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상해 원정 (3)
청국 도적 서넛이 총을 쏘고 달아나고 있었다. 뒤를 쫓아온 십수 명의 프랑스군이 일제사격을 가했다. 뿌연 흑색 화약 연기와 함께 도적 하나가 총을 맞고 발버둥을 치다가 쓰러지며 피를 토하고 죽었다.
느닷없는 총소리에 프랑스 조계의 거리를 거닐고 있던 프랑스 여자가 손을 얼굴에 대고 비명을 질렀다.
도망치던 청국 도적 하나가 비명을 지른 여자의 옷을 잡아챘다. 여자는 귀부인 복장을 하고 프랑스 말을 할 줄 아는 통역인 청국 남자와 시녀 하나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도적이 휘두르는 칼에 통역은 골목으로 도망쳐 달아나고 시녀와 귀부인만 도적의 손아귀에 잡혔다.
귀부인이 잡혀가지 않으려고 하자 도적이 귀부인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도적이 귀부인의 목을 손으로 휘감고 질질 끌고 가려고 했다.
시녀는 제압을 당하지 않은 상태라 도망을 칠 수 있었지만, 달아나지 않고 귀부인의 옆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 뒤를 쫓아온 프랑스 군인 다섯이 총을 겨누었다. 거리의 앞에서는 다른 프랑스 병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프랑스 군인들과 귀부인을 인질로 잡은 도적의 거리는 불과 삼십여 미터였다. 도적의 뒤에도 프랑스 군인 여럿이 나타나서 소총을 겨누었다.
도적은 프랑스 병사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
도적이 달아날 곳이라고는 거리의 양편뿐이었다. 하지만 총소리에 놀란 상점의 주인들과 종업원들이 모두 출입문을 굳게 닫았다.
“여자를 풀어 줘! 풀어 주면 목숨은 살려 주겠다!”
“무슨 소리? 여자를 살리고 싶으면 길을 터라!”
뒤이어 달려온 프랑스 장교가 상황을 보고는 프랑스 여자를 구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에도 같은 상황에서 여러 번 도적에게 길을 열어 주었지만, 인질을 끌고 간 도적은 달아났고 그때마다 도적이 사라진 곳에서는 인질이 칼에 찔려서 숨져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길을 열까요?”
병사가 장교에게 물었다.
“바보 같은 소리. 저 도적이 인질을 살려 줄 것 같아?”
“그러면 어떻게 하죠?”
“뭘 어떻게 해? 사살해야지.”
“지금 사격을 하면 여자도 죽을 겁니다.”
도적에게 조준 사격을 한다고 해도 여자도 총을 맞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지금 달려온 프랑스 병사들 사이에는 조준 사격을 가해도 인질을 다치게 하지 않고 도적만 사살할 능력을 가진 저격수가 없었다.
도적에게 인질로 잡힌 여자는 어차피 살해될 것이라고 판단한 장교가, 손을 들어 사격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에 병사 하나가 여자 인질을 알아보고는 황급히 소리쳤다.
“장교님! 인질이! 인질이…·!”
“뭐야? 인질이 뭐?”
“인질이 모, 모방 씨의 부인입니다!”
“뭐라고?”
병사의 입에서 나온 말에 깜짝 놀란 장교는 다급히 사격 중지를 외치며 들었던 손을 내렸다. 하늘이 노래지는 느낌이었다. 장교의 입에서 ‘하필이면’이라는 신음이 토해져 나왔다.
프랑스 장교를 긴장시킨 병사의 입에서 나온 이름, 모방.
에르베 모방은 프랑스 최고의 무기상이었다. 청국과의 통상을 위해 상해에 온 보통의 상인들과는 신분이 다른 인물이었다.
모방은 프랑스 파리 인근에 소총을 포함한 무기를 생산하는 조병창을 비롯해 함정을 만드는 조선소까지 여러 개 소유하고 있는 인물로서, 프랑스 황제인 나폴레옹 3세와도 막역한 사이였다.
모방은 이때 태평천국 군대와 대적하고 있는 청국 증국번의 상군과 그와 뜻을 같이하는 강충원과 나택남, 호림익을 비롯한 향용(鄕勇, 지방 의용군)에 다량의 무기를 판매하기 위한 협상을 위해, 프랑스에서 자신이 소유한 증기선을 이끌고 상해를 방문 중이었다.
에르베 모방의 부인은 하필이면 오늘따라 개인 경호원 없이 조계의 길을 잘 아는 청국인 통역만을 대동한 채로 상점에 들렀다가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도적의 손에 인질로 잡혔다.
모여든 프랑스군 삼십여 명이 앞뒤로 길을 차단하고 인질을 잡은 도적과 대치 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대로 일제사격으로 도적을 사살했을 프랑스군이었지만 인질로 잡힌 사람이 문제였다.
에르베 모방이 상처 후에 재혼한, 젊고 아름다운 부인이 눈앞에서 도적의 칼에 의해 목이 잘릴 판이었다.
프랑스 장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사격 명령을 내리자니 모방 부인이 프랑스군의 총탄에 죽을 것이고, 그대로 있다가는 도적의 칼에 무참히 살해될 것이다.
손을 쓸 수도 쓰지 않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서 도적이 외치는 위협만 커져 갔다.
“비켜! 길을 트지 않으면 여자를 죽이겠어!”
프랑스군이 길을 트지 않자 도적이 모방 부인의 목에 칼을 슬쩍 댔다. 하얀 목선에서 선홍빛 피가 흘러내렸다. 모방 부인이 숨을 몰아쉬고 시녀가 비명을 질렀다.
공포에 질린 모방 부인은 비명조차 내지 못하고 굳은 채로 얼굴색이 파리해졌다.
프랑스군이 자신을 향해 총을 쏘지 않자 도적은 잡고 있는 인질을 보았다. 얼핏 봐도 꽤나 기품 있고, 젊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도적은 소도회 3인 정찰조의 조장이었다. 프랑스 조계에 새로 병력이 들어왔다는 소식에 정보를 얻기 위해 들어온 자였다.
조장은 조계의 방어 상태를 정찰하고 새로운 병력이 조선군임을 확인한 후에 소도회의 본영으로 귀환을 하다가 검문에 걸렸다.
조원 중에 하나는 달아나고 한 명은 사살됐다. 조장도 도망치려다가 이렇게 거리 한복판에서 오도 가도 못 하게 갇히게 된 것이다.
조장은 프랑스군이 발포를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여자가 중요한 인물인 것을 간파했다.
조장은 이제는 어쩌면 여기서 죽지 않고 도망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서 여자를 잡아가면 큰 득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장이 모방 부인을 방패로 삼아서 조금씩 뒤로 움직였다. 그때마다 프랑스군도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혹시나 모방 부인이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싶은 프랑스군 장교가 물러나라고 병사들에게 계속 소리쳤다.
진퇴양난이었다. 이대로 가면 도적은 물론이고 모방 부인마저 인질로 잡혀갈 수도 있었다. 장교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때 조계의 경비를 파악하기 위해 거리를 살피던 조선군 셋이 상황을 보고는 프랑스군에게 다가갔다.
일행은 장군 하나에 수행 군관 둘이었다. 군관들이 프랑스제 뇌관식 소총을 휴대하고 있었다.
프랑스군 장교에게 조선군 군관이 말을 붙였다.
조선말이 통할 수가 없었다. 프랑스 장교가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였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조선군 군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조선군의 장군이 프랑스 말을 조금 알아들었다.
프랑스 말을 알아들은 조선군의 장군은 허종무였다. 허종무는 지난날 훈국의 군사 반란 때 조선제일검인 장군 박인훈을 동료인 군관 방상주와 함께 화승총으로 사살한 인물이었다.
지금은 정3품 절충장군(折衝將軍)에 봉해져 금군인 용호영 소속으로서, 이번에 양헌수와 함께 상해에 오게 된 것이다.
허종무는 최성환을 따라서 프랑스에 사신단 일행으로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 프랑스 말을 조금은 알아듣고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허종무는 프랑스 장교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청국 도적이 서양 여자를 붙잡고 하얀 목에 날이 시퍼런 칼을 들이대며 방패로 삼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허종무는 소총을 도적에게 겨누고 있는 프랑스 병사들과 장교들의 당황하는 표정들을 보았다.
“인질을 살릴 수 있겠소?”
지휘관인 장교는 머뭇거리다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종무가 젊은 군관에게 물었다.
“저기까지 몇 보나 될 것 같으냐?”
“오십여 보쯤 됩니다.”
허종무가 지휘관인 프랑스 장교에게 물었다.
“도적을 당장 사살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오?”
사살이라는 말에 프랑스 장교가 허종무에게 쉽게 표현을 했다.
“인질이 귀족입니다. 특별한 여자입니다.”
“그렇다면 저렇게 두면 살릴 수 있는 것이오?”
장교가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어떻소, 내가 해결해도 되겠소?”
허종무의 말에 프랑스 장교는 크게 놀랐다.
“해결이라니요?”
“저 도적을 사살하는 거요.”
프랑스 장교가 펄쩍 뛰었다.
“말도 안 됩니다. 여기서 총을 쏘면 인질도 함께 죽을 겁니다.”
프랑스 병사들이 도적을 향해 겨누고 있는 지금, 소총은 조준 사격을 한다고 해도 표적의 어디에 총알이 맞을지 알 수가 없는 수준으로 정확도가 떨어졌다.
비록 프랑스제 전장식 뇌관 총이 강선이 있는 최신식 소총이라고 해도, 인질을 앞에 두고 저격과 같은 조준 사격을 해서 명중을 바랄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프랑스 장교와 병사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허종무는 프랑스 장교를 보았다. 총을 쏘겠다는 말과 함께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손짓을 했다.
허종무가 조선 군관이 들고 있던 총을 넘겨받았다. 허종무가 소총을 잡자 프랑스 장교가 놀란 눈으로 허종무를 보았다.
허종무가 꽂을대로 화약과 총알을 총구에 넣고는 뇌관을 장착했다.
허종무가 쏘겠다고 하자 프랑스 장교는 그래도 고개만 가로저었다. 프랑스 병사들 역시 전방을 주시하면서 긴장한 표정으로 허종무를 흘끔거렸다.
그때 앞에서 도적이 소리쳤다. 당장 퇴로를 열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여자의 목을 베겠다고 고함을 쳤다. 청국인 통역이 프랑스 말로 통역을 했다. 프랑스 장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떻게 하지.
장교는 그러다가 옆에서 조선군의 장군인 허종무가 총구를 도적에게 겨누는 사격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았다.
프랑스 장교는 갈등했다.
어차피 인질로 잡힌 모방 부인은 붙잡힌 이상 죽을 운명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지금 조선군 장교가 총을 쏴서 인질이 죽는다면 책임은 조선군에게 있었다.
자신은 분명히 만류했지만, 조선군 장군인지 장교인지가 자의로 총을 쐈다고 한다면 책임은 조금은 가벼워질 것이다.
총을 쏘지 않아도 인질은 도적에게 죽을 것이다. 그렇게 되어도 책임은 면할 수가 없었다.
인질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인질이 프랑스 조계에 있는 일반적인 상인의 부인이나 상인의 시녀거나 그런 정도의 인물이라면 갈등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프랑스 재계의 실력자인 모방의 부인이었다.
어떻게 되든지 구하지 못하면 자신은 책임을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책임을 덜 상황이 되어야 했다. 때마침 조선군 장군이 총을 들고 도적을 쏘겠다고 나섰다.
사격 자세를 취한 허종무가 도적을 겨누고는 프랑스 말로 말했다.
“쏘겠소.”
프랑스 장교는 이내 결심을 하고 눈을 질끔 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도회의 조장은 아무리 고함을 쳐도 프랑스 병사들이 물러나지 않자 이대로 탈출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인질을 죽이고 도망을 치는 수밖에는 없었다. 마침 도로 양편에 늘어선 상점 사이로 어두운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골목으로 뛰어 들어간다고 해도 산다는 보장은 없지만, 운에 맡기기로 하고 인질인 여자를 죽이려고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인질로 잡힌 모방 부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공포에 짓눌려서 안색이 창백해졌고 혼절 직전이었다.
도적이 칼을 높이 들었다가 여자의 목을 자르려고 목에 칼을 대는 찰나에 거리에 단발의 총성이 울렸다.
흑색 화약의 뿌연 연기와 함께 허종무의 총구에서 번쩍이는 섬광이 일고, 탄환이 바람을 가르며 허공으로 튀어 나갔다.
총성과 함께 인질인 여자가 먼저 허물어지듯이 앞으로 주저앉았다. 놀란 프랑스 장교와 병사들이 반사적으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동시에 인질을 잡고 목을 칼로 베려던 소도회의 조장이 뒤로 넘어가듯이 쓰러졌다.
달려간 프랑스 장교가 인질이었던 모방 부인을 살피고는 무엇이라고 소리쳤다. 병사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주변을 경계했다.
병사가 쓰러진 소도회 조장을 발로 툭툭 치고는 움직임이 없자 상태를 살폈다. 조장의 얼굴에 피가 흐르고 부서진 이마에 구멍이 나 있었다.
“도적이 죽었습니다.”
허종무의 지시에 현장을 살피고 온 군관이 달려와서 보고했다.
“인질은 어떠한가?”
“살아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러면 됐다. 가자. 조계를 모두 살피려면 부지런히 돌아봐야 할 것이다.”
현장을 떠나려는 허종무와 군관들을 본 프랑스 장교가 달려와서 이름과 소속을 물었다.
“나는 조선의 장군 허종무요.”
허종무가 프랑스 말로 신분을 밝히자 프랑스 장교 하나가 동양식 인사로 허리를 굽히며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