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상해 원정 (15)
조선군은 이레를 밤낮으로 꼬박 고생하고 프랑스 포병 장교의 지원까지 받아 가면서 상해 현성의 성벽 위에 포대를 설치했다.
그동안 다행히 소도회는 공격을 해 오지 않고 있었다. 야밤을 틈타서 현성을 염탐하려는 소도회의 정찰조가 여러 차례 현성의 성벽과 성문에 접근했지만 현성 안으로 침투하지 못했다. 현성의 모든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대형 대포를 올려놓았는데도 현성의 성벽은 견고했다. 본래 명나라 때부터 청에 이르도록 화포를 설치해서 왜구의 침공을 방비한 성벽이었다. 현성의 성벽 위는 그 폭이 우마차가 오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터라 프랑스제 대형 대포를 설치하는 것도 무리가 없었다.
최성환은 대포 다섯 문을 1개 포대로 구성하고 포대장으로 초관(哨官)을 임명했다.
100명의 병사로 편성된 초(哨)를 통솔하는 초관은 종9품의 무관으로, 현대 군대의 중위나 대위 정도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조선에서 최성환의 특별한 훈련을 받은 포병들은 모두가 프랑스의 신식 대포 사용에 익숙해져 있었다.
상해 현성의 성벽에는 50문의 대포가 설치되어 10개의 포대가 현성의 남쪽과 서편으로 포신을 드리웠다.
조선군이 성벽에 포대를 설치하는 동안에 상해 현성 안의 청국 상인들과 백성들은 숨을 죽이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성벽을 향해 포환과 화약을 실은 우마차들이 줄을 지어서 현성의 대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소도회의 현성 총공격이 임박했다는 소문에 현성 안의 청국인들은 자신들이 곧 죽을 것이라고 믿었다.
소도회는 본래 천지회 계열로, 반청복명, 즉 청나라 오랑캐를 멸망시키고 명나라를 부활시키자는 기치를 들었지만, 사실은 집단의 성격이 사실상 국가를 건설할 능력이 없는 유랑 빈민과 노동자와 하층 상인, 공인이 모여든 집단이었다.
이들을 지휘하는 지도부 역시 과거 급제에 실패했거나 소작농으로 몰락한 자들이 대부분으로, 청국 조정의 관리나 상인들과 지주에 대해서 적개심을 보이고 있었다.
소도회가 점령한 소주의 여러 현의 소식은 조선군이 상해에 오기 이전부터 상해 현성에 전해졌었다.
이들 소도회의 무리가 휩쓸고 가거나 점령된 상해 남쪽의 소주(蘇州) 지역의 지주와 관리들, 상인들이 모두 처형되거나 재산을 모두 빼앗긴 채 일가족까지 몰살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상해에 가까이 다다른 청나라의 관군이 소도회에게 패해 멀리 물러났다는 소식도 날아들었다.
현성 안의 청국인들은 이제 희망이 없었다. 이제 소도회가 현성에 들어온다면 상인들과 상층 지주들의 처우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자신들의 재산 보존은커녕 목숨조차 부지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잘 아는 청나라 상해 주민들은 절망과 공포에 휩싸였다.
무기 운반이 끝난 후에 약속과는 다르게 조선군에 의해 상해 현성으로 통하는 모든 길과 문이 봉쇄되었다. 이제 도망칠 길조차 없어졌다.
상해 프랑스 조계로 통하는 북문마저 끝내 닫히자 아연실색한 청국인들은 자신들이 살아날 길이 없음을 한탄하며 하늘을 원망했다.
이들에게 하늘은 청국 조정이고 나라였다. 하지만 하늘에서는 아무런 도움의 손길도 내려오지 않았다.
청국 상인들의 대표가 현성의 도대 오건창을 방문해 살길을 찾아 달라고 요구하며 현성을 나갈 방도를 알려 달라고 돈을 바치며 애걸했지만, 오건창은 돈만 챙기고 먼 하늘만 보며 딴청만 피웠다.
상해 현성에 주둔한 조선군 역시 분위기는 무거웠다. 조선군 보병 1천여 명은 처음에 소도회 1만 병력을 물리친 후에는 사기가 크게 올랐다.
하지만 소도회가 다시 10만이 넘는 병력으로 총공격을 해 온다는 소식이 병영에 돌았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병사들 사이에 전염병처럼 퍼졌다.
조선군 병사들도 흔들리고 있었다. 이대로 타국에서 개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동요가 일었다.
하지만 그래도 병사들은 곧 희망을 찾았다. 조선에서 새로 증원된 화포병 오백이 왔기 때문이다.
많은 대포가 성벽으로 오르는 것을 보면서 조선군은 잘하면 승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무참히 패하고 도륙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지휘관인 군관들이 표정이 어쩐 일인지 매우 밝아졌다.
조선 병사가 군관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조선에서 병조참판 나으리가 이곳에 왔다고 했다.
영문을 모르는 병사들은 대신 한 명이 왔다고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군관이 웃으면서 답했다.
“너희, 최성환이라는 함자는 들어 보았느냐?”
“그게 누구인데요?”
“바로 최성환이란 분이 간도에서 청의 팔기병을 전멸시킨 바로 그분이다.”
“그게 참말입니까, 군관 나으리?”
군관 주변에 모여 있던 병사들의 눈과 귀가 번쩍 뜨였다.
최성환이라는 인물은 새로 용호영에 편성된 병사들도 소문을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간도에서의 한 번의 승리로 최성환은 조선군 장수와 병사들에게 전쟁의 신으로 과장되어 포장되고 있었다.
병자호란 이후로 청군을, 그것도 청의 팔기군을 전멸시킨 유일한 장군 최성환. 병사들이 군관 주위로 점점 더 모여들었다.
“나으리, 정말 최성환이라는 그분이 여기에 와 계십니까?”
“그렇다. 그분이 우리를 구하기 위해 이곳 상해까지 직접 화포병을 이끌고 오셨다.”
“아, 맞다. 나도 본 것 같은데. 성벽 위에서 화포 배치를 점검하시던 그 도포 입은 분이 그분이었구나?”
“봤어? 정말 본 거야?”
“맞아. 어쩐지 그분을 보는 순간에 내 몸이 알아서 떨리더라니까.”
“맞다. 너희가 본 분이 바로 병조참판 최성환 영감이시다.”
와! 하는 놀라움과 함성이 병사들 사이에서 일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향 조선으로 죽어서도 시신조차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근심에만 차 있던 병사들의 암울하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웃음이 피어났다. 병사들의 사기가 순식간에 올라갔다.
“그러면 이거 이번에도 우리 조선군이 이기는 겁니까?”
“이를 말이냐? 최 참판 영감께서 직접 군을 지휘하시면 무조건 우리 조선군의 승리다.”
다시 함성이 크게 올랐다. 최성환이 상해 현성에 온 소식만으로 흔들리던 조선군의 군심은 안정이 되었다.
*
조선군 사령부가 설치된 상해 현성의 예원에서 병조참판 최성환은 사령관인 양헌수를 비롯한 장군들을 불러모아 임금의 명을 전했다.
“전하께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곳 상해 현성을 지켜야 한다는 어명을 내리셨소.”
최성환은 임금의 당부 사항도 장수들에게 일렀다. 장수들이 긴장을 하고 들었다.
“전하께서 이르시기를, 장수들은 군의 기강을 엄정히 하라 이르셨소. 절대로 조선 병사들이 청국 백성들을 해치거나 괴롭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하셨소. 만약에 이를 어기면 병사는 장으로 다스리고, 군관은 참형에 처하겠다고 하셨소.”
장수들이 물러가고 난 후에 최성환은 양헌수와 독대를 했다.
“참판 영감, 전하께서 왜 이토록 많은 병력을 우리 조선 영토인 간도도 아닌 청국의 상해에 보내셨는지 소장이 물어도 되겠습니까?”
“장군, 전하께서는 이곳 상해를 앞으로 우리 조선이 먹고살 무역항으로 만들고 싶어 하고 계시오.”
“무역항이오?”
“그렇소, 전하께서는 이곳 상해야말로 조선에서 나는 인삼을 비롯한 물산을 청나라 전체에 팔 수 있는 적격지로 보고 계시오.”
“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병사들을 더욱더 조심시켜야겠습니다.”
“그렇소. 여기 현성은 상해의 중심이오. 또한 상해는 청나라 무역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오. 먼저 이곳 상해 현성에 있는 청국 상인들과 백성들의 민심을 얻어야 합니다.”
“아니지요. 민심은 얻지 못할지라도 최소한 저들 청국 사람들로부터 조선군이 적대를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조선에서 건너올 우리 상인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할 수 있어요.”
조선에서 상해 현성으로 보낸 증원군은 포병이 오백이었고, 보병인 총병이 삼백이나 더 되었다.
포병이 오백이면 1개 대포에 10명이니, 모두 50문의 대포를 활용할 수 있는 병력이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이때 대형 대포인 12파운드 대포 하나에 병사 12명, 하사관 1명을 배치했다.
이제 거기에 총병 삼백이 추가되어 현성을 수비하는 조선군의 병력은 총병으로 구성된 보병이 1천3백에 대포가 50문이었다.
프랑스의 포병 장교는 보병에 비해 포병의 수가 상대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두고 기형적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프랑스 장교의 웃음에는 조선군이 프랑스의 대포를 제대로 다뤄 보지도 않고 포병을 제대로 운용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이런 프랑스 포병 장교의 시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장수가 최성환에게 이를 넌지시 알렸다.
그러자 최성환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허, 그 프랑스 장교는 우리 조선이 예부터 화포 다루기를 귀신처럼 한다는 것을 잘 모르는가 보오. 예부터 성을 지키는 것은 천하에 조선군만 한 군대가 없다는 걸 서양인이 잘 알 리가 없으니 탓할 일도 아니야. 허허!”
최성환의 웃음에 그제야 장수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
조선군이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 다시 사흘이 지난 날이었다.
10만에 이르는 병력으로 상해 현성을 포위하고 있는 소도회의 지도자인 유려천은 그동안 태평천국과의 연대를 통해서 상해를 공격할 태평천국 군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려천은 태평천국의 군대가 상해의 영국과 미국의 공동조계와 프랑스 조계를 포위하는 것을 신호로 소도회의 본대를 몰아서 상해 현성을 총공격으로 무너뜨린 후에, 여세를 몰아서 태평천국 군대와 함께 서양 군대를 조계에서 몰아내 상해를 서양 세력과 청국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킬 작정이었다.
유려천의 이 시도에 태평천국의 젊은 기재인 최고 군사전략가인 충왕 이수성이 호응했고, 유려천은 기대를 안고 태평천국 군대의 상해 파병 소식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수성이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유려천의 소도회 세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 태평천국 내부의 반대에 의해, 태평천국의 통치자인 천왕 홍수전은 상해로 군대를 보내는 것을 망설였다.
남경 함락을 오직 그의 전략에 의지할 정도로 태평천국 최고의 군사전략가이며 지략가인 이수성이 이에 홍수전에게 ‘이 기회를 잡아 상해를 해방시킨다면 태평천국에 의해 상해는 물론 기세를 몰아 소주와 광주까지 쉽게 손에 넣을 것이며, 북경을 제외한 중원의 대부분을 태평천국이 차지할 것’이라고 재차 홍수전에게 진언했다.
하지만 이수성의 이 의견은 태평천국의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동왕 양수청의 견제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천왕인 홍수전도 지금까지는 형식적으로 태평천국과 청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서양 국가와의 정면 대결을 바라지 않았다.
태평천국 안의 이런 상황 변화를 모르는 유려천이 태평천국의 군대가 남경을 출발했다는 소식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동안 조선군은 조선으로부터 식량을 비롯한 보급품을 조달하고, 프랑스의 무기상인 모방으로부터 넘겨받은 대포와 화기로 상해 현성의 성벽에 포대를 설치해 성을 요새화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시일이 흘러도 태평천국으로부터 소식이 없었다. 연락이 오가고 있었지만 차일피일 시간만 흐를 뿐, 군대를 움직이겠다는 확답은 들어오지 않았다.
유려천과 지도부는 초조했다. 이대로 시일만 끌다가는 자립할 본거지가 없는 소도회는 후방을 압박해 오고 있는 청군의 공세에 밀려 흩어지고야 말 것 같았다.
마침내 유려천은 태평천국과의 연대를 포기하고 독자적으로 상해 현성을 공격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상해 황포강의 물길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현성의 성벽을 지키던 조선군 장수가 보낸 군관들이 급하게 사령부의 병영으로 달려왔다.
“장군! 도적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드디어 왔구나!”
양헌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래, 저들 무리의 수는 얼마나 되느냐?”
“파악한 바로는 선봉이 삼만은 족히 넘어 보인다고 하오이다!”
“선봉이 삼만? 그렇게나 많아?”
“그렇습니다.”
“가자. 참판 영감은 어디에 계시느냐?”
“참판 영감은 벌써 성벽으로 오르셨습니다.”
“그렇구나. 제장들은 모두 서두르라!”
양헌수와 장군들이 일제히 병영을 떠나 현성의 성벽을 향해 말을 몰아 달려 나갔다.
현성 위에서 단발의 포성이 오르고 있었다. 소도회의 총공격을 상해 전체에 알리는 조선군의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