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망나니 철종-91화 (91/295)

#91화 토지개혁을 하다

조선 팔도에서 올라온 상소들이 승정원에 쌓이기 시작했다. 승지들과 관헌들이 상소의 내용을 보고 기뻐하며 웃고 떠들었다.

“승지 영감, 여기 상소들을 보십시오. 이 많은 것이 모두 주상 전하를 칭송하는 내용입니다.”

임금을 보는 유림들의 시각이 순식간에 바뀌어 가고 있었다. 날마다 들어오는 상소문에는 임금을 칭송하는 미사여구가 가득했다.

유림의 180도 태세 전환은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유교 탈레반 이놈들에게는 무엇보다 명분이 우선이구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목을 잘라도 끝까지 저항할 것 같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대궐 문 앞에서 청나라를 오랑캐로 돌린 한 번의 정치 쇼와 같은 선동으로 나에 대한 적개심이 호의로 바뀌었다.

서원 철폐로 대부분의 학식 있고 명망 높은 유학자들이 임금인 내게서 등을 돌렸을 땐 사실 암담했었다. 조선의 지배층 여론은 임금인 내가 싫든 좋든 간에 그들이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백 년이 넘도록 조선이 상국으로 섬겼던 청나라를 오랑캐로 규정하고 실체가 사라진 명나라의 은혜를 갚겠다는 말을 하자마자 앞뒤를 가리지 않고 지지와 환호를 보내고 있는 유학자들이었다.

양반들의 사랑방에서, 향교와 서당에서, 저잣거리의 주막들에서 양반과 상민 가릴 것 없이 임금인 나를 한목소리로 떠받들고 응원하고 있었다.

역사에서 나치의 히틀러가 말한 집단은 눈먼 바보라는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말 한마디에 명분을 바꾼 조선의 유림이라는 집단 역시 눈먼 바보였다. 그리고 그 다루기 쉬운 눈먼 바보들을 이끌고 있는 자가 바로 조선의 임금인 나였다.

이 눈먼 바보들을 데리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할 것인가. 바보들이 원하는 대로 바로 청나라와 대결을 펼쳐야 하나.

아니었다. 지금은 아니다. 청나라와의 즉각적인 대결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청나라와 충돌한다면 지금으로써는 승부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냉정히 판단하자면 청나라가 마음만 먹는다면 여전히 조선은 위험해 처해질 수 있었다.

나라의 운명을 명분에 휩쓸려 요행에 맡길 수는 없었다. 내게는 조선의 힘을 기를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나는 신료들과 사대부, 유림에게 청나라 오랑캐들을 반드시 징벌하겠다는 신호를 계속 보냈다.

일부 신료들은 청나라가 즉시군사 행동을 벌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두고 염려가 되는 모양이었다. 신하들이 내게 상참과 윤대, 청대와 차대에서 계속해서 내 의지를 시험했다.

“전하, 청국은 지금까지 조선의 상국이었는데, 이를 하루아침에 오랑캐라 칭하시니 소신들은 매우 두렵고 혼란스럽나이다.”

“혼란이라니, 무엇이 말이오? 그대들은 내가 오랑캐를 오랑캐라 부르는 뜻을 모른다는 말이오? 청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청국은 임진년에 조선을 도와 저 악랄한 왜구를 물리친 명나라를 망하게 만든 족속이다. 또한 조선을 유린하고 수많은 조선 백성을 죽여 노예로 끌고 간 조선의 철천지원수다. 내가 백성들의 한이 하늘에까지 닿은 원수인 청국 오랑캐를 신료들과 백성들 앞에서 오랑캐라고 부른 것은, 병자년에 삼전도에서 당한 치욕과 굴욕을 씻고 청나라 오랑캐를 징벌해서 명나라의 은혜를 갚으려 함이다. 내 확고한 본의가 이럴진대 경들은 어찌하여 내 의지를 자꾸만 시험하려고 드는가!”

상참과 차대에서 반복해서 밝힌 내 말이 신료들과 관헌들을 통해서 조선 팔도의 사대부들과 고명한 유학자들에게 들어갔다.

내 뜻에 사대부들과 유생들이 감격한 나머지 멀리서 대궐 방향을 향해 절을 하고 있고, 그 수가 계속해서 늘어만 간다는 소식이 고을 방방곡곡으로부터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도 극소수의 신료들은 현실적으로 청나라의 힘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전하, 이리하시면 청국의 분노가 있을 것입니다. 통촉해 주소서!”

가뭄에 콩 나듯이, 내가 다시금 청나라를 오랑캐로 규정하고 명의 은혜를 갚겠다고 내세운 명분으로 인해 청나라가 대군을 몰아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자들이었다.

나는 청나라가 조선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청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것도 청나라가 세워진 이래로 나라의 존망이 달해 있을 정도로 가장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청은 지난 영국과의 1차 아편전쟁에서 무려 10만 군대를 동원하고도 불과 2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영국군에 대패하여 굴욕적인 조약을 맺고 나라의 땅마저 빼앗겼다.

거기에다가 청은 지금 자신을 예수의 형제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교주인 홍수전이 거느리는 태평천국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양자강 이남의 영토를 빠르게 점령해 가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유림의 지지까지 얻게 되자 임금인 내 힘은 이제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제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신하들의 그 어떤 눈치나 견제도 받지 않고 추진할 수가 있게 되었다. 온 백성이 나를 칭송하고 떠받들고 있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먼저 나는 그동안 호조의 일을 주관하다시피 한 호조참판 김영작을 호조판서에 올리고, 공조판서 최한기와 함께 조선 팔도의 지리와 도로를 비롯해 숨은 토지인 은결을 파악한 공조정랑 김정호를 정3품의 당상관인 공조참의로 임명했다.

내가 중인인 김정호를 일약 당상관에 임명하는 데에도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다.

최한기와 김정호가 호조판서 김영작과 함께 편전에 들었다. 김정호가 그동안 조선 팔도를 직접 다니면서 조사한 조선의 토지 상황을 내게 보고했다.

“그래, 조선 팔도의 토지가 모두 얼마인가?”

“전하, 조선의 토지 면적은 모두 145만 결에 이릅니다.”

조선의 1결(結)은 대략 지금의 1헥타르(ha)로, 대략 넓이가 10,809㎡, 평수로 말하면 약 3천 평이었다.

“호판, 지금 참의가 말하는 팔도의 토지에서 세수가 걷히는 비율이 얼마나 되오?”

“전하, 방금 참의가 올린 대로 조선 팔도의 145만 결 중에서 세금이 걷히고 있는 땅은 그 절반이옵나이다.”

“뭐요? 토지의 절반이 그러면 면세라는 말이오?”

“그렇사옵니다. 면세도 있지만 많은 토지가 은결로 세금을 내지 않는 토지이옵니다.”

“그러니까 은결이라는 것이 공부에 기록되지 않은 감추어진 땅, 숨겨진 토지라는 말인데 대체 누가 그 많은 은결의 주인이오?”

“전하, 예부터 은결은 지방의 토호는 물론이려니와 양반과 사대부들의 땅이옵나이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은결이 늘어난 것이오?”

“전하, 오래전 임진년의 왜란 때에 백성이 많이 죽어 황무지가 증가하고 토지 문서가 다량으로 소실되었나이다. 그에 따라서 토지 문서의 결수와 실제 수세 결수가 다 같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그 후에는 어떻소?”

“전하, 인조대왕 때에는 원장부 결수가 다시 회복되었으나, 실제로 세금이 걷히는 수세 결수와의 차이는 매우 컸나이다.”

“이유가 무엇이오?”

“전하, 임진란 이후부터 개간 사업과 양전 사업은 충실히 이루어졌으나, 면세 토지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면세라니? 혹시 공신전 같은 것 말이오?”

“그렇사옵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공신전으로 면세 토지가 크게 늘었다는 것은 뻔했다.

광해군을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능양군 인조가 인조반정에 성공한 대가로 자신을 왕위에 올리는 데에 공을 세운 자들에게 내린 조선 팔도의 막대한 공신전이 세습된 면세전일 것이다.

거기에다가 이후에 이괄의 난을 진압하면서 다시 공신들이 그만큼 늘었을 것이다.

인조. 내가 아는 인조는 수양대군 세조와 더불어서 조선을 암흑시대로 이끈 몇 안 되는 암군 중의 하나였다.

조선은 세종 때 실제 결수의 9할에 이르렀던 세수가 세조가 단종에게 왕위를 빼앗은 후에 수하들에게 공신전으로 나누어 준 막대한 면세전으로 인해 토지에서 나오는 세금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후에 성종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회복되던 토지 세금이 다시 임진왜란에 이은 인조의 왕위 찬탈에 수반된 공신전 때문에 다시 크게 줄어들었다.

인조 이래로 지금까지 조선의 토지에서 나오는 세금은 절반에서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다행히 서원의 철폐로 면세전이었던 서원 소유의 토지들을 모두 몰수하는 등으로 세수에 숨통이 트였다.

여기에 나는 다시 은결을 손보기로 했다.

상참과 차대를 열고 나는 신료들 앞에서 언성을 높이며 신료들을 압박했다.

“나라의 절반 이상의 땅에서 세금이 나오지 않는다니, 이래서야 어디 나라가 제대로 구실을 하겠소?”

“전하, 지난해에 전하께서 철폐하신 서원에 속해 있던 면세전은 모두 나라에 환수가 되었나이다.”

서원에서 몰수한 토지 정도로 세수는 충분하지 않느냐는 신료들의 항변이었다.

이놈들도 토지를 숨겨 놓고 있구나. 나는 확신했다.

“경들도 혹시 은결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신료들이 술렁거렸다.

“전하, 소신들은 숨겨 둔 토지가 없나이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난 또 조정의 녹을 먹는 경들이 토지를 숨겨 놓고 세금조차 내지 않는 중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소.”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 중죄라는 내 말에 신료들이 얼어붙었다.

“전하, 소신들에게 만약에 파악하지 못한 그런 토지가 있다면 전하께 바칠 것이옵니다.”

“좋소. 그리한다면 내 그대들에게 세금을 내지 않은 죄는 묻지 않겠소.”

신료들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들이 터져 나왔다.

나는 토지개혁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

임금과 조정의 이름으로 조선 팔도에 방이 붙고 관헌과 포졸들이 바쁘게 뛰어다녔다.

세금을 내지 않는 땅 은결은 모두 몰수한다.

토호들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 대문을 군관과 포졸을 앞세운 관헌들이 박차고 들어가서 수색했다. 숨겨 둔 토지에 대한 서류들이 뭉치와 다발로 나왔다.

이에 반발하는 토호와 양반들을 임금은 엄히 다루었다. 관아로 압송해서 은결을 포기한다는 지장을 받고, 순순히 내놓지 않고 반발하는 자는 곤장을 쳐서 마침내 강제로 받았다.

“너희는 관에 문서가 없으니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하지만, 문서가 없는 것은 주인이 없다는 것이니 이것은 본래 나라의 땅이다. 그러니 너희가 사사로이 이를 자신의 땅으로 여기고 그 땅에서 나오는 곡식을 가로챈 것은 나라의 재물을 가로챈 도적질이라고 할 것이니, 이는 마땅히 중죄로 다스려야 할 것이나 이번에 한해 땅을 본래 나라의 것으로 돌리면 죄를 용서할 것이다.”

수백 년간 세금 한 푼도 내지 않은 땅의 주인들이 그래도 토지를 내놓지 않으려고 크게 반발했다.

“반발하는 자는 나라의 도적이고 나라의 역적이니 중벌에 처하라!”

몇몇 토호들이 땅을 내놓지 않으려다가 끝내 매를 맞고 죽었다.

임금은 이렇게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세금을 내지 않은 조선 팔도 토지의 절반을 몰수해서 나라의 땅, 곧 임금의 땅으로 만들었다.

토호들과 양반들은 은결을 내놓거나 몰수당했어도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었다.

임금은 양반들이 내놓고 몰수한 토지에서 그동안 소작을 해 오던 상민들과 노비들에게는 소작의 권리를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토지의 주인이 양반에서 나라로 바뀌자, 이전에는 농사를 지어 많게는 수확량의 7할에서 적게는 절반을 지주에게 소작료로 바치고 주인에게 노역과 잡세까지 바쳐야 했지만 이제는 수확량의 2할만 나라에 바치면 그것으로 되었다.

은결을 몰수하면서 토호인 양반들이 임금게서 다시 등을 돌렸다. 하지만 그 수는 조선 백성의 1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이제 은결 몰수로 나라의 소유가 된 땅에서 농사를 짓게 된 소작농들은 임금을 칭송하며 만세를 불렀다.

임금은 이렇게 다시 극소수를 제외한 백성 대부분의 지지를 얻었다. 은결을 몰수당한 토호와 양반 지주들의 세력이 비록 강하다고는 하지만 왕에게는 그 정도의 반발은 분쇄할 자신이 있었다.

가을이 되어 땀 흘려 일군 토지에서 나오는 수확량의 8할을 오로지 가지게 된 소작농들과 그들의 가족이 느낀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조선 팔도의 들과 집에서 임금을 칭송하는 노랫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

내년부터는 보릿고개에도 굶지 않게 되리라는 확신에 희망을 가진 농민들이 더욱더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조선의 곡식 생산은 그만큼 늘어났다. 세수 역시 그만큼 불어났다,

임금의 명에 의해 공조에서 수리 사업에 착수했다. 전국 팔도에 저수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기존의 저수지가 있는 고을에서는 농로에 물을 대는 수로를 넓히고 늘려 나갔다.

간도에서의 전쟁 이후에 예상보다도 훨씬 늦게야 청나라에서 접촉을 해 왔다. 청나라의 사신들이 압록강을 넘어서 의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 기발로 도성 한양에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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