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서원이 철폐되다 (1)
충청 감영의 판관(判官)과 중군(中軍)이 이끄는 수백여 명의 군졸이 충청도 괴산에 있는 화양서원을 향해서 줄달음질을 치고 있었다.
이들은 하루 전에 공주에 있는 감영에서 출발해 괴산의 만동묘와 화양서원을 지척에 두고 있었다.
-충청도 관찰사 홍열모는 어명을 받는 즉시 화양서원을 포위하고 서원의 유생들을 모두 감영으로 잡아들이라.
-사헌부 장령 송달수는 이들을 엄히 심문하여 그 죄의 본말을 속히 올리라.
임금의 지엄한 어명이 떨어졌다.
같은 시간에 대궐 앞 비변사에서는 신료들이 모인 가운데 오후에 있을 차대(次對)에서 다룰 안건에 대한 의견이 오가고 있었다.
신하들 사이에서 오늘의 차대에서 결정이 날 흥선군 이하응의 신변 처리를 두고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전하께서 설마 흥선군에게 죄를 묻지 않으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 있겠소이까? 전하의 복심인 병판도 어제와 그제의 비변사 회의에서 아무런 말도 없었소이다. 이것이 무슨 뜻이겠소? 전하께서도 이번 일에서만큼은 흥선군의 잘못을 질책하고 계시다는 일이 아니오이까.”
“이참에 흥선군에게 죄를 준다면 우리 사대부와 유림의 힘이 조정에서 더욱더 커질 게 아니겠소?”
“그렇소이다. 사실 장김의 세력이 득세하기 전까지만 해도 유림과 우리 사대부들이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었소이다. 이제 다시 우리 노론에 때가 온 것이외다.”
“사실 영종(영조)대왕과 정종(정조)대왕 때도 조금 부침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엄연히 이 나라 조선의 주인은 사대부들과 유림이오이다.”
“다들 어떻소? 흥선군에 대한 처우에 대해 지난 비변사 회의에서는 유배로 의견들이 모아지고 있소이다만……?”
신료들이 그러면서도 병조판서 신관호가 자리에 없는 것을 두고 고개들을 갸우뚱거렸다.
“어허, 전하의 뜻이 어디에까지 있는지를 알 수 없으니…….”
듣고만 있던 좌의정 김도희가 여러 생각 중에서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좌의정 대감이 앞장서 주셔야겠습니다.”
“내가요? 에이…….”
좌의정 김도희는 손을 내저었다. 김도희는 지난 상참 이후부터 비변사 회의에 나와 자리를 잡은 병조판서 신관호가 흥선군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는 신료들의 주장에 전혀 입을 열지 않은 것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신료들의 주장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 자리를 보전하는 길이라는 판단이었다.
임금이 흥선군을 엄히 대하려고 했다면 이리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김도희의 판단이었다.
안동 김씨 장김의 세력을 처단할 때 임금이 보여 주었던 과감하고 신속한 일처리를 생각하면, 어쩌면 신료들의 뜻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무섭게 뇌리를 관통했다.
그래서 좌의정 김도희는 오늘의 차대에서 지난번 상참과 마찬가지로 신료들의 입장을 두둔하거나 견지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좌의정 김도희는 임금의 오른팔인 신관호의 침묵에 직감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영상 대감이 보이지 않소이다.”
영의정 정원용은 오늘도 병을 칭하고 차대에 나오지 않았다.
“전하께서 어의를 보내셨는데, 크게 중한 병은 아니라 하더이다.”
“어허, 하필이면 이런 중한 때에 영상께서도 아니 계시고…….”
신료들이 우의정 김정희가 앉아 있는 자리를 흘끔거렸다. 김정희는 고립된 섬이었다.
신료들이 겨우 몇 명 다가가서 안부를 묻고 인사를 할 뿐 대신들 대부분이 거리를 두고 말을 섞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가 흥선군 이하응의 스승이라는 것을 모르는 신료는 없었다. 그래서 김정희가 아무리 노론 당파라고 해도 이번의 일에 힘을 실어 달라는 말은 꺼낼 수 없었다.
“난처한 일이외다. 어찌 스승이 제자에게 죄를 물으라고 전하께 주청을 하겠소이까?”
신료들이 수군거렸다.
“그런데 영상께서는 중한 병도 아닌데 왜 등청을 하지 않는 것이오?”
“영상께서는 겁이 나신 게지요.”
영의정을 폄하하면서까지 함부로 말한 이는 이조참의(吏曹參議) 조운승이었다.
비변사의 구성원이 아닌 조운승은 비변사의 회의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이조판서를 보좌하는 수행으로서 신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비변사에 머물러 있었다.
조운승은 선대왕 헌종 대에 일찍이 성균관의 대사성을 오랫동안 지낸 인물이었다. 조운승은 서원의 사정에 관해서는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소상히 알고, 누구보다도 더 앞장서서 서원의 편에 선 인물이었다.
이조(吏曹)에서 판서와 참판의 아래에 있는 참의는 정삼품의 당상관으로서, 이조에서 판서와 참판을 도와 이조의 업무를 관장했다.
참의는 주로 상참을 통해서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비변사를 통한 정책의 논의 과정에서는 영향력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조운승은 이전부터 화양서원과의 개인적인 유대를 통해서 서원을 자신의 출세 가도를 위한 입신양명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래서 조운승은 화양서원의 일이라면 그것이 옳은 일이거나 나쁜 일이거나 무슨 일이든지 발 벗고 나서서 도움을 주고 있었다.
점차로 조운승과 화양서원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가 되었다.
화양서원의 원장과 우두머리 유생들은 그래서 조정에 있는 신료들 간의 연결고리로 이 조운승을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
유림의 대표적인 서원인 화양서원과 조운승의 이런 신뢰 관계를 잘 아는 정승들과 대신들은 그래서 조운승의 관직이 비록 참의에 불과해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어려워했다. 조운승이 대신들에게도 의견을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조운승은 장김의 세력이 임금에게 썰려 나간 이후부터는 화양서원의 일을 대변하는 일을 더욱더 자처했다. 지난 화양서원에서 있었던 우암 송시열의 제향은 물론이고, 조운승은 헌종 때 성균관 대사성에 오른 이후부터 해마다 제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화양서원에서 서원의 이익을 위한 일로 조정에 도움을 청할 일이 있으면 이 조운승에게 연통을 넣어서 일을 해결하는 것은 이제는 무조건 당연했다.
흥선군 이하응과의 다툼 역시 조운승에게 맡겼다. 조운승은 화양서원에서 받은 재물로 조정의 대신들과 신료들을 움직여 조정의 여론을 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
이하응이 마치 유림의 재물인 양 바쳐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조정의 여론에 의하면 흥선군 이하응은 이제 죽은 목숨이었다. 신료들은 차대에서 임금에게 우선 흥선군에게 유배형을 내려 달라고 주청을 올릴 것이다. 그러고는 흥선군을 결국 역모로 걸어서 죽일 속셈이었다.
안동 김씨의 세도 아래에서 유능하고 똑똑하게 보이는 왕실의 종친은 반드시 제거되었듯이, 흥선군은 유림이 보기에는 이리되어도 저리되어도 눈엣가시와도 같은 장애물이었다.
장김의 세도가 사라진 이후에 유림은 이제 사대부의 나라, 진정한 유림의 나라를 만들자고 서로 다짐하고 연통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화양서원에서 흥선군과의 마찰이 생긴 것이다.
유림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이항로의 제자들이 즉각 이에 호응을 하고 나섰다.
이항로는 얼마 전에는 서얼의 철폐를 주장하는 일에 힘을 실어 서얼들로부터도 좋은 평판 속에서 지지를 얻었다.
그런 이항로의 문하인 유생들이 흥선군의 탄핵에 앞서자 조선 팔도의 서원과 유림들이 움직이며 호응을 했다.
조운승을 통해 화양서원에서 이항로의 문하인 화서학파(華西學派)로 이어져 서원과 유림이 호응하는 이런 체계가 바로 유림이 움직이는 구조였다.
조운승이 뇌와 심장에 전류를 보내는 신호라면, 뇌는 화양서원이고 심장은 이항로의 문하인 화서학파의 유생들이었다.
이들 유림이 이런 구조와 체계를 가지고 훗날의 고종 대에 역사에서 위정척사(衛正斥邪)와 척화주전(斥和主戰)을 주도하게 된다.
이들의 주장에서 위정(衛正)이란 바른 것으로, 성리학과 성리학적 질서를 수호하자는 것이다. 척사(斥邪)는 사악한 것, 성리학 이외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배척하자는 것이다.
위정척사를 기치로 내건 유림 세력들은 이렇듯이 전통적인 사회체제만을 고수하는 것이 목적으로, 개화사상과 외국과의 통상에도 반대했으며 이로 인해 정치적으로 수구당의 기반이 되었다.
현 임금이 이런 역사적인 체계를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는 21세기 현대에서 이런 서원의 문제를 배운 조선의 임금이다.
그래서 그는 유림의 뇌와 심장에 전류를 공급하는 조운승과 머리인 화양서원부터 치기로 했다. 이항로의 문하생들은 그다음이었다.
이번에 서원을 모두 철폐하고 유림의 힘을 와해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불과 몇 달 후면 프랑스로 간 밀사들이 돌아올 것이다. 이들이 가지고 올 서양에 대한 정보와 신문물, 무기들을 공공연하게 들여오자면 유림이 이대로 힘을 유지하게 해 두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유림을 철저하게 파괴하려면 완벽을 기해야 했다.
*
“전하, 이조참의 조운승이 화양서원과 내통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옵니다.”
“확실한 증거들은 잡았는가?”
“그러하옵나이다. 조운승이 신료들을 규합하면서 신료들에게 뇌물을 쓴 증좌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조정과 서원들과의 유착 관계를 파악하라면서 내가 은밀히 내사를 지시한 결과, 도승지 박규수가 보고했다.
“전하, 어찌하올까요?”
박규수는 지체하지 말고 조운승을 체포해서 의금부에 넘겨 심문을 하기를 원했다.
“조운승이 화양서원으로부터 재물을 받고 그것으로 서원에서 추천한 자들을 수령과 관헌으로 추천했다는 것이 드러났으니, 이는 재물로 관직을 사고 판 매관매직이오.”
“전하, 그러시면?”
“오늘 차대에서 조운승에게 가담을 하는 자들의 면면을 본 후에 모두 한꺼번에 처리하도록 하겠소.”
“전하, 혹여 화양서원의 일로 조정을 바꾸시려는 것이옵니까?”
“그렇소. 도승지의 생각은 어떻소? 내 이참에 서원과 함께 유림의 힘도 완전히 빼 놓고 싶은데?”
박규수가 저어하며 속도 조절을 권했다.
“전하, 화양서원의 일로 조정을 혁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서원 철폐 역시 그동안 저들이 백성들을 탐학하고 저지른 패악질에 비하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유림을 지금 치는 건 아닙니다. 전하, 유림은 서원에 기반하고 있으니 서원이 철폐된다면 저들의 힘은 자연스럽게 빠질 것입니다. 이 점 유념해 주시옵소서.”
“좋소. 그러면 서원 철폐를 반대하고 나서는 유생들에 대한 처분은 최대한 관대하게 하겠소이다.”
어차피 서원이 철폐가 되면 허수아비로 전락할 유림의 힘이었다. 더구나 호조와 공조에 의해 철저하게 준비되고 있는 토지조사인 양전 사업이 본격적으로 실시가 되면 더욱더 유림의 기반은 봄볕에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다.
*
차대가 열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신료들이 흥선군에게 중죄를 내려 달라고 주청을 올렸다.
지난 상참보다도 주장이 더욱더 강경해졌다.
심지어 화양서원에서의 마찰을 이제는 흥선군의 난동으로 기정사실화했다.
“전하, 흥선군 이하응이 만동묘에서도 두 황제의 신위를 모욕하고 능멸했다고 하옵나이다.”
임금인 내게 올라온 유생들의 상소에도 적혀 있는 것들로, 한결같이 입을 맞춘 듯했다. 만동묘를 모욕했다는 내용의 상소는 영남과 호남의 유생들이 일제히 올린 상소였다.
이제는 한술 더 떠서 흥선군에게 만동묘의 두 황제를 모욕했다는 죄까지 뒤집어씌우고 있었다.
삼인성호(三人成虎)였다. 삼인성호는 세 사람이 호랑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으로, 세 명이 모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이르면 그런 사실이 없는데도 그것이 참말로 여겨진다는 의미였다.
신하들이 언성을 높여 가며 한참 동안 흥선군에게 중죄를 내리라고 임금인 내게 압박을 가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떠들어도 임금에게서 이렇다 할 대응이 나오지 않자 신료들의 주청이 한순간에 소리 없이 잦아들었다. 그제야 내가 입을 열었다.
“이제 지난 상참에서 이른 그대로 화양서원의 일로 문제가 된 인근 고을 수령들에 대한 처분과 흥선군에 대한 결정을 내리겠소. 대사헌은 나와서 화양서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고하라.”
대사헌 이돈영이 앞으로 나와서 화양서원에서 유생들에 의해 자행된 충청도 청안 관아의 호방 신재호 살인의 전말을 발표했다.
차대가 열린 희정당 편전이 크게 술렁거렸다. 계속해서 대사헌 이돈영은, 화양서원의 원장과 훈장을 비롯한 서원의 우두머리들에게 신재호의 살인을 목격한 인근 고을의 아이들도 모두 살해되어 암매장을 당한 사실이 실린 사헌부 장령이 급히 올린 장계를 읽어 내려갔다.
충격을 받은 신료들의 눈과 입이 얼어붙었다. 내가 옥좌에서 일어나서 벼락같이 소리를 쳤다.
“이것이 그동안 너희가 임금인 나를 속이고, 조정을 속이고, 백성을 속이며 감추었던 진실이다!”
“저, 전하…….”
신료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내가 준엄한 표정과 음성으로 선포하듯이 말했다.
“첫째, 화양서원은 오늘부터 폐쇄한다!”
*
임금인 발표를 하는 순간에 화양서원 안으로 들이닥친 충청 감영의 군졸들이 유생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서 오라를 지웠다.
근엄한 척하며 시비를 가리려는 선비나 군졸에게 호통을 치며 책임자를 부르라는 우두머리들과 몸으로 저항을 하는 무뢰배와 같은 사이비 유생들은 군졸들이 가차 없이 육모방망이로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퍽! 퍽!
비명이 터질 때마다 유생들의 깨진 머리통에서 피가 튀었다.
원장과 훈장의 체포를 막으려고 군졸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며 저항을 하던 서원 규찰대 소속의 힘깨나 쓰던 유생들이, 감영의 군졸들이 내지르는 창에 가슴과 배가 찔려 입에서 피를 토하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네 이놈들! 성현을 받드는 신성한 서원에서 이 무슨 못된 짓이냐!”
원장의 앞을 가로막으며 훈장이 군졸들을 크게 나무랐다. 훈장의 호통에 군졸들이 주춤하자 뒤에서 임금이 직접 보낸 금군 소속의 군관이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전하께서 명을 내리시기를, 오늘 백성을 괴롭히는 자는 그 누구라도 살려 두지 말라고 하셨다!”
검이 위에서 아래로 번득였다.
“악!”
단발마와 함께 훈장의 목이 검에 의해 달아났다.
*
얼어붙은 신료들 앞에서 조선의 임금인 나는 계속 발표를 해 나갔다.
“둘째, 화양서원의 모든 토지와 재물을 몰수해 나라의 것으로 한다.”
신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선 팔도에 있는 모든 서원에 대한 조사를 명한다. 이를 담당할 서원도감을 즉시 만들 것이며, 그 책임자에 흥선군 이하응을 제수한다!”
충격을 받은 신료들의 얼굴이 하얗다 못해서 파랗게 질렸다. 침묵 속에서 두려움에 덜덜 떨다가 휘청이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다.
“화양서원과 내통해 조정에 거짓을 고하고 임금을 능멸한 역적 조운승을 의금부에 당장 하옥하고, 추종자들 역시 즉시 추포해 엄히 문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