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죽느냐 사느냐
충청도 유생들로부터 시작된 상소가 삼남 전체로 번지며 빗발치듯이 승정원으로부터 내게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상소 중의 하나를 일부러 우승지 박규수에게 소리를 내어 읽도록 했다.
상소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전하, 선정(先正) 송시열은 우리 효종대왕과 공덕을 같이한 신하입니다. 송시열은 큰 의(義)를 붙잡아 우주에 펼쳤으니, 이 나라 조선의 백성들이 금수(禽獸)가 되는 것을 면하게 된 것이 누구의 공로이겠습니까.
-송시열이 세상을 뜨기 마지막 순간에 수제자 권상하에게 이르기를,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데 사무친 통한이 가슴에 맺힌다고 했나이다.
-전하, 송시열의 고심에서 나온 이 유훈으로 신종(만력제)과 의종 황제를 모시는 만동묘(萬東廟)가 세워지고, 조선은 이제 금수의 나라가 아니게 되었나이다.
-전하, 성현의 이 뜻을 받들어 보전하고 후대에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조선이 임진년 이래로 입은 은혜를 맹세코 하늘에 잊지 않겠다고 고하는 일이고, 조선이 금수의 나라가 아님을 천지간에 밝혀 알게 하는 것이옵나이다.
-전하, 송시열의 제자들이 이에 만동묘의 옆에 서원을 세우고 송시열을 제향한 것은 이에 합당하고 옳은 일입니다.
-전하, 공맹을 따르는 송시열의 제자들이 만동묘에 이어 화양서원을 세워 송시열을 제향하는 것에 대해, 숙종대왕께서 친히 어필로 편액을 내리셨고 선대왕들께서도 그 제사 때마다 승지를 보내어 나라의 중한 일로 여겼나이다.
-이에 조정과 백성이 성현의 기일에 임하여 한마음으로 그 제사를 모심에 열성을 다하였나이다.
-전하, 하오나 기유년(己酉年, 철종 즉위년, 1849년)에 이르러 성현의 제사를 모심에 점차로 부조하며 합심하는 일이 소홀해지더니.
-지난 기일의 제사에는 인근 관아의 수령들조차 서원의 제사 일을 돕지 않고 심지어 서원의 일을 거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나이다.
-전하, 조선은 본래 유학의 나라이온데 관아의 수령이 솔선수범해서 서원의 일을 앞장서서 도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사에마저 협조를 하지 않으니, 이것은 수령이 유학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 일이옵고 금수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아니옵니다.
-전하, 바라옵건대 화양서원의 제사에 방납을 성의를 다해 보내지 않은 관장들의 죄를 엄히 물어 조선의 백성들이 유학의 바른 도리를 알도록 해 주소서.
선정(先正)은 선대(先代)의 현인 또는 어진 신하를 이름이다.
상소문을 계속 읽어 내려가는 박규수를 내가 손을 저어 중단시켰다.
“그러니까, 관아의 수령들을 죄주라 그거군. 이자들은 정말로 자신들이 조선의 주인으로 아는구나? 호중아, 이 나라의 주인이 저들 유림이냐 아니면 임금인 나이냐?”
“전하…….”
상선인 김호중이 바닥에 엎드렸다. 우승지 박규수도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상소에 이어 편전에서 열린 상참에서도 신료들이 충청좌도 관아의 수령들의 잘못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전하, 성현의 제사를 모시는 일에 소홀한 황간 현감과 진천 현감, 괴산 군수, 옥천 군수에게 죄를 물어 주소서. 전하, 저들을 파직하소서.”
“파직하소서!”
“서원의 일을 돕지 않았으니 파직하라?”
“그러하옵나이다, 전하. 더불어서 청안 현감 역시 서원에 바칠 물품을 가지고 달아난 호방 신재호를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함께 파직하소서.”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것들이.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나는 참았다. 욕설이 나오려는 것도 간신히 한숨으로 풀었다.
오냐, 다들 지껄이고 떠들어라. 너희를 모두 이번에 한꺼번에 쓸어버리리라. 나는 오늘의 상참은 그저 듣기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 상참은 신료들을 위해 내가 준비한 마지막 만찬이나 마찬가지였다.
“서원의 제사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관장에게 죄를 묻는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닌가?”
“전하, 영종(영조)대왕 때에도 충청 병사 휘하의 비장이 화양서원에서 행패를 부린 일이 있사온데, 영종대왕께서는 비장을 다스리지 못한 죄를 충청 병사에게 물어 백성들에게 모범이 되게 하였나이다.”
“비장이 서원에 행패를 부린 것과 협조를 하지 않은 것은 사안의 비중이 다르지 않은가?”
“전하, 행패를 부린 것과 협조를 하지 않은 것은 서원에 대해 예를 다하지 않은 것은 같은 것으로 경중을 가릴 수 없는 것이옵나이다.”
“그런가?”
“전하, 이번 일로 수령들을 벌주어 감히 성현들을 모시는 팔도의 서원에 대해서 수령 방백들이 예를 소홀히 하는 것을 경계하게 하소서.”
“경계하게 하소서!”
너희 말로는 서원이 나라의 관보다 높고, 유림이 임금의 위에 있구나. 나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언제까지 이런 억지 논리를 부리는가 보자 싶어서 그대로 들었다.
임금인 내가 반박이나 반대하는 의견을 내지 않자 신료들이 더욱더 기세를 올렸다. 흥선군의 일마저 다시 재론을 하자고 거론하고 나왔다.
“전하, 지난 상참에서 흥선군 이하응이 벌인 화양서원에서의 일에 대해 조정에서 조사가 있을 것이라는 소식에 유생들의 반발이 크게 일고 있나이다.”
상소로 확실히 확인된 사항이었다. 조만간 유생들이 대거 도성 한양에 상경하여 대궐 앞에서 이를 두고 돗자리 농성을 할 것이라는 정보도 있었다.
“왕실의 종친인 흥선군에 대한 불상사는 내가 직접 조사를 명했다. 이에 그 누가 반발을 한다는 말인가?”
“전하, 흥선군의 일 역시 흥선군이 성현의 도를 따르는 유생들에게 예로 대하지 않고 함부로 하다가 일어난 사안입니다. 전하, 부디 통촉하시옵소서.”
“통촉하시옵소서.”
“그러면 경들의 생각에는 흥선군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나는 속으로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도 겉으로는 신료들의 의견을 마치 수용하겠다는 듯이 의견들을 물었다. 그러자 신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
“전하, 성현을 모시는 서원을 더럽힌 흥선군 이하응에게 죄를 물어 주소서.”
“죄를 물어 주소서!”
“전하, 성현의 도를 업신여긴 흥선군의 죄를 물으시어 백성들에게 경계로 삼으소서.”
“경계로 삼으소서!”
우의정 김정희만이 흥선군을 두둔하고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영의정 정원용은 병을 칭하고 상참에 불참했다. 좌의정 김도희 역시 유림과 서원에 관련된 사안이라서인지 지금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병조판서 신관호는 미리 내가 일러 준 대로 이 사안에 오늘은 의견을 내지 않고 있었다.
신료들이 신관호를 가끔씩 흘끔거렸지만 아무런 대응이 없자 더욱더 노골적으로 흥선군에게 죄를 내려야 한다고 강하게 주청들을 늘어놓았다.
대궐 희정당의 편전은 마치 흥선군의 성토장처럼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화양서원이 위치한 충청도 고을의 수령들에게 엄벌을 내려 달라고 모두가 합심을 해서 임금인 내게 요구했다.
“전하, 성현의 도를 따르지 않는 충청좌도의 고을 수령들을 조사하여 죄를 물어 주소서.”
“죄를 물어 주소서!”
“전하, 흥선군에게 벌을 내리시어 백성들이 성현의 도를 알게 해 주소서.”
“알게 해 주소서!”
흥선군에게 죄를 물어 벌을 내려서 서원과 유림에게 대들고 까불면 죽는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확실하게 보여 달라는 속이 보이는 요구였다.
상참의 분위기만 보아서는 화양서원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은 인근 고울 수령들은 관직이 날아가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더불어서 화양서원에서 모욕과 매질을 당한 피해자인 흥선군 역시 가해자로 몰려서 죄를 물어야 할 판이었다. 신료들 모두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경들의 의견은 내 잘 들었소이다. 화양서원에 대한 이 두 가지 일은 사흘 뒤에 있을 차대에서 내 친히 밝히겠소.”
상참을 마치겠다는 도승지 서염순의 안색이 파리했다. 임금인 내가 편전에서 나간 후에 도승지 서염순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도승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나는 즉시 어의를 서염순의 집으로 보냈다. 돌아온 어의는 서염순이 과로가 중첩이 되어 당분간 요양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게 고했다.
다음 날에 서염순은 임금인 내게 병을 얻어 도승지 자리를 수행할 수 없다는 사임의 뜻을 전해 왔다.
도승지 서염순은 사람이 청렴하고 천상 선비인 사람이었다. 더불어서 우리 글인 한글에도 애착을 가지고 선대왕인 헌종 말기에 한글 연구서인 언음첩고(諺音捷考)를 책으로 내기도 했다.
서염순은 임금인 내가 승정원에 한문으로 된 상소와 상주문들을 한글로 번역해서 올리라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찬성한 인물이었다.
나는 서염순에게 탕약을 내리고 내의원의 의관들을 계속 보내어 병세를 살피라고 지시를 했다. 그러고는 도승지 자리에 우승지 박규수를 승차시켜서 그날로 승정원의 모든 일을 장악하게 했다.
*
“아이고! 아우니임!”
흥인군 이최응이 웃는 얼굴로 흥선군의 집 대문에 들어서고 있었다. 흥선군 집의 노복이 기가 막힌다는 눈빛으로 흥인군을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오늘은 또 무슨 일입니까, 형님?”
흥선군 이하응이 부인인 민씨가 건네준 탕약 그릇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아우님은 아직 소식 못 들으셨는가?”
“소식이라니요?”
“어허, 이 사람. 지금 이렇게 자리보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네.”
“다짜고짜 무슨 말입니까?”
“어허, 이 사람. 진짜 모르는 모양이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럽니까?”
“어허, 이 사람 아우님. 놀라지 말고 잘 듣게. 이제 아우님은 큰일 났네.”
“큰일이라니요?”
“내가 조정에서 흘러나온 소식을 들었는데, 어제인가 그제인가 대궐의 상참에서, 상참에서…….”
흥인군은 말을 하려다가는 옆에 앉아 있는 흥선군 부인 민씨를 의식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흥선군이 눈짓을 하자 민씨가 탕약 그릇을 들고 방을 나갔다.
“상참에서 큰일이라니요? 무슨 말입니까?”
“그게 말이네, 아우님. 신료들이 아우님에게 죄를 내리라고 아우성들을 쳤다는 소식이네.”
“내게 죄를 내리라고요? 무엇 때문에요?”
“몰라서 묻는가? 화양서원에서 아우님이 유생들과 다툰 일 때문이지.”
“다투기는요? 제가 일방적으로 맞았습니다.”
“아, 그게 그거 아닌가. 저들 유생 놈들이 보기에는 아우님이 자기들을 모욕한 걸로 생각하겠지?”
“그놈들이…….”
“아우님, 이제 어쩔 셈인가? 내가 듣기로는 화양서원은 물론이고 조선 팔도의 모든 서원의 유생들이 아우님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고 들고일어날 기세인데?”
흥선군 이하응이 굳은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죽일 놈들.’
“그래, 상참에서의 일은 정말 듣지 못한 건가? 신료들이 아우님에게 중벌을 내려 달라고 이구동성이었다네.”
흥인군이 재차 흥선군의 표정을 살폈다. 흥인군은 이 정도면 흥선군이 겁을 집어먹고 안색이 하얗게 질릴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흥선군의 얼굴은 겁을 먹기는커녕 노기가 서려 있었다.
“아우님, 괜찮은가?”
“괜찮지 않으면요?”
흥선군이 흥인군을 노려보았다. 눈썹이 꿈틀거리고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무서운 눈빛에 흥인군이 흠칫거렸다.
“아, 아우님, 내, 내가 뭘 어쨌다고 나를 그렇게 보나?”
흥선군 이하응은 잠시 입을 다물고는 생각에 잠겼다. 앞에서 흥인군이 눈치를 보다가는 흥선군에게 말했다.
“아우님, 이대로 있으면 죽네. 무슨 수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죽다니요? 내가 왜 죽습니까?”
“저들이 화양서원의 일로 아우님을 통박하고 죄를 주자는 것은 아마도 시작에 불과할 걸세. 그럼, 난 소식을 전했으니 이만 가네.”
경고를 남기고 떠난 흥인군 이최응은 흥선군 이하응의 집 대문을 나서자마자 신이 난 듯이 발길에 힘을 실었다.
“허허허허허!”
하늘을 보며 흥인군이 크게 웃었다.
흥선군 이하응은 불안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채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흥인군의 말대로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꼼짝없이 죄를 쓰고 당할 것이 분명했다.
화양서원에서 있었던 일이야 별것이 아니었지만, 이번 일로 유림이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자신을 역모로 엮어 낼 가능성도 있었다.
임금이 주재하는 상참에서 신료들이 앞을 다투어서 벌을 내리라고 했다면 사태는 심상치가 않은 것이다.
밤새 잠을 설치고, 해가 뜨자 흥선군은 아침도 먹지 않고 스승인 추사 김정희의 집을 찾았다. 다행히 김정희는 등청 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흥선군에게 가려고 했었네.”
“대감,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돌아가는 조정의 여론이 심상치가 않네. 아무래도 이번 일이 크게 확대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네.”
“전하께서는 어떻게 나오시던가요?”
“상참의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아서 전하께서도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네.”
“그렇다면……?”
“어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흥선군도 알다시피 지금 서원과 유림의 힘이 어디 보통인가. 장김 세도도 어찌하지 못한 서원일세.”
“대감, 전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혹여 아십니까?”
김정희가 대답 대신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의정인 김정희도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는 것이 확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사흘 후에 희정당에서 차대가 열리네. 거기에서 흥선군 자네에 대한 처리가 결정이 날 걸세. 미안하네. 내 그래도 명색이 자네의 스승인데 이렇듯이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니.”
김정희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김정희는 흥선군이 화를 당하면 우의정직에서 사임할 생각이었다.
흥선군은 기운이 빠진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부인인 민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휘청이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흥선군을 부축했다.
그날 밤에 흥선군은 혼자서 꺼이꺼이 울었다. 임금의 명을 받은 신임 도승지 박규수가 세 번째로 다녀간 직후였다.
대궐에서 신료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에 차대가 열리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