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간도에서 청국 비적을 몰살시키다 (1)
푸른 물줄기가 흐르고 있는 두만강 너머의 간도.
이 지역은 조선의 백성들이 일군 땅이라는 뜻으로 간도(墾島)라고 불리거나 조선과 청의 중간 지역에 위치한 고립된 섬 같은 곳이라는 뜻으로 간도(間島)라고 불린다.
간도의 영역은 작게는 지금의 한반도 남쪽 지역의 땅 크기를 합친 만큼이고 크게는 한반도 전역보다도 더 넓은 큰 지역이었다.
간도는 조선왕조 성종실록에서 야춘(耶春, 지금의 훈춘)이라고 기록된 지역이 있는 곳으로, 지금은 전역이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무인지경의 땅이었다.
하늘에서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조선군 군관 다섯을 거느린 특명어사 김병연이 간도의 조선인 마을 근처를 지척에 두고 그루터기에 앉아서 주먹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돌연 숲에서 인기척이 여럿 들렸다.
군관이 주먹밥을 내려놓고 빠르게 검을 뽑아 들고 눈앞의 숲을 살폈다. 아름드리나무 사이로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둘 보이고 있었다.
군관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는 어사 김병연을 호위하듯이 둘렀다.
낫을 든 사람들이 허겁지겁 도망쳐 오고 있었다. 부축을 받으며 얼굴에서 피를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서라!”
군관이 소리쳤다.
“너희는 누구냐?”
김병연이 물었다.
“보시다시피 농부요.”
“무기를 버려라.”
검을 세운 서슬 퍼런 군관의 눈빛에 겁을 먹은 사람들이 낫을 내던졌다.
“무슨 일인데 이리 황급하냐?”
“조, 조선 사람이오?”
“그렇다. 조선 사람이다.”
“도망치시오.”
“도망치라니?”
“어디로 가는 사람들인지 모르지만 오늘은 글렀소. 돌아가시오.”
사람들은 김병연 일행이 대부분 봇짐을 지고 있는 것을 보고 상인으로 안 듯했다.
“돌아가라니?”
“비적들이 왔소.”
“비적이라니?”
다가온 사람들이 멈칫거리면서 경계심을 드러냈다. 김병연을 비롯해서 군관들은 모두 사복 차림이었다.
“호, 혹시 관헌이시오?”
김병연을 제외한 일행 모두가 검을 든 것을 본 농부 하나가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
“괜찮다. 나는 너희를 도우려고 온 것이지 잡으려고 온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병연은 최대한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도망쳐 온 사람은 모두 여섯이었다. 나이는 청년에서 장년까지 두루 섞였다.
“무슨 일이냐?”
“청나라 비적들입니다.”
“청국 비적?”
“그렇습니다. 비적들이 와서 마을을 분탕질하고 있습니다.”
“비적들이 마을을?”
갑자기 군관이 검을 치켜세우고는 팔을 들어 숲속을 가리켰다.
“나으리, 저기…….”
수십 보 앞에서 검과 도끼를 든 사람 여럿이 수풀을 헤쳐 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조선 농부들을 쫓아온 비적들이었다. 김병연 일행과 농부들이 모두 수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몇 놈 같으냐?”
“모두 다섯입니다.”
김병연이 농부에게 물었다.
“저놈들이냐?”
“네, 맞습니다. 저놈들이 우리 마을로 와서 사람들을 죽이고 분탕을 친 놈들입니다.”
“틀림이 없느냐?”
농부가 미간을 좁히며 선두에 있는 자를 유심히 보더니 확신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저, 저놈. 비적이 맞습니다.”
“알겠다.”
군관들이 어사인 김병연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김병연이 비적들을 자세히 살피고는 나직이 말했다.
“여기는 간도다. 저놈들 복색을 보니 조선 사람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여기는 청국 조정에서 봉금령으로 청국 백성의 출입을 금한 곳이니, 저놈들은 청국의 온전한 백성이 아닐 것이다.”
도적이나 비적임을 확신한 김병연이었다. 더구나 피해를 당했다는 조선 백성의 증언과 지목도 했다.
김병연의 추측에 군관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김병연이 군관들을 두루 보며 말했다.
“해볼 만하겠느냐?”
눈빛을 마주한 군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적이면 칼을 잘 쓰는 자들일 것이다.”
조심하라는 뜻이다. 군관들은 벌써 앞을 경계하며 다가오는 비적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뛰쳐나갈 자세로 군관들이 검을 움켜잡았다.
군관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는 사이에 거리가 열 보 앞으로 좁혀졌다.
“지금.”
나지막한 말과 함께 군관들이 몸을 드러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검들이 번득였다.
으아악!
기습을 당한 비적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순식간에 나자빠졌다. 동시에 군관 하나가 갑자기 몸을 앞으로 날려 달려 나갔다.
“무슨 일이냐?”
“저기!”
눈이 밝은 농부 하나가 숲속을 가리켰다. 뒤늦게 처져서 오던 비적 하나가 나무들 사이로 황급히 달아나는 모습이 보였다.
군관 둘이 뒤이어 달려 나갔다. 곧바로 군관들에게 비적이 잡혀 왔다.
비적은 엉거주춤 바지를 추스르고 있었다. 죽은 비적들이 앞으로 가는 동안 뒤에서 큰일을 보다가는 상황을 보자마자 다급하게 바지를 올리고 달아나려다가 잡힌 것이다.
끌려온 비적에게 김병연이 물었다. 청국 말을 아는 군관이 통역을 했다.
“청국 사람이냐?”
비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조선 사람을 해쳤느냐?”
비적이 고개를 젓고는 죽어서 나자빠져 있는 이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너는 살인은 하지 않았다는 뜻이냐?”
겁에 질린 비적이 군관들을 둘러보고는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소굴이 어디냐?”
비적이 무엇이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입만 벌리고 소리를 내지 못했다.
“벙어리냐?”
비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놈이 벙어리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닐까요?”
“입을 벌려 보아라.”
군관이 입을 열라고 하자 비적이 입을 크게 벌렸다. 혀가 잘려 있었다.
“이 무슨……?”
비적은 한족이었다. 먹고살기가 어려운 나머지 고향을 떠나 만주 땅을 유리걸식으로 떠돌다가 비적들에게 붙잡혔다. 죽기 직전에 힘깨나 쓰는 것이 밝혀져 혀를 잘리고 비적들의 소굴로 약탈한 물건을 옮기는 짐꾼으로 살게 된 자였다.
“글을 아느냐?”
비적이 고개를 저었다.
“너희 소굴을 아느냐?”
비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느냐?”
비적이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김병연은 비적에게 오라를 진 후에 소굴로 안내하라고 했다. 그러고는 군관 둘을 비적과 함께 보냈다.
두 시진(한 시진은 2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군관들이 돌아왔다. 데려갔던 비적은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이냐?”
“달아나려고 해서 베었습니다.”
김병연은 자세한 이유를 묻지 않았다. 어차피 비적은 조선으로 끌고 간다고 해도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소굴이 맞더냐?”
“그런 것 같습니다.”
“청국 비적이 얼마나 되느냐?”
“족히 백은 됩니다.”
모두가 놀랐다.
“백이라니, 비적이 그렇게 많다는 말이냐?”
“참이더냐? 본 대로만 고하여라.”
“참입니다, 나으리. 게다가 조선 백성들이 잡혀 있습니다.”
“백성들이? 얼마나?”
“십여 명쯤 됩니다.”
“구해야 한다.”
“나으리, 저희는 겨우 다섯입니다.”
“나도 안다. 비적이 백여 명이면 우리 힘으로 조선 백성을 구하는 것은 어림도 없겠구나.”
김병연이 농부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이리 되었느냐?”
“오래되었습니다.”
“오래?”
“그렇습니다. 지난해는 물론이고 해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해마다?”
“네. 비적들은 수확 철과 봄에 한 번씩 옵니다. 수확기에는 곡식만 가져가고 사람은 상하게 하지 않는데, 봄에는 춘궁기라서 곡식을 내주지 않으니 사람을 해칩니다.”
“곡식을 내주면 될 것 아니냐?”
“그러면 저희는 무얼 먹고 삽니까. 굶어 죽으나 맞아 죽으나 마찬가지니, 비적들이 오면 곡식을 숨기고 도망을 치는 수밖에요.”
“간도에 있는 조선 백성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
“곳곳에 정착한 자들만 족히 수천은 되옵니다.”
“그리 많더냐?”
김병연은 몇 해 전에 간도에 잠깐 와 보았었다. 그때는 수십여 가구가 화전을 일구며 사는 곳에만 들렀을 뿐이다. 이렇게나 많은 조선 백성이 간도에 흩어져 사는지 알지 못했다.
“비적들을 지킬 사람은 있느냐?”
“그런 게 있을리가요.”
농부들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나으리, 윗마을 사람들은 모두 도륙되고 아랫마을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저희만 겨우 도망쳤습니다. 저희 고을 사람들을 구해 주십시오.”
김병연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지금 우리만으로는 안 되겠다. 군사들이 더 있어야겠구나.”
김병연은 가장 발이 빠른 군관을 지목해서 일렀다.
“너는 이 길로 두만강을 넘어 종성부로 가라. 그곳에서 부사에게 군졸을 내 달라고 이르고, 상황이 여의치 않거든 그 길로 말을 타고 경성(鏡城)으로 내쳐 달려가 북병사 영감에게 이 표식과 서한을 보여 주고 속히 군사를 보내 달라고 이르거라. 이건 긴급이다.”
“군사가 얼마이온지?”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최소한 수백은 되어야 한다.”
“나으리, 병사 영감은 그렇지만, 종성부사가 군사를 보내겠습니까?”
“나도 그게 걱정이다만 그자도 전하의 신하이니 군졸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전하께서 내게 주신 것이다. 이걸 가지고 가서 보여 주거라. 그러면 군사를 내줄 것이다.”
김병연이 군관에게 건네준 것은 열 마리의 말이 새겨진 임금을 상징하는 마패였다. 김병연은 군관에게 관인이 찍힌 문서 하나도 건네주었다. 군사 지원을 하라는 조정의 명령서였다.
김병연은 임금으로부터 간도에서 군사 활동을 해도 좋다는 어명을 받은 상태였다.
영을 받은 군관이 빠른 걸음으로 일행을 떠나 조선으로 향했다.
종성부사는 백낙신이라는 자였다. 김병연은 백낙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김병연이 특명어사로서 평안도를 거쳐 함경도로 오면서 가장 신경을 쓴 곳이 바로 두만강을 지척에 두고 있던 종성이었다.
김병연은 평안도, 함경도 양도의 특명어사로 떠나기 전에 임금이 자신을 불러 특별히 종성부사로 있는 백낙신을 살피라고 명을 내린 이유를 알고 있었다.
어사가 되기 이전 김병연은 삿갓을 쓰고 조선 팔도를 돌아다닐 때부터 백낙신이라는 자의 악명을 들었다.
백낙신이 고을의 수령으로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가렴주구로 죽어난다는 흉흉한 소문이었다.
백낙신은 빈농은 물론이고, 특히 부농들을 쥐어짜는 데에 그 열성을 쏟았다. 게다가 지역의 토호들과 밀접한 사대부들도 백낙신의 재물을 채우는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백낙신은 자신의 곳간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사대부이건 토호건, 부농이건 빈농이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백낙신에 대한 평가는 이랬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모든 것을 갈취한다. 그래서 백낙신에게 붙여진 별명이 바로, 모든 쇠를 먹어 치운다는 괴수인 불가사리였다.
백낙신이 그렇게 재물을 탐하느라 백성을 쥐어짜는 데에도 어떻게 관직을 계속 맡을 수 있었을까.
백낙신은 백성을 쥐어짜서 거두어들인 재물의 일부를 감영과 조정의 인사권자들에게 뇌물로 바치는 것을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람을 시켜서 인사권자와 권신들에게 명절과 생일마다 선물을 바치는 데에 인색하지 않았다.
도성 한양의 고관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재물을 백낙신으로부터 받았다.
그런 이유로 백낙신이 속한 관아의 고을들에서 사대부들이 백낙신의 탐학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려도 백낙신에 대한 징계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대부들과 백성들의 탄원은 대부분 감영에서 차단되었다.
어쩌다가 도성 한양의 조정에까지 상소가 올라간 경우에도 권신들에 의해 유야무야되어 징계나 처벌에 대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이에 백성들은 탄원과 상소를 아무리 올려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알고 좌절했다.
그래서인지 새 임금이 즉위하고 해가 여러 번 바뀌었는데도 이제는 백낙신에 대한 탄원과 상소조차 조정으로 올라오지 않게 되었다.
더불어서 백낙신 역시 새 임금이 탐관오리들을 색출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재물 거두는 것을 조심하고 있었다.
김병연의 영을 받은 군관이 두만강의 푸른 물을 헤엄으로 건너고, 밤에도 늑대와 여우 등 맹수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쉬지 않고 걸어서 마침내 종성부 관아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