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간도에서 청국 비적을 몰살시키다 (3)
김병연과 군관들은 농부들을 길잡이로 삼아서 마을 사람들이 숨어 있는 곳을 찾았다.
“여기냐?”
“네. 이곳입니다.”
농부들이 가리키는 곳은 벼랑이 병풍처럼 서 있는 물이 마른 계곡이었다. 계곡이라고 하지만 수풀들이 암벽의 군데군데를 따라서 성글게 이어져 있을 뿐 물은 없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사람이 숨을 만한 곳이 없었다.
“어디에 마을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냐?”
“저깁니다. 저 덤불 뒤 바위 사이로 사람 하나가 드나들 만한 틈이 있습니다. 그 사이로 들어가면 안으로 제법 넓은 동굴이 있습니다. 저곳이 비적들이 올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피하는 장소입니다.”
농부가 암벽 아래 귀퉁이를 가리켰다.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군관들이 앞서가서 덤불 근처 암벽을 유심히 살폈다.
과연 농부가 이른 그대로 수풀 뒤에 어두운 틈이 보였다. 군관이 바위틈으로 들어갔다가 곧바로 나왔다.
“있느냐?”
“네, 조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군관은 의복을 보고 안에 있는 사람들이 조선 백성임을 파악했다. 노인부터 여자, 어린아이들까지 인기척에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었다.
“모두 나오너라.”
“누구요?”
“나오너라. 비적들은 갔다.”
동굴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멀리 달아날 힘이 없는 노약자들이었다.
김병연과 군관들이 조선에서 오는 병사들을 기다리는 이레 동안에 비적들은 사라졌다.
비적들은 조선 백성 열댓 명을 끌고 가면서 노인과 갓난아이 다섯을 죽이고 갔다.
비적들이 조선 백성을 살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김병연은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비적들이 떠난 마을 뒷산에 백성들의 시신을 묻으면서 김병연은 나라 없는 사람들의 슬픔이 어떤 것인지 목도했다.
가족들의 시신 앞에서도 사람들은 울음을 내지 않았다.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조선을 떠나오면서 죽은 자들을 위한 울음도 죽은 이들을 위한 눈물도 남겨 두지 않은 탓이었다.
“조선으로 돌아가려느냐?”
의미 없는 물음이었다. 사람들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니 가겠다고, 여기에 남겠다고 그런 말조차 없었다.
조선은 이들의 나라가 아니었다. 조선의 임금은 이들의 임금이 아니었다. 두만강 너머 조선 땅에 사는 백성들에게 나라는 이들과 상관이 없었다.
두만강 너머의 조선에서 이들은 지킬 것이 없었다. 지켜야 할 사람도 없었다.
이곳이 이들의 나라였다. 이곳이 이들의 땅이었다.
*
“어사 나으리.”
북병사가 보낸 병사들이 당도했다.
“북병사께서 보내셨소이다. 만호 박무상이외다, 어사또 나리!”
만호 박무상이 호방하게 웃었다. 김병연도 만호를 보고는 크게 웃었다.
“고맙소이다, 만호께서 이리 먼 길을 달려와 줘서.”
김병연이 활짝 웃고는 만호 박무상을 끌어안았다. 박무상 역시 공적인 답변을 하고는 이내 웃으면서 사적으로 김병연을 맞았다.
“추사 선생은 잘 계시오이까?”
“나도 도성을 떠난 이후로는 뵙지 못했네.”
김병연은 평안도와 함경도 양서의 특명어사에 제수된 후에 추사 김정희를 찾은 이후로는 소식을 듣지 못해 박무상에게 김정희의 안부를 물었다.
박무상은 추사의 제자들 가운데서 몇 안 되는 무반으로, 김병연과는 호형호제하면서 오랫동안 지우로 지낸 사이였다.
김병연이 유리걸식하다시피 팔도를 떠돌며 밥과 술을 먹을 때, 이 박무상의 부임지에서 그동안의 나약해진 심신을 추스르고 몸을 보한 후에 다시 유랑을 떠날 정도로 둘은 친밀한 사이였다.
나이로 박무상이 김병연보다 서넛이 많았다.
“북병사 영감으로부터 자네가 병력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듣자마자 내가 자원해서 이리로 왔네. 어떤가, 비적들은 어디에 있는가?”
“갔습니다.”
김병연은 박무상에게 이레 동안에 있었던 경과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은 마을로 가지요.”
무려 이백이 넘는 군졸이 마을로 들어가자 놀란 마을 사람들이 겁을 먹고 산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조선의 병사들이 나타나자 조선에서 자신들을 잡으러 온 토벌대로 오인한 까닭이었다.
김병연이 달아나지 않은 농부들에게 일러서 산으로 올라간 사람들을 안심시켜서 다시 마을로 돌아오게 했다.
“우리를 조선 백성으로 생각하지 마시오! 나라에서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무어라고! 이제 빼앗을 것이 없으니 목숨까지 거두어 가려고 하시오? 우리는 절대로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요.”
농부 중 하나가 악을 썼다. 주변 사람들이 이를 말리며 농부의 입을 틀어막았다. 연신 허리를 굽히면서도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의심을 풀지 못한 두려운 눈빛들이었다.
김병연과 박무상이 휘하 군관들과 대책을 숙의했다.
“그러니까 비적들이 노약자들은 죽이고 노예로 부릴 만한 사람들만 끌고 갔다는 거네?”
“그 수가 무려 십여 명을 넘고 있습니다.”
“조선 백성인데 당장 구해야 할 것 아닌가?”
“고맙소이다, 박 만호.”
김병연의 말끝에 간절한 의지가 실렸다.
“어사또, 백성들이 지금 어디에 잡혀 있소?”
군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 공적인 일이라서 만호 박무상이 말을 올렸다.
“발이 빠른 군관을 시켜서 비적들이 간 곳은 이미 정탐을 해 두었습니다. 놈들은 이곳에서 사나흘 거리에 있습니다.”
“사나흘 거리라……?”
박무상이 자신이 데려온 군관에게 눈빛을 주었다. 박무상의 눈빛이 무엇인지 아는 군관이 대답했다.
“나으리, 사흘이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어렵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의아해하며 김병연이 물었다.
“나으리, 저희가 가지고 온 식량이 닷새 치밖에 없습니다.”
“식량이 닷새 치?”
“그렇네. 북병사 영감은 여기 간도로 가서 비적들을 물리치고 백성들을 즉시 구출하라고만 했네. 그래서 여기에서 묵을 사흘 치와 두만강을 넘어 조선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분량만 지니고 왔다네. 서둘러야 했으니 미처 충분한 군량을 챙기지 못했네.”
군관이 부연 설명을 했다.
“이곳에서 사나흘 거리면 오가는 데만 이레 이상이 걸립니다. 거기에 비적들을 소탕하려면 작게 잡아도 사나흘에, 그 이상의 기한이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날을 아무리 적게 잡아도 보름은 걸립니다.”
보름은 15일간을 말함이다.
“그러면 병사들이 먹을 식량이 부족해서 비적들을 토벌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그것이 말이 되는가?”
김병연이 언성을 높였다.
“아니, 내 말은 못 한다는 게 아니고 군량이 그렇게밖에 안 된다는 것이네. 병사들을 굶겨 죽이면서 싸울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일세.”
“아니, 무슨… 병사들이 보름 먹을 식량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오이까?”
김병연은 사정을 알면서도 언성이 저절로 높아졌다. 구하지 않으면 잡힌 백성들이 어찌 될지 알기 때문이었다. 청국에 노예로 팔리든지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이 사람 난고, 자네도 알다시피 여기는 조선 관아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네. 그래서 백성만 구하고 바로 떠나야 하는 곳이 아닌가?”
난고는 김병연의 호다. 김병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만호 박무상이 이끌고 온 병력은 무려 이백이었다.
십여 명의 인원이라면 간도의 인근 마을에 어떻게든 부탁을 해서 식량을 구할 수도 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인원이었다.
조선이라면 인근 관아에서 이백 명 정도를 먹일 식량은 조달할 수가 있을 테지만 이곳은 간도였다.
마을이 여러 곳이니 식량을 구하려 한다면 가능할 것도 같았지만, 그렇게 되면 강제성을 띠게 될 수밖에 없었다. 경우야 어떻든 간에 비적이나 마찬가지 행위를 하는 것이다.
식량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도망을 치는 사람들에게 병사들을 먹이고 남을 식량이 있을 리도 없었다.
김병연은 궁리한 끝에 박무상에게 제안했다.
“그러면 이리하는 게 어떻습니까? 우선은 비적들을 찾아서 토벌을 하면서 그동안 종성부에 사람을 보내 군량을 실어 오라고 말이오.”
“만호 나으리, 병사께서는 이레 안으로 바로 돌아오라고 이르셨습니다.”
“무슨 소리냐. 병사께서 내게 이르기를, 조선의 백성들이니 반드시 구해 오라고 이르셨다. 알겠느냐?”
“그래도 기한을 넘기시면…….”
“기한 문제는 내가 책임질 것이니 그리 알거라.”
군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식량 문제는 어사또의 의견대로 하면 되겠구려.”
군량 조달 문제는 김병연의 제안대로 해결이 되는 듯했다. 그래서 어사 김병연과 만호 박무상은 군관 둘을 두만강 건너 종성부에 보내 군량을 더 가져오라고 이르고, 즉시 비적들을 소탕하기 위해 나섰다.
마을을 막 벗어나자 일단의 병장기를 손에 든 장정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수십여 명의 조선 사람이었다. 군관들이 앞으로 나아가서 정체를 물었다.
“너희는 누구냐?”
“인근 마을 사람들입니다.”
병사들의 길을 안내하던 농부가 그중 중년을 알아보았다.
“진사 나으리.”
김병연이 앞으로 나섰다.
“진사? 사대부더냐?”
“조선에서는 그랬지만 여기 간도에 사대부 같은 것은 이제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평등한 백성이외다.”
장정들이 김병연을 노려보고 있었다. 양반이니 하면서 반상의 법도 같은 것을 운운하면 금방이라도 달려들 눈빛으로 보였다.
김병연은 사람들을 탓하지 않았다. 사대부들이 지키지 않은 백성이었다. 사대부들이 버린 백성이었다.
“홍호적(紅胡賊)을 토벌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도 힘을 보태기 위해서 왔습니다.”
홍호적은 머리에 붉은 띠를 맨 오랑캐 비적이라는 뜻으로 비적 무리를 말함이었다.
이때에 청국 조정에서 봉금 지대로 지정한 간도와 남만주 일대에는 청나라에서 죄를 짓고 도망쳐 온 자들이 모여서 무리를 이루고 만주와 간도 일대를 떠돌아다니며 약탈을 일삼고 있었다.
이들 비적 중 일부가 이번에 간도의 마을을 노략질하고 조선 사람들을 노예로 팔기 위해 납치한 자들이었다.
“군사들이 충분하니 그럴 필요가 없다.”
“여기는 우리 땅입니다. 그러니 우리 손으로 지키고 싶습니다.”
“우리 땅?”
“그렇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다. 너희도 조선 백성이니…….”
진사라는 불린 자가 김병연을 노려보았다. 김병연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
김병연과 박무상이 이끄는 조선의 병사들은 사흘을 걸어서 비적들이 노숙을 하고 있는 인근 계곡에 당도했다.
앞서 보낸 정탐 군관들이 비적들의 수가 일백여를 헤아린다고 알려왔다. 더구나 조선인 스무 명 정도가 잡혀 있다고 했다. 다른 마을에서도 납치한 사람들이었다.
군관은 비적들에게 조선의 여자들이 겁탈을 당하고 남자들은 매질을 당해 밧줄에 묶여 매달려 있다고 했다.
“비적들의 무장은 어떠하냐?”
“칼과 도끼 같은 것이 전부입니다.”
“총은 있더냐?”
“활은 몇 자루 보였지만 총은 없었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소?”
“어사또, 이리합시다.”
만호 박무상이 묘책을 내세우고 군관들에게 일렀다. 군관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가서 계곡이 시작되는 입구의 양쪽에 포수들을 배치했다.
“너희는 뛰쳐나오는 놈들을 모두 처리하면 된다. 어사께서는 그 틈을 타 백성들을 구하시오.”
박무상은 김병연에게도 스무 명의 군사를 내주었다.
비적의 두목이 몹쓸 짓을 하는 것을 꾸짖던 조선 남자를 조선인들 앞에서 칼로 찔러 죽였다. 남자는 조선에서 선비였다.
술에 취한 비적의 소두목들이 돌아가면서 여자들을 욕보이고 있었다.
밖에서 소란이 크게 일었다. 칼과 도끼를 잡은 비적들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웬 놈이야?”
김병연 휘하에 있던 사복 군관들이 크게 소리쳤다.
“이놈들! 조선 사람들을 내놓아라!”
“어라, 이건 또 뭐야? 죽으려고 왔구나?”
뒤이어 술에서 깬 비적 수십여 명이 우르르 달려왔다. 군관들은 대들려는 듯하다가는 이내 뒤로 돌아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조선 여자의 배 위에서 허리를 움직이며 숨을 헐떡이던 두목이 기분이 크게 상해서 소리쳤다.
“저놈들 잡아 와. 잡아서 가죽을 벗겨야겠다. 잡아 오는 자에게는 여자 하나씩을 내주겠다.”
두목의 호령이 떨어지자 비적들이 무기를 챙겨서 앞을 다투며 계곡 입구로 군관들을 쫓았다.
“비적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계곡의 등성이에서 상황을 살피던 군관이 김병연과 박무상에게 보고를 했다.
“얼마나 나왔느냐?”
“거의 다 같습니다.”
“이상하지 않느냐? 아무리 유인책을 썼다고 해도 비적들이 다 나오다니?”
“무슨 이유일까요?”
“그러게나 말이오. 우리 군관들 다섯을 잡으려고 저리 한꺼번에 몰려나오지는 않을 텐데요?”
“이유야 어떻든 간에 이제 움직입시다.”
군관들이 계곡 양쪽에 매복한 복병을 지나서 앞으로 내달렸다. 조선인을 잡아 오면 여자를 준다는 두목의 말에 비적들은 힘을 다하여 앞으로 뛰고 있었다.
“거의 다 들어온 것 같소이다.”
“그렇소이다.”
계곡 위의 등성이를 따라서 길게 늘어선 포수들이 화승에 불을 붙인 채 조준을 하며 방포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군관들이 빠르게 달아나자 뒤를 쫓던 대부분 비적이 숨을 헐떡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방포하라!”
조선 병사들이 일제히 화승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벼락을 치는 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졌다. 매캐한 흑색 화약의 냄새가 코를 찌르고 눈을 어지럽혔다.
김병연은 보았다. 계곡을 따라서 나오던 대부분의 비적이 모두 총을 맞고 쓰러져 죽거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조선군 포수들의 사격 솜씨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났다.
“방포!”
화승총의 총열 안에서 화염과 함께 튀어 나간 탄환이 달아나려는 비적들의 뒤로 날아가 뒤통수를 부수었다.
비적들이 휘청거리다가 쓰러졌다. 비적들의 어깨와 머리에서 피가 튀고 뇌수가 흘렀다.
계속 연사가 이어졌다. 양쪽 언덕에서 각각 10명씩 5개 조로 이어진 5연사 후에도 연사가 계속되었다.
계곡 입구로 몰려온 비적들이 매캐한 연기 사이에서 모두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살수 앞으로!”
계곡 안에 남아 있는 잔당들을 처리하기 위해 검과 창을 든 살수병 백 명이 일제히 계곡 안으로 뛰어들었다.
총포 소리에 놀란 비적 두목이 바지를 추스르고 칼을 들었다. 남아 있던 비적 셋이 모두 뒤를 따랐다.
두목은 계곡을 가득 채우는 총소리가 들리고 부하들이 돌아오지 않자, 달아날 생각으로 도망칠 길을 찾아 벼랑을 기어올랐다.
“조선인들은 어찌할까요? 여자들만이라도 끌고 갈까요?”
“미친놈! 저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총칼을 든 조선 병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비스듬한 계곡 벼랑을 기어서 올라간 두목과 부하 몇이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선 놈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간신히 산 것 같습니다.”
“가자.”
“어디로 가실 겁니까?”
“어디로 가기는. 길림으로 가자.”
“길림이면?”
“거기서 대두목을 만나 장춘에 오늘 본 것을 알려야 한다.”
“뭘 말입니까?”
“조선인들 말이다.”
김병연과 조선 병사들이 살아남은 조선 사람들과 시신들을 수습해서 마을로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