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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나니 철종-172화 (172/295)

#172화 요동 전쟁 (14)

봉황산 들판을 내달리는 팔기군 기병의 머리 위로 포탄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굉음과 함께 포탄들이 폭발했다. 비명이 잇달았다. 내달리던 기병의 말들이 쓰러지고, 포탄의 파편에 맞은 군사들의 머리와 몸통이 찢겨 나갔다.

말에서 떨어진 한 병사가 한쪽 팔이 잘린 그대로 걸어가며 비명을 지르고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피범벅이 된 얼굴로 숨을 몰아쉬던 다른 병사는 눈을 뜬 채로 절명했다.

포탄이 사방에서 터져 나가고 있었다. 포탄이 폭발할 때마다 팔기군 병사들이 말과 함께 죽어 나갔다.

조선군 포병의 대규모 포격으로 팔기군의 돌격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열이 무너진 기병 대부분이 더 이상 돌격은커녕 제대로 말을 타고 있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팔기군 니루(1니루=300명)의 지휘 장수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여기에 조선군의 사격이 가해졌다.

포격 소리에 놀란 혁흔과 장수들이 멀리서 전장을 살폈지만, 들판을 가득 채운 뿌연 먼지에 시야가 가려 선봉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대포 소리 아니냐? 누가 대포를 쏘라고 했나? 대체 누가!”

“전하, 이것은 대청의 대포가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대포를 쏘았다는 말이야?”

“전하! 조선군이 대포를 쏘고 있습니다!”

“조선군이 대포를? 조선군이 홍이포를 쏜다는 말이냐?”

“전하,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오나, 대포 때문에 기병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 대청의 최정예 기병이 그깟 대포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게 어디 말이 되느냐!”

장수 하나가 급하게 군막으로 달려와서 보고했다.

“전하, 조선군이 쏘는 대포 때문에 기병들이 조선군 진영을 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뚫기는커녕 조선군의 총탄 세례에 조선군 진영에 제대로 접근도 하지 못하고 모두가 죽어 나가고 있었다.

간간이 날랜 기병들이 총탄을 해치고 말을 몰아 마지막 방책의 수십 보 앞에까지 갔지만, 활과 창을 쓰기도 전에 조선군 저격수의 총탄에 맞아 말에서 떨어지며 죽었다.

“대체 전장이 지금 어떻게 되고 있나?”

장군들의 심각한 얼굴을 보며 혁흔은 의아해했다. 지금쯤은 조선군의 마지막 방책을 무너뜨리고 조선군 본대의 전열을 무너뜨려야 했다.

그런데 측근 장수들은 사색이 된 얼굴이었고, 일부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표정에 두려움과 절망이 드리워져 있었다.

먼지와 화염, 대포 소리로 선두의 상황이 오리무중이었다.

혁흔은 전장의 상황을 자세히 알기 위해 군관을 보냈지만,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포화 속으로 들어간 군관은 유탄을 맞고 죽었다.

“전하, 아무래도 선봉에 선 팔기들이 조선군의 강한 저항을 받는 것 같습니다.”

선두에서 조선군 진지로 돌진하고 있는 팔기군의 병력은 3개의 팔기로 구성된, 무려 1만여 명이나 되는 대병이었다.

병력의 삼 분의 일을 투입해서 조선군의 전열을 무너뜨린 후에 이어서 전력을 모두 쏟아부어 조선군을 완전히 괴멸하겠다는 것이 혁흔의 계산이었다.

그런데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팔기의 돌격에 대항하는 조선군의 반격이 무척이나 거센 모양이었다.

지금 투입된 팔기는 낭자산의 조선군 수비대를 돌파했던 양람기를 비롯한 정홍기와 양백기의 3개의 팔기군이었다. 이 기병들이 조선군의 일제사격을 받아 전열과 대열이 무너졌다.

좌군인 양람기가 조선의 우군을 부수고, 정홍기가 조선의 중군을 정면에서 공격했다. 처음 전장에 나온 양백기는 조선의 좌군을 돌파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세 개의 팔기 기병들이 맥을 추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다는 보고가 혁흔에게 들어왔다.

혁흔이 전장의 상황을 보고받는 와중에도 조선군의 맹렬한 일제사격에 돌격하는 청군의 기병들은 공격은커녕 화살 한 번 제대로 쏘아 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청나라 팔기군의 기병은 활을 쏠 수 있는 사정거리에 도달하지 못하고 조선군의 프랑스제 신형 소총의 유효사거리인 6백 미터 안에서 거의 모두 총탄에 맞았다.

미니에탄을 쓰는 프랑스제 라이플 모델 1853T의 성능은 전장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는 장군들이 보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언제적 팔기군이냐! 쏘면 맞는구나. 으하하하!”

사격을 마친 조선군 군관 하나가 크게 웃었다. 군사들이 긴장을 유지한 채 화약 연기 속에서도 총구에 미니에탄을 밀어 넣고 꽂을대로 빠르게 재장전을 하고 있었다. 방책 앞에서 대포 소리가 터지고 총소리가 요란하게 다시 울렸다.

조선군 소총의 총구에서 화염이 일고, 총탄이 다시 청군 기병들의 갑주를 뚫어 살과 뼈를 휘젓고 부수었다.

조선군 1만여 명이 돌아가면서 가하는 윤방 사격이 뿜어내는 화약 연기가 들판을 자욱하게 채웠다.

때마침 봉황산 방향으로부터 산바람이 들판으로 불어오기 시작했다. 노란 흑색 화약 연기가 팔기군 기병들이 달려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불리하다는 전황을 직접 살펴보려고 혁흔은 군막을 나섰다. 멀리 전장에서 총소리와 함성이 들리고, 대포가 터지는 소리는 계속 천둥 벼락 치듯이 들려왔다.

연이은 대포와 소총 소리에 놀란 혁흔과 수행하고 있는 장수들의 얼굴이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되었다.

바람에 밀려온 매캐한 화약 연기가 혁흔의 눈을 찔렀다. 혁흔은 쓰린 눈가를 훔치며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직감했다.

“양람기와 정홍기, 양백기를 뒤로 물리고, 정람기와 양홍기를 선봉으로 내보내라. 중앙에는 정백기가 가세해 조선군을 몰아쳐라.”

“저, 정백기를 말입니까?”

“그렇다. 상황이 좋지 않다면 이제 최정예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니냐?”

만주 팔기는 황제의 직속 군단으로서 팔기군 중 최강으로 평가받는 세 개의 팔기가 있는데, 바로 정황기(正黃旗)와 양황기(鑲黃旗), 정백기(正白旗)였다.

황제는 직속 친위 군단인 이 세 개의 팔기군 중에서만 뛰어난 자를 선발해서 황실의 경호와 자금성의 수비를 맡겼다. 나머지 다섯 개의 팔기군 군단은 혁흔과 같은 군왕이 각자 통솔하는 군단이었다.

혁흔은 이 세 개의 황제 직속 팔기군 중에서 가장 전력이 강한 황제 친위대 중 하나인 정백기를 투입해 불리한 전황을 반전시켜 조선군 진영을 돌파하기로 했다.

“전하, 정백기는 지금 전하의 신변을 지켜야 할 군단입니다.”

“내게는 아직 정황기와 양황기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혁흔의 결단에 주춤하던 청군의 공격이 다시 힘을 얻었다. 하지만 이미 앞서서 돌격하던 세 개의 팔기군 대부분이 조선군의 윤방 사격을 이기지 못하고 전력의 대부분이 손실된 상태였다.

혁흔과 청군의 수뇌부는 전장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두의 격심한 피해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청군이 다시 너른 들판으로 용맹하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오랑캐들이 다시 온다!”

“전열! 모두 사격 준비!”

조선군 5열 전열이 긴장한 채로 소총을 겨누고 있을 때, 다시 청군 기병들이 돌격을 개시해 왔다.

“사격!”

장수와 군관들의 영에 조선군의 총구에서 화염이 일고 총탄들이 번개처럼 튀어 나갔다. 한 번의 사격으로 청군 기병 수십, 수백이 달려오다가 말과 함께 고꾸라졌다.

“사격! 사격!”

2열에서 5열까지 계속 번갈아 가면서 사격이 이어졌다. 화염과 화약 연기 속에서 청군은 이전과 똑같이 조선군의 일백 보 앞까지도 접근하지 못하고 말과 함께 죽었다.

운 좋게 살아서 십여 미터 앞까지 달려온 청군의 장수 하나가 활시위를 메기고 화살을 쏘려는 순간에 조선군 저격수의 총탄 세례를 받았다. 장수는 온몸이 벌집이 되어 말 위에서 흔들거리다가 고개를 떨구고 말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저것은 전투가 아닌 학살이오이다.”

최성환과 정수동이 전장을 내려다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소이다. 이것은 분명 학살이오이다. 우리가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말이오.”

“청의 정예병인 북경 팔기가 저리도 무력할 줄은 상상도 못 했소이다.”

“아니오, 팔기군은 용감하오이다. 무력한 것은 저들의 고루한 생각일 뿐이외다. 서양 소총으로 무장한 우리 조선 군사들에게 그저 총검만 가지고 대들고 있으니 저리될 수밖에요. 저들은 오늘 이백 년 전의 전쟁을 하고 있소이다. 게다가 최소한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화승총마저도 없소이다.”

“기병을 믿고 사용하지 않은 거지요?”

“그렇지요. 아마 우리가 화승총만 가지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기병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생각해 이리 무모한 공격을 한 것 같소이다. 어리석은 자들.”

“정보가 없으니 당연한 것이지요. 아니, 어쩌면 저들은 알았어도 이리 나왔을 겁니다.”

“청군도 서양 대포를 가져온 것으로 아는데요? 여덟 문이던가 그렇지요?”

“그것도 이상하오이다. 왜 서양 대포를 쓰지 않았는지 말이오.”

“뭐, 사용했다고 해도 초전에 우리 대포에게 박살이 났겠지요.”

최성환이 이제야 긴장을 조금 풀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각오한 것보다 아군의 피해가 적기 때문이었다.

“장전!”

“발포!”

구릉에 배치된 대포들이 계속 청군 진영으로 포탄을 발사하고 있었다. 천둥 벼락이 치듯 굉음과 폭음이 들판을 쉴 사이 없이 때리고 뒤흔들었다.

“저 지옥에서 살아날 자는 없겠소이다.”

“그렇지요. 게다가 청의 군왕인 혁흔이란 자는 군사들을 후퇴시킬 마음도 없나 보오이다.”

“혹시 저것 때문이 아닙니까?”

정수동이 가리키는 들판에서 자욱한 연기가 청군 진영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청군 기병들은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봉황산에서 한바탕 소슬바람이 불어 기병의 앞을 가리니, 하늘이 조선을 돕고 있음이에요.”

“사람이 노력하니 하늘도 돕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요? 허허!”

“대감, 그런데 우리 군사의 피해는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사망자가 일곱에 부상자가 열여덟이오이다.”

“허어!”

탄복인지 탄식인지 모를 감탄사가 정수동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니 안타까운 거지요.”

최성환이 혀를 찼다.

“무엇이 말입니까?”

“낭자산을 지키던 우리 군사들 말이오이다.”

“아!”

낭자산의 길목을 막겠다고 청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헛되이 죽은 3백여 명의 조선군 군사들을 생각하면서 최성환은 탄식했다.

“오면서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래, 그 군령을 어긴 장수는 어찌 되었습니까?”

“살아서 돌아왔기에 군령에 따라서 베었소이다.”

최성환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장군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대감, 청군들이 달아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최성환과 정수동의 눈에 바람에 연무가 걷힌 전장의 들판이 훤히 들어왔다. 다시 돌격을 해 오던 청군의 팔기병들이 돌격을 포기하고 뒤로 달아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청군이 도망치는 지역에서 조선군 포병들이 발포한 포환들이 쉼 없이 터지고 있었다.

포탄이 터질 때마다 기병들이 쓰러지고 비명이 난무했다.

“이제 전장을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소이다.”

최성환이 장수와 종사관을 불러서 영을 내렸다.

“언덕에 있는 우군에게 신호를 보내고 전령을 보내라.”

최성환의 영에 의해 깃발이 올랐다.

청군의 혁흔은 다시 팔기군을 투입하고도 조선군의 마지막 방책에도 접근하지 못하자 충격에 빠져 있었다.

어느 정도 조선군의 저항을 각오하고 팔기 병력을 일시에 투입했지만, 조선군을 격파하기는커녕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사상자만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 가고 있었다.

일제사격을 가하는 조선군의 총탄에 청군 기병들이 속수무책으로 마치 봄날에 눈이 녹듯이 스러져 가고 있었다.

하늘을 가르고 포탄들이 터지며 조선군 진영으로 돌진하던 청군 팔기 정백기의 마지막 대오와 전열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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