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청나라를 해체하라 (2)
만주에서 청나라에 마지막으로 남은 금주성 공략을 앞에 두고 조선군은 보급로를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펴고 있었다.
조선군은 봄부터 겨울에 이르도록 금주성 앞에 위치한 의무려산의 주요 출입지를 봉쇄하고 비적들이 인근의 고을과 도시를 오가는 통로를 차단했다.
조선군 총사령관 최성환은 눈발이 하나둘씩 흩날리는데도 경호 장교들을 대동하고 조선군의 최전선이나 다름없는 의무려산 일대를 시찰하고 있었다.
임금은 말했다. 만주의 의무려산은 본래 단군이 옛 조선을 건국한 곳으로 조선 민족에게는 신성한 산이라고.
최성환은 멀리 도성 한양에서 이곳을 보고 있을 임금을 생각했다. 옛 조선과 옛 고구려를 생각하는 최성환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임금은 의무려산의 비적들을 모두 소탕해 만주에서 조선 민족의 정기를 다시 세우려 한다고 최성환에게 분명히 말했다.
“의무려산, 우리 민족의 영산…….”
최성환은 눈앞에 의미하게 보이는 의무려산을 보면서 임금의 뜻을 생각했다.
“전하께서 어디까지 가시려는가…….”
임금은 조선 민족의 땅을 모두 찾겠다고 했다. 그것만이 앞으로 다가올 조선 민족의 수난과 환난을 피할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어시재, 우리 민족의 땅, 북경과 산동반도는 분명 우리 조선 민족의 영토였소. 나는 말이오. 거기에다가 지금의 청나라 영토를 옛 중국의 5호 16국 시대로 돌려놓고 싶소.”
임금은 독대 자리에서 지금의 청나라를 10여 개 이상의 나라로 쪼개 놓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전하, 그리하시려는 이유가 있으시온지요?”
“어시재, 저 중국이라는 곳은 말이오. 힘이 하나로 뭉치면 우리 조선 민족에 득이 될 것이 없어요. 옛적에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말이에요. 그래서 중국의 모든 소수민족이 모두 들고 일어나서 자신들의 나라를 세웠으면 합니다. 나는 힘이 된다면 그걸 지원할 거요.”
도성 한양을 떠나오기 전에 임금이 밝힌 의지가 뇌리에 울렸다.
“중국을 쪼갤 겁니다. 조선을 위해서, 여러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중국은 반드시 쪼개져야 합니다.”
최성환은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매서운 날씨 탓인가……?”
최성환은 혼잣말을 하면서 의무려산의 입구를 감시하고 있는 초소 안으로 들어섰다.
최성환은 방한복에 방한모까지 쓴 조선군 병사를 격려했다.
“춥지 않나?”
“견딜 만합니다.”
“그래, 고맙구나.”
최성환은 의무려산 입구에 배치된 조선군 3개 연대에 명령을 내렸다.
산에 진입하는 적극적인 소탕 작전을 펼치지 말고 산에서 내려오는 비적들만 소탕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동안 의무려산을 본거지로 삼아서 인근의 고을을 약탈했던 비적들은 청나라의 국운이 급속하게 기울기 시작하면서 더욱더 기세를 올리며 인근의 도시들까지 약탈했다.
만주 일대 비적의 수는 수만여 명을 상회했다. 비록 염군과 태평천국처럼 수십여만 명씩 큰 세력을 만들어 청나라 황실과 조정을 위태롭게 만들거나 나라를 세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만주의 비적들은 만주에 주둔하고 있는 청나라 팔기군의 군세를 위협할 정도로 금세 수를 불려 나갔다.
이제 만주의 청나라 팔기군은 조선군과의 간도 전투에 동원되어 모두 괴멸된 상태로, 비적들은 만주에서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조선군의 본격적인 비적 소탕령에 된서리를 맞았다.
비적들은 이제 모두 금주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잔당 수천여 명이 의무려산에 숨어 있었다.
“장군, 산으로 올라간 비적들이 산을 내려오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사람이 먹지 않고 살 수 있다더냐?”
이미 조선군은 지난 가을까지 포로로 잡은 비적의 두목에게서 알아낸 정보로 의무려산 비적들의 산채를 모두 찾아내서 태웠다.
비적들은 조선군이 산채에 이르자 모두 달아나기에 바빴다. 만주에서 청나라군과 러시아군을 전멸한 조선군에 대해 비적들이 가진 감정은 오직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
조선군이 산에서 내려가자 비적들이 다시 산채로 돌아갔다. 하지만 산채들이 불타고 남은 잔해에서는 곡식 한 톨 남아 있지 않았다.
의무려산 인근의 고을도 청나라 백성들이 모두 떠나고, 남은 집들은 모두 조선군이 불태웠다.
비적들은 돌산으로 경작이 불가능한 의무려산을 비롯한 인근 어디에서도 식량을 구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
조선군은 의무려산 입구에 병영을 지어 놓고 혹시 모를 비적의 공격에 대비해 목책도 둘러 놓았다.
겨울이 깊어 가면서 식량이 바닥난 비적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산을 나왔다.
비적들 여럿이 산을 나가자마자 요소마다에 세워진 조선군 초소의 조선군 병사들에게서 총격을 받고 죽었다.
의무려산 일대에 큰 눈이 내렸다. 몰아치는 눈보라와 함께 겨울이 깊어 가고 있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눈폭풍이 만주와 의무려산 일대를 휩쓸고 있었다. 혹독한 추위가 만주 일대를 뒤덮었다.
추위와 굶주림을 참지 못한 비적 여럿이 조선군의 감시초소를 피해서 다시 산을 타고 내려가다가 조선군 수색대에게 발견되어 사살되었다.
창검 이외에 조선군을 상대할 총도 탄약도 없는 비적들은 속수무책으로 조선군의 사냥감이 되었다.
조선군이 두려워 산에서 내려오지 못한 비적들은 결국 산에서 얼고 굶어서 죽었다. 비적들의 얼어붙은 시신들 위로 밤낮으로 눈이 계속 내렸다.
*
청나라 북경의 자금성 하늘을 검은 구름이 가득 덮고 있었다.
자금성 안에서 청나라 조정을 이끌어 가는 어전대신 숙순과 이친왕 재원, 정친왕 단화가 함께 만났다.
“조선군이 러시아 대군을 격파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소.”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앞으로 어찌할 것이오?”
“이이제이를 하려다가 오히려 우리가 조선 왕에게 죽게 생겼소.”
“조선에 그런 힘이 있을 리가요?”
“러시아군 3만 명을 전멸한 조선군입니다. 이제 우리 팔기군 가지고는 조선의 군대를 어찌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앞으로 어찌합니까?”
“힘을 길러야지요.”
“지금 당장 죽겠는데 언제요? 나라가 멸망한 다음에요?”
“그러니 지금은 만주를 생각할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염군과 태평천국의 역도들을 토벌하기에도 힘이 벅찹니다.”
“만주는 우리 만주족의 본향이에요. 절대로 조선의 영토로 내줄 수는 없다는 황상 폐하의 말씀도 계셨소이다.”
“무슨 힘으로 만주를 다시 찾는다는 말입니까? 지금 이곳 북경의 팔기군은 수십만 명의 염군을 막느라 전력을 다하고 있어요.”
“만주와 몽고에 팔기군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언제적 말씀을 하는 겁니까. 만주 팔기는 이미 지난 간도에서 조선군에게 전멸했고, 몽고 팔기는 다 도망쳐서 이제 만주에서 팔기군은 붕괴된 상황이에요.”
“분하지만 만주는 이제 조선 땅입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그 무슨 대역무도한 헛소리요!”
정친왕 단화가 탁자를 내리치며 흥분했다.
“내 말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힘을 기르자는 이야기예요.”
어전 대신 숙순이 탄식했다.
“어전 대신 말씀대로 현실을 바로 봅시다. 지금은 우리가 만주 문제를 논할 때가 아닙니다.”
“만주 문제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니요? 지금 만주 전체가 조선 왕의 수중에 넘어갔어요. 이리되면 앞으로 조선이 만주를 완전히 조선 땅으로 만들 겁니다. 뭔가 수를 내야 해요!”
정친왕은 계속 언성을 높였다.
“만주가 중요한 곳인 걸 누가 모른답니까! 만주는 우리 만주족의 발상지입니다. 지금 황제께서도 그래서 우려를 표하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지금은 중원이 더 위태롭습니다. 중원 말이에요! 말씀해 보세요. 그러면 여기 중원을 저 반역의 무리들에게 다 내주고 만주로 가서 살자는 말입니까!”
힘이 들어간 숙순의 말에 정친왕이 그제야 화를 누그러뜨리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다 지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엇입니까?”
“지금 러시아에 밀사로 보낸 이밀의 생사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밀은 러시아군이 조선군이 있는 곳까지 가도록 길잡이를 한 자가 아닙니까?”
“그러면 이밀이 조선군에게 잡히기라도 한다면 큰일이 아닙니까?”
“이밀이 의무려산의 비적들에게 잡혀 있으니 아직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이밀의 신변이 조선에 넘어가 우리 청나라가 뒷거래로 러시아를 도운 사실이 드러난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조선 왕이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어요.”
“언제부터 우리 대청이 속국인 조선의 눈치를 봤습니까?”
“조선은 이제 우리를 빠져나간 호랑이입니다. 날뛰는 호랑이에게 물려서 좋을 게 없어요.”
“호랑이에게 물려요? 그러면 사망 아닙니까?”
“그러니 조심해야 합니다.”
“혹시 조선 왕이 우리가 러시아군에게 길잡이를 해 준 것을 알아내 북경으로 쳐들어오는 것 아닙니까?”
“설마 그럴 리가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어요. 우선은 재물로 조선 왕을 달래야 합니다.”
“조선 왕이 순순히 응하겠습니까?”
“그러니 재물을 듬뿍 안겨 줘야지요. 재물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어쩌다가 우리 대청이 속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지경이 되었는지…….”
숙순이 크게 탄식했다. 모두의 표정이 크게 어두워졌다.
*
태평양과 인도양을 건너 조선으로부터 머나먼 이국땅인 영국의 수도 런던.
영국의 35대 수상인 파머스톤 자작 헨리 존 템플은 수상 관저에서 조선과 러시아가 맺은 조약을 뒤늦게 파악하고 충격을 받았다.
“만주의 흑룡강 일대를 러시아가 포기하고, 거기에 러시아가 니콜라옙스크 항구와 사할린섬까지 조선에 넘겼다고? 이, 이게 다 사실인가?”
“모두 사실입니다, 수상 각하.”
“어떻게 이런 일이? 동방의 조선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강한 나라였다는 말인가? 조선이 만주를 통째로 집어삼켰다니, 도무지 알고도 믿을 수가 없네.”
“이렇게 되면 러시아는 동양에서 끝장난 것이 아닙니까?”
배석한 내각의 장관들 역시 동양으로부터 날아든 격변에 크게 놀라고 있었다.
“조약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다음 날에 영국 수상 파머스톤 자작 헨리 존 템플은 외교부 장관과 독대하고 있었다. 파머스톤은 놀란 표정으로 펼쳐 든 신문 한 부를 들고 있었다.
“장관, 이 내용이 사실이요?”
파머스톤은 런던의 신문에 실린 내용을 믿을 수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신문에는 러시아군 3만여 명이 조선군 2만여 명에게 만주의 흑산 일대인 벽산에서 전멸을 한 기사가 조선 주재 영국 무관의 증언으로 실려 있었다.
“수상 각하, 외교 경로로 파악한 결과 모두가 사실입니다.”
“프랑스 놈들이 또 허풍을 떤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말이군?”
“상해 주재 공사가 직접 미국과 프랑스 외교관들과 접촉해서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또한 우리 정보원이 러시아 쪽에도 선을 대서 확인했습니다.”
“동양의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다는 말인가?”
“각하, 조선이라는 나라는 본래 듣기로는 역사에서 몽고제국에게도 정복당하지 않은 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요? 장관은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아시오?”
“수상 각하께 보고를 드리기 위해서 청나라에 주재한 외교관들에게 조선에 관한 최근의 정보를 수집하도록 요청해서 이번에 자료와 정보를 받았습니다. 자세한 것은 분석 후에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파머스톤은 일주일 뒤에 다시 외교부 장관을 불러서 조선에 대한 대응책을 두고 상의한 끝에 조선과 교섭을 가질 것을 결정했다.
“이건 동양에서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큰 변수요. 물론 우리 영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말이오. 조선은 우리 영국의 이익에 해가 되지 않을 거요.”
“각하, 하지만 조선이 청나라의 만주를 삼켰습니다.”
“이미 먹은 걸 어찌하겠소. 그보다는 러시아가 동양으로 내려오지 않는 것이 우리 영국에 더 중요하오.”
영국 수상 파머스톤이 여러 경로로 정보를 받아 분석한 후에 조선에 대해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조선은 영국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선은 유럽에 위치한 열강이 아니었다.
“조선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우리 영국에게는 좋은 기회요. 동방에서 조선이 러시아를 견제해 주면 우리 영국은 마음 놓고 청나라를 털어먹을 수 있으니까.”
“각하, 그 표현은……?”
“왜요? 너무 사실적입니까? 하하!”
“하하! 솔직히 그것만큼 유쾌한 말이 어디 있습니까? 하하!”
“조선이 러시아만 잘 막아 준다면 우리는 걱정 없이 청나라를 모두 털어먹을 수 있을 거요.”
“하하하!”
제국주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영국의 수상과 장관이 서로 재미있다는 듯이 쾌활하게 웃었다. 옆에 있던 비서관들도 입을 가리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