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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나니 철종-232화 (231/295)

#232화 일본을 멸망시켜야 하는 이유

“전하! 발해(사할린)섬으로 아이누족의 족장이 와서 구원 요청을 했사옵나이다.”

“구원 요청이라니? 그 무슨 말이오?”

“전하, 발해섬에 보급품을 싣고 간 군선 편으로 장계가 올라왔나이다.”

나는 발해섬 주둔군 대장인 이학중이 올린 보고서의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이게 사실이오? 지금 저 동해도(북해도, 홋카이도)에서 일본인들이 아이누족을 학살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오.”

“전하, 진실 여부는 모르오나 장계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를 알고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옵나이다. 전하, 속히 군사를 보내어 동해도의 아이누족을 구원하소서!”

내가 동해도를 조선의 영토로 삼고 싶어 한다는 뜻을 이전부터 알고 있던 총리대신 박규수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총리대신 박규수의 반응에 다른 대신들은 의아하다는 입장이었다.

“전하, 장계의 내용을 보자면 아이누족을 일본인들이 살해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누족 추장의 주장일 뿐이며, 이것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 아닙니다.”

“전하, 더구나 그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해도 우리 조선이 아이누 민족을 위해 군사를 파병해야 하는 것은 아니 됨을 유념해 주시옵소서.”

“전하, 그렇사옵니다. 만약에 우리 조선이 군사를 보내서 아이누족을 돕는다면 그것은 곧 일본과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우리 조선에 무슨 이득이 있겠나이까?”

“전하, 이것으로 병사를 보낸다면 전하의 충성스러운 군사들만 희생될 뿐 전하의 조선에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파병이 되옵나이다. 부디 통촉해 주소서!”

이에 총리대신 박규수가 나섰다.

“전하, 이 장계를 보면 아이누족의 추장이란 자가 엎드려 통곡하며 말하기를, 이제 오직 아이누족이 의지할 곳은 조선뿐이라고 하며 저들이 모두 조선 백성이 되기를 간청했다 하나이다. 또한 발해섬의 대장인 이학중이 따로 올린 장계를 보면 우리 조선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일본인의 아이누족 학살을 중지시킬 수가 없다고 했나이다.”

총리대신 박규수가 대신들을 보며 말했다.

“경들도 발해섬에서 이학중이 보낸 보고서에 실린 아이누족의 참혹한 상황을 알 것이오. 지금 일본의 막부가 보낸 사무라이와 군사들이 동해도의 남쪽으로부터 북상해서 동해도의 여러 고을을 다니며 아이누족을 해치는데, 이미 죽은 자의 수가 수천에 이르렀다고 하오이다. 일본인들이 아이누족의 노인과 어린아이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고, 몸이 성한 남자는 잡아서 저들의 노예로 삼고, 부녀자는 저 일본인 병사들의 위안부로 삼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하오. 어찌 이런 악행과 만행을 알고도 우리가 가만히 두고 방관만 하라는 것이오!”

이에 대신들이 반대했다.

“전하, 총리의 말처럼 이상은 그러하나, 지금 조선이 동해도에 군사를 보내서 조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이누족을 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일본과 전쟁을 벌이는 것 또한 대의명분에 맞지 않은 일이옵니다.”

총리대신 박규수가 목청을 높였다.

“모두 잊으셨소? 우리 성상 전하께서는 사해 평화를 위해 아이누족을 구원하려는 것이오. 이것만큼 더 큰 명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또한 아이누족의 추장이 스스로 조선 백성이 되겠다고 하며 일본인들의 학살로부터 살아남기를 바라는데, 어찌 이를 두고 천지간에 같은 사람으로서 서로 도와야 하는 인간의 도리를 외면하라는 것이오?”

총리대신 박규수와 대신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임금인 나는 어전회의에서 아이누족을 구원하는 문제를 즉시 결정하지 않았다. 나는 때마침 한양으로 돌아온 정보국장 정수동을 대궐로 불러들여 의견을 물었다.

정수동은 선대왕 때 야인으로서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고, 부산의 왜관에도 드나들며 왜인들과 교류가 있을 정도로 일본의 사정에 밝았다.

“전하, 무엇을 망설이시옵니까? 일본인들이 아이누족을 학살하는 것은 저들 일본인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전하, 전하는 조선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시면 됩니다.”

역시 대의명분보다는 현실을 중시하고 직시하는 정수동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군대를 보내 일본과 전쟁을 하라는 말이오?”

“전하, 일본이 지금 저 미국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어 열도의 내부 사정이 무척이나 어지럽습니다. 지금 일본의 내부는 에도 막부와 막부에 예속된 지방 영주 모두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는 혼란한 상황입니다. 전하께서 군사를 보내 아이누족을 돕는다면 저들도 감히 어찌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지금 동해도는 일본의 어느 영주 가문이 지배하고 있소?”

“전하, 소신이 파악한 바로는 현재 동해도의 남부는 예전에는 송전(松前, 마쓰마에) 가문의 영주들이 점령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에도 막부에서 직접 직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의 통치자인 장군(쇼군)이 누구요?”

“전하, 수년 전 쇼군 덕천가경(徳川家慶, 도쿠가와 이에요시)가 죽은 후에 그 아들인 덕천가정(徳川家定, 도쿠가와 이에사다)이 쇼군 자리에 있습니다.”

“지금 일본의 쇼군은 어떤 자요?”

“전하, 소신이 파악한 바로는 지금 일본의 쇼군인 덕천가정은 서른 초반의 나이로 몸이 몹시 병약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일본 막부의 일은 다른 자가 보겠군?”

“그렇사옵니다, 전하. 지금 일본의 막부는 쇼군의 가신인 노중(老中, 로주)인 아부(阿部真宏, 아베 마사히로)라는 자가 정국을 장악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노중이 뭐요?”

“전하, 노중은 조선의 대신과 같은 직책이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막부의 쇼군이 지금 정사를 챙기지 못하고 대신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그거요?”

“그렇사옵니다, 전하.”

임진년의 왜란 후에 도쿠가와 이에아스가 도요토미 가문과의 내전에서 승리한 뒤 쇼군이 되어, 열도의 에도(도쿄)에 도쿠가와 가문의 막부를 세워 영토를 영주(大名, 다이묘)들에게 주고 일본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지금 일본의 13대 쇼군에 오른 도쿠가와 이에사다는 각기병으로 고생하다가 죽을 운명이었다.

이에사다는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였다고 전해지는데, 쇼군 즉위 초부터 병이 깊어져 폐인으로 살다가 1858년에 죽는다.

“이학중이 보낸 장계에서 아이누족의 촌장이 주장하기를, 일본인이 열등한 인간들을 많이 죽이는 것이 목적이라고 자랑하면서 동해도에서 사람을 무차별로 죽인다고 했소. 이게 사실이오?”

“전하, 예부터 본래 일본인들의 성정이 포악하고 잔인해 금수보다도 못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전하, 저 임진년에 왜인들이 우리 조선에서 행한 광기에 찬 살육을 기억해 주소서.”

“어찌하면 좋겠소? 지금은 만주를 안정시킬 때요. 이제 아이누족을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보내 동해도 원정에 나선다면 막대한 군사비가 지출될 거요. 그렇다고 적은 병력을 보내면 오히려 우리 조선 병사들이 상할 것이니 그게 염려스럽소.”

“전하, 신에게 계책이 있나이다.”

“무엇이오?”

“전하, 지금의 동해도는 본래 아이누족이 살던 터전이니 동해도에 전하의 군사를 보내는 것은 무리가 없습니다.”

“그렇소, 지금 그곳은 사실상 주인 없는 땅이니. 그래, 계책이 뭐요?”

“전하, 동해도에 한 개 소대나 중대 정도의 적은 병력을 보내시옵소서.”

“그러다가 일본으로부터 대대적인 공격이라도 받으면 어찌할 것이오? 아직은 저들이 신식 총이 없다고는 하나, 화승총이 있고 창칼을 잘 쓰는 사무라이가 수백, 수천씩 한 번에 공격을 해 오면 한 개 소대의 적은 병력으로는 막아 내기가 어려울 거요.”

“전하, 저들에게 지금 그만한 병력이 있는지 알 수 없고, 만약에 있다고 해도 저들이 공격을 하면 우리 조선군은 도망치면 되옵니다.”

“도망치다니?”

“전하, 소신의 계책이 바로 그것이옵니다.”

“자세히 말해 보시오.”

“일본군이 우리 조선군을 공격했다는 사실 하나로 우리 조선은 일본에게 이를 추궁할 이유를 얻습니다.”

“그래서요?”

“전하, 우리 조선에는 지금 군함이 일곱 척이나 있습니다.”

그동안 프랑스로부터 들여온 최신식 증기선 군함은 두 척이 더 추가되어 모두 7척으로 늘어나 있었다.

“아하!”

나는 금세 정수동의 계책을 알아차렸다.

떠오르는 역사의 사실 하나.

바로 강화도조약의 빌미가 된, 1875년에 일어난 운양호(운요호)사건이었다.

역사에서 일본의 군함 운양호는 조선 정부의 허락 없이 부산항에 입항한 후에 동해와 남해와 서해를 무단으로 침범하다가 강화도의 난지도에 정박했다.

운양호는 이에 항의하는 조선군에게 무단으로 발포하고 조선군 수비병을 공격해서 큰 피해를 입히고는 영종도에 상륙하여 조선 백성들을 도륙했다.

일본은 이 사건을 빌미로 삼아 오히려 조선에 책임을 물으며 조선을 위협해, 이듬해인 1876년에 조선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강화도조약을 체결했다.

정수동의 계책에 나는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역사를 역으로 재현하다니, 통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전하, 아둔한 소신이 감히 하나 여쭙겠나이다.”

“말씀하시오.”

“전하, 만주는 우리 조선 민족의 옛 땅이라서 전하께서 다시 찾았습니다. 하지만 열도의 일본인들이 노리는 저 바다 건너 멀리에 있는 동해도는 우리 조선 민족의 옛 땅이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무슨 이유로 일본이 노리는 저 아이누족의 땅을 가지려고 하십니까? 혹여 옛 임진년과 병자년에 우리 조선이 당한 치욕과 원한을 수백 년이 더 지난 지금에 이르러 갚으시려는 것이옵니까?”

“그렇소. 나는 지금 복수를 하는 거요. 저 무도한 청나라 오랑캐와 열도의 왜구들을 모두 잡아 죽일 거요.”

“저, 전하……?”

옛날의 일로 원한을 풀겠다는 내 말에 정수동이 크게 놀라며 두려워했다. 정수동은 원한에 사무쳐 복수심이 지나치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하, 지, 진심이시옵니까?”

나는 웃었다.

“하원, 옛 원한을 두고 복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나도 알고 있소.”

정수동이 그제야 한시름을 놓았다.

“전하, 그러하심은……?”

“하원, 앞으로 다시 병자년과 임진년에 우리가 당했던 저 치욕과 고난의 역사를 다시 반복해서 당하지 말자는 거요. 그래서 저 무도하고 포학한 청나라 오랑캐와 저 열도의 잔악한 왜구의 나라인 일본을 멸하려는 것이오. 나는 말이오. 우리 민족, 우리 조선 민족의 힘으로 동양에 복수의 창검이 아닌 정의의 깃발을 세우려는 거요.”

정수동이 큰절을 하고 물러갔다.

나는 어전회의에서 동해도에 대한 내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이제 북방이 어느 정도 평정되었으니 바다로 나가 남쪽을 평안케 하겠소. 우리 조선이 남쪽에서 먼저 갈 곳은 바로 지금 아이누족이 사는 동해도요.”

“전하,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마땅하고 옳은 일이옵니다!

임금인 내가 의견을 확고하게 밝히자 아이누족 문제에 개입을 반대하던 대신들도 내 뜻을 따르기로 힘을 모았다.

“지금 바다 건너 열도에서는 왜인의 막부가 옛 임진년에 우리 조선에서 했듯이 북쪽의 동해도 소수민족인 아이누족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소. 왜인들은 자신들과 모습과 풍습과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민족을 살해하고 있소.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는 것, 이것이 어디 사람이 할 짓인가!”

일본인들의 아이누족 인종 청소에 대해 나는 진심으로 격노했다.

“전하, 왜인들의 잔악함은 수백 년 전인 임진년에도, 지금도, 후세에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하, 왜인들의 마수에서 아이누족을 구원하시옵소서!”

“전하, 저들 아이누족 족장의 소원을 받아들이시어 저들 아이누족을 조선 백성으로 삼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전하, 사해만방에 전하와 우리 조선 민족의 평화를 사랑하는 뜻을 분연히 펼치소서!”

내 명확한 의지를 읽은 총리대신 박규수가 내각의 중론을 이끌고 나서자 며칠 만에 대신들과 모든 관리가 내 뜻에 따랐다.

조선은 역시 왕정 국가였다. 그것도 이제는 국왕인 내 힘이 절대적인, 조선은 이제 전제 국가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정수동의 계책에 따라서 우선은 동해도에 1개 중대 병력을 보내기로 하고,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그 지휘관에 중대장이 아닌 연대장을 임명했다.

동해도로 떠나는 병력을 이끌 대장에는 김현경이, 부대장에는 박치성이 임명되었다.

이 두 사람은 역사에서 신미양요(1871) 때 각각 천총과 별장으로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장수들이었다.

군부대신 신관호가 이들을 불러서 임금인 내가 내린 뜻을 전했다.

“귀관들은 아이누족을 보호하는 임무에 충실하되 무엇보다 우리 조선군 병사들의 피해를 줄여야 함을 잊지 마라. 상황을 주시하면서 왜인이 공격해 오면 지체하지 말고 즉시 군함으로 병력을 철수하라.”

조선군이 군함 2척과 상선 2척에 병력과 아이누족에게 원조할 곡식을 싣고 동해도에 도착했을 때는 가을이 시작되는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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