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간도에서 청국 비적을 몰살시키다 (2)
함경도 종성(鍾城)은 선대왕 이전인 순조 때부터 조선 백성이 암암리에 두만강을 건너 경작을 하고 몇 달씩 머물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주요한 근거 지역이었다.
이들 조선 백성들의 이런 행동을 조정은 종성부와 함경도 감영의 장계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경작만 하면서 국경을 오가던 백성들이 선대왕인 헌종 초기부터는 아예 건너가서 돌아오지 않고 간도에 정착을 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헌종 말기에 이르러서는 간도에도 조선 사람들이 살고 먹을 것이 풍족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평안도와 함경도를 비롯한 황해도에서까지 흉년을 당해 굶주린 유민들이 앞을 다투어 목숨을 걸고 간도로 넘어갔다.
본래 조정은 조선과 청의 국경을 넘나드는 것을 월강죄 또는 월경죄로 엄히 물어 극형으로 다스렸다.
하지만 두만강 유역 근처 종성의 경우에는 이것이 예외였다. 사실상 종성 지역은 조정과 지역 관리들이 월경에 대해 눈을 감아 주는 것이 상례였다.
백성들은 두만강을 넘나들며 두만강 너머의 토지를 일구고, 가을에 그 수확량의 일부를 관아에 현물로 납부하는 등으로 월강에 대한 관의 묵인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간도의 비옥한 토지에서 나오는 수확물로 종성은 함경도의 다른 고을들보다 관아의 살림이 한층 여유로웠다.
종성부에서의 이런 관례가 수십 년 동안 계속 이어지면서 함경도의 변방으로 발령이 나는 무반들이 자청해 종성부로 지원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두만강을 넘나드는 월강은 엄연히 국법으로 엄히 금하고 있는 죄였다.
그런 이유로 현장에서 농부들이 잡히면 그 처리가 계속 문제가 되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농부들은 현장에서 적발하는 군졸들은 물론이고 관아에 줄을 대 곡식을 바치거나 재물을 내줘 위기를 벗어났다.
종성부는 그래서 함경도에서 근무하는 군관들이나 수령들에게는 비교적 가고 싶은 선망의 임지였다.
역대의 종성부사를 지낸 무반들은 이런 이유로 부사직을 마치고 돌아갈 때쯤에는 한 재산을 만들어서 이임지로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백낙신이 어떻게 이런 재물 냄새를 맡고 종성부사가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유가 어떻든 백낙신은 종성부사가 되자마자 재물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백낙신은 종성부의 관장으로 부임을 하자마자 종성부의 관리들과 무관들을 모두 모아 놓고, 앞으로는 두만강을 넘나드는 조선 백성들은 모두 국법에 따라서 엄히 처벌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백낙신이 부임해 올 것을 미리 알았던 종성부의 향리들은 그런 백낙신의 의지를 믿지 않았다.
조선 팔도를 오가는 상인들을 통해서 백낙신이 얼마나 물욕이 강한 인물인지 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던 중에 백낙신이 직접 종성으로 데리고 온 군관들이 두만강의 주요 월강 지역에 책임자로 배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로는 불을 보듯 뻔한 일들이 이어졌다. 두만강을 넘다가 붙잡히는 백성들은 여전했지만, 신임 종성부사인 백낙신의 엄포대로 월경죄로 죽는 자는 거의 없었다.
두만강을 넘다가 잡히거나 넘나들던 이들은 이전처럼 계속 곡식과 재물을 주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방면되었다.
간혹 유민이 월경죄로 처형을 당했는데, 그들은 정말이지 수중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빈털터리라서 죽었다.
백낙신의 부임으로 예전과 달라진 것은 단지 하나뿐이었다.
뇌물을 받는 대상이 여럿에서 하나로 통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하나는 바로 백낙신이었다.
특명어사 김병연의 영을 받고 간도에서 달려온 군관을 본 백낙신이 코웃음을 쳤다.
“군사를 내 달라고?”
“그렇습니다. 어사께서 백성을 구해야 하니 긴급히 군사를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군관은 간도에서 있었던 비적의 이야기를 보고 들은 대로 가감 없이 백낙신에게 일러 화급한 상태임을 알렸다. 백낙신의 안색이 심각해졌다.
“너도 알다시피 여기 종성은 월경을 하는 자들을 감시하기에도 군사의 수가 모자란다. 어찌 소홀히 군사를 내줄 수가 있다는 말이냐?”
“어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어명이라고 했습니다.”
“어명이라?”
어명이라는 말과 함께 건네받은 서한을 본 백낙신의 인상이 굳었다.
“알겠다. 너는 여기서 기다려라. 내 긴급히 조정과 감영에 보고해서 이것이 사실인지 알아보겠다.”
백낙신은 종성부에서 군사를 내주면 자신의 휘하를 떠난 군관들과 군사들이 어사에게 자신이 월경에 관해서 눈감아 주고 뇌물을 독차지한 것을 이르게 될까 봐 두려웠다.
“얼마나 여기 머물면 되겠습니까?”
“빠르면 사흘, 늦어도 이레면 족할 것이다.”
백낙신은 아전을 불러서 군관을 숙소로 데려가게 했다.
그날 밤 야심한 시각에 백낙신이 사주한 자가 복면을 하고 칼을 잡아 군관이 묵고 있는 숙소를 덮쳤다.
하지만 군관은 그 시간에 북병사가 있는 경성을 향해서 밤길을 다시 내달리고 있었다.
*
북병사 구신희는 특명어사 김병연이 보낸 군관을 대하고 나서 군사를 곧바로 준비시켰다.
“너희 중에서 두만강 너머에 대해 아는 자가 있는가?”
군관들이 모두 모른다고 하자 북병사는 김병연의 군관을 불러서 물었다.
“특명어사가 이리 급하다 하니 내 군사를 바로 출동시킬 것인데, 어떠냐? 기병이 갈 만하더냐?”
“아니올시다. 간도는 길이 없고, 더구나 두만강을 급히 건너야 하니 기병은 불가합니다.”
“알겠다. 내 그러면 포수와 살수를 각각 일백씩 내줄 것이다.”
북병사는 병력을 출발시키면서 곧바로 함경도의 감영으로 기발을 띄웠다. 함경도의 감영에서도 즉시 조정의 비변사로 신속하게 이 사실을 알렸다.
장계는 불과 이틀이 되지 않아서 비변사에 올라갔다.
북병사가 간도로 군사를 무려 이백이나 출병시켰다는 소식에 조정의 일을 논하는 비변사가 발칵 뒤집혔다.
대신들이 탁자 바닥을 두드리며 언성을 높이고, 탄식을 하고, 혀를 차며 궁리를 하고, 토론을 하고, 근심하며 대비책을 서로 주장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이전부터 함경도의 백성들이 흉년이 들면 강을 넘어서 두만강 너머로 갔다가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해 온다는 말은 들은 것 같소만, 그 땅에 정착을 하고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외다.”
“그 수가 이제 수천을 넘는다 하오이다.”
“그동안 월경을 그리 엄히 단속했는데도 그리되다니?”
“굶주림을 피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오이까? 백성의 잘못이 아니오이다.”
“어허, 이런…….”
“이제는 월경죄니 월강죄니 하며 국법을 따질 때가 아니오이다. 오죽하면 전하께서 특명어사에게 간도 땅을 둘러보라고 하셨겠소이까?”
“그렇소이다. 지금 문제는 그 수천의 백성이 지금 비적들에게 죽고 다치고 한 지가 여러 해가 된다는 것이오.”
“이것을 어찌하면 좋겠소? 간도에 대한 지원 문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오이다. 청국이 있다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만약에 문제가 커지면 청국과 마찰을 빚을 수 있습니다.”
“애초에 어사가 간도로 넘어간 것이 잘못이오이다. 가지 않았으면 오늘의 이 사단도 나지 않았을 것이 아니오이까?”
“장계를 보면 전하께서 내리신 어명이라고 하오이다. 우리 신료들이 따질 일이 아니에요!”
“그렇소이다. 장계에는 간도에서 군사를 움직여도 된다고 쓰여 있소이다.”
“어허, 전하께서 어쩌려고 그러시는지…….”
“전하의 뜻은 조선 백성을 구하는 것이외다. 청국과 다툼을 하자는 것이 아니에요.”
“그게 무슨 억지입니까. 간도에서 군사작전을 하는 것이 청국에 알려지면 좋을 것이 없어요. 청국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간도는 조선 땅인데 청국이 왜 문제를 삼는다는 말이오?”
“몰라서 그러시오? 간도는 조선과 청국 양국이 서로 간에 행여나 있을지도 모르는 군사적인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비워 놓은 땅이라는 말이외다. 그러니 우리 조선이 먼저 들어가면 빌미를 줄 수가 있어요.”
“빌미라니요? 청국이 이걸로 군대라도 보낸단 말입니까?”
“안 그러리라고 보장도 못 하지요.”
“청국이 군사를 보내면 싸워서 지키면 됩니다!”
병조판서 신관호가 입을 열자 대신들이 모두 경악했다.
“싸우다니요? 병판,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씀이오?”
“상국인 청국과 전쟁이라도 벌이자는 말이오?”
“못 할 게 뭐 있습니까?”
“병판,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수습책을 내야지요.”
“농담 아닙니다. 싸우게 되면 싸워야지요.”
“어허. 이 사람 큰일 낼 사람이네!”
“병판,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조선 백성을 모두 죽일 셈이요?”
신관호가 정색을 하고는 말했다.
“대감들께서는 병자년에 있었던 삼전도의 굴욕을 잊었소이까?”
“뭐, 뭐요?”
신관호가 병자호란을 언급하자 크게 놀란 대신들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병자년이라면, 사, 삼전도의 굴욕이라면… 이보시오, 병판. 그건 벌써 이백 년도 더 지난 옛일이오이다.”
“옛일이라니요? 병판 말대로 나는 잊지 않고 있소이다. 지금 비록 청이 상국이라고 하지만 어디 진심으로 우리 조선의 상국이오이까? 따지고 보면 청은 오랑캐예요. 여진이라는 말이오이다!”
“어허, 어허!”
“병판, 혹여 전하께서도 그리 생각하시오이까?”
“그렇습니다.”
“어, 어허!”
“그렇다면 정녕 전하께서도 청을 오랑캐로 보신다는 말이오이까?”
“그렇소이다. 전하께서는 한 번도 청을 상국이라 부르신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사석에서 소생에게 이르시기를, 부모의 나라였던 명의 은혜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소이다.”
“어허, 어허. 이런, 이런….”
대신들이 충격을 받은 듯이 놀라서 탄성만 토해 냈다. 대신들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마다 안색이 밝아졌다.
“이 사람 병판, 그게 정녕 참이오이까?”
“감히 소생이 전하께서 하신 말씀을 두고 농을 하겠습니까?”
“어허, 이거 이리되면 조선 팔도의 사대부 모두가 기뻐할 일이 아닌가!”
“어허, 이제야 나라의 근본이 제대로 서는 것인가?”
“우리 전하께서 그렇게나 생각을 하셨다니…….”
대신들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눈가가 촉촉하게 젖는 대신들도 있었다.
조정의 대신 대부분이 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에 대한 은혜를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소싯적부터 스승에게서 대대로 교육받아 온 사람들이었다.
“이제 조선이 당당하게 일어설 때가 되었소이다!”
“암요. 그래야지요!”
“어허, 이렇게 기쁜 날이 있나!”
말 몇 마디와 명분 하나에 청년처럼 기개를 세우는 대신들이었다.
“그래도 걱정이오이다.”
“걱정이라니요?”
“청국이 아무리 양이들에게 전쟁에서 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대국이오이다. 우리 조선이 상대하기에는 하늘이에요.”
“하늘은 무슨. 그 하늘이 전쟁에서 지고 영토도 빼앗겼소이다.”
1차 아편전쟁 직후의 난징조약에서 청이 영국에 홍콩을 할양해 준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어디 땅만 빼앗긴 줄 아시오? 배상금도 지급했다고 하오이다. 항구도 여러 곳 내주고 말이오. 더구나 앞으로는 양이들 상인이 물건을 팔아도 세금도 거두지 못한다고 들었소이다.”
“어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외다. 그게 어디 나라 꼴이오이까?”
“그것이 작금의 청국이오이다.”
“병판, 지금 말들이 모두 사실이오이까?”
“그렇습니다.”
“어허, 그래서 전하께서 지난 총포 시연에서 신식 총을 직접 쏘아 보시고 그리 말씀을 하신 것이구려.”
“허어. 전하께서 얼마나 걱정이 되셨으면 몸소 총까지 방포하셨겠소이까?”
“그렇습니다. 이제는 양이들이 언제 조선에 와서 청국에서처럼 조선을 협박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조선은 작은 나라요. 조선이 청국처럼 양이들의 그런 침략을 받으면… 어허, 이거 생각만 해도 끔찍하오이다. 끔찍해요.”
“나라가 위태로울 수도 있겠소이다, 이거.”
“대책을 세워야지요. 지금 듣고 보니 이대로 있을 때가 아니오이다. 전하께서 이르신 대로 하루빨리 신식 무기라도 들여서 무장을 해야 하오이다.”
“그렇소이다. 간도 문제도 있고 말이오이다.”
“아무튼, 간도 문제는 전하의 뜻을 온전히 받드는 것으로 의견을 모으는 것이 좋겠소이다.”
“옳소이다!”
병조판서 신관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역시 조정의 비판적인 여론을 잠재우고 대신들을 구슬리는 것은 명분이 최고였다.
명나라가 망한 지 벌써 이백여 년이 지났지만, 조선 사대부들의 마음과 정신 속에는 아직도 명을 숭상하고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의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관호는 서원 철폐 명이 내려질 때 임금이 만동묘는 그대로 두라고 한 의도를 이제 알 것도 같았다.
‘전하는 무서운 분이시구나. 숭명배금(崇明排金)으로 여론을 단박에 잠재우시다니.’
“전가의 보도를 써야겠구나. 병판은 이리하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는 전가지보(傳家之寶)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라는 뜻으로 만병통치약같이 아주 잘 듣는 해결책을 이르는 말이다.
신관호는 임금의 지시대로 비변사 회의에서 숭명배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러자 간도에 병사를 들인 것에 대한 비판적인 조정의 여론은 그대로 가라앉았다. 숭명배금 사상은 조선의 사대부들에게는 마약 같은 해결책이었다.
특명어사 김병연을 돕기 위한 북병사의 병력 이백이 순조롭게 두만강을 넘어선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