시 금위대장과 같사옵니다.”

“알겠소. 그러면 다들 그만 물러가 보시오.”

“전하, 소신들의 뜻은……?”

“장수들이 내 뜻을 따른다는데, 공들은 장수들보다 병법에 대해 더 잘 아시오?”

내 핀잔에 대신들이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대신들과 대장들이 물러갔다.

“호중아, 방금 대신들 얼굴을 보았느냐? 겉으로는 근엄한 척하지만 다들 자기가 죽을 줄 알고 속으로는 떨면서 살길을 찾고 있구나.”

“그리 보셨나이까?”

“그래. 내 눈에는 보인다.”

김호중이 놀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금위대장과 총융사에게 미리 말을 해 두었던 것처럼 신관호가 오늘 밤에 일을 성사시켜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에 신관호가 실패할 것을 대비해서 마련해 둔 차선책의 결과도 기다리고 있었다.

*

같은 시각.

훈련도감 군사들의 급습을 받은 의금부의 장졸들이 창검에 찔리고 베여 죽어 나갔다.

“대감! 대감! 어디 계시오이까!”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든 무장들이 옥사의 문을 열고 다니며 김좌근을 찾았다.

“누구냐?”

검을 든 무장을 본 김좌근이 놀라서 호통을 쳤다.

“이 무슨 짓이냐!”

“대감, 이명도 대감이 군사를 일으키셨습니다.”

“뭐라!”

“대감, 훈국의 병사들이 대궐을 포위했소이다.”

김좌근은 기가 막혀서 말을 잇지 못했다.

“군사를 일으키다니? 모반이 아니냐?”

“모반이 아니고 반정이오이다!”

“반정?”

“그렇소이다. 반정이오이다!”

“어허! 어허!”

바깥의 상황을 모르는 김좌근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옥사에서 풀려나온 김흥근이 호위 무관들과 나타났다.

“하옥 대감!”

“아니, 유관 대감? 이 어찌된 노릇이오이까?”

“나갑시다. 나가서 이야기합시다.”

“나는 나가지 않겠소이다. 여기를 나가면 나 역시 모반에 가담하게 되는 것이 되오이다.”

“어허. 답답하시오. 하옥은 이리 있어도 죽을 텐데 무얼 망설이시오? 지금 훈국의 군사가 대궐을 완전히 포위했소이다. 그리고 내일이면 수어사가 대병을 거느리고 합류한다 하오이다. 게다가 이미 어영청의 장졸들도 거사에 가담했소이다.”

“이 말이 정녕 사실이냐?”

검을 든 장교가 확인을 해 주었다.

“모두가 사실이옵니다, 대감.”

“어허. 이리 되면 안 되는데… 이리 되면 안 되는데…….”

김좌근은 이제까지 자신이 역모로 몰리고 있었지만 임금의 몸을 직접 상하게 한 것은 김흥근의 수족과 가솔들이고, 자신은 직접적인 상관이 없으니 수강재의 대왕대비를 통해 목숨을 구명할 생각이었다.

귀양을 가더라도 임금이 아둔하고 경험이 없을 것이고, 대왕대비의 친정을 지키려는 의지가 굳건하니 결국에는 시일이 걸리더라도 중앙 정치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모든 계획을 한순간에 뒤엎어 버리는 군사 변란이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

“갑시다, 대감. 지금 이명도 대감이 훈련도감 본영에서 우리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소이다.”

“가십시오, 대감!”

옥사 밖에서 함성이 들리고 있었다.

“의금부를 접수한 것이냐?”

“그렇습니다. 의금부를 지키던 도사와 장졸들은 모두 베었습니다.”

“모두 죽였어?”

“그렇습니다.”

“어허!”

김좌근은 탄식하며 눈을 감았다.

이제는 죽을 자리를 찾든지 아니면 임금에 대항해서 다시 새 임금을 받들든지, 둘 중의 한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이 나라를 장김의 나라로 만들 수밖에.

한참 만에 눈을 뜬 김좌근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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