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자인데요, 망돌 좀 내려주세요-63화 (63/118)

#63화

[그리고 다음 날]

[오전 5시 57분]

방송은 그룹별 미션 곡을 소개한 뒤, 바로 다음 날 시퀀스로 넘어갔다.

―컵라면 먹고 싶어요.

―매점에 팔던가?

―아침 먹을 때 같이…….

풀 샷으로 잡힌 구도 안에 인영 두 명이 발을 동동 구르며 연습실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대기하고 있는 두 사람은 누구?]

[유영 : 아…… 연습실 예약하려고요. 선착순이래서…….]

[백겸 : 저어는…… 유영이 형 따라 나왔어요.]

유영과 백겸이 후드 집업을 뒤집어쓰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조하연은 가슴으론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사실 이 아픔은 3초를 가지 못했다.

일단 존나게 기특하기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이따 방송 끝나고 올릴 클립’ 리스트에 해당 장면을 갱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미치게 귀여웠다.

유영의 후드 차림은 조하연이 좋아하는 모먼트 중 하나였다.

게다가 아침 일찍 연습실을 예약하러 나왔다니.

이보다 더 부지런할 수가 없다.

인성으로도 영업이 쌉가능하다.

“근데 안유영 말야, 뭔가 카메라 앞에서 좀 뚝딱거리지 않아?”

김민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음, 그런가…….”

조하연은 작게 대꾸했다.

사실 그녀도 조금 신경이 쓰이는 중이긴 했다.

안유영이 카메라만 보면 약간 굳는 느낌이 든달까.

카메라랑 친숙하지 않은 느낌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쟤도 아이돌 4년 차인데 어째서 카메라를 보면 굳는단 말인가.

그냥 과하게 긴장해서 그런 것이려니.

제작진 십새끼들 얼마나 지랄을 해 대길래 애가 저렇게 카메라만 보면 뻣뻣하게 굳어?

슬프지만 그렇게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1등으로 연습실을 빌리는 위캐니즈와 그 뒤로 예약한 루프세븐]

[첸스틴은 마지막으로 연습실을 빌리게 됐다]

“꼬시다.”

“흠…….”

굳이 연습실을 저렇게 한정해서 개방해야 하나?

김민정은 프로그램 룰에 근본적인 의문을 품었지만, 굳이 입에 올리진 않았다.

[무대 회의를 시작하는 위캐니즈]

[하람 :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이 콘셉트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분명히 우리에게서 티가 날 거야. 그러니까 흉내를 낸다고 생각하면 안 돼! 백겸이처럼 그저 좋아하는 마음으로 하면 과해져서 그것도 안 돼.]

[백겸 : 악, 너무해.]

“으하하하하.”

“왜 웃어?”

“공하람이 은근히 뼈 때리는 말을 잘해. 백겸을 존나 잘 팬다니까. 아 속 시원해.”

“……넌 그렇게 백겸이 싫냐?”

“아니, 뭐, 싫은 건 아냐. 그냥 말실수도 너무 많이 하고 그래서 볼 때마다 아슬아슬 걱정이 되는 것뿐이지. 어쨌든 쟤가 실수하면 욕은 그룹이 처먹는 거니까. 나는 그런 게 좀 걱정이라는 거지 그냥.”

……보통은 그런 걸 두고 바로 ‘싫다’라고 말하지 않나?

김민정은 머릿속에 ‘조하연은 백겸을 싫어한다’라고 입력했다.

[유영 : ……총을 가져 온다고?]

[하람 : 응? 아니지! 뭐라는 거야!]

[소품을 준비하는 위캐니즈]

“오오, 얘네 뭔가 하려나 보다.”

김민정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집중했다.

유영이 종이에다가 슥슥 스케치를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졸라맨과 잡다한 메모라 잘 알아볼 순 없었지만, 굉장히 꼼꼼하게 메모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음, 되게 회의하는 직장인 같네.’

김민정은 무심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유영 : 태오야, 여기 서 봐.]

[태오 : 응.]

[유영 : 음, 상박이 좀…… 태오는 좀 붙어야겠다.]

[산호 : 저는 하얀 거 입고 싶어요.]

[유영 : 오키.]

[의상 콘셉트를 정하는 리더 유영]

“하, 안유영 못하는 게 뭐지.”

“그러게. 신기하다. 코디까지 생각하네.”

조하연은 가슴 깊이 감동했다.

저런 기특한 장면을 고작 ‘의상 콘셉트를 정하는 리더’ 따위의 건조하고 버석한 자막으로 처리하다니.

제작진 자격 실격이다.

이런 장면은 ‘아기새들을 살뜰히 챙기는 어미새’ 정도로 묘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조하연은 스스로 다소간 피해망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안유영이 편집에서 굉장히 박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그 일례로.

[사이 좋은 토끼 가족 같은 루프세븐]

[첸스틴은 오늘도 왁자지껄 고등학교가 따로 없다]

[브이오브이만의 차분함이 드러난다]

다른 그룹은 회차당 최소 2~3번씩 이런 주관적인 자막을 달아 주는데.

위캐니즈는 그런 게 없었다.

그냥 ‘회의하는 위캐니즈’, ‘연습하는 위캐니즈’, ‘지쳐 보이는 하람’ 등등 짤막하고 드라이한 보고형 자막이 끝이었던 것이다.

‘걍 내가 위캐니즈만 너무 쳐다봐서 그런 거겠지…….’

조하연은 최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덮어 두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아주 좋은 시기다.

<토털> 도 잘 됐고.

어쨌든 이 방송의 악편 그룹은 아이오너로 낙인찍힌 것 같고.

적당히 3등 정도로 졸업해서 새 앨범 내면 그거 열심히 쪽쪽 빨 생각이나 하면 되는 거였다.

이후로는 각 그룹의 회의 장면이 차례대로 나왔다.

첸스틴은 가장 최신곡을 거의 콘셉트 변동 없이 그대로 보여 주기로 했다.

조하연은 그걸 보고 ‘게으르다’라며 맹비난을 했다.

브이오브이는 청량 콘셉트의 데뷔곡을 딥한 하우스 장르로 편곡해 선보일 계획이었다.

루프세븐과 아이오너도 각각 회의를 거쳤는데.

솔직히 위캐니즈만 겨우 아는 김민정으로선 별로 눈에 쏙 들어오는 놈이 없었다.

아, 한 놈 있긴 했다.

― 귀엽게 가면 어때? 다들 각 잡고 갈 테니까, 우리는 약간 숨통 틔워 주는 느낌으로.

고불고불한 다운 펌을 한 남자였다.

눈이 동그랗고, 입술이 얍실했다.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 느낌이 꽤 귀여웠다.

“쟨 누구야?”

“응? 쟤? 루프세븐 희래.”

“어엉.”

“왜, 관심 있어?”

“난 아이돌 관심 없다~.”

김민정은 거짓을 1g도 담지 않고 진심으로 대꾸했다.

각 그룹의 회의 장면을 보여 준 후, 멤버들의 연습 과정이 공개됐다.

다섯 그룹을 동시에 보여 주려다 보니 짤막짤막하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조하연이 좋아하는 안유영은 5초 정도 나왔다.

아이오너가 서로 싸우느라 분량을 왕창 잡아먹은 덕이었다.

조하연은 ‘그래도 쌈박질하는 거 10분 나가는 것보다야 선량한 5초가 낫다’라고 평했다.

이번 방송은 지난 회차처럼 엄청나게 자극적인 인터뷰가 폭격처럼 쏟아지는 편은 아니었다.

첫방만 어그로를 끌고 두 번째부터는 얌전하게 갈 계획인가 보다.

김민정은 그런 방송국의 처사가 현명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속도감 있게 전개되던 방송은.

어느덧 각 그룹의 무대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

“오, 이제 나온다.”

위캐니즈는 아이오너와 루프세븐 다음인 세 번째였다.

무대에 앞서 간단한 인터뷰가 나왔다.

[곡의 콘셉트는?]

[하람 : 곡의 정체성인 힙합 분위기는 유지하되, 안무와 소품, 의상 등에 신경을 썼어요. 제가 직접 소품도 구했고요, 하하. 재미있는 무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전 포인트는?]

[백겸 : 제가…… 춤을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하하.]

[유영 : 안무에 각이 잘 살게끔 연습했어요, 뭐랄까…… 비유하자면 군악대 같은 느낌?]

[이레 : 멋있어요.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해든 : ……잘 맞아요.]

[유영 : 안무 설명을 좀 더 하자면, 2절이 끝나고 나오는 브릿지 파트랑 엔딩을 주목해 주세요. 단체로도 개인으로도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위캐니즈가 새롭게 재해석한 수록곡 . 지금 공개됩니다]

“꺅, 위캐니즈 오빠들 파이팅.”

“하아아아.”

영혼 없는 응원과 영혼이 넘치다 못해 심연으로 가라앉는 한숨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리고 무대가 시작됐다.

[위캐니즈 : RELOAD]

[안유영(서브 댄서)

해든(랩)

태오(서브 보컬)

공하람(프로듀싱)

백겸(메인 댄서)

윤산호(메인 보컬)

이레(서브 보컬)]

일렬로 서 있는 위캐니즈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자 흰 제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유영은 하얀 노카라 재킷에 차이나 셔츠를 입고, 흰 바지를 입었다.

골반에는 얇은 은색 체인과 레이스 띠가 레이어드되어 있었다.

그 디테일이 무척 예쁘다고 조하연은 생각했다.

나머지 멤버들도 다 재킷을 걸친 상태였다.

회의할 때 이야기가 나왔던 소총 아이템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Yo

몸을 일으켜 눈빛을 밝혀

가슴을 넓혀 숨을 들이켜

‘와, 개쪽팔려’

조하연은 순간 그런 생각을 해 버렸지만, 애써 고개를 휘휘 저어 잊어 버렸다.

무대나 보자.

영원한 길티 플레저는 없다.

어차피 세상에 드러날 곡이었다.

일렬로 서 있던 멤버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안무를 시작했다.

웨이브는 전혀 없었고, 각 잡힌 안무였다.

거의 랩밖에 없는 가사였지만 랩이 어렵지는 않아서, 모두가 무난하게 파트를 나눠 가졌다.

해든도 무난하게 랩을 소화했다.

‘……한 방이 없네.’

조하연은 탄식했다.

노래는 확실히 임팩트가 없었다.

다들 제 핏에 맞게 잘 차려입은 모습은 보기 좋았는데.

유영의 머리 스타일도 반깐이라 예뻤는데.

<토털>처럼 자극되진 않았다.

역시 노래가 구려서 그런가.

왜 이런 노래를 뽑아서는!

“어?”

“?”

그때였다.

2절 후렴이 끝나고 브릿지가 나올 타이밍이었다.

갑자기 노래가 멈췄다.

정적이 찾아왔다.

멤버들은 일렬로 선 후, 열중쉬어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1, 2, 3초.

멤버들이 딱 맞는 타이밍으로 동시에 고개를 치들었다.

그리고 무대 뒤편으로 걸어가면서 자켓을 벗었다.

벗은 자켓은 무대 뒤편으로 미련 없이 던졌다.

그리고 무대 뒤 끝까지 걸어간 멤버들이, 바닥에서 무언가 집어 입기 시작했다.

방탄조끼였다.

“와, 쟤네 뭐 하나 보다.”

“잠깐,”

김민정은 조하연의 다급한 음성에 코멘트를 참기로 했다.

방탄조끼를 입은 멤버들은 이윽고 아이템을 하나 더 장착했다.

방탄 고글이었다.

어느덧 소총 소품까지 쥐어 든 일곱 명이 다시 일렬을 맞춰 무대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아까는 재킷이 있어서 나름 포멀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런 힙합 곡에 웬 재킷, 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와이셔츠 차림에 방탄조끼, 고글, 소총…….

흡사 드라마에 나오는 요원들 같기도 했다.

동그랗게 커진 하연의 눈이 뚫어져라 TV를 응시했다.

가사 없는 비트가 깔렸다.

멤버들은 소총을 활용해 안무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일곱 명이서 동그랗게 원 모양으로 모인 후, 한쪽 방향으로 돌면서 서로를 겨눴다.

비트가 점점 과열되고, 멤버들은 포복하듯 자세를 낮췄다가, 한 명씩 뒤로 빠르게 물러나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원을 이탈해 두 명씩 짝을 지어 마주 보면서 서로를 겨눴다.

―탕!

“…….”

그리고, 순식간에.

TV 화면이 새까맣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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