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대마도와 규슈에 조선군을 보내다
생각보다 대마도주 종의화의 투항이 일찍 왔다. 대마도주 종의화가 보낸 자들이 도성 한양에 도착했다.
신료들이 모인 상참에서, 종의화가 보낸 왜인들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대마도주의 땅을 조선의 국왕인 내게 바친다는 문서를 받들어 올렸다.
“종의화는 언제 한양으로 온다더냐?”
“주군께서는, 전하께서 신하로 받아 주신다는 어명을 내려 주시면 즉시 조선으로 출발한다고 했나이다.”
“뭐라? 주군? 이런 어리석은 자를 보았나? 주군이라니? 지금 전하의 안전이다. 이제 너의 주군은 조선의 국왕 전하라는 것을 모르느냐?”
좌의정 김도희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사색이 된 왜인들이 벌벌 떨었다.
“아, 됐소. 이자가 무얼 알겠소? 게다가 이제 조선과 대마도는 다 같은 식구가 아니요.”
“저, 전하, 식구라 하옵시면?”
“아, 그냥 이제부터 다 같이 조선에서 나는 곡식을 먹고 사는 같은 내 백성들이라 그거요.”
왜관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 온 왜인은 조선말을 아주 잘 아는 자로, 통역이 없이도 조선말을 알아들었다.
“오늘부터 너도 이제 조선 사람이고 내 백성이다. 너는 그리 알고 편히 하라.”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너는 이 길로 대마도로 돌아가서 종의화에게 즉시 도성으로 올라오라고 이르라. 더불어서 대마도와 바다 건너 구주(九州, 규슈) 땅에 내 백성들이 얼마나 살고 있는지를 기록한 문서들을 모두 가지고 내게 오라 이르라.”
“전하, 그리하겠나이다.”
임금인 내가 바다 건너 구주라는 땅을 언급하자 대신들이 놀라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구주라니. 대신들은 대마도주의 영토가 대마도에 국한된 것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선이 이랬다. 인접한 청국에 대해서는 매년 사신을 보내고 여러 번 오가며 그런대로 정세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바다 건너 이웃에 있는 일본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정보조차 모르고 있었다.
지금 대마도주의 영토는 대마도뿐만이 아니었다. 규모는 작지만 대마도 크기에 버금가는 영토가, 일본 열도의 4개의 큰 섬 중 가장 남쪽의 섬인 구주(규슈)에 대마도주의 소유로 있었다.
“전하, 대마도 너머의 일본의 땅에도 대마도주의 힘이 미치고 있었나이까?”
“나는 그리 알고 있는데 경들은 모르고 있었는가?”
“송구하옵나이다, 전하.”
대마도도 내게는 중요하지만, 더욱 욕심이 났던 것은 대마도주가 에도 막부로부터 받아 대대로 다스리고 있는, 규슈에 있는 대마 번의 영지였다.
그곳 규슈의 땅을 완벽히 장악한다면 앞으로 일본의 정치와 내정에 간섭할 기회를 쉽게 가질 수가 있었다.
또한, 일본 열도 아래에 길게 늘어선 남쪽 섬들인 가고시마와 오키나와를 수중에 넣을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수 있다.
다음 날의 상참에서 나는 신료들에게 일렀다.
“쇠는 뜨거울 때 두드리라는 말이 있듯이, 대마도주가 보낸 자가 돌아가는 길로 용호영의 병사 수백을 함께 보내 대마도를 즉시 장악하시오.”
“전하, 대마도주가 스스로 영지를 바친 것이온데 그리 서두르시는 것은 무슨 연유가 있사옵니까?”
“대마도가 조선 땅이 된 것은 일본의 에도 막부에도 전해질 것이오. 그렇게 되면 왜인들에게서 말이 나오기 마련인데, 병사를 미리 주둔시켜서 확고히 해 두는 것이 분쟁을 방지하는 길일 것이오. 또한, 대마도 안에도 조선 백성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자가 분명 있을 터. 그들의 준동을 막자면 병력이 필요할 거요.”
“전하, 앞으로 대마도를 어찌하시렵니까?”
“대마도는 예부터 산이 험해 곡식을 심을 수 있는 땅이 매우 적고 사람은 많으니, 지금처럼 그대로 두면 항상 백성들이 굶주림을 면할 수 없을 거요. 그래서 나는 대마도의 주민들을 조선 땅으로 옮길 거요.”
“전하, 대마도의 백성들이 기뻐할 것입니다.”
대마도 주민들은 옛날부터 대대로 섬에서만 살아왔다. 그것도 대마도는 열도의 섬들과 달리 고립되고 산지가 험한 아주 작은 섬이었다.
대마도의 주민들은 그래서 평생의 소원이 구주와 같은 넓은 섬으로 나가서 살아 보는 것이 일생의 꿈이었다.
이는 대마도보다 면적은 비할 데 없이 훨씬 컸지만, 그래도 항상 식량 사정이 빠듯한 조선의 제주도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섬을 떠나고 싶은 제주도 주민들이 몰래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는 일이 빈번해지자, 숙종 때에는 이를 금지하고 제주도를 나가는 자가 있으면 관장에게도 그 책임을 물을 정도였다.
바다 건너 규슈에도 대마도 번의 땅이 있었다. 하지만 대마도 주민들의 규슈에 대한 이동은 다른 번들과 마찬가지로 엄격히 금지되었다.
일본 열도의 모든 번은, 주민들이 사는 번과 마을에서 허락 없이 이탈하거나 이동하면 죽이는 극형에 처할 정도로 거주의 이동을 철저히 제한했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자들의 스승인 요시다 쇼인도 이런 번 이탈의 죄를 중죄의 하나로 물어서 참형에 처할 정도였다.
일본은 신분의 이동도 어렵지만 그만큼 거주의 이동도 어려운 사회였다.
조선이 비록 형식뿐이지만 평민도 과거를 볼 수 있고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고 다른 고을로 이사를 가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것과 달리, 일본은 모든 것이 통제가 되고 모든 것에 억압을 하는 폐쇄적인 사회였다.
*
조선 국왕의 앞에서 물러난 대마도의 왜인들을 비변사의 대신들이 따로 불러서 물었다.
“그대는 조선의 어디에서 살고 싶소?”
“조, 조선 말입니까? 제가 조선에서 살아도 됩니까?”
“어허, 이 사람. 이제 조선 백성이 되었으니 조선의 그 어디든 살고 싶은 곳에서 살면 되는 건데 무얼 그리 놀라나?”
“대인, 조선은 백성이 아무 데서나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가 있습니까?”
“아니, 그러면 왜는 그렇지 않은가?”
“저희 왜, 아니 저쪽 왜인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아예 없습니다. 어디를 가고 싶어도 번주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함부로 가지 못합니다.”
“어허, 이런. 사람이 두 발이 있는데 마음대로 가지를 못하다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천지간에 있다니?”
“사실입니다, 대인. 함부로 어디를 가면 참형을 당합니다.”
“어허, 어허!”
대신들이 모두 혀를 찼다.
“대인, 그러면 소인들이 정말 조선에 나와서 살아도 되는 겁니까?”
“그렇다마다. 물론 나라에서 주는 땅이 있으니 그 땅을 받아 농사를 지으려면 나라에서 정해 주는 곳에서 한동안 살아야겠지. 물론 그렇다고 자손 대대로 그곳에서만 계속 살라는 것은 아니고. 땅을 팔고 다른 곳으로 가서 살 수도 있고.”
“그, 그게 사실입니까?”
“어허, 이런, 이런! 내가 지금 농을 치는 것으로 보이는가?”
“소인들은 그저 믿기지가 않아서요.”
“잘 들어 두게. 조선은 조선 백성들의 나라일세. 당연히 조선 백성은 조선의 그 어디든 살고 싶은 땅에서 살 수 있네.”
왜인들이 벌떡 일어나서 대신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어허, 이 사람들 왜 이러나? 절은 우리가 아닌 전하께 올려야지.”
왜인들이 다시 대궐의 편전이 있는 방향으로 크게 절을 올렸다. 왜인들의 대표가 일어나서 진지하게 물었다.
“대인, 그러면 지금 대마도의 백성들도 모두 조선에서 살 수가 있는 것입니까?”
“이르다마다. 그럴 마음만 있으면 당연히 조선으로 와서 살 수 있네. 이제 대마도의 주민들 역시 우리 조선의 백성이고 우리 전하의 백성이 아닌가. 아니 그렇소, 대감들?”
대신들이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점잔을 빼며 말했다.
“대감은 당연한 말을 뭘 그리 반복해서 하시오?”
“대인들, 대마도 주민들이 이 사실을 알면 모두 기뻐할 것입니다.”
“어허, 그런가? 그동안 모두 섬 생활이 고단했나 보오?”
“저희 대마도 백성들은 그동안 죽지 못해 섬 안에 갇혀 살아왔습니다. 이제 조선 땅에서 살게 해 주신다니, 그 은공은 천년의 정성을 다해도 갚지 못할 것입니다.”
“거 솔직해서 좋구먼. 허허허!”
“가서 대마도 백성들에게 그리 이르게. 이제 모두가 조선 백성이니 조선에서 살아도 좋다고.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전하의 윤허도 떨어진 사항일세.”
감격한 왜인이 환하게 웃었다. 심지어 기쁨에 눈물을 글썽이는 자도 있었다. 왜인들이 두 팔을 높이 들어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어허, 만세라니. 우리 전하께서 오늘부터 황제가 되셨나 보이.”
왜인들이 천세가 아닌 만세를 높여 불러도 대신들은 제지하거나 싫은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저 웃을 뿐이었다.
도승지 박규수가 편전에 들었다.
“전하, 대마도의 백성들을 조선으로 이주시킨다고 하시면, 앞으로 그 섬은 어찌 쓰시렵니까?”
“어찌 쓰기는요? 대마도는 앞으로 요새가 될 겁니다. 군사기지 말입니다.”
“군사기지라 하옵시면?”
“대마도에 앞으로 수군기지, 아니 해군기지를 둘 것이오. 증기선 군함 말이오. 앞으로 나는 조선을 부국으로 만들고 그만큼 나라의 힘을 키울 거요. 당연히 그때는 군사력도 크게 늘려야 할 것인데, 대마도에는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그곳에서 일본의 열도를 보며 일본의 못된 침략 본성을 꾸짖을 것이오.”
말은 순하게 꾸짖는다고 했지만 나는 힘이 된다면 일본을 아예 박살을 낼 작정이었다.
*
대마도로 떠나는 용호영의 군관들과 병사들을 배웅하는 가족들이 한강 양화진에 모여들었다.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병사들은 차례로 줄을 지어 조선의 증기선에 올랐다.
이들은 앞으로 최소 일 년 동안은 조선의 영토가 된 대마도에 주둔하며 조선의 땅을 지킬 것이다. 그 뒤에는 계속해서 병사들이 순환 복무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조선의 증기선은 선원의 절반 이상이 조선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프랑스의 해군 장교와 간부 선원들로부터 증기선의 운용에 대해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아 온 조선인들이 지금은 증기선의 선원과 간부로 근무하고 있었다.
더구나 증기선은 이제 대포를 장착했고, 소총으로 무장한 조선군 병사들이 항상 승선하고 있었다.
대마도주의 서한을 가지고 온 왜인들도 도성 한양을 나와서 양화진에 도착했다. 한강변에 정박한 조선군의 증기선을 처음으로 본 이들은 크게 놀라 입이 쩍 벌렸다. 왜인들이 본 증기선은 두 척이었다.
“저, 저것이 말로만 듣던 조선의 흑선인가?”
증기선의 위용에 눌린 왜인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감탄사만 자아냈다.
“뭘 그렇게 놀라시오? 그대도 이제 조선 사람인데?”
대마도로 함께 가는 조선의 관리들이 웃으면서 왜인들의 뒤에서 왜인들의 승선을 챙겼다.
왜인들이 증기선에 오르고, 마지막으로 대마도주와 그의 가족들을 조선의 도성 한양에까지 데리고 올 예조판서 서상교가 배에 올랐다.
출항을 알리는 증기선들의 뱃고동이 울렸다. 병조판서 신관호와 병조참판 최성환을 비롯한 비변사의 대신들이 모두 나와서 증기선 갑판 위에 도열한 조선군 병사들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증기선 두 척이 양화진을 떠나서 한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증기선 두 척에는 조선군 병사 삼백 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모두가 총병으로서 최신형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마도로 가는 조선군의 선발대였다.
이들 조선군을 대마도에 내려놓고 나면 증기선은 돌아와서 같은 총병 부대 삼백여 명을 싣고, 이제는 조선의 영토가 된, 규슈의 이전 대마도주의 영지였던 곳으로 병사들을 실어 갈 것이다.
배들이 시야에서 점점이 멀어진 후에 환송을 나온 병사들의 가족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양화진에 남아서 이를 지켜보던 병조판서 신관호가 최성환에게 물었다.
“이 사람, 어시재.”
“네, 대감.”
“전하께 이번에 대마도로 곡식을 충분히 가져가지 말아 달라고 주청한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제가 전하께 청을 올렸습니다.”
“왜인가? 지금 대마도는 하루 앞일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백성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다는데?”
“그래서입니다. 저들에게 넉넉한 식량을 제공하면 저들은 차일피일 미루고 조선으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어허. 그런 깊은 생각이 있었는가?”
“저 왜인들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소생은 저 왜인들이 하루아침에 조선의 백성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들을 조선 땅에 들여놓는다고 해도 모두 뿔뿔이 조선 팔도에 흩어 놓아야 한다고 전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던가?”
“하지만 전하께서는 소생보다 더 먼저 그 판단을 하고 계셨습니다. 도승지 영감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셨다니. 우리 전하께서는 모르시는 것이 없는 분이네.”
“소생 역시 매번 전하의 깊은 혜안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입니다.”
“어디 자네만 그런가. 조정 신료들 모두가 그럴 걸세. 나 역시 그렇고.”
한강의 푸른 물결 위 하늘에 새들이 날고 있었다. 새들이 영국 공사 일행이 오고 있는 영국의 군선 위를 높이 날아서 도성 한양으로 힘차게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