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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요원 천재배우로 환생-172화 (172/295)

172화. 질투에 대응하는 자세

패스워크가 심상치 않은 걸 보면 큐나인이라는 아이돌은 원래 풋살을 즐기는 친구들인 게 분명했다.

그러니 어이없게 먹혀버린 첫 골에 대한 대비도 하프타임에 세워두었을 터.

연우가 다가오는 상대 선수를 바라보다 공을 빈 공간으로 툭 차넣고 직접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연우가 직접 슈팅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패스를 할 줄 알고 간격만 좁혀오던 상대가 깜짝 놀라서 따라 뛰었다.

하지만, 좁혀오던 진행 방향과 역방향이라 곧바로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다른 수비들이 자신의 담당을 버리고 연우에게 따라붙는다면 그 빈자리로 패스를 넣을 것이 불 보듯 뻔했기에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만약 프로선수였다면 이런 상황에 대비한 의사소통이 실시간으로 가능했겠지.'

상대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빈 공간으로 공을 몰고 침투한 연우가 그대로 공을 강하게 찼다.

파앙─.

축구공이 터질듯한 소리가 나며 발등과 강하게 임팩트된 축구공이 그대로 골키퍼가 반응하기도 전에 스쳐 지나가며 골문을 갈랐다.

삐익─.

캐스터와 MC가 그 골에 대해 입을 열려는 찰나 종료 휘슬이 울렸다.

준결승전의 최종 스코어는 6대5로 끝이 났다.

휘슬이 울리고 나서야 장내 MC의 음성이 들려왔다.

[골! 아주 멋진 골로 상대에게 반드시 류연우를 조심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골입니다.]

[오늘은 배우 류연우가 아니라 혼성그룹 제이나리의 '제이'라고 해야겠지요. 마지막 골로 승패가 갈리게 되었네요. 정말 절묘한 공간돌파였어요.]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들어간 쐐기골로 승부의 행방을 결정짓자 댓글의 화력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 그냥 달려오는데 왜 아무도 막으러 안 가냐

- 맨마킹 풀리면 패스줄까 봐 못간 거지 축알못임?

- 니가 방금 공을 차 넣은 게 골대인지 내 마음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 연우 보고 싶을 때마다 이마를 쳤더니 거북목이 완치됐습니다

한편,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는 팬들도 눈이 있기에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느낄 수 있었다.

체육대회를 하더라도 대부분의 관중들은 골을 넣는 사람에게만 집중한다.

하지만, 골을 넣은 건 대부분 동하였더라도 이번 경기를 눈앞에서 직접 바라본 팬들은 모든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 연우라는걸 못 알아차릴 수 없었다.

"뭐, 뭔가 우리 배우님이 상대를 가지고 노는 느낌···."

"하아, 내가 축구 잘하는 남자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또 준비를 한 거지."

아침부터 출석 체크한다고 부랴부랴 준비하고 나오느라 피곤하고 날은 춥고 의자도 불편했지만, 눈이 즐거우니 힘든 게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상대 팀과 악수를 하고 걸어 나오는 중에 엑시즈의 멤버들이 신이 나서 연우에게 말을 걸었다.

"형! 축구 언제부터 했어요? 왜 이렇게 잘해요?"

"진짜 연우 덕분에 이겼네. 우리가 결승을 할 줄이야."

멤버들의 말을 듣고 연우가 살짝 미소 지었다.

"딱히 축구를 잘하진 않아. 그냥 침착하게 대응한 거지."

아무리 이것저것에 능통한 국정원 요원이라고 해서 축구까지 잘할 이유는 없었다.

공작업무에 축구 실력이 쓰일 일은 없으니까.

다만, 풋살 같은 미니 축구 형식은 언제 어디서든 나뭇가지 몇 개만 땅에 꽂으면 할 수 있는 스포츠이기에 여러 작전을 수행하면서 다국적의 용병이나 요원들과 수도 없이 많이 하던 놀이였다.

그리고 사실 연우가 축구를 잘해서 이긴 게 아니었다.

상대 팀 아이돌도 개개인의 실력은 오히려 연우보다 뛰어났지만, 전장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랐다.

'너무 긴장해서 코앞만 바라보게 되니까, 제 실력을 제대로 못 발휘한 거지.'

미국의 작가 스콧 애덤스는 '적당히' 잘하는 여러 능력이 합쳐지면 '월등히' 잘하는 하나를 압도한다고 말했다.

풋살을 했다기보단, 전황을 분석하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었던 거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연우는 가장 뛰어난 전문가다.

***

[20분 정도 휴식을 취했습니다만, 곧바로 열리는 결승전에서는 아무래도 막 경기를 마친 엑시즈 팀이 불리하겠지요?]

[체력적인 안배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후반에 가서는 밀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겠습니다.]

장내 MC의 말을 들은 엔보이즈의 재윤이 피식 웃었다.

'웃기고 있네. 풀컨디션으로 나왔어도 개바르지. 우리 팀에 고등학교까지 축구를 하던 선출도 있는데.'

그리고 연우와 동하를 노려봤다.

솔직히 자신에게 해가 될 일을 한 건 없지만, 그냥 너무 싫었다.

그 감정을 질투라고 부른다는 걸 재윤만 몰랐다.

한편, 연우는 건너편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씨익 웃었다.

'어떤 짓거리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저 꼬맹이가 하는 만큼만 딱 돌려줘야겠다.'

아무리 젊어졌다지만 정신까지 어려진 건 아닌지라, 저런 애송이한테 해코지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본인이 뿌린 씨앗만큼만 거둬가게 하면 될 일이다.

양 팀이 앞으로 나와서 상호 간의 인사를 하고 결승전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예상외로 정상적인 경기가 흘러가면서 이렇다 할 수작을 부리는 걸 느끼지 못했다.

실력도 부족했고 체력도 떨어졌지만, 그때그때 지시를 하는 연우의 존재 때문에 그렇게 많이 밀리는 상황은 아니었다.

'흐음, 하긴. 지금 카메라 몇 대가 찍고 있는데 욕먹을 짓은 안 하겠지. 저 녀석도.'

그렇게 생각한 순간 공을 몰고 가는 동하에게 엔보이즈 재윤이 달려들었다.

아마추어 경기라서 잘 나오지 않았던 슬라이딩 태클을 하는 재윤.

그대로 재윤의 몸이 잔디를 미끄러지며 동하와 부딪혔다.

"악!"

삐익─.

동하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심판이 휘슬을 불었다.

누워 있는 동하의 표정을 보니 다행히 부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태클을 했던 재윤이 누구보다 순진한 얼굴을 하곤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다가갔다.

"미안해! 고의는 아니었는데. 괜찮아?"

그런 모습을 보고 연우가 피식 웃었다.

'오디션 떨어졌다더니 생각보다 표정 연기는 제법이네?'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라.

결국 녀석의 속셈은 태클을 걸고서 사과를 했을 때 상대가 얼굴을 찌푸리게끔 만들려는 것이었다.

실제 축구선수라면 파울을 당했을 때 화를 내는 게 아무 문제도 안 되겠지만, 이건 아이돌 체육대회다.

연우가 재윤의 앞으로 끼어들어서 동하를 일으켰다.

"표정 관리해. 카메라 의식하고."

연우가 엉덩이를 털어주며 속삭이자 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하가 곧바로 방긋 웃으며 재윤의 손을 맞잡고 작게 말했다.

"괜찮아요, 선배님. 누구나 실력이 미숙하면 실수하는 일도 있죠. 오디션이든 풋살이든."

마이크는 차고 있지 않기 때문에 대화 내용이 방송에 나갈 일은 없다.

역시나 그 장면을 보면서 장내 MC의 멘트가 들려왔다.

[아, 이게 스포츠 정신이고 올림픽 정신이란 말이죠. 아주 훈훈하고 보기 좋습니다.]

[올림픽이요?]

[이 정도 수준의 경기라면 아이돌 체육대회가 아니라 아이돌 올림픽 아니겠습니까.]

금세 털고 일어나 웃으며 악수하는 동하와 재윤에게 팬들의 박수와 응원이 쏟아졌다.

'네 속셈이 결국 그거였단 말이지.'

그리고 연우가 재윤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전반전이 끝났고 스코어는 준결승보다 안 터져서 양 팀이 한 골씩 넣어 1대1로 동점이었다.

문제는 연달아 치른 경기 때문에 멤버들이 지친 상태라는 점이었다.

'흐음, 체력소모가 역시 큰가 보네.'

그에 비해 연우는 아직 쌩쌩했다.

"후반전은 포지션을 바꾸자. 내가 체력이 꽤 남았으니까 최전방으로 올라갈게. 너희들이 후방에서 지역방어를 해줘. 최대한 자기구역만 지키면서 체력을 아껴."

"그러면 역습 축구인가요? 공을 빼앗으면 바로 형한테 연결시킬까요?"

연우의 전략을 제대로 알아들은 강재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결국 한 골 싸움이 될 것 같으니까 최대한 틀어막고 후반의 막바지에 상대도 체력이 빠졌을 때를 공략하자."

"오케이 확인."

"옙! 류 대장님."

연우가 동하의 말에 피식 웃었다.

"대장은 무슨."

원래 명칭은 팀장이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시작된 후반전에서 바뀐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임하자 그걸 알아본 장내 MC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 엑시즈 팀의 전술에 변화가 있는 것 같군요. 원래 최전방을 맡았던 동하가 내려가고 중원에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했던 류연우가 최전방으로 올라왔습니다.]

[글쎄, 장 캐스터님. 저 선수는 오늘 류연우가 아니라 '제이'라니깐요.]

그리고 바뀐 전술을 알아본 엔보이즈의 재윤도 씨익 웃었다.

'오호, 안쪽에 틀어박혀 있어서 어떻게 엿 먹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제 발로 기어 나오네? 네 더러운 성격의 민낯을 까발려줄게.'

후반전의 경기는 연우의 예상대로 팽팽하게 전개되었다.

엔보이즈도 계속해서 골문을 두드렸지만, 전원 수비에 가깝게 내려앉은 엑시즈 팀의 단단한 수비에 막혀서 쉽사리 골을 넣지 못했다.

"연우 형!"

공을 빼앗은 동하가 연우에게 공을 연결했다.

공격을 나가면서도 웬만하면 하프라인 근처에서 수비에 전념하라고 했던 연우의 지시대로 라인을 크게 올리지 않았고, 연우만 공을 몰고 올라갔다.

아무리 피지컬이 좋고, 풋살을 제법 한다고 해도 프로선수가 아닌 연우가 상대의 수비를 혼자서 다 벗겨낼 수는 없었다.

다시 공을 몰고 혼자 올라오는 연우를 보고 엔보이즈 팀이 여유롭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재윤이 씨익 웃으면서 연우를 향해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본 연우도 슬라이딩 태클을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을 일부러 연출시켜주기 위해 좀 더 길게 드리블을 쳤다.

아니나 다를까 재윤이 전반전의 동하에게 했던 것처럼 미끄러지며 슬라이딩 태클을 했고 연우가 걸려 넘어졌다.

"악!"

"끄아악!"

삐익─.

다시 휘슬이 울렸고 연우가 크게 날아가서 데굴데굴 굴렀다.

"연우 형!"

관중석에 있던 팬들도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요.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요.]

[너무 성급한 태클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데굴데굴 구르는 연우의 표정은 누가 봐도 고통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사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스포츠에서 거짓된 연기로 파울을 얻어내는 것을 할리우드 액션이라고 한다.

사실 미국 본토에서는 시뮬레이티드 파울(Simulated foul)이라고 부르고 할리우드 액션은 콩글리쉬였지만, 어쨌든 이 경기장에서 할리우드 액션은 애초에 류연우의 것이었다.

'내가 지난달까지 할리우드에 있었고, 액션도 제법 하거든?'

그리고 연우가 준비한 건 할리우드 액션뿐만이 아니었다.

연우가 악 소리와 함께 날아간 것에 비해 재윤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슬라이딩 태클을 하는 것을 보고 있던 연우는 애초에 공을 터치하는 것엔 관심이 없었다.

넘어지면서 재윤의 중요 부위를 발등으로 툭 하고 쳤다.

'뭐 너도 나중에 후손을 남겨야 하니 그렇게 세게 치진 않았지만, 눈물이 핑 돌 거다.'

겉으로 보기에 크게 날아간 건 연우이기에 사람들이 연우에게 먼저 달려왔지만 연우는 괜찮다고 손을 들어 보이고는 다리를 살짝 절뚝이면서 재윤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어디가 아픈 거예요?"

"크윽."

수많은 팬들이 지켜보고 있고 카메라가 찍고 있는데 어떻게 그곳을 부여잡겠는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연우만 노려봤다.

"아아, 설마?"

연우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엎어져 있는 재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꼬리뼈를 급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 하지 마!"

"괜찮아요. 오랫동안 내려온 선조의 지혜입니다. 이렇게 해야 통증이 금방 완화돼요."

그제서야 관중석도, MC들도, 경기장에 있는 선수들도 심지어 너튜브 라이브로 보고 있던 수많은 시청자들도 재윤이 일어나지 못하고 계속 누워 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푸흡!"

동하는 실소를 터뜨렸고 관중석의 일부 팬들은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손가락을 살짝 열어 그 모습을 바라봤다.

[아···. 때로는 스포츠를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종종 일어나는 법이지요.]

[으음, 저건 진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고통인데요. 빨리 털고 일어나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라이브 시청자들도 저마다 자신의 방법대로 재윤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 아아아... 재윤 언니 일어나요.

- 갑자기 언니 뭔뎈ㅋㅋㅋ

- 그러니까 왜 아마추어가 자꾸 슬라이딩 태클을...

- 다들 너무해요 이런 걸로 놀리면 벌 받음

- 자업자득이죠

- 자업자득 혹시 아들 자 쓰나요? 이제 무업무득 아닌가

- 한자 1급입니다 무업무득이 맞습니다

한편, 댓글창의 반응을 보았더라면 통증이 더 악화됐을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재윤은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톡톡톡─.

그리고 연우는 끊임없이 재윤의 꼬리뼈를 쳐주고 있었다.

"하, 하지 말라고!"

"에이, 이렇게 해야 덜 아프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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