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제35회 제주 빛빛 노래자랑 본선 날 아침.
공하람과 나는 무난한 검은 반팔 티에 청바지로 맞춰 입고, 본선장으로 향했다.
본선장은 야외였다. 본선 진출 팀은 스무 팀.
낮은 단상 무대를 앞에 두고 잔디밭에 플라스틱 의자가 쫘악 깔려 있었다.
족히 천 석은 되는 것 같았다. 규모가 상당히 크다.
제주 유선 방송 카메라도 보였다.
옛날 같았으면 내가 저기서 방송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네! 안녕하세요. 빛빛 노래자랑이 벌써 35번째 개최를 맞았는데요. 서귀포 시장님의 축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회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중후한 노년의 신사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서귀포 시장 임조훈 : 인맥 레벨 20]
시장이라 그런가 인맥 레벨이 높다.
잠깐, 유명인이 아니고 시장일 뿐인데 인맥 레벨이 저렇게 높다고?
임조훈, 이름 정도는 기억해 두는 게 좋겠다.
일단 오늘은 눈 마주치면 끔살 당할 수도 있으니까 고개 깔고 있자.
“예, 반갑습니다. 서귀포 시민 여러분. 오늘 날씨도 맑고…….”
지루한 축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됐다.
삐에로 코스튬을 입은 아저씨도 본선에 올라왔다.
구성지게 부르긴 하는데, 너무 튀려는 의지도 강하고.
시 단위 행사에서 우스꽝스러운 콘셉트를 해서 입상 못 할 것 같다.
공무원들, 향토 음악인들이 보통 보수적인 게 아니걸랑.
그밖에도 5살 최연소 참가자의 동요 무대,
24살, 공하람의 또래의 랩 무대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무대가 이어졌다.
난 안다. 저런 튀는 무대는 그저 ‘다양성’을 명목으로 한 구색 맞추기 무대라는 걸.
“다음 참가자 모셔 보겠습니다. 하영하영 팀인데요. 안녕할 때 하이영, 뭐 이런 뜻인가요? 하하.”
“……이렇게 들으니까 진짜 구리긴 하다.”
공하람이 작게 속삭였다.
“아냐, 보수적인 공무원 아저씨들은 이런 거 좋아한다고.”
나는 능청스레 대답하며 공하람의 등을 떠밀었다.
“부를 노래는…… <토끼섬 아낙>이라는데요. 제주 토속 시인의 시에 노랫말을 붙인 가곡이라고 합니다. 특이한 선곡이네요.”
“오, 게다가 이 청년들, 원곡을 약간 다듬었다고 하는데요. 반주를 직접 편곡해서 녹음했다고 합니다. 대단한데요. 들어 보실까요?”
공하람이 무대 가운데 있는 스탠드 마이크 기둥을 쥐었다.
나는 얌전히 유선 마이크를 쥐고 어설프게 섰다.
―저 푸르른 바다
거센 물결…….
공하람이 한 손을 곧게 뻗어 저 멀리 수평선을 응시한다.
―외로이 떠나는
내 님이여~
이번엔 그 손을 거두어 가슴팍에 살포시 올려 둔다.
이야, 정말로 1980년대 <가요무대> 같은 예스러움이 느껴진다.
―내 사랑 그대여
내 사랑 그대여~
어느 아낙을 사랑하여
떠나시오~
나는 적당히 화음을 맞춰 주면서도, 공하람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게 애썼다.
공하람의 강점이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여성 화자 특유의 ‘한’ 정서를 자기 것으로 완벽히 소화하다니.
위캐니즈 놈들 중 그나마 감수성이 풍부해 보였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군인 집안에서 어떻게 이런 별종이 나왔을까?
―흉 지도록 사랑하오~
흉 지도록 사랑하오…….
정말로 사랑에 데인 서글픈 표정이다.
백겸의 편곡도 훌륭했다.
가곡 특유의 시조 같은 단조로움을 없애고, 현악기 사운드와 피아노 선율을 더해 가요스럽게 풀어냈다.
작곡 능력치 좋은 게 거짓이 아니었군.
노래가 끝나고.
예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박수갈채와 함성이 쏟아졌다.
간간이 휘파람이 들리기도 했다.
천 석 중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걸 감안한다면 정말 대단한 반응이었다.
이 정도면 일단 입상은 성공이다.
나는 빠르게 심사 위원석을 스캔했다.
여섯 명 중 무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 반, 은은하게 웃고 있는 사람 반이었다.
좀 활짝 웃어 주라.
“네! 수준급 실력입니다. 젊은 청년이 제주 전통 가곡을 개성 있게 해석했네요. 잠깐 인터뷰 가능할까요?”
인터뷰한다는 건 방송 분량을 뽑을 만한 인재로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호재다.
“이 노래를 선곡한 이유부터가 궁금한데요?”
“네. 이 친구가 어릴 적부터 제주 민요, 가곡 등에 관심이 정말 많았거든요. 요만한 꼬맹이일 때도 민요로 예선전에 참가한 적이 있고요.”
공하람이 머뭇거리는 눈치여서, 내가 재빠르게 답했다.
“빛빛 노래자랑과 인연이 깊은 분이셨군요. 본인이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안 봐 주는군, 쳇.
공하람은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사회자의 말에 살짝 고개를 들어 객석을 쳐다봤다.
“저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무대가 간절했습니다. 이 노래 대회는 그런 저에게 너무나 과분한 무대였고, 오른 것만으로도 정말 기쁜 것 같습니다.”
“이런 겸손한 대답이라뇨! 무대가 간절했던 이유가 있나요?”
“사실 제가 가수 활동을 조금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시는 게 당연할 정도로 유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했습니다. 춤을 추는 것도 즐거웠고요…….”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어엇, 울진 마시고요! 하하. 노래 부를 때도 느껴졌지만 감수성이 풍부한 것 같습니다.”
공하람의 코끝이 붉어지는 게 보인다.
나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객석 중간 열 왼쪽 부근을 눈으로 훑었다.
그곳엔.
익숙한 듯 낯선 실루엣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공하람의 부모님이었다.
* * *
“귀엽죠?”
“와, 진짜 귀엽네요.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데요.”
“맞아요. 하람이 6살 때예요. 유치원도 안 갔을 땐데, 희한해요, 애가.”
공하람과 내가 빛빛 노래자랑 포스터를 발견한 그 날 밤.
나는 공하람 몰래 그의 어머니를 찾아갔었다.
그녀가 마당에서 밤 체조를 하고 있던 틈을 노렸다.
내가 대놓고 공하람을 서울로 데려가고 싶다고 말하자.
그녀는 나를 데리고 이 층 서재로 갔다.
그리고 세월이 엿보이는 CD 하나를 재생시켰다.
영상에선 웬 아기가 자박자박 걸어 나와 구성지게 타령을 하고 있었다.
여섯 살의 공하람이었다.
귀여움과 똘똘함으로 무장한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공하람의 어머니도 흐뭇하게 웃는 표정이었다.
“하람이네 친가는 대대로 군인 집안이에요. 들어서 알겠지만.”
“넵.”
“외동아들인 하람이도 당연히 군인을 시키기로,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죠. 그런데 저런 별종으로 자라난 거예요.”
어머니는 이야기를 이어 갔다.
“하람이가 처음 서울 가서 아이돌 하겠다고 할 때, 하람이 아빠가 애를 얼마나 잡았는지 몰라요. 스무 살 넘은 다 큰 애를 방에 가두고 그랬어요. 몰래 보컬 학원 다닌 거 들켰을 때, 어유. 말도 못 하죠.”
“그렇군요…….”
“잘못했죠, 별종을 그렇게 키우면 더 별나게 자라지, 하하.”
“어머니, 제가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영 믿음이 안 가실 수 있겠지만…… 제가 다시 잘 정비해서 활동해 보려고 하는데, 한 번만 믿어주실 수 없을까요?”
다시 생각해 봐도 결혼 허락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구리다.
“대신 저랑 하람이를 믿을 수 있게, 저희가 확실한 결과를 보여드릴게요. 그걸 보시고 결정하시면 됩니다.”
“흠…….”
솔직히 말이다.
나이 20살 넘으면 알아서 좀 살게 내버려 둬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집도 참 빡빡하다. 보통은 아니야 확실히.
“유영 씨가 몇 살이랬죠?”
“스물 아ㅎ…… 다섯입니다.”
“나이가 많지 않은데…… 꼭 삼십 대 같애. 원래 이렇게 애늙은이 같았나? 하하.
……무서운 어른들 같으니라고.
* * *
“아차상입니다. <꽃 같은 여인>을 부른 고형길 씨! 축하드립니다.”
삐에로 아저씨가 걸어 나온다.
아차상이라도 받은 게 신기하군.
차례로 우수상, 최우수상이 호명됐다.
우리 이름은 없었다.
최우수상까지 시상 후 남은 인원은 약 열 팀.
……쫄린다. 이런 행사는 기사도 안 나올 것 같아서 미리 보기를 쓸 생각도 안 했는데.
그냥 볼 걸 그랬나?
“자, 영광의 대상은!”
나는 본능적으로 객석 저 멀리 공하람의 부모님을 쳐다봤다.
“……<토끼섬 아낙>을 부른 하영하영 팀입니다!”
시상자의 발표와 함께.
내가 응시하고 있는 객석 쪽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푸흡, 웃고 말았다.
공하람은 얼떨떨하게 트로피를 받고, 제주 언론사의 인터뷰에 응했다.
음, 방송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 있으니 제법 연예인 같아 보인다.
회귀한 이후로 가장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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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도 못한 보상도 받았다.
그래, 이것도 무대는 무대지…….
* * *
“형…… 빨리 나와.”
“잠깐만…… 폰 충전 케이블이…….”
개미 새끼 한 마리 기어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지금은.
새벽 4시.
공하람과 나는 휴대폰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 케이블 대체 어디에 있냐고.”
“……케이블, 형 핸드폰에 달려 있는데?”
“뭐? 헐, 진짜네.”
나는 허겁지겁 케이블 선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근데 진짜 이렇게 가도 괜찮아? 너희 아버지가 막…… 때리거나 하진 않으시지?”
“때리진 않으시지…… 몰라, 대화에서 지면 그게 더 끝이야.”
왜 대회에서 대상을 타고도 야반도주를 해야 하는 거야?
나는 공하람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공하람의 눈빛이 너무나도 형형하게 빛나서 토를 달 수 없었다.
뭐 나는 이러나저러나 공하람이 서울로만 가면 되는 일이니, 야반도주라는 경우의 수도 고려하고 있긴 했다.
“형, 나 그냥 서울 갈래. 아이돌 하고 싶어.”
“잘 생각했어.”
“대신 새벽에 몰래 가야 해.”
“……왜?”
“아버지 설득할 자신 없어.”
“야, 그건 내가 방법이 다…….”
“아냐, 방법 없어. 가야 해.”
……이러한 연유로 우리는 대상을 타고도 야반도주를 하게 된 것이다.
부모에게 지나치게 간섭받으며 자란 아이는.
언젠가 그 울분이 제대로 터져 놀라울 정도로 과감한 기행을 저지른다고들 한다.
공하람도 그런가 보다.
어두운 집 안에서도 ‘탈출할 거임’이라는 의지로 빛나는 눈동자가 무서웠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숏 패딩을 걸친 우리는 깨끔발로 거실을 가로질렀다.
누군가 이 모습을 본다면 아무런 의심 없이 2인조 좀도둑이라고 했을 거다.
차는 이 집에 올 적 내가 끌고 온 렌트카를 이용할 셈이었다.
처음에 빌릴 때 반납 일자를 정해 놓지 않기 잘했다.
아마 나는 전직 기자의 본능으로, 공하람 픽업이 고난이도일 걸 예상한 것 같았다.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야외 현관까지 갔을 때였다.
현관 대문에 손을 올렸는데, 공하람이 내 손에 제 손을 겹쳐 올렸다.
“어 깜짝이야, 하람아 왜…….”
“…….”
“……안녕하, 딸꾹, 안녕하세요?”
뒤돌아본 곳엔.
공하람의 아버지가 귀신처럼 서 있었다.
‘망했네.’
나란 인간, 귤 농장에서 노역하다 12월쯤 돌연사하겠군.
“저기, 이건…… 딸꾹, 아 딸꾹질이 갑자기…….”
“가져가라.”
“네?”
뭘요? 멍청한 눈을 한 내가 한심했는지.
그는 큼큼, 헛기침하며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
뒤에는…… 귤 한 박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저거 자네 차지? 실어 가.”
“가, 감사합니다.”
다행이다!
심지어 아버지가 공하람을 밧줄로 묶어 두지도 않았다.
우리는 귤 박스를 안아 들고 엄청난 속도로 차를 향해 달려갔다(도망갔다).
그리고 빠르게 차에 탑승했다.
창문을 내린 공하람이 아버지에게 깊게 고개 숙였다.
아버지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거 참, 어린놈이 뭔 그런 늙은이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어?”
“……아버지?”
공하람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나이에 맞는 노래를 불러라. 귀여운 사랑 노래 같은 거. 인생 다 산 사람처럼 질질 짜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아, 이 얼마나 훈훈한 부자 화해의 순간인가!
조금 상명하복 같긴 하지만.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시간 길게 투자한 보람이 있어.
“……죽을 소리 할 거면 하지 마라.”
“넵!”
크게 대답한 우리는.
어둑한 골목길을 미친 듯이 빠져나갔다.
귤 한 박스를 뒷좌석에 싣고서.
[메인 퀘스트 중간 보상! : + 30 포인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새벽 시골길을 헤쳐 나가며.
나는 생각했다.
집 쳐들어가기.
공항 쫓아가기.
지역 노래자랑 나가서 대상 타기.
야반도주하기.
……다음은 어떤 기행을 저질러야 하는 걸까?
내 마음을 반영한 것인지.
어느덧 바깥에는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