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양동작전 (1)
천하의 재사이자 개혁, 개방의 선구자인 박규수를 우승지로 앉히고 나서 나는 며칠 동안 박규수를 불러 앞으로 조선이 나아갈 길에 대해서 묻고 들었다. 박규수는 역사에 적힌 것 이상의 기재(奇才)였다.
“전하, 조선이 나아갈 길은 첫째도 백성이고 둘째도 백성입니다. 전하, 인재를 널리 구하소서. 당파에 얽매지 말고 귀천을 따지지 마소서. 지금 조선은 인재가 부족한 나라이옵니다. 이에 신 박규수 다시 아뢰옵니다.”
나는 박규수가 할 말을 알고 있었다. 다시 중인 허통이었다.
“전하, 중인을 허통해 주옵소서.”
“하아!”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우승지 박규수는 집요했다. 생각이 날 때마다 중인 허통을 주장하고 나섰다. 마치 중종 때 조광조가 이러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박규수의 주장은 옳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림과 사대부들의 반발을 아직은 정면으로 맞닥뜨리기 싫었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었다.
“전하, 신 우승지 박규수 다시 한번 더 청하옵니다.”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 알겠소. 내 어찌 우승지의 우국충정을 모르겠소이까. 하지만 이제 서얼을 허통한 지 겨우 며칠인데, 조금 숨을 돌린 후에 합시다.”
“전하,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는 속담이 있듯이 중인 허통도 이번에 함께 이루소서!”
“그러니까 우승지의 말은 이번 과거부터 당장 중인을 허통해서 인재로 등용을 하라 그런 말이오?”
“전하, 지금 이 나라는 전하의 말씀대로 위기입니다. 능력 있는 중인들을 이참에 대과로 대거 등용하신다면 전하의 치세가 실로 단번에 안정이 될 것이옵니다.”
나 역시 박규수의 생각과 같았다. 하지만 조정과 사대부들의 반발이 문제였다. 나는 해결책을 고심하고 있었다.
*
폐허가 된 경복궁 전각의 잔해 위로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경복궁 서편에 웃대라고 불리는 마을(현대의 세종마을 서촌)의 한 기와집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역관 이상적의 집이었다.
이상적은 중인 출신의 역관으로, 추사 김정희의 제자였다. 김정희는 이상적에게 개인 선물로 저 유명한 세한도를 그려 줄 정도로 제자 중에서도 그를 아꼈다.
해가 중천에 오른 시각부터 이상적의 집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기는 뭘 와, 열린 문 앞에서?”
안에서 나온 큰 소리에 문 앞을 보던 갓 쓴 사람이 반가운 얼굴을 했다.
“어? 이게 누구야? 자네 정수동이 아닌가? 그래, 함경도에 있다고 하더니 언제 돌아왔는가?”
“어제.”
정수동은 풍자와 해학을 담은 시로 김삿갓 김병연과 더불어 당대의 유랑 시인으로서 유명한 기인이었다. 중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의정으로 있는 김정희와도 교류가 깊은 인물이었다.
“근데, 오늘 모인다는 건 어떻게 알고 온 건가?”
“자네들이 역적모의한다고 해서 나도 가담하려고 왔네. 왜, 답이 됐는가?”
“어험! 역적모의라니? 응, 맞네.”
“빌어먹을 양반 흉내 내지 말고 어서 들어가지. 역당들은 다들 모였나?”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대청에 열댓 명이 넘는 중인이 모여 앉아 있었다.
“어후! 겨우 이거 가지고 무슨 나라를 뒤엎어?”
정수동을 알아본 중인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일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라 엎는 데 숫자가 중요해? 기회가 중요하지.”
“그 기회가 언제인데?”
“지금.”
정수동이 자리 한가운데를 비집고 들어가자 썰물이 빠지듯이 가운데가 비었다. 일 년 내내 몸을 씻지 않는 정수동에게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 때문이었다.
“자자, 다들 자리에 앉아요. 아직 시간이 좀 이르니 차나 드시면서 얘기나 나누고들 있어요.”
이상적의 집에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가 중인으로, 그 직업이 역리에 기술관에 서리에 향리에 군교에 의관까지 다양했다.
약속 시간인 오후가 되면서 중인의 수는 삼십여 명으로 불어났다. 모두가 각각의 직업을 대표하는 책임자들로, 저마다 연통을 통해서 이상적의 집에 모인 것이다.
대표자들이 모두 모이자 회의가 시작되었다. 이상적이 먼저 며칠 전에 있었던 서얼 허통에 대해 언급했다.
“주상 전하께서 서얼 허통을 하신 것은 여러분도 모두 알 것이오.”
“세상이 뒤집혔는데 그걸 누가 모르겠소? 천출의 자식이 이제 양반이랍시고 뒷짐 지고 다니고 있는데.”
“어허, 그 무슨 말이오? 여기 모인 우리도 양반들에게서 무시당하는 것은 마찬가지요. 지금 이 판국에 어찌 그런 막말을 하시오?”
“아니, 내 말은, 내게서 의술을 배우고 있는 첩의 자식 얘기오이다. 자기는 이제 양반이 되었으니 말끝마다 나보고 존대를 해 달라고 하며 내게 하대하더이다. 내참! 기가 막혀서!”
“어허, 그런. 서얼도 우리와 같은 처지였거늘.”
“좋은 세상이구려. 허허!”
“그 좋은 세상이 우리에게도 왔으면 좋겠구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우리가 다들 모인 것 아닙니까. 그 좋은 세상 빨리 같이 보자고요.”
“중인 허통이 어디 말처럼 쉽겠소이까?”
“허어, 그럼 쉽지 않으면요? 지금 주상 전하께서는 보통 분이 아니오이다. 지금이 우리에게는 기회예요. 하늘이 우리에게 내린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말입니다.”
“그걸 누가 몰라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게 문제가 아니오?”
“어떻게 하긴요? 우리도 서얼들처럼 대궐로 몰려가야지요.”
“상소는요?”
“암요, 상소도 올려야지요.”
“그러다가 다치면요?”
“다치다니요?”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선대왕 시절의 일을 잊었소이까? 그때도 중인을 허통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를 가고 장에 맞아 죽은 이가 한둘이 아니오이다. 그 일로 가포는 벼슬까지 떨어졌소이다.”
가포(稼圃)는 조선 후기의 거상인 임상옥의 자(字)다. 임상옥은 순조와 헌종 때의 상인으로, 청과의 인삼 무역을 통해 거금을 모았다. 후에 가뭄과 수해를 당한 백성을 구휼, 구제하는 등으로 공을 세워서 곽산군수에 이어서 구성부사에까지 올랐지만 비변사의 논척을 받고 벼슬에서 내려왔다.
“그때는 고약한 장김 세도 때가 아니오?”
“지금이나 그때나 달라진 게 뭐요? 그때도 지금도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가 아니오?”
“어허, 그건 저들의 주장일 뿐이오!”
“저 사대부들이 이 나라를 5백 년간 다스렸소!”
“그래서 지금도 앞으로도 그걸 계속 인정하자는 거요? 그리고 사대부들에게 자리를 구걸하고 벼슬을 올려 달라고 다시 재물이라도 바칠 거요?”
“그 무슨 그런 말을 하시오? 지금 대궐에는 전하께서 계시는데.”
“그대가 전하의 뜻을 아오? 전하께서 그대에게 중인 허통을 해 주겠다고 약속이라도 했소?”
“어험! 나야 뭐, 전하를 뵌 적도 없소이다만…….”
사람들 모두가 실없이 웃었다.
“그러니 그렇게 쉽게 믿고 볼 일이 아니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앉은자리 사이로 연판장이 돌고 있었다. 중인 허통을 해 달라고 임금에게 소청할 상소문에 함께 올릴 서한이었다. 이상적이 소매를 걷고 붓으로 수결을 써 넣었다.
“다들 연판장에 수결하세요.”
중인들이 너도 나도 연판장에 서명을 했다.
“전하께서 우리를 모두 죽이시지는 않겠지요?”
표정들이 굳었다.
“설마요? 파직이라면 모를까?”
“나는 두렵지 않소이다. 전하께서 죽이시면 죽는 수밖에요!”
“나도 이제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소. 양반들 부속으로는 못 살겠다는 말이오!”
“어허, 이 사람들 언성 높이는 거 보게. 다들 간덩이들이 부었네. 허허!”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중인들이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앞으로 모여들어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오후 들어서는 대궐의 앞에서 연좌를 하는 중인의 수가 천여 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전하, 중인을 허통하소서!”
“전하, 허통해 주소서!”
도성 안팎에서 백성들이 중인들의 집단행동을 보려고 모여들었다. 그 수가 수천을 넘고 있었다.
한양의 상점가와 거리마다 사람들 사이에서 중인들의 소청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혀를 차고 언성을 높이거나 서로 삿대질을 하는 경우도 보였다.
창덕궁 앞에서의 연좌 소식은 오후부터 한양 밖 경기로도 번져 나갔다. 다음 날부터는 보부상의 빠른 발을 타고 근동을 넘어 조선 팔도로 퍼져 나갔다.
지방 고을 향리들의 손에 한양에서의 연판장 사본이 들렸고, 서리들이 서명에 나섰다.
사흘이 지나면서 고을 동헌에 나오지 않는 아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령을 보좌하던 구실아치들이 관아의 일을 놓은 것이다.
비변사에서 당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히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안건은 역시 중인들의 소청에 관한 것이었다.
“연좌가 벌써 이레가 넘었소. 어찌하면 좋겠소?”
이레는 7일이다.
“어찌하긴요? 잡아들여야지요!”
“저들 모두를 말이오? 대궐 앞에 연좌한 중인의 수가 물경 이천여 명이 넘고 있소이다.”
“이천 명이건 만 명이건 모두 잡아들여야지요! 저들이 대체 무엇입니까! 중인이 대체 무엇이오이까! 중인이라는 것이 본래 사대부들이 해야 할 잡다한 것과 천한 일을 도맡아서 하는 역할을 하는 무리가 아니오이까. 그런 천한 자들이 감히 사대부와 같은 자리에 오르겠다니. 이거야말로 천지가 뒤집히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소이까!”
대신들 사이에서 감정이 잔뜩 실린 성토가 쏟아졌다.
“맞소이다. 대체 저들의 망동을 언제까지 지켜보아만 하오이까!”
“저들 무리에게 동조하는 서리들로 인해 관청 업무가 마비되고 있어요. 이대로 두어서는 아니 됩니다.”
“잡아들여야 합니다!”
“당장 잡아들이세요!”
대신들이 손바닥으로 탁자들을 때려 붙였다.
제조로서 비변사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병조판서 신관호는 심각한 표정만 지을 뿐 의견을 내지 않고 있었다.
좌의정 김도희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날이 저물고 있으니 내일 봅시다. 중인들의 통청 운동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말이오. 조정에서 응하지 않으면 저러다가 제 풀에 지쳐 떨어질 것이오.”
“김 대감 말이 맞소. 하지만 중인들이 저러는 게 어디 하루이틀의 일도 아니고, 언제까지 우리가 저런 생떼를 보고만 있어야 하오?”
“조정이 물러서 그래요. 조정이 약한 모습을 보이니 저 중인 것들이 저리 되지도 않을 걸 가지고 날뛰고 있는 거예요!”
“서얼도 허통되지 않았습니까. 중인들이 그걸 보고 기회다 싶어서 그런 거지요.”
“서얼이 어디 남입니까. 서얼이야 따지고 보면 우리 사대부의 핏줄이 아닙니까.”
“군사들을 풀어서 저들을 모두 잡아들이는 게 어떻소이까?”
“신 판서의 생각은 어떠시오?”
병조판서 신관호에게 모두가 시선을 돌렸다. 신관호의 태도가 곧 임금의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신료들이었다.
“글쎄요.”
신관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 보시오. 신 판서도 저들 중인들의 행태에 대해 못마땅한 것이 아니오이까?”
아전인수 해석들이 오갔다. 신료들이 신관호의 눈치를 보며 표정을 살폈다.
“전하께서도 분명히 중인들이 저리 억지를 부리는 것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신다는 거 아니겠소. 아니 그러오, 신 대감?”
신관호가 나섰다.
“전하께서 이 문제를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셨소이다.”
신관호의 말에 신료들이 크게 놀랐다. 일부는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 그럼 전하께서 중인들의 소청 운동을 허락하신다 그 말이오?”
신관호가 입을 다물었다.
“그럼 대체 이게 어떻게 되는 것이오?”
“이럴 수는 없소! 그럴 수는 없다는 말이오!”
신료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그런데 말이오. 이런 판국에 전하께서는 지금 한글학교라는 것을 조선 팔도에 세우고 싶어 하신다고 하는데, 모두들 그 소식은 들으신 게요?”
“한글학교요? 그건 규장각에 설치된 그거 아니요? 전하께서 승정원의 장계를 언문으로 번역을 해서 올리라는 목적으로 만드신 거.”
“그게 아니오이다.”
“그게 아니라니요?”
“한글학교라는 게 조선 팔도의 각 고을에 있는 서당을 대체한다 하더이다.”
“그 무슨……?”
갑자기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이 황당한 표정들로 신료들 간에 시선이 오갔다.
“허 대감은 그걸 어찌 아셨소?”
“예조에서 그런 말이 나오고 있소이다.”
“예조요?”
“어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서당을 대체하는 한글학교라니?”
“설마 전하께서 그런 걸 하실 리가 있겠소?”
“그러고 보니 예판이 보이지 않소이다?”
예조판서가 비변사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정국이오? 중인들이 저리 날뛰고 있는 마당에 한글학교는 또 뭐란 말이오?”
“어허! 이거 대체 뭐가 뭔지…….”
당황한 신료들 사이에서 임금의 오른팔인 병조판서 신관호가 속으로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