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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나니 철종-73화 (73/295)

#73화 프랑스와 손을 잡다 (1)

제물포에서 도승지 박규수는 임금이 내린 술로, 어명을 받고 부랴부랴 달려온 경기감사를 비롯한 제물포 인근의 수령들과 함께 프랑스에서 돌아온 사신들을 위무하고 연회도 즐겼다.

박규수는 제물포 인근 해상에 머물고 있는 프랑스 함대의 대표를 만나서 곧바로 도성으로 가려고 했지만, 제물포에서 프랑스의 사신들을 성대히 접대하라는 어명이 기발로 내려오는 바람에 제물포에 이레나 머물렀다.

프랑스 함대의 기함에서 프랑스 대표로 조선 땅을 밟은 사람은 조선을 다시 찾은 마크 마옹이었다.

마크 마옹은 대통령으로서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반대파들을 몰아내고 프랑스 정국을 장악한 루이 나폴레옹에게서 전권을 위임받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것이다.

마크 마옹과 프랑스의 제독을 포함한 대표들을 맞은 도승지 박규수가 주최하는 연회가 이틀 동안 열렸다.

연회가 끝난 후에 프랑스의 마크 마옹이 도승지 박규수를 프랑스 함대의 기함으로 초청해서 함선을 보여 주었다.

프랑스는 기함을 비롯해 순양함 2척과 포함 2척, 통보함까지 모두 8척의 군함이 제물포 앞바다에 머물고 있었다.

청국의 상해에서 조선의 제물포로 들어온 프랑스 동양 함대의 기함과 순양함, 포함들은 모두 증기선이었다.

프랑스 함대의 기함은 동방 함대에 새로 배치된 34문의 최신예 함포를 장착한 배수량 3,600톤의 신형 증기선으로, 기함을 본 조선의 관리들은 그 거대함에 압도되었다.

기함의 함상에서 함대의 여러 증기선의 위용에 놀란 박규수는 마크 마옹으로부터 이 군함들이 바람의 힘이나 사람의 힘이 아닌 증기기관으로 먼바다를 거침없이 오간다는 설명에 한 번 더 놀랐다.

박규수와 함께 처음으로 서양의 증기선에 오른 조선의 관리들 역시 수많은 신형 대포와 프랑스군의 총포를 보고는 놀랍고 두려운 모습들을 보였다.

거대한 대포를 가득 실은 이런 배가 수십여 척 몰려온다면 무슨 힘으로 막을 것인가. 조선 관리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조선을 방어한다는 생각만 들어 있을 뿐이었다.

사신단으로 프랑스에 다녀온 사람들을 제외하면 조선의 관리들 중에서는 오직 박규수만이 이런 증기선 군함을 조선이 보유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할 뿐이었다.

프랑스의 장교들과 수병들은 조선 관리들을 마치 귀빈 모시듯이 군함의 여러 곳을 구경시켜 주며, 통역을 통한 질문에 친절히 답을 하는 등으로 호의를 보였다.

“이런 배가 귀국에는 몇 척이나 있습니까?”

“수십여 척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싶었다. 아무리 좋은 배라고 해도 수십여 척 정도라면 그 배들을 모두 끌고 조선까지 올 수는 없을 것이다.

표정을 통해 조선 관리들의 안도하는 속마음을 읽은 듯이 마크 마옹이 말했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일 년에 이런 배를 백 척 이상 만들 수 있습니다.”

통역을 통해서 마크 마옹의 말을 전달받은 박규수 역시 충격을 받았지만 내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통역은 박규수에게 이런 배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프랑스만이 아니고 영국과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그리고 저 멀리 아메리카라는 곳에 미국이라는 나라도 있다고 했다.

통역은 이들 나라의 이름을 모두 한자식으로 알려 주었다. 영길리와 미리견, 화란, 서반아, 덕국이 모두 불랑국의 해군만큼 많은 군함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 군함들이 세계의 큰 바다를 오가면서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 했다.

마크 마옹이 청국에 머물고 있는 서양의 함대들은 각국이 가지고 있는 해군력의 백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고 말해서 조선의 관리들을 더욱더 경악하게 만들었다.

통역이 서양의 군세를 진실로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과장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실로 두려움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조선 관리들의 안색은 그저 놀라움과 두려움 일색이었다.

박규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조선을 포함한 동양과 서양의 군력 차이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차이가 나고 있었다.

도성 한양을 향해 한강 물을 거슬러 오르는 함선은 프랑스 동양 함대 소속의 군함 3척이었다.

프랑스의 대표들과 조선의 프랑스 사신단이 승선한 군함들은 소형 범선으로, 프랑스 함대 안에서 통보함과 수송함 역할을 하는 군선들이었다.

두 척의 수송함에는 프랑스의 대통령인 루이 나폴레옹이 보낸 선물이 궤짝 수십여 개에 실려 있었다.

이들 궤짝 중에는 조선의 임금이 특별히 돈을 주고 부탁한 프랑스제 신형 소총 삼백 정도 포함되어있었다. 거기에 루이 나폴레옹이 특별하게 조선의 국왕에게 보낸 선물로써 프랑스의 신형 대포 3문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통보함은 적의 상태를 정찰해 본함대에 통보하거나 명령을 전달하는 군함으로, 주로 쾌속선인 소형 범선이 그 역할을 맡았다.

현대의 초계함 크기의 코르벳이라 불리는 프랑스의 소형 범선은 전장이 30여 미터, 무게 600여 톤 내외 정도였다. 그 크기만 비교하자면 조선 수군의 전함인 판옥선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는 프랑스 함대 안에서 가장 작은 군함이었다.

한강이 깊지 않은 관계로 이들 소형 함정만이 도성으로 향하는 물길을 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꼬리를 물고 한강을 오르는 군함 위에서 도승지 박규수가 한강 주변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박규수의 옆에서는 마크 마옹이 조선의 풍광을 보면서 연신 감탄사를 자아냈다.

“조선의 산하가 아름답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산하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백성들도 아름답습니다. 조선 사람은 한번 우정을 맺으면 평생을 갑니다.”

두 사람의 옆에서 프랑스까지 함께 갔던 조선인 천주교인이 통역을 했다.

“그래서 조선이 아직도 명나라를 기억하며 명나라 황제를 위해 이백 년간이나 제사를 지내 왔다면서요?”

박규수는 크게 놀랐다. 마크 마옹이 만동묘에 대해서 아는 것이다.

“그걸 어찌 압니까?”

“친구가 되려면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조선의 사대부들이 지금 청나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국왕 전하께서도 청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프랑스 사람들이 듣기로는 청국은 조선을 속국으로 생각한다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조선은 개국 이래로 어느 나라의 속국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없는 명나라의 경우에도 우리를 전쟁에서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 우정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죽은 친구를 위한 기억이라. 그거 좋군요.”

“귀국의 황제와 우리 조선의 국왕 전하께서는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프랑스에는 황제가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귀국 불랑국의 대통령은 황제가 될 것입니다.”

“조선의 국왕 전하께는 정말로 신통력이라는 게 있는 겁니까?”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 여기에 마크 마옹 그대도 없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나는 지난번 조선의 국왕 전하를 뵈었을 때 그 말을 듣지 않았으면 지난번의 혁명에서 루이 나폴레옹 각하의 반대편에 섰을 겁니다.”

“다행입니다. 이렇게 마크 마옹 당신을 보게 돼서요.”

“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제 생명을 구해 주신 조선의 국왕 전하를 위해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돼서요.”

“도승지 영감!”

화급한 고함에 박규수가 뱃전으로 갔다.

“무슨 일이냐?”

“저길 보십시오.”

강물 위로 시신들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저것이 무엇이냐? 사람 아니냐?”

“죽은 사람입니다. 게다가 머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대체 이것이 무슨 일이냐?”

“소인들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오?”

프랑스 함대를 이끌고 온 프랑스의 특사 마크 마옹이 박규수 옆으로 다가가 한강물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아닙니까?”

“죽은 사람들이오.”

수십여 구의 시신이 강물에 둥둥 떠내려오고 있었다.

“혹시 조선에 정변이 난 것이 아닙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건 무엇입니까? 조선은 사람이 죽으면 강물에 띄웁니까?”

“조선에 그런 장례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갑자기 마크 마옹이 긴장했다.

“조선은 이제 천주교를 박해하지 않습니다.”

박규수가 마크 마옹의 불안과 기우를 걷어 주었다.

“그렇다면 안심이군요.”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박해는 조선이 서양 세계에 문을 열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박규수의 인상은 그래도 어두웠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무래도 우려한 일이 터진 것 같았다. 임금에게 그렇게도 부탁을 했지만 기어이 일이 터지고야 만 것이 틀림없었다.

뱃전으로 나온 한 사람 역시 얼굴이 어두웠다. 프랑스 사절단을 이끌고 다녀오는 남종삼이었다. 남종삼은 마크 마옹과 대화를 나눈 후에 박규수의 옆으로 다가갔다.

“도승지 영감, 그동안 조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대들이 불랑국으로 떠난 후에 많은 일이 있었네.”

“많은 일이라면? 며칠 전에 말씀하신 서원 철폐를 이르는 것입니까?”

박규수가 강물 위로 시선을 가져갔다. 새들이 북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전하께서 세상을 뒤집으셨네.”

“세상을 뒤집으시다니요? 서원 철폐만 해도 천지가 개벽할 일인데 다른 게 또 있습니까?”

“전하께서는 서원을 모두 없애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네. 그래서 유생들을 모두 죽일 작정이시네. 나라의 근본을 모두 바꾸시겠다는 의지일세.”

박규수와 남종삼의 옆으로 어느새 최성환이 다가와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들 모두는 1년여 만에 고국 조선으로 돌아온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최성환은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했다.

“전하께서 그리하셨다면 마땅히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

“이 사람 어시재, 자네도 역시 그런 생각인가? 나 역시 이번의 불랑국 방문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네. 조선은 이대로는 안 되네. 이제는 유학만 가지고는 나라를 제대로 끌어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네.”

남종삼이 맞장구를 쳤다.

“도승지 영감도 저희와 생각이 같겠지요?”

“그야 이를 말인가? 하지만 나는 걱정이 되네. 전하께서 너무 서두르시는 것 같아서 말이야.”

“도승지 영감께서 불랑국에 함께 갔더라면 지금과 같은 말씀은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런가? 그리도 서양은 많이 발전했던가?”

“그렇습니다. 저는 불랑국을 보고는 두려움까지 느꼈습니다.”

“그 두려움이란 게 무엇인가?”

“전하를 뵙고 말씀을 드리겠지만 한마디로 말씀을 드리자면, 조선은 서양 문물을 하루빨리 받아들이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자네 무슨 그런 심한 말을 하는가? 나 역시 세상이 돌아가는 정세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네만, 조선이 망하다니?”

“도승지 영감, 이번에 제가 가서 본 서양은 우리가 보고 들은 나라들과는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최성환은 프랑스에서 머무는 동안에 프랑스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전율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차차 알게 되겠지. 우선은 먼저 전하께 자네들이 보고 온 불랑국과 서양의 문명에 대해서 보고를 해야 하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전하께서 조선을 개혁하려는 의지를 더욱 굳히실 겁니다.”

“도승지 영감, 우리가 이제 주상 전하를 도와서 조선을 개혁해야 합니다.”

“이를 말인가.”

도승지 박규수가 최성환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었다. 떠내려오는 시신이 더 많아지고 있었다.

군함의 난간에서 강물 위를 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더욱 심각해졌다.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걱정들 말게. 전하께서 하신 일들이니.”

“설마 천주교 신도들을 처형하신 건 아니겠지요?”

사신단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박규수의 답을 기다렸다.

“내 추측이 맞다면 그 반대일 걸세. 저 시신들은 필시 유생들일 걸세.”

프랑스의 군함들이 양화진 근처의 수군 훈련장으로 근접하고 있었다. 기별을 받은 조선군이 프랑스의 군함들을 맞이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조선의 국왕이 보낸 수백여 용호영의 군사가 깃발을 높이 세우고 창검을 든 채 사신단과 프랑스인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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