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시상식 (1)
"이야, 연우 이제 애드리브가 자유자재구만."
"제가 어떻게 던지든 형님이 다 받아주시니까요."
방금 장면도 하이파이브를 하며 끝내는 씬이지만, 연우가 생각한 피에르 최라면 곽지철과 하이파이브를 할 것 같지는 않아서 애드리브를 던졌다.
그걸 찰떡같이 받아주는 마석도.
요즘 연우는 대본에서 벗어나 역할에 완전히 몰입해서 자유롭게 연기를 펼치니 연기의 참된 재미에 빠졌다.
그때 조감독이 연우에게 다가왔다.
"연우야, 스케줄 체크하는 중인데 내일 예술대상 참석하지?"
"아, 네. 저도 참석해요."
내일은 한국예술대상이 있는 날이다.
매년 4월에 열리며 작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상영, 방영한 모든 영상창작물에 대해서 시상하는 권위 있는 상.
이전에 '여름의 옷장' 촬영을 할 때 한소현이 JNBC는 시상식이 없어서 연우가 실망할까 봐 걱정을 하니 김한수 감독이 한번 수상을 노려보자고 했던 시상식이다.
연우도 TV 부문 남자 우수연기상과 신인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우수연기상에 같이 노미네이트된 손진욱과 다른 후보들이 쟁쟁해서 수상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지만, 데뷔 한 첫해에 노미네이트되었다는 것에 영광을 느끼는 연우.
그중에도 같은 작품에서 연기한 손진욱과 아역 출신으로 유명한 진유한이 유력한 후보다.
손진욱은 연우가 가장 친한 배우이자 형이기도 해서 잘 알고 있지만, 진유한이란 배우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랐다.
진욱과 겨루는 후보가 환생한 자신과 같은 20세의 젊은 배우라니 흥미가 동해서 전작들을 찾아본 연우.
진유한은 일곱 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해서 굵직한 영화들의 아역을 맡으며 꾸준히 연기 내공을 쌓아온 엘리트 중의 엘리트.
첫 성인 주연작을 맡은 '비욘드'라는 타임슬립 수사드라마에서 진유한이 지금까지 쌓아온 포텐셜을 터뜨려 작년 하반기 드라마 대흥행에 성공했다.
"같은 나이에 내 앞을 달리는 목표가 있어서 좋네."
조감독의 질문에 내일 시상식에서 손진욱으로, 손진욱에서 진유한으로 생각이 연결되던 연우는 언젠가 같은 작품에서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음 날, 한국예술대상 시상식의 날이 찾아왔다.
노을이 지고 밤이 찾아왔지만, 강남의 종합무역센터 전시홀 앞은 카메라 셔터와 조명으로 대낮보다 밝았다.
지이잉―.
연우가 타고 있는 벤이 열렸다.
"하이 하이."
"형 어서 오세요."
반갑게 손을 흔들며 차 안으로 들어오는 손진욱.
깔끔한 턱시도에 보타이를 메고 있는 손진욱의 시선이 운전석을 향했다.
"민수 씨도 오랜만이에요."
"네, 손 배우님. 오늘 멋지십니다."
진욱을 보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민수.
"읏차. 나이 드니까 앉을 때 자동으로 소리가 나오네."
"에이, 형은 아직 젊죠."
자리에 앉으며 너스레를 떤 진욱은 연우를 보고 미소 지었다.
"오늘 경쟁하게 됐네?"
"에이, 형의 경쟁 상대는 진유한 씨라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어요."
연우의 말에 진욱이 웃었다.
"아, 유한이. 나도 사실 한 번도 같이 연기해본 적은 없지만, 시상식이나 사석에서는 몇 번 봤지. 조그마한 어린아이였는데 벌써 이렇게 컸네."
"저랑 동갑이래요."
연우의 말에 커지는 진욱의 눈.
"아, 그런가? 맞네. 네가 이번에 대학 들어간 거 알고 있는데도 왜 나이보다 더 많게 느껴질까. 유한이는 아역 때부터 봐서 어리게 느껴지고."
연우와 진욱은 한참 담소를 나눴다.
그 둘이 있는 민수의 벤은 주차장에서 대기 중이다.
시상식을 위해 풀 세팅으로 꾸미고 입장 순서에 맞게 들려오는 무전을 기다리는 중.
그때 무전기보다 연우의 스마트폰이 먼저 울렸다.
띠리링―.
"어? 소현 누나네요."
"소현 씨? 받아봐."
연우는 스마트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소현 누나."
- 연우야! 우리 차 옆에 있는 흰색 벤 너네 차 맞지?
소현의 말을 들은 연우는 좌우를 살폈고 오른쪽에 있는 검정 벤이 눈에 들어왔다.
지이잉―.
연우가 창문을 내리자 옆에 있는 검은색 차의 창문도 내려갔다.
"연우야아. 어? 진욱 선배도 있네!"
반갑게 손을 흔드는 소현.
이내 다시 창문이 올라가며 소현이 앞자리의 매니저와 대화를 주고받는 것 같더니 도어가 열리고 한소현이 밖으로 나왔고 민수가 차 문을 열어줬다.
"짜잔! 여주인공 등장."
"하하하. 소현 씨 오늘 예쁘네."
그리스의 여신이 연상되는 흰색 드레스를 입은 소현이 차로 들어왔다.
"누나.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깊게 파인 브이넥에 허리도 왼쪽만 동그랗게 뚫려 있어서 생각보다 노출이 있는 소현의 의상.
"야아! 다른 여배우들은 더 해. 이 정도면 유교 드레스야."
"풉. 소현 씨. 유교 드레스는 뭐야."
소현의 말에 웃는 진욱은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둘이 영화 같이 들어갔지? 어때? 그 유명한 박찬홍 감독님인데."
진욱의 질문에 소현이 씨익 웃는다.
"선배. 말도 마세요. 연우 요즘 날아다닌다니까?"
"오올. 연기력이 꽃이 폈어?"
"카리스마 있고 장난스런 사기꾼 역할인데, 요즘 나한테 장난 엄청 쳐요!"
진욱에게 볼멘소리로 하소연하는 소현.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연우는 피에르 최에 빙의된 듯 평소 조금 얌전하던 성격에 장난기가 한 스푼 추가됐다.
아무래도 그 장난의 대상은 연우에게 가장 편하기도 하고 반응이 재밌는 한소현으로 당첨.
마석도에겐 카메라가 돌 때 애드리브로 충분히 장난을 치고 있고, 카메라 밖에서 장난을 쳤다가 솥뚜껑 같은 손의 경도를 등짝으로 확인하고 싶진 않았다.
한소현의 장난스런 하소연에 연우가 씨익 웃으며 진욱을 바라봤다.
"아니, 진욱이 형. 소현 누나가 정하균 선배님한테 유혹하는 씬인데 글쎄···."
"야아아! 하지마아!"
서둘러서 연우의 입을 막으려 바둥거리는 소현과 장난스레 피하려는 연우.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진욱이 웃었다.
"하하하. 뭔지 모르지만 너네 둘 모습이 웃기다. 아, 나도 같이 촬영하고 싶다. 우리 옷장 찍을 때 진짜 매일 재밌었는데."
연우가 진욱을 보며 웃었다.
"우리 또 꼭 같이 작품 해요."
"나도? 나도?"
연우와 진욱의 사이로 얼굴을 집어넣으며 묻는 소현.
"당연하죠. 삼총사의 꽃인데."
빙그레 웃는 연우. 그리고 마침 무전기가 울렸다.
- 치직―. 여름의 옷장. 여름의 옷장 팀 입장 준비 해주세요.
삐빅―.
"여름의 옷장 팀 배우 세 분, 한 차로 이동합니다. 지금 들어갑니다."
무전 답신을 한 민수가 기어 레버를 움직이고 차를 몰았다.
어느새 도착한 입구. 카메라를 들고 대기하는 기자들과 경호원 너머로 까치발을 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자 하는 수많은 팬들이 보인다.
- 「여름의 옷장」 배우들을 태운 차량이 들어왔습니다―!
외부 행사장 진행을 맡은 여자 아나운서의 음성이 들려오고 차 문이 열렸다.
모습을 드러내는 '여름의 옷장' 주연들.
먼저 손진욱이 내렸다.
"꺄아아악! 개 잘생겼어!"
"결혼해줘 진욱아!"
팬들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리고 카메라 셔터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여유롭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진욱.
뒤를 이어서 한소현이 드레스를 입고 내리자 손을 잡아주는 진욱.
카메라 셔터가 터지니까 흰 드레스와 백옥 같은 피부가 더욱 반짝이면서 여신 같은 미모를 뽐냈다.
진욱이 소현의 손을 잡아주니 더욱 거세지는 팬들의 비명 소리.
진욱과 소현이 살짝 앞으로 걸어가 공간을 내어주고, 그 공간으로 조각 같은 얼굴이 차 문을 통해 쑥 나왔다.
"아아아아악!"
"사랑해 연우야!"
"미쳤어어!"
시상식 입구가 떠나갈 듯이 들리는 비명과 환호 소리.
연우는 활짝 웃으면서 기자들과 팬들의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하트를 내밀었다.
"이쪽도 봐주세요!"
수많은 요청들이 뒤섞여 들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이 된다.
연우는 눈치껏 골고루 여러 방향을 보며 이런저런 포즈를 취해주었고 곧이어 진욱과 소현의 옆으로 걸어갔다.
- 반짝반짝 빛나는 배우분들을 모셔보겠습니다. 「여름의 옷장」 배우분들 이쪽으로 와주세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를 듣고 스탭의 안내에 따라 셋이 레드카펫을 걸어 들어갔다.
"저 레드카펫 처음 밟아봐요."
연우의 말에 진욱과 소현의 눈이 커졌다.
"어? 그런가? 그렇네. 시사회 때도 먼저 들어가서 대기하고 있었지."
세 주연들이 서로 이야기하고 웃으면서 들어오자 장내 아나운서가 팬들을 위해 생중계했다.
- 네. 들어오시는 모습도 너무 서로 사이가 좋아 보이죠? 그만큼 작년 한 해에 좋은 캐미로 많은분들의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인데요. 이쪽 가운데로 한소현 배우님부터 서 주시기 바랍니다.
한소현이 걸어 들어가서 포토월의 중앙에 섰고 상큼한 미소와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먼저 들어갔다.
손진욱의 차례도 지나고 이제 연우의 차례.
- 네에, 이번에는 요즘 가장 핫한 배우죠. 류연우 배우님을 모셔보겠습니다.
빙그레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가는 연우.
가까이 다가가자 마이크를 떼고 연우를 향해 말하는 아나운서.
"배우님, 원 안에 서서 시선은 오른쪽부터 사진 촬영 부탁드립니다."
연우는 웃으면서 가볍게 아나운서에게 목례하고 포토월의 중앙에 섰다.
턱시도를 차려입고 보타이를 맨 류연우.
해맑게 활짝 웃으면서 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사진 촬영을 했다.
"잘생겼다아!"
"이쪽도 봐주세요!"
"아아악! 나 책임져!"
와하하.
밑도 끝도 없이 책임지라는 외침에 팬들과 기자석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 호호. 네, 잘생겼다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요. 좀 더 손 흔들어주셔도 됩니다.
- He is nominated for best actor and the new star division. You're meeting 'Mr. Yun Woo Ryu' right now.
외신 기자들을 위한 안내 멘트도 들리고 조금 더 촬영을 한 후에 포토월 행사를 마친 연우도 식장으로 들어섰다.
레드카펫은 또 다른 배우의 입장으로 어느새 시끄러워지고 있다.
하지만 류연우가 들어간 식장 입구 쪽을 VIP석에서 매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턱을 쓰다듬는 한 백인 중년 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