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간도와 연해주로 가는 길
희정당에서 열린 상참에서 내가 신료들에게 일렀다.
“의주부윤으로부터 장계가 올라왔소이다. 최근에 함경도와 평안도의 백성들이 자주 압록강을 넘나들더니, 이제는 강을 넘어서 간도로 이주를 한다는 소식이오. 의주부에 따르면 간도로 넘어가는 백성의 수가 한 해에 수백을 넘는다고 하는데, 신료들은 이를 아는가?”
“전하, 신 형조판서 서유훈 아뢰옵니이다. 백성들이 사사로이 압록강을 넘나드는 것은 이들이 국법을 무시하고 조정의 영을 어기는 것이오니, 저들에게 국법의 지엄함을 보이소서.”
“추판, 그걸 지금 유민에 대한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인가?”
추판(秋判)은 형조판서를 이름이다.
내 질책에 형조판서 서유훈이 움츠러들었다. 서유훈은 장김의 사람이었던 서좌보가 유배를 가고 난 이후에 형조판서에 제수된 인물이었다.
나는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서유훈은 10년 전인 헌종 대에 이미 평안남도에 암행어사를 다녀온 적도 있는 인물이었다. 그때에 서유훈은 나름대로 평안도의 백성들이 처한 어려움을 임금에게 알리고 탐관오리들의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런 사람이 불과 10년 만에 판서 자리에 앉아서는 그때와는 다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
“전하, 백성들이 압록강을 넘어가는 것을 막지 못한 관장들을 잡아들여 엄히 문초하소서.”
내 뜻도 모르고 다른 대신이 이제는 양도의 수령들만 처벌하라고 나섰다.
“그러니까 경들은 평안도와 함경도의 유민들 문제가 그들 백성과 관장의 책임이니 그들만 처벌하자 그거요?”
“전하, 통촉해 주소서.”
신료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지금 백성들이 살기가 어려워서 고향을 버리고 간도로 간다는데, 그래, 경들은 고작 한다는 말이 엄히 처벌하라 그 말밖에 없소? 북방 양도의 백성들이 고향 땅을 버리고 간도로 넘어가는 이유를 그대들은 진정 모르는가!”
“전하, 황공하옵나이다.”
“그 무슨, 얼어 죽을 황공은! 당장 대책을 마련하시오! 양도의 백성들이 무엇 때문에 간도로 넘어갔는지 안핵사라도 파견해서 그 이유를 속속들이 밝히시오!”
“전하, 안핵사라 하오시면……?”
안핵사(按覈使)는 민란이나 특별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에 파견하는 임시직으로, 어사를 겸직하기도 했다.
대부분 지역의 수령 방백이 파견되었지만 중대한 사안일 경우에는 중앙에서 내려가는 경우도 있었다. 선대왕인 헌종과 순조 때에도 안핵사가 여럿 파견되었다.
“내가 요즘 양도의 일을 근심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소이다.”
“전하, 백성들이 고향을 등지는 것은 그만큼 살기가 어려워서입니다. 전하께서는 신속히 안핵사를 파견하시어 백성들의 고단을 삶을 널리 살펴 주소서.”
훈련도감의 반란을 진압한 이후에 내 심복이 된 병조판서 신관호가 나섰다.
“병판의 말이 옳소. 지금은 유민들을 처벌할 것이 아니라 수령들을 감찰하고 유민들이 간도로 넘어간 이유를 신속하게 밝히는 것이 우선이오.”
신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이다. 그러면 이를 비변사에서 논하되 관서와 관북을 아우르고 간도와 녹둔도에 파견할 안핵사를 사흘 안으로 내게 추천하시오.”
비변사(備邊司)는 조선의 최고 정치기구였다. 비국(備局) 또는 묘당(廟堂)으로도 불린다.
비변사는 성종 초에 북방의 야인들과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 실무에 능한 종2품 이상의 관료를 지변사재상(知邊事宰相)으로 임명해서 의정부와 함께 군무를 논한 것이 시초였다.
이후로 중종 때에 삼포왜란이 터지면서 비변사로 이름을 바꾸고, 명종 때에 이르러 기능과 직제를 상설화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비변사는 조직과 기능이 크게 확대되었다. 비변사는 의정부의 전현직 정승들과 공조를 제외한 5조의 판서와 참판이 관직을 겸하였다.
거기에 각 군영의 대장들과 대제학, 강화 유수 등을 비롯해서 국가의 중요한 관원들이 모두 비변사에 참여하였다.
그에 따라 비변사는 조선의 정치와 국방, 인사를 비롯한 국가의 모든 정책과 문제를 관장하는 명실상부한 조선의 최고 정치기구가 되었다.
안동 김씨 세도 아래에서 비변사는 장김이 실제적으로 움직이는 제조의 인사권까지 모두 틀어쥐면서 세도정치를 지탱하는 기반이 되었다.
조선의 모든 권력이 대신들이 모두 참여하다시피 하는 비변사로 집중되면서 비변사를 견제할 힘은 국왕 이외에는 없게 됐고, 비변사의 일을 들어 사헌부를 비롯한 삼사의 견제가 사실상 무력해졌다.
무력한 왕권이 세도정치에 눌리면서 장김이 조선의 주인이라는 세간의 평이 나오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이유 중에 그래서 이 비변사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장김이 조정에서 사라진 이후에 오히려 나는 비변사의 이런 집중된 힘을 이용했다.
이제 비변사의 실권을 쥔 제조의 임명은 장김이 아닌 임금인 내 손아귀에 들어와 있었다.
비변사의 제조를 임금인 내가 내 마음대로 임명하고 해임하게 되면서 나는 조선의 그 어느 임금보다도 강한 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비변사는 이제 임금인 내 명만을 따르는 기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비변사를 실질적으로 끌어 나가는 비변사의 제조 중에서 특별히 병조판서인 신관호에게 힘을 실어 주어 비변사를 사실상 장악하게 했다.
안동 김씨 세도를 연 김조순도 처음부터 죽기 전까지 비변사의 제조 자리에서 이런 방식으로 정국을 장악했다.
그때에는 왕이 허수아비와 같은 시기였기에 사실상 조선의 모든 권력이 김조순과 그 아들들에게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안동 김씨 세도정치 시대에 왕권을 제약하던 비변사는 이제 임금인 내 뜻에 절대적으로 복종을 하는 기구가 되어 있었다.
조선의 모든 기구인 의정부와 육조, 모든 군무의 집합체인 비변사를 통해 나는 정국을 내 마음대로 이끌게 된 것이다.
아직은 물론 사대부와 유림이라는 나름대로의 세력이 남아 있었지만, 그것도 시일이 지나면 차차 정리를 할 생각이었다.
비변사를 통해 나는 이제 서구 유럽의 국왕들이 가지고 있는 수준 이상의 강력한 권력을 손에 넣게 되었다.
*
대궐 앞 비변사에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오늘의 회의는 평소와 다르게 비변사의 도제조를 비롯한 제조들과 부제조들이 모두 참석했다.
도제조인 영의정 정원용이 임금이 특별히 하교한 문제에 대해서 먼저 언급을 하고 나섰다.
“관북과 관서에 파견할 어사 겸 안핵사에 누구를 내보내면 좋겠소이까? 다들 의견들을 내 보시오.”
정승, 판서들을 비롯해서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들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평소엔 아무리 평안도와 함경도가 험하다고 해도 안핵사 자리가 탐이 나서 부탁하는 위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임금이 상참에서 특별히 강조했듯이 이번에 나갈 안핵사는 간도와 녹둔도까지 둘러보고 와야만 했다.
녹둔도야 그렇다 치고, 간도가 어디인가. 압록강 너머는 여전히 야인들이 설치는 지역이었다. 잘못하다가는 야인들의 습격을 받고 북방의 원귀가 될 수도 있는 길을 굳이 자처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죽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정승들과 판서들이 자신의 수하들과 여러 경로로 사람을 물색했지만, 능력 있는 자들 중에서 안핵사로 가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선뜻 없었다.
일부는 정승들의 반강제적인 부름에 하루아침에 병을 칭하고 나오지 않았다.
잘해도 욕을 먹고, 못해도 욕을 먹을 자리가 이번의 안핵사였다. 그런 데다가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자리였다.
간혹 안핵사로 가겠다는 자가 있기도 했지만, 터무니없는 함량 미달이라서 임금의 승인을 받기는 어려운 자들 뿐이었다.
비변사 회의는 다음 날에도 열렸지만 같은 이유로 수확이 없이 끝났다. 임금에게 추천할 사람 하나도 정하지 못한 터라서 회의를 끝내고 일어서는 대신들의 표정들이 흐린 날씨만큼이나 어두웠다.
임금이 내린 기한의 마지막 날인 사흘째였다.
비변사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대신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추천할 만한 사람들을 물색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렇게 사람이 없어서야 어디 정사가 되겠소이까?”
“그렇소이다. 안핵사 하나도 구하지 못하는 비변사가 대체 무슨 소용이 있소이까?”
“안핵사도 안핵사 나름이 아니오이까. 어디 간도가 쉬운 곳이오? 거기 가면 살아 돌아올지 어쩔지도 모르는데 말이오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조정의 모든 대신이 모여 있는 이 비변사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니, 이게 어디 참,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요.”
“어디 구하려면 사람이야 없겠소이까?”
“안핵사를 감당할 만한 사람이어야지요.”
“이제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소? 내일 차대에서 전하께 두 사람을 추천해 올려야 하는데 하나도 구하지 못했으니 말이오.”
“큰일이오. 이번 일은 전하께서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계시는데 말이오.”
“대체 전하께서 왜 그렇게 간도에 신경을 쓰시는 거요?”
“그거야 뻔하지 않소이까? 전하께서야 백성들의 어버이이시니 백성을 챙기시는 거지요.”
“그거야 당연한 말이지만… 하지만 대체 전하께서 간도를 왜 그리 신경을 쓰시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소이다.”
“혹시 전하께서 간도가 욕심이 나시는 거 아닌가 싶소이다.”
“욕심이라니요? 거기가 어디 욕심이 난다고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땅이오이까?”
“아니, 못 가져올 것은 또 뭐요? 거기가 어디 남의 땅이요?”
“어허. 큰일 날 소리. 지금 우리가 한 말을 상국에서 알아보시오. 아마 난리가 날 것이오, 난리가!”
“난리는 무슨? 지금 청국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공은 모르시오?”
“어떻게 되다니요? 뭐가요?”
“영길리라는 양이에게 전쟁에서도 졌다고 하오이다.”
“그게 언제적 일이오? 벌써 십여 년 전이 아니오?”
“그만큼 청국의 힘이 약해졌다는 말이외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호랑이가 어디 발톱 하나 빠졌다고 호랑이가 아니오?”
“그건 맞소이다. 지금 상국이 비록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해도 우리 조선이야 상국에 대해 예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보오.”
“그렇소이다. 이럴 때일수록 상국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아니 되오이다. 생각해 보시오. 만약에 우리 조선이 이번 일로 간도에 관리라도 파견해 보시오. 당장 상국에서 불호령이 떨어질 거요.”
“전하께서 그걸 모르실 리는 없을 거고, 아마 전하께서는 안핵사를 파견해서 백성들을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일 거요.”
“그렇소이다. 분명히 그렇소이다.”
“다들 의견들은 그리하면 됐고, 이제 안핵사 문제를 다시 이야기해 봅시다. 자, 다들 다시 추천해 보시오.”
모두가 다시 입을 닫았다.
“정말 없소이까?”
그때까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병조판서 신관호가 입을 열었다.
“제가 염두에 둔 한 사람이 있는데 말입니다.”
“오! 병판, 그래 어떤 사람이요? 누구요?”
신관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누구이기에 그리 한숨을 내쉬시오?”
“그게 말입니다. 그자를 추천해도 될지 아닐지를 몰라서 말입니다.”
“무슨 말이오? 지금 사람이 없는데, 어디 말씀해 보시오.”
“그렇다면 말씀해 올리지요. 그자의 이름은 김병연이라고 합니다.”
“김병연? 김병연이 누구요?”
누구 아는 사람 없느냐는 얼굴로 정승들이 서로를 보았다. 우의정 김정희의 인상이 심각했다. 김정희는 김병연과 친분이 있었지만 나서지 않았다. 김병연을 사지로 몰고 싶지 않아서였다. 김정희는 신관호를 바라보았다. 신관호는 짐짓 모르는 척했다.
“김병연이라면 설마 그 삿갓을 쓰고 사대부들을 희롱하고 다닌다는 그 사람 말이오?”
“병판이 설마 그런 자를 추천했겠소? 동명이인이겠지요?”
“맞습니다. 그 김병연입니다. 저와 면식이 있는 사이입니다.”
“어허. 그자는 조부가 지난 홍경래의 난 때 역당의 수괴에게 투항했던 자가 아니오이까?”
“그 일은 사면되었다고 들었소이다.”
김병연의 재능을 아끼는 김정희가 그때야 나섰다.
“우의정 대감의 말 그대로입니다. 김병연은 지금 관직을 맡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허. 병판, 아무리 그래도 김병연은 장김의 일가붙이가 아니오이까?”
결정적인 흠이라면 흠이었다. 장김의 가족들은 모두 도륙되거나 귀양을 가거나 노비로 전락했다.
“김병연은 아니라고 들었소이다. 일가라고 해도 다 같은 일가가 아니에요. 김병연이 지난 시절에 장김을 조롱하는 시들을 짓고 다녔다는 것은 여기 있는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외다.”
좌의정 김도희가 신관호를 지원하고 나섰다. 김도희는 임금의 오른팔로 떠오른 신관호의 일이라면 앞뒤 안 가리도 돕고 나서고 있었다.
눈치 빠른 김도희의 처신에 대신들이 상황을 알아차렸다. 지금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비변사를 사실상 끌어가고 있는 신관호의 의견에 반대해서 좋은 것이 없는 대신들이었다.
신관호의 입을 통해서 임금의 뜻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지시에 신료들의 인사가 결정되고 있었다.
신관호의 의견에 반대를 하는 것은 곧 임금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대신들은 생각했다.
그래도 기질적으로 근엄한 신하들은 귀에 들려오는 김병연의 가벼운 처신들이 못마땅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전하께서 허락하시겠소이까?”
임금이 반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혹여나 신관호가 개인적으로 김병연과의 친분 관계를 들어서 그를 추천한 것이 아닌가 하는 미진한 생각도 들어서였다.
“아니, 지금은 사람이 없지 않소이까? 김병연이든 누구든 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게 다행이 아니오?”
“병판께서 추천하는 사람이니 능력은 있다고 보지만, 김병연이 관직 경험도 없는 자라서, 그래서 어째 불안하오이다. 전하께서 실없는 인사를 추천했다고 진노나 하지 않으실지……?”
“지금은 우리가 어디 찬밥 더운밥 가릴 입장이 아니오이다. 도대체 사람이 없지 않소이까?”
“어허!”
“어허! 이걸 어찌한다!”
안핵사로 누구를 추천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다시 오갔다. 대신들은 그래도 김병연 이외의 사람을 찾지 못했다.
대신들의 의견을 두루 청취한 영의정 정원용이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됐소이다. 결정되었소. 김병연을 전하께 안핵사로 추천하도록 합시다.”
“전하께서 진노하지만 않았으면 좋겠소만, 어찌 될지 모르겠소이다.”
임금이 일부러 신관호에게 은밀히 일러서 신관호로 하여금 김병연을 추천하게끔 만든 안핵사 문제는 이렇게 해결이 되었다.
청과 러시아가 오기 전에 간도와 녹둔도를 위시한 연해주 땅을 조선의 영토로 차지할 첫걸음이 이렇게 시작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임금에게는 무엇보다도 프랑스의 도움이 더욱 절실해졌다. 임금은 프랑스인들이 묵고 있는 교동의 저택으로 최고의 조선 음식과 식재료들을 서둘러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