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망나니 철종-156화 (156/295)

#156화 10만 대군이 온다면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사 온 최신형 군함을 보고 나서 자신감을 얻은 지 불과 몇 주도 지나지 않아 불길한 소식이 내게 들어왔다.

“전하, 청국이 군사를 일으켰다고 하옵나이다.”

“청국이 군사를 일으키다니, 그 무슨 말이오?”

소식을 가져온 도승지 박규수의 얼굴이 사색이 다 되어 있었다. 박규수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 상식으로는 청나라가 지금 대군을 동원해 조선을 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소규모의 군사적인 충돌은 예상을 하고 있었다.

봉황성은 이백여 년이 넘도록 청나라의 수중에 있던 땅이다. 당연히 영토를 빼앗긴 청나라가 자신의 땅을 찾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제한적인 전쟁일 것이다.

소식대로 지금 청나라가 대군을 보내 조선을 치겠다고 하는 것은 내 예상에서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내가 아는 역사에서 청나라는 지금 사람으로 치면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아니, 그것도 거의 정상인이 아닌 중환자의 경우나 마찬가지였다.

안으로는 국토의 많은 부분을 한족의 반란으로 태평천국과 염군과 소도회 세력에게 내주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귀주와 운남, 사천에서도 1855년인 올해부터 소수 민족의 봉기가 시작되었다. 귀주에서는 묘족의 걸출한 지도자인 장수미가 청조에 대항해서 민중 봉기를 일으켰다.

또한 지난해에는 광동(광주)에서 천지회마저 반란을 일으키면서 청나라는 내부에서 대혼란으로 빠져든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밖으로는 영국을 비롯한 서양의 나라들로부터 침략과 위협을 받고 있었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00년 만의 대홍수가 황하 유역을 휩쓸었다. 대규모의 농경지가 사라지면서 유민이 대거 발생했다.

경작지를 잃어버린 농민들이 고향을 떠나서 유민이 되었다가 살기 위해 염군의 난에 가담하면서 하북 지대는 반란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10만 대군을 청국 조정이 동원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마치 10만 대군이 조선을 치러 오는 것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신료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10만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식이 백성들에게 전파된다면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역사에서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10만 대군은커녕 그 절반인 5만 명만 동원해도 청국은 나라가 당장에 망할 판국이었다. 필시 헛소문이 정보로 둔갑한 것일 것이다.

나는 그래서 정보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 그 온다는 군사가 몇이나 된다고 하오?”

“전하, 그, 그것이 무려…….”

얼굴이 창백한 박규수는 말을 맺지 못했다.

상참이 열렸다. 상참에 참석한 대신 모두가 청군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혼란에 빠져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전란이 일어나서 조선이 멸망하기라도 할 것 같은 절망적인 분위기가 상참을 지배했다.

“경들이 말해 보시오. 청나라 황제가 조선을 치기 위해 보낸다는 병사의 수가 얼마나 된다는 것이오?”

모두가 벌벌 떨고만 있었다.

“허어, 대체 병력이 얼마나 되기에 그리들 겁에 질린 것인가?”

“전하, 아직 확인된 바는 아니나 정보에 의하면 동원되는 청군의 수가 무려 10만에 이른다고 하옵니다!”

“시, 십만 대군?”

덜컥하고 심장이 떨어지며 겁이 났어야 했다. 대신들이 보기에 임금의 반응이 그랬어야 했다.

이 모든 위기가 임금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임금의 뜻대로 간도에 군사를 보내지 않았다면, 임금의 의지대로 간도만 점령하지 않았더라면 청국 황제가 노해 군사를 보내는 이런 파멸을 부르는 지금의 위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원망의 눈빛들이 여기저기서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태연자약했다.

임금인 내가 놀라는 반응은커녕 평소처럼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자 대신들이 당황했다.

“저, 전하, 청군이 무려 십만 대군이라고 하옵나이다. 부디 통촉해 주소서!”

“통촉해 주소서!”

“전하, 백성들을 보존해 주소서!”

“보존해 주소서!”

신료 중 일부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떨었다.

“십만? 십만이라? 모두 팔기군인가?”

“그렇다고 하옵니다, 전하. 최정예 팔기군 십만이 조선을 치러 온다고 하옵니다.”

이제라도 겁을 먹든지 아니면 최소한 당황한 기색이라도 보여 달라는 듯 애절한 눈빛으로 신료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임금인 내가 어떻게든 청국 황제에게 죄를 청하고 사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대신들이 눈빛으로 갈구하고 있었다.

신료 중 몇은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서 인조가 청의 홍타시에게 했던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 도적들 막느라고 정신이 없나? 게다가 팔기군도 그만큼 없을 텐데?”

나는 팔걸이에 턱을 괴고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피곤했다. 어젯밤에 한숨도 자지 못한 탓이었다. 나는 밤새 중전을 안고 있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요즈음 간간이 문후를 드는 대비전에서 후사에 대한 걱정이 늘고 있었다.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하자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탓에, 나는 내 이상형인 아름다운 아내 중전을 두고도 가까이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새벽의 어스름이 물러갈 때 나는 여전히 수줍어하는 중전의 손을 잡고 속닥이고 속삭였다. 내 생에 가장 뜨거운 밤이었다.

상선 김호중은 침실을 지키는 늙은 상궁들로부터 밤사이의 일을 들었는지 얼굴이 밝았다.

“양전께서 밤사이에 그리 다정할 수가 없었다고 하옵나이다.”

이렇게 중전과의 오랜만의 합방 소식이 대비전에도 들어갔다. 아침 문후 때 대비의 얼굴에 미소가 한가득했다.

내가 졸음을 참아 가며 연신 피곤한 기색을 내보이자 도승지 박규수가 상참을 일찍 마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나는 편전으로 돌아와서 간신히 윤대를 마쳤다.

다음 날에 나는 피곤을 핑계로 상참을 열지 않았다. 오전을 중전의 손을 잡고 창덕궁 대궐의 후원을 다정히 거닐며 보냈다.

중전은 해맑은 얼굴로 나를 보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가 햇살에 눈부셨다.

나는 중전과 점심을 나눈 후에 승지에게 준비한 것을 일렀다.

창덕궁 영화당(暎花堂)의 앞마당인 춘당대(春塘臺)에 나아가 나는 군복인 융복을 입고 앉았다.

춘당대는 무과 시험을 치르는 장소로, 역대의 임금들, 특히 정조가 이곳에서 활쏘기를 즐겼다.

내가 춘당대에 나온 것은 오늘 특별히 금군인 용호영에서 최근 프랑스에서 구해 온 여러 신식 소총들에 대해 시범 사격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대궐 안에서 총소리가 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일 것이었다.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도승지 박규수와 병조판서 신관호, 병조참판 최성환에게, 앞으로 청나라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조선의 옛 땅을 찾고 백성을 지키려면 무엇보다도 뛰어난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먼저 비용을 얼마든지 들이더라도 최신 소총을 확보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지난해 프랑스로 건너간 사신단에 서양의 최신 소총을 수집하라는 영이 내려졌다.

조선의 국왕인 내 명을 받아 프랑스로 간 사신단은 그곳에서 확보한 여러 소총을 가지고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구매한 군선에 올라타 서둘러서 귀국했다.

현재 청나라 상해 현성에 주둔하고 있는 조선 병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서양 총은, 프랑스제 전장식 소총으로 모델 1842T 강선식 머스킷 라이플이었다.

이 총은 기존의 강선이 없는 활강 머스킷 총열에 강선을 파서 만든 개량형의 머스킷 라이플로, 현재 프랑스군이 제식 소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에 프랑스의 무기 제작자이자 무기 상인 모방에게서 넘겨받은 새로운 소총을 간도의 봉황성에 주둔하고 있는 조선군이 무장하고 있었다.

간도의 군사들이 청국의 봉천 팔기를 몰살할 때 쓴 소총의 모델은, 미니에탄을 쓰는 라이플로 모델 1853T였다.

프랑스 최강의 군대, 아프리카 알제리 출신들로 구성된 주아브 연대와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제국 근위대가 이 소총으로 무장하고 지금 크림반도에서 러시아 군대와 싸우고 있었다.

내가 준비된 간이 용상에 착석하자 먼저 와서 대기하고 있던 대신들과 장수들이 내게 예를 올렸다.

주상 전하 만세!

만세!

만세!

천세가 아닌 만세였다.

간도에서 청군을 물리친 이후부터 신료들은 내게 자연스럽게 천세가 아닌 만세를 올리고 있었다.

이제는 청나라에 해마다 공물을 바치는 속국이 아닌 독립국이라는 생각에 대신들, 특히 장수들의 만세 소리가 더 힘차게 들렸다.

“전하, 방포 시범 준비가 되었습니다.”

“준비되었으면 실시하시오.”

소총을 들고 나온 군관 둘이 사수대에 서서 표적을 향해 소총 사격을 실시했다. 강력한 총소리와 함께 화약 연기가 피어올랐다.

군관들이 쏘고 있는 소총은 뇌관식 미니에 라이플이었는데, 사격에 능숙한 최정예 군관들도 1분에 3발밖에 쏘지 못하고 있었다.

총을 수직으로 세운 뒤 총구에 화약과 탄을 집어넣고 꽂을대로 밀어 넣어 장전하는 전장식 소총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제아무리 훈련이 잘된 병사라도 분당 2발 이상을 쏘는 것은 무리였다.

탄환들이 모두 표적에 명중했다.

대신들과 장수들이 감탄사를 자아내며 박수를 쳤다. 나 역시 박수를 치고 사격을 마친 군관들을 격려했다.

이어서 군관 한 명이 다시 소총을 들고 사수대에 가서 섰다.

“모두 잘들 보라. 저 총은 이번에 내가 특별히 서양에서 가져오라고 한 것이오.”

내 말에 대신들과 장수들이 긴장하며 사수대에 선 군관을 바라보았다. 조선군이 서양에서 사용하는 최신식 소총으로 무장했기에 간도에서 청군과 벌인 전투에서 일방적으로 승리를 거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는 대신들과 장수들이었다. 모두의 신형 소총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군관이 서서쏴 자세로 첫 사격을 했다. 그러고는 총을 장전해야 하는데, 다시 그대로 선 채로 순식간에 재사격을 했다.

“대감, 초, 총구에 탄환을 넣지 않았소이다.”

“그렇소이다. 그런데 사격을 다시 하고 있어요.”

“아니요, 잘 보니 군관이 오른손으로 탄환을 방아쇠 부근에 넣고 있어요.”

“총탄을 총구에 넣지 않고 방아쇠 부근에 넣는다고요? 그럴 리가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소이다. 탄환도 그렇지만 화약을 넣지 않고 있어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외다. 저런 총은 지금껏 본 적이 없소이다.”

순식간에 군관이 열 발을 쏘았다. 걸린 시간은 일이 분 남짓이었다.

불과 일 분에 대여섯 발 이상. 머스킷이나 전장식 라이플이 분당 2발 정도 쏘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빠른 연사 속도였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대신들과 장수들의 시선을 받으며 총을 든 군관이 갑자기 사수대의 바닥에 엎드렸다.

“저 무슨 해괴한 자세인가?”

“허어, 무, 무슨…….”

대신들이 군관의 낯선 행동을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군관이 취한 자세의 목적을 알고 있는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군관이 엎드려쏴 자세에서 기름종이로 된 일체식 탄피로 장전을 하고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가 터지고 이어서 계속 총소리가 울렸다. 군관이 엎드린 자세를 유지하며 순식간에 소총에 재장전을 하고 앞의 표적에 총을 쏘아 계속 명중시키고 있었다. 모두의 탄성이 터졌다.

“저, 저것이 가능하오이까?”

“그러게 말이오이다. 총을 장전하려면 서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니오이까?”

“내 생전에 총을 누워서 쏘는 것은 오늘 처음 보았소이다.”

“저리 엎드려서 총을 장전하고 쏜다면 앞에서 총과 화살에 맞을 일이 없는 것이 아니오이까?”

“과연, 그, 그렇소이다!”

한눈에 후장식 소총의 장점을 알아본 이들은 장수들이었다.

“두 발을 쏠 시간에 무려 대여섯 발을 명중시켰소이다!”

“세상에 저런 기막힌 총이 있다니……?”

“허어! 저 총은 신총이에요. 하늘이 내린 총입니다!”

내가 힘주어 말했다.

“내가 저 총으로 경들과 백성을 지킬 것이니 경들은 그리 알라!”

감탄과 두려움이 섞인 놀란 표정으로 대신들과 장수들이 나를 보며 탄복을 했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대신들과 장수들이 앞을 다투어 내 앞에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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