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자인데요, 망돌 좀 내려주세요-59화 (59/118)

#59화

어쨌거나 내가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 버린 건 아니었기에, 무대는 별 차질 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게다가 그다음 소절은 바로 나였다.

회심의 보컬 능력을 십분 발휘해야 할 순간이었다.

―TOTTER TOTTER

나를 전부 줄 수만 있다면---!

“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템빨로 일궈 낸 시원한 보컬도 잘해 냈다.

전반적으로 무대에서 실수한 사람도 없었고.

스태프들이 별로 공들여 잡지 않은 듯한 떼거지 풀샷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오히려 무대를 전체적으로 보기엔 훨씬 좋은 구도였던 것이다.

―나의 모든 마음이 너를 향해

TOTTER

마지막 소절이 끝나고.

모두가 엔딩 포즈를 취했다.

카메라는 한 사람씩 클로즈업해 엔딩을 잡았다.

왼쪽부터 백겸, 하람, 해든, 유영, 산호, 이레, 태오가 나왔다.

“……와, 유영이 형 표정 대박인데?”

내 옆에 앉아 있던 하람이 별안간 큰 소리를 냈다.

“와, 대박. 엔딩 찢었다. 형.”

백겸도 날 쳐다보며 큰 눈으로 말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엔딩 표정이 적당히 잘 빠진 건 나도 알겠는데…….

그 정도인가?

그냥 카메라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적당히 지친 표정 같은데.

“형, 뭔가 이건 대박이에요. 형한테서 발견할 수 없었던 뭔가인 거 같아요.”

윤산호도 호들갑을 떨었다.

[히든 미션 ‘첫 무대의 기억’ 성공!

보상 : + 300 포인트, 능력치 향상]

상태창도 나의 업적을 축하해 주는 알림을 띄웠다.

300 포인트라니, 히든 미션 치고 후한걸.

잘 모은다면 책갈피 말고 <수첩> 아이템을 사 볼 수도 있는 수치였다.

[지금 당장 세레모니를 하세요!]

뭐?

세레모니?

여기서?

[지금 당장 세레모니를 하세요!]

[지금 당장 세레모니를 하세요!]

[지금 당장 세레모니를 하세요!]

시스템이 무서워졌다.

에러가 난 것처럼 내 앞을 가득 메운다.

안 하면 갑자기 칼 들고 나를 찌를 것 같다.

방송에서 뭐가 나오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나는 고민할 겨를도 없이 허둥거렸다.

어쩌겠나. 일단 뭔가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봤다.

“…….”

“오오, 엔딩 장인 앵콜 가나요?”

백겸이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 줬다.

그렇다.

카메라를 보고 아까의 그 엔딩 표정을 최대한 따라 하는 중이었다.

평소 표정 연습 같은 건 전혀 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기에 내가 지금 저 무대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전혀 확신할 수 없다.

아마 버프가 빠져서 요상하고 거북한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할 수 있는 세레모니가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서 인사를 할 순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게 100배는 더 재수 없다.

“……하하, 다시 하려니 전혀 감이 안 오네. 이입했을 때만 나오는 표정이 있나 봐. 나도 몰랐네.”

“되게 처연해. 우리 콘셉트, 파워 청순, 이거랑 잘 맞아. 형이 만들어서 그런가.”

“파워 처연.”

“어엉. 맞다. 그거. 처연, 처연.”

태오가 흐뭇해 마지않는 칭찬을 폭격해 줬다.

해든은 잘 듣다가 툭, 지적해 주는 말만 곁들여 줬다.

―안 그래도 엔딩에서 엄청 감탄했어요. 유영 씨 눈빛에서는 불이 나오는데 표정은 울 것 같다고 해야 하나. ‘파워 처연’을 연기한다면 그런 표정이 나오지 않을까. 저도 한 수 배우고 싶을 정도였거든요, 하하.

이규빈의 재수 없는 무대 평이 이어졌다.

―그러면, 위캐니즈 여러분, 무대 감사합니다.

‘하 그 부분을…….!’

나는 속으로 개탄했다.

채이레가 ‘작사는 유영이 형이 다 했다’라고 고발(?)한 부분이 통편집되어 버린 것이다.

이 부분을 싹 날리다니 분하기 그지없었다.

훈훈한 분위기에 내 지분을 싹 끌어올려 줘서 서해든 팬들 입막음용으로 아주 훌륭한 장면이었는데.

늘 미웠던 제작진이 새삼 더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위캐니즈가 들어간 후에는 루프세븐의 무대가 시작됐다.

완전히 다크한 분위기의 곡으로, 위캐니즈와 아예 상반되는 곡이었다.

오히려 서로에게 나았다.

첫 무대는 그냥 소개하는 느낌으로 보여 주는 자리인 것 같았다.

심사나 인기투표 같은 건 없었다.

방송에선 심사 기준과 공정성 등에 대해 열심히 자기 항변을 펼치고 있었다.

방송이 끝자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 주]

어느덧 다음 주 예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두 번째 미션이 공개된다]

글자가 커다랗게 뜨고.

[?? : 사실 저는 좀 불만이 있긴 했어요]

누군가의 불만이 담긴 인터뷰가 나왔다.

어그로용으로 딱이군.

[?? : 어어! 문 닫힌다!!]

……어쩐지 낯이 익다.

모자이크에 음성 변조까지 입혔지만, 누군지 알 것만 같다.

[이규빈 : 위에 해당하는 분들은, 녹화에 참여하실 수 없습니다.]

다음 주 방송에선 우리 백겸이가 시청자의 제물이 되겠군.

[?? : 좀 난감하긴 했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익명의 인터뷰가 또 나왔다.

나는 아니다.

그런데 무언가 익숙하다.

아마 우리 멤버 중 한 명인 것 같았다.

하람이인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최강아이돌>의 하루]

[?? : 추운데 여기서 기다려야 해요?]

순수하다 못해 듣는 사람의 뇌까지 청순하게 물들여 버리는 이 질문은 무조건 채이레구나.

[아이돌이여, 최강이 되어라

<최강아이돌>

다음 주 토요일에 공개됩니다]

[멤버별 개인 직캠 및 풀버전 무대는 홈페이지에서 다시 보기가 가능합니다]

“끝났다!”

그렇게 방송이 끝이 났다.

윤산호가 개운하다는 듯 짝짝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흠…….”

서해든은 골똘하게 생각하는 듯한 소리를 냈다.

나도 따지자면 서해든에게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였다.

방송이 뭐랄까…….

굉장히 공격적일 줄은 알고 있었는데, 너무 대놓고 공격적인 부분이 있어서 걱정이 될 정도였다.

보이콧을 하겠다고 나선 팬들일지라도 줏대가 있다.

첫 방송은 보고 결정하자는 마음으로 다들 방송을 봤을 것 같은데.

이래서는 정말…….

멤버들이 하나둘씩 화장실을 가고 개인 핸드폰을 보는 등 쉬는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도 스트레칭을 하면서 핸드폰을 들었다.

반응을 살필 시간이었다.

본방송보다 더더욱 긴장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무언가 하나의 확신을 가졌다.

의심을 넘은, 강한 확신이었다.

그것은.

팬들이 이런 방송을 잘 안 볼 것 같다는 확신이었다.

솔직히 요새 팬들은 맹목적인 바보가 아니다.

방송가의 의도대로 화내고, 웃고, 우는 우매한 존재들도 아니다.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그에 따른 합리적인 덕질을 한다.

물론 맹목적인 사랑을 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달콤한 자기 만족감도 무시할 수 없다.

그것이 덕질의 짜릿함이라면 짜릿함이겠지.

그러나 최근에는 물질적으로, 감정적으로 모든 걸 쏟아붓는 추세는 아니다.

그런 팬들이 여전히 많을지는 몰라도, 팬덤 내에서 그런 분위기를 강요하는 현상은 예전에 비해 많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욱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제작진들이 누가 봐도 악마처럼 굴고 있는데?

작정하고 악마의 편집 그 이상을 현현시키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너무나도 잘 보여서 어이가 없을 지경인데?

아무리 요새 아이돌들이 자신이 받는 사랑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고 할지라도.

배부른 소리를 하고 거만하게 굴지라도.

동태 눈깔이 되어 일에 집중을 하지 않는,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 준다 할지라도.

어쨌든 좋아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 존재들을 부정적으로 굴려 먹는 방송가를 욕하면 욕했지, 이렇게 방송가의 노골적인 의도에 편승해 아이돌을 욕하는 분위기는 전혀 아닐 것 같은…….

<@ 이 방송…… 뭔가 개운하다>

“응?”

이게 뭐지?

<@ 제작진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는 알겠음…… 그 방법이 꽤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것도 알겠음. 그러나 왜인지 공감이 가는 건…… 나도 직장인이기 때문일까?>

응?

아냐 아냐.

팬이 아니겠지.

프로필 사진을 보자.

“…….”

내가 알기론 이 직찍에 대문짝만하게 나온 면상은.

브이오브이에서 그나마 봐 줄 만한 녀석이다. 의민.

흠.

그렇다.

브이오브이 팬이라서 이렇게 시니컬한 반응을 보여 주는 걸 수도 있다.

첸스틴 팬덤으로 가 보자.

<@ ……첺첸이들 지각썰이 진짜였군요>

└ 핑스 내려 주세요

└ 뭘 혼자만 아는 척 당당하게 루머 퍼뜨리고 있네. 글 내려요, 팬 맞아요?

……여기도 한바탕 난리가 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상하다. 사전 조사를 하기로는 이 팬덤이 가장 충성도가 높은 팬덤이었는데.

하긴, 속을 까보기 전까진 모르는 법이다.

원래 아주 오래전 지구가 대멸망을 맞은 이유 중 하나가 대륙이 하나로 다 연결된 탓이라고 했다.

대륙 아래로 핵의 열이 빠져나가지 못해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이게 바로 첸스틴 팬덤의 실체였군.

예의 주시할 가치가 있는 문화적 사료이다.

그럼 루프세븐은 어떨까.

여기는 연령대가 높은 만큼 더욱 성숙한 팬덤 문화를 보여줄 수도 있다.

<@ 방송 본 분들, 저는 솔직히 이딴 방송에서 룹센이들 별로 안 나오는 게 오히려 다행인 것 같습니다. 어떤 방송이든 룹센이들 의지로 나온 거니 그건 존중하지만~~ 이런 방송에선 차라리 얼굴 덜 비추는 게 오히려 인성짱짱돌 인증인 셈.>

└ 적극 동의요. ㅋㅋ

└ 대찬성이요. 제작진이 저렇게 쌍심지를 켜구 감시하는데도 나올 꺼리가 읍었다는 건~ 인증 땅땅이쥬.

와, 여기는 굉장히…….

도인의 영역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분들에게 인생 가르침을 한 수 받고 싶다.

다음, 아이오너.

아이오너는 예상한 반응 그대로였다.

여기는 맹목적이긴 한데 그 방향이 좀 특이하다.

<@ 회초리 가지고 온나>

<@ 저희 차례는 언제 오나요?>

<@ 까빠들 또 지랄 났네. 이딴 방송을 왜 만들어서 으휴 욕하면서 좋아하는 게 뭔 자랑이라고…… 팬덤 분위기 개짜증나요, 진짜ㅠㅠ>

간혹가다 (나름) 정상인도 보였는데.

100명의 욕쟁이 중 1명의 고운 심성이라 그런지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는 것 같았다.

자, 그럼 이제 우리 그룹이다.

제일 마지막에 보는 건 조금 떨려서이다.

일단 타이틀부터 검색을 해보자.

<@ 와 씨 토털 좋은데? 가사 왤케 짠함>

<@ 토털 미쳤다>

<@ 토털 이거 어디서 사 왔냐 돈 냄새가 나는데>

예이, 미래에서 사 왔습죠.

죄송합니다. 사실 훔쳐 온 겁니다.

……반응이 매우 좋다.

기대해 봐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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