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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나니 철종-218화 (217/295)

#218화 러시아 정벌 (6)

수천여 명의 러시아군 코사크 병사들이 착검을 하고 작은 부대별로 무리를 지어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러시아 병사들에게 조선군의 일제사격이 가해졌다. 흑색 화약이 만들어 낸 노란 연기가 언덕에 자욱했다. 총소리 사이로 대포 소리가 다발로 터졌다.

6파운드 야포가 쉬지 않고 화염을 뿜고 있었다.

급박한 보고들이 참모를 통해 조선군 총사령관인 최성환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사령관 각하, 큰일입니다!”

“큰일이라니?”

“5연대의 방어선이 위급합니다.”

“뭐야? 5연대?”

벽산 진지 좌익의 끄트머리를 방어하고 있는 5연대로부터 다급한 지원요청이 사령부로 계속 도달하고 있었다.

“5연대의 방어선이 흔들리다니, 이 무슨 소리인가?”

“각하, 5연대 방향으로 적어도 3개 이상의 러시아군 연대가 돌격해 오고 있습니다.”

“3개 연대 이상?”

“더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러시아군 사령관 브론스키는 비교적 언덕이 낮고 완만한 벽산 조선군 진지의 우익과 좌익에 병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우익에서는 아이훈 연대와 야쿠트 연대가 조선군 19연대를 공격했다. 조선군 5연대가 방어선을 친 좌익은 코사크의 알바진의 수비 연대 3개가 맹렬하게 진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조선군 병사들이 가하는 일제사격의 총성과 총검 돌격으로 언덕을 오르는 러시아 코사크 병사들의 함성이 전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최성환은 5연대가 방어하는 좌익의 진형이 다른 진지보다 언덕이 낮고 평탄해서 방어하는 것이 수월하지 않다고 판단해 포병의 지원으로 이를 보완했었다.

5연대는 6파운드 경포 5문의 지원을 받으면서 코사크 알바진 연대들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방어선이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처음에 알바진의 3개 연대 중에서 선봉에 선 연대는 전형적인 횡렬로 조선군의 진지로 다가와 조선군의 일제사격을 받고 큰 타격을 입었다.

선봉에 선 대대가 조선군 5연대의 집중사격과 6인치 야포의 화력에 밀려서 뒤로 물러났다.

러시아군의 사령관인 브론스키는 초장에 벌어진 전장의 상황을 보고는 크게 낙담했다.

러시아군의 전체 병력은 조선군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파악한 조선군의 병력은 1만 5천여 명이 채 되지 못했다.

사실은 2만여 명의 병력이었지만, 조선군의 전투력을 청나라 군대와 비슷하게 평가한 브론스키의 참모들은 그래도 러시아군 3만여 명이면 조선군을 벽산에서 쉽게 전멸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브론스키 역시 마찬가지였다.

러시아의 장군들은 러시아군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면 조선군도 청나라군처럼 달아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예상은 전황의 초기부터 빗나갔다.

흑룡강과 몽고에 있던 청나라 팔기군들은 러시아군의 공격이 시작되면 지휘관부터 먼저 전장을 버리고 달아났다. 부대가 크거나 작거나 병력이 많거나 적거나를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벽산의 조선군 진지에서는 그 어떤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브론스키를 포함해서 러시아군 고급 지휘관들의 망원경에 잡힌 조선군은 장교들은 물론이고 병사들까지 모두 동요 없이 진지를 지켰다.

그래도 공격이 시작되면 조선군이 청나라군처럼 흔들릴 것이라고 확신했던 러시아군의 지휘부였다.

브론스키는 전열 보병 형태의 전형적인 전술을 신봉하는 러시아군의 귀족 장군들처럼, 3열의 횡렬로 연대와 중대별로 벽산의 조선군을 압박하며 공격했다.

그렇게 시작된 러시아군의 초반 공격에서 선봉에 선 중대와 대대들이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후퇴했다.

두 시간여에 걸친 러시아군의 공격은 러시아군이 많은 사상자만 내고 끝났다.

다시 시작된 러시아군의 공격에서도 조선군은 브론스키와 러시아군 장군들이 경악할 정도의 강력한 포격과 일제사격으로 러시아군의 선봉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한두 번의 공격 시도에서 러시아군의 선봉이 붕괴되었다. 브론스키는 선봉 부대들이 조선군의 화력에 쓰러지는 것을 보며 크게 상심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바로 조선군 진지의 우익을 공격하던 아이훈 연대가 총검 돌격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아이훈 연대의 분전을 보고받은 브론스키는 전황을 승세로 바꿀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재빠르게 지금까지의 전술을 바꾸었다.

“동양의 야만인들에게 신사적인 전열 보병을 기대한 것이 문제였어.”

“각하, 그러시면……?”

“야만인들에게는 야만인만의 전술이 먹히는 법이지.”

“각하, 코사크 돌격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그래. 저기를 봐, 지금 제대로 하는 여단은 아이훈 연대밖에는 없잖아.”

전장에서 공격 전술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사령관의 변심에 참모들은 아연실색했지만, 그대로 수용했다. 러시아군의 지휘 체계는 언제나 수동적이었다.

브론스키의 말대로 아이훈 연대가 조선군 진지의 우익을 방어하는 조선군 19연대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19연대는 아이훈 연대의 돌격에 와해 직전으로 몰리고 있었다. 후미에 있던 야쿠트 연대가 아이훈 연대의 공격에 합세하면서 조선군 우익의 일부가 무너졌다.

“모든 연대 총검 돌격!”

브론스키의 결정에 참모들이 크게 우려했지만, 브론스키는 전술을 완전히 바꾸었다.

모든 연대에 총검 돌격이 하달되었다. 그런데 조선군 우익을 완전히 무너뜨릴 것 같았던 아이훈 연대가 돌연 궤멸했다.

조선군 19연대의 반격과 19연대를 지원하러 온 조선군 예비 연대의 집중사격에 아이훈 연대가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뒤이어 언덕으로 쇄도하던 야쿠트 연대마저 큰 타격을 입고 후퇴하고 있었다.

조선군 벽산 진지의 중앙을 공격 중인 다른 연대들 역시 조선군의 예상치 못한 조준 사격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군은 소대와 중대별로 몰려오는 러시아군을 하나씩 표적으로 삼아서 장교들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일제사격을 퍼부었다.

“코사크 돌격도 통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각하, 아직은 초반입니다. 더 두고 보심이…….”

“대체 저 조선군은 뭐란 말이냐? 청나라 군대와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각하, 청나라군이 조선군에게 만주에서 패했다고 합니다.”

“그건 나도 알아.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말이야. 우리는 대러시아 제국의 군대야. 동방의 끄트머리에 있는 조선의 작은 군대 따위에 이렇게 힘들게 싸우다니, 이게 말이나 되냐 말이야!”

브론스키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었다.

“각하, 이제 전술을 바꾸었으니 조선군은 곧 무너질 겁니다.”

“그렇습니다, 각하. 조선군은 이제 얼마 버티지 못합니다. 아직 우리 러시아군의 병력이 더 많습니다.”

전장 전체를 울리던 포성이 갑자기 줄어들고 있었다. 장교가 급히 달려와서 보고했다.

“각하, 조선군 포대에 이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전장을 벼락 치듯 때리던 포성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러시아 아이훈 연대의 코사크 병사들의 광기 어린 총검 돌격에 조선군 19연대가 밀리자 19연대의 뒤편에 있던 포병대가 위험을 감지하고는 잠시 포격을 멈추었다.

19연대가 와해되면 포병대는 그대로 러시아군 보병의 직접적인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는 없었다.

호위 중대가 배치되어 있지만 잘못되면 대포는 물론이고 포병들도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포병대 지휘관은 이를 두고 염려한 나머지 포격을 잠시 멈추고 포병대의 철수까지 생각했다.

잠시 수그러들었던 조선군의 대포들이 다시 화염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19연대의 방어선을 돌파하던 러시아 코사크 아이훈 연대가 새로 도착한 조선군 예비 연대의 집중사격을 받고 몰살했다.

아이훈 연대는 종으로 길게 나 있는 언덕의 작은 길로 들어왔다가 측면에 있던 조선군의 일제사격에 휘말렸다. 이어서 언덕을 넘어 들어오던 코사크 야쿠트 연대의 선봉들도 역시 조선군의 사격에 사상자가 속출했다. 조선군은 즉시 언덕의 진지를 탈환하고 백사장으로 달아나는 야쿠트 연대의 병사들을 향해 조준 사격을 퍼부었다.

러시아군 지휘부인 브론스키와 참모들은 아이훈 연대가 조선군의 우익 진지를 넘어가는 것을 보고 조선군 진영이 곧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언덕이 낮은 조선군 진지의 좌익에도 총공세를 퍼부었다.

조선군 5연대가 방어하고 있는 조선군 좌익에 러시아 코사크 연대 3개의 병력이 총검 돌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코사크 병사들이 중대별, 소대별로 사격을 가하고는 조선군의 목책을 넘고 있었다.

윤방으로 5연속 일제사격을 가하던 조선군의 선봉 5연대 1대대가 코사크 2개 연대의 집중적인 총검 돌격으로 무너져 내렸다.

조선군 병사들이 총검에 찔려 쓰러지며 비명을 지르고 죽었다.

코사크 병사들은 횡렬이나 종렬로 대오를 갖추어 오는 것이 아니라 중구난방으로 중대별로, 소대별로, 그보다 작은 분대별로 무리를 이루어 마구잡이로 개미 떼처럼 달려들었다.

5연대의 첫 번째 방어선이 마치 19연대의 우익이 뚫리듯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악화되고 있는 5연대 상황이 계속 전해졌다.

“사령관님, 5연대가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나?”

“아무래도 한 시진 이상은 어려울 것 같다고 합니다. 선봉인 1대대는 전멸 상태입니다.”

“19연대를 구원하러 간 예비 연대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을 더 벌어야 해.”

“이대로 두면 좌익의 전열이 모두 무너집니다, 사령관님!”

5연대에 이어 이웃한 3연대의 방어선마저 러시아군 2개 연대의 공격을 받고 조금씩 밀리며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사령관님, 5연대장이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렵다고 연락병을 보냈습니다.”

“각하, 이대로 가면 한 시진 안에 5연대와 함께 3연대마저 전체가 무너질 겁니다.”

“예비대를 투입하라.”

“장군, 예비대는 우익에 모두 투입되었습니다. 5연대를 지원할 연대 병력이 없습니다.”

“하나도 없나?”

“여기 사령부 호위 중대 병력들만 남아 있습니다.”

“호위 병력만 남았다?”

“그렇습니다, 각하.”

“기병을 투입하라.”

두 번의 공격에서 전열을 갖추어 오던 러시아군 연대들이 세 번째 공격부터는 전술을 바꾸어 이제는 모두가 총검 돌격을 감행해 오고 있었다.

최성환은 이제는 기병을 내보낼 시기라고 판단했다.

최성환은 포병 3개 중대로 5연대와 3연대의 좌익에 달려들고 있는 러시아 연대들을 향해 집중 포격을 지시했다.

굉음과 함께 포탄들이 날아가 조선군 5연대가 방어하는 언덕으로 몰려온 코사크 병사들을 타격했다. 맹렬한 포격에 러시아 병사들의 돌격이 주춤거렸다.

하지만 코사크 병사들은 계속 달려들었다.

러시아 코사크 연대들의 용맹한 돌격에 조선군 5연대의 진영 전체가 마침내 밀리기 시작했다.

조선군의 저지선이 조금씩 뚫리고 있었다.

브론스키의 최후의 전술은 이제 하나였다. 조선군의 좌익을 무너뜨리고 조선군의 측면을 통해 벽산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저곳이 조선군 전열의 약한 고리다. 총공격!”

조선군 기병 연대의 연대장인 김훈식은 눈앞의 장교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적장을 사살하겠다고? 상관 앞에서 객기를 부려?”

눈앞에 이마의 피도 마르지 않은 듯 어려 보이는 장교가 적진으로 가서 적장을 죽이겠다고 나서고 있었다.

“연대장님, 제가 가서 적장을 해치우겠습니다.”

“네가 무슨 천하무적 척준경도 아니고. 무슨 수로 적진을 뚫고 적장을 친다는 말이냐?”

“할 수 있습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내가 거절한다면?”

“허락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내가 너의 이런 무모한 시도를 허락해 줘야 하지?”

“우리 조선군 병사들의 희생을 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적장을 사살하는 것이 지금 가능하다고 생각해?”

만용에 가까운 시도를 해 보겠다는 장교가 어떤 특별한 인물인지 알고 있는 연대장이었다. 주변의 장교들이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젊은 장교를 지켜보고 있었다.

“해 보겠습니다.”

“자신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하지만 여기서 러시아의 사령관이 있는 곳까지는 거리가 족히 오 리(2km)는 넘을 것이다. 아마 적장에게 접근하기 전에 죽을 거다. 그래도 하겠어?”

“해 보겠습니다.”

“미친놈. 네 쇠고집을 누가 말려. 좋아. 하지만 네 기병 중대 모두를 데려갈 수는 없어, 내가 보기에는 가망이 없으니. 내 부하를 무의미하게 희생시킬 수 없어. 기병 10기만 데려가. 만약을 위해서 말이야. 어때, 그래도 하겠어?”

전황이 흔들리는 전장에서 지금 적장인 러시아군 총사령관 브론스키 장군을 사살하겠다고 나선 조선군 기병 장교의 이름은 김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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