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신식 소총을 직접 쏘다 (2)
임금이 직접 총을 잡고 서자 당황한 신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신료들을 보고는 물었다.
“경들은 총이나 활을 쏘아 보았는가?”
“저, 전하…….”
“전하, 자고로 제왕이 총과 활을 쏘는 것은 나라의 방비를 튼튼히 하겠다는 뜻이니 백성들이 기뻐할 것입니다. 하지만…….”
좌의정 김도희가 나섰지만 말끝을 흐렸다.
“그러한가?”
“전하, 총을 쏘아 보셨나이까?”
“오늘 처음이오.”
불안해하는 신료들을 보며 나는 씨익 웃었다. 총을 쏘아 보는 것이 처음인 것은 사실이었다. 조선에서만.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에서 병역을 마치고 예비군까지 끝낸 상태였다.
웃음이 나왔다. 막상 최신식 소총이라고 잡고 있는 것이 백 년도 훨씬 전의 총이라니.
임금이 직접 총을 들고 사격 자세를 취하자 무관들이 아연실색했다. 우의정 김정희가 급히 앞으로 나와 허리를 굽히며 아뢰었다.
“전하, 아니 되옵나이다.”
“아니 되다니. 우상, 그게 무슨 말이오?”
“전하, 총을 잡으시고 혹시 옥체 미령하실까 저어되나이다.”
“우상은 걱정 마시오. 총 한번 쏜다고 해서 몸이 다치면 총을 늘 다루는 포수들은 어찌 되겠소.”
우의정 김정희가 난감해하자 좌의정 김도희도 나섰다.
“전하, 우상의 말이 옳사옵니다. 소신 역시 전하의 옥체에 조금이라도 탈이 생길까 저어되나이다. 더구나 자고로 예부터 군왕이 검과 활은 옥수에 잡았지만 총을 잡는 법은 없었사옵니다.”
임금이 태조 이성계 이후로 검과 활을 손에 잡고 무예를 닦는 것은 정조 임금 때까지 있었다. 하지만 총을 잡고 직접 사격을 한 왕은 없다는 선례를 들어서 두 정승이 간곡히 말리고 있었다.
“두 정승께서 임금인 나를 염려하는 마음은 알겠소. 하지만 오늘 내가 이리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으니 두 사람은 더 이상 나서지 마시오.”
나는 자리를 떠서 방금 전 총병들이 사격을 했던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병조판서 신관호와 도승지가 뒤를 따랐고, 대신들과 5군영의 대장들도 모두 내 뒤를 따랐다.
“화염이 있을지 모르니 대신들은 그 자리에들 있으라. 제장들은 나를 따르라.”
내 명에 뒤를 따르던 문반 신료들이 그 자리에 엉거주춤 서서 나를 지켜보았다.
내가 소총을 들고 5군영과 금군의 대장을 보며 말했다.
“제장들은 나를 보아라.”
“네, 전하.”
장군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오늘 그대들이 보는 장면을 기억해 두기 바란다.”
나는 알아 둔 순서대로 뇌관식 소총을 세워 총구에 화약을 넣고 탄환을 넣은 다음, 꽂을대로 총구를 쑤셨다. 그러고는 총을 들어서 뇌홍이라 불리는 뇌산수은이 발라져 있는, 손에 쥔 모자처럼 생긴 뇌관을 꼭지에 씌우고 사격 자세를 취했다.
“저, 전하…….”
한 발짝 뒤 그림자 거리에서 지켜보는 상선 김호중의 걱정하는 혼잣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우 능숙하게 장전과 사격 자세까지 마쳤다.
내가 화승총처럼 화약 접시에 화약을 붓지 않는 것을 총포 군관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화승총과 수석식 총처럼 장약에 기폭을 하는 화약이 놓이는 접시가 없는 뇌관총을 처음 본 군관들이었다.
나는 현대에서 군에 복무할 때에 기록사격에서 20발을 쏘아서 20발 모두를 표적에 명중시킨 특등 사수였다.
오랜만의 사격이고, 재래식 총이라서 불안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다행히 사전에 총신을 들여다본 결과 지금 들고 있는 총에는 정확도를 비교적 높이는 강선이 있었다. 확실하게만 쏜다면 표적을 맞힐 확률이 높았다.
그때의 그 감각이 있을까. 이원범의 몸으로.
신료들과 장군들, 군졸들이 모두 사격 자세를 취한 나를 보며 숨을 죽였다.
오늘 사격을 하겠다는 나를 끝까지 말리던 병조판서 신관호와 도승지 박규수 역시 긴장한 얼굴로 나를 지켜보았다.
나는 눈앞의 먼 표적을 향해 소총을 겨누었다. 거족히 백 보는 넘는 거리였다.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와 흑색 화약이 일으킨 매캐한 연기가 날카롭게 눈을 찔렀다. 눈물이 났다.
젠장!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내가 사격 자세를 풀고 소총을 병조판서 신관호에게 건네는 사이에 군관이 표적을 향해 달려 나갔다.
표적을 확인한 군관이 내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었다.
“어떠냐, 표적에 맞았느냐?”
“전하, 명중이옵니다!”
“그러냐? 참이냐?”
“참이옵니다, 전하. 탄환이 표적의 정중앙을 뚫었사옵니다.”
병조판서 신관호와 도승지 박규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장군들도 모두 놀랍다는 반응으로 내게 치사를 올렸다.
사실은 명중이 아니었다. 조선에서 처음 쏘는 총이었다. 더구나 사격 연습을 미리 한 것도 아닌데 표적에 맞는 정도가 아니라 명중이라니.
진실은 병조판서 신관호가 미리 군관에게 명중이라고 올리라고 일러 둔 것이다. 신료들과 군졸들은 표적에 탄환이 맞았는지,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임금인 내가 총을 직접 쏘았다는 것이다. 국왕의 의지를 보여 준 것이다.
“전하, 감축드리옵니다!”
“역시 다르구나.”
나는 일부러 감탄사를 자아내며 병조판서 신관호를 비롯한 장군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음성을 높였다.
“이 총이면 양이들이 와도 걱정이 없겠구나.”
나는 속에도 없는 말을 했다. 양이들 총으로 손을 볼 대상은 양이가 아니라 왜구 일본과 오랑캐 청나라였다.
“전하, 그러하옵니다.”
좌의정 김도희가 앞으로 나서서 크게 말했다. 나는 신료들을 두루 보며 오늘 내가 하려던 말을 꺼냈다.
“경들은 보았는가. 나는 조금 전까지 이 총을 만지기 전에는 총을 쏘는 법을 알지 못했다.”
“전하.”
“어떤가, 경들이 보기에 이 총은?”
“전하, 소신들이 보기에도 화승에 불을 붙이는 조선의 총보다는 편한 것 같사옵니다.”
“편한 것만이 아니다. 이 총은 화승에 불을 댕겨서 사용하는 조선의 총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전하, 그것이 무엇입니까?”
“병판.”
“네, 전하.”
“화승총의 불편한 점이 무엇이오?”
“전하, 화승총은 점화와 기폭에 필요한 화약을 화약 접시에 부어서 사용하는데,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화약이 날아가거나 비에 젖어 총을 사용할 수가 없사옵니다.”
“그렇다. 지금 병판이 말한 그대로다. 조선의 화승총은 기상이 좋지 않으면 쓸 수가 없으니 이 얼마나 불편한가?”
“하지만 전하,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총을 쓰지 못하는 것은 우리 조선군이나 다른 군사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옵니까?”
제법 총에 대해서 알고 있는 좌의정 김도희가 나섰다.
“그런가? 아니다. 이 총을 쓰는 양이들은 바람이 불거나 비가 조금 내려도 총을 쏠 수가 있다.”
나는 장군들을 보며 소리쳤다.
“제장들은 보았는가? 이 총에는 화약을 붓는 접시가 없다.”
그래도 장군들과 군관들은 반신반의했다. 내가 사격 과정에서 무엇인가 작은 것을 하나 끼운 뒤 화약을 붓지 않고 방아쇠를 당긴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격이 편한 것에는 수긍을 했지만 비가 내려도 총을 쏜다는 것에는 납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병조판서.”
“네, 전하.”
“이 총이 화승총보다 빠르게 쏠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병조판서 신관호가 대답했다.
“그러하옵나이다, 전하.”
신관호의 대답처럼 화승총은 보통의 포수가 분당 1~2발을, 방금 내가 쏜 뇌관식 소총은 분당 2~3발을 능히 쏠 수가 있었다. 물론 뛰어난 포수라면 보통의 분당 발사 속도보다 1발 정도를 더 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뇌관식 소총의 장점은 날씨의 구애를 덜 받는다는 것이다.
마침 잔뜩 흐려진 하늘에서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관상감의 예측대로 궂은 날씨로 바뀌고 있었다. 바람도 제법 불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짙어지더니 빗방울이 굵어졌다. 대신들이 내게 대궐로 돌아갈 것을 청했다. 내관들이 비를 막기 위해 준비한 커다란 산을 내 위에 씌웠지만 나는 우산 밖으로 나오며 일렀다.
“치워라. 병사들도 비를 맞고 있다. 임금만 비를 피해서야 되겠느냐?”
당황한 대신들이 우산 아래로 들어가려다가 나처럼 비를 그대로 맞았다.
“전하, 비가 내립니다. 환궁하시옵소서.”
상선인 김호중도 내게 환궁을 건의했다. 혹시나 비를 맞아서 임금이 감기에 걸리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었다.
박규수 역시 내 몸을 걱정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환궁을 적극 권했다.
하지만 어디 그럴 수가 있는가. 뇌관총과 화승총의 성능을 대신들과 장군들이 직접 눈으로 보게 해 확실하게 비교할 수 있는 이런 좋은 날은 일부러 잡기도 어려울 것이다.
나는 눈을 들어서 하늘을 보았다. 멀리 대궐 쪽 하늘도 검은 구름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무래도 비가 꽤 내릴 것 같았다. 서둘러서 총포 시연을 마무리해야 했다.
제법 떨어지고 있는 비를 맞으며 나는 다시 총을 들었다.
“그대들은 잘들 보라. 이 총은 빗속에서도 총을 쏠 수가 있다.”
신료들과 장군들 모두가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화승총은 비는커녕 바람만 불어도 화약이 날아가서 쏘는 것이 불가능한 총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비 내리는 날씨에도 총을 사용할 수가 있다니.
총구로 탄약과 함께 넣는 장약만 젖지 않으면 총을 쏠 수 있는 뇌관총의 장점을 확실하게 보여 주기 위해 나는 다시 총을 들었다.
“전하, 소신이 방포하겠나이다.”
병조판서 종사관 양헌수였다.
“전하, 양 종사관이 쏘게 해 주시옵소서.”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하고 총을 든 손도 미끄럽고 해서 그럴까 생각했지만, 내가 직접 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내가 직접 쏘겠다.”
내 고집에 병조판서야 양헌수가 뒤로 물러났다.
“양 종사관, 너는 화승총을 쏘라.”
“전하, 화승총은 지금 쏠 수가 없사옵니다.”
“그래서 쏘라는 거다. 최대한으로 비를 가리고 쏘아 보거라.”
임금이 종사관과 비를 맞으며 각각 총을 잡고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뇌관총을, 양헌수는 화승총을 들었다.
대신들과 장군들, 도열한 군졸들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전하께서 우리와 함께 비를 맞고 있다. 전하께서 우리와 함께 총을 쏘고 계시다.
군관들과 군졸들 모두가 함께 비를 맞고 있는 임금을 보며 감격에 차 있었다. 나이가 어린 군졸의 뺨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는 두 줄기 물이 흘러내렸다.
“전하…….”
양헌수가 총구에 장약과 탄환을 넣고 꽂을대로 다졌다. 이어서 화약 접시에 화약을 붓자 내리는 비에 이내 화약이 젖었다.
양헌수는 소매로 비를 가리고는 화승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빗발에 잘 붙지 않았다. 그래도 새 화승이라서 간신히 불을 붙였다.
양헌수가 화승총을 장전하는 동안 나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장약과 탄환을 장전했다. 그러고는 뇌관을 끼우고 사격 자세를 취했다.
나와 함께 나란히 선 양헌수 역시 사격 자세를 마쳤다.
“양 종사관, 방포하게.”
양헌수가 방아쇠를 당겼다. 불이 붙은 심지가 화약 접시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젖은 화약을 어찌해 볼 수 없자 양헌수는 이내 화승총을 내리고 사격을 포기했다.
“전하…….”
나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소총의 공이가 퍼커션 캡이라는 모자 모양의 뇌관을 쳤다. 그러자 뇌홍이 폭발하면서 그대로 장약 안으로 불꽃이 튀어 들어갔다.
꽝 하는 소리가 들리고, 화염과 함께 총이 발사되었다. 탄환이 튀어나갔다.
장군들이 모두 크게 놀랐다. 대신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감탄사를 자아냈다. 총포 군관들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조선 사람들에게 빗속에서도 총을 쏠 수가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뒤에 서 있던 대신들이 다가와서 내게 축하를 하려는 순간에 나는 군관에게 일러서 다시 한 발을 더 쏘겠다고 했다.
나는 빗속에서 다시 장전을 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역시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총이 발사되었다.
나는 두 발을 쏜 후에 총을 잡고 비를 맞으며 군졸들의 앞으로 나아갔다. 대신들과 장군들이 황급히 내 뒤를 따랐다.
군졸들과 열 보 가까운 곳에서 걸음을 멈춘 뒤 나는 총을 높이 들어 소리쳤다.
“보았느냐. 빗속에서도 방포가 되는 이 총이 우리 조선의 총이다! 장졸들은 들으라! 이 총이 너희의 목숨을 지켜 줄 것이다! 이 총으로 무장한 너희가 이 나라 조선을 지키고, 이 나라 조선의 백성들을 지킬 것이다!”
빗속에서 감격에 찬 함성이 크게 울렸다. 조선의 임금인 나를 향한 천세, 천세, 천천세였다.
서원 철폐로 인해 흔들리는 조정과 군심을 다잡으려는 내 이벤트는 이렇게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