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어째서?”
이 익숙한 고통.
악명 수치가 올랐을 때 느껴지는 것이었다.
지금은 아무런 방송도 나가고 있지 않을 텐데, 대체 뭣 때문에?
나는 혼란스러움에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형!”
“아, 깜짝이야.”
내 위로 갑자기 우레 같은 목소리가 쏟아졌다.
고개를 들어 확인해 보니, 희래였다.
얘는 나타날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하는 것 같다.
“괜찮아요? 왜 그래요?”
“아…… 아냐, 별거 아냐.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났어.”
“웬 쥐? 아니 그보다 형, 아까 뜬 인터뷰 클립 봤어요?”
“……응?”
“선공개로 뜬 인터뷰 못 봤어요? 아까 스튜디오에서 공지했는데. 아, 형은 밥 먹고 있었나 그때?”
무슨 이야긴지 이해하지 못한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두통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같이 볼래요? 연습용으로 받은 패드가 와이파이 접속이 되더라고요. 그걸로 다 보고 있어요, 우리도.”
역시나 허술하군.
나는 속으로 제작진을 비웃으면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문제 있는 인터뷰야?”
“나는 우리 팀밖에 못 보긴 했는데…… 일단 봐 봐요. 내 패드 빌려줄 테니까. 형 패드 있어요?”
“없어. 우리 팀 첸스틴 이호가 갖고 있어.”
“그럼 내 걸로 보고 이따 방에 갖다 줘요.”
희래는 사람 좋게 웃으면서 나에게 제 태블릿PC를 선뜻 내밀었다.
“고맙다.”
“뭘, 그런데 형 진짜 괜찮아요? 얼굴에 땀이…….”
“쥐가 심하게 나서…… 괜찮아. 얼른 보고 갖다 줄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황급히 뒤돌아 자리를 떴다.
뒤로 희래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보였지만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방으로 가도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비상구 복도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이크는 켜져 있는 상태였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따라붙는 VJ는 없었으므로 이 오디오에 쌈박질하는 소리만 들어가지 않는다면 내 음성 파일은 버려질 것이었다.
[<최강아이돌> 인터뷰 선공개! 리더를 향한 멤버들의 마음은?]
태블릿PC 잠금 화면을 풀자마자 클립 목록이 떴다.
루프세븐은 희래가 이미 싹 다 훑어본 듯 회색으로 조회 표시가 되어 있었다.
스크롤을 쭉쭉 내리자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보였다.
백겸이었다.
“언제 또 이런 걸 했대…….”
나는 중얼거렸다. 아마 내가 개인 인터뷰를 했던 것처럼 쟤네도 개인 인터뷰를 꽤 많이 했던 것 같았다.
영상 아래에는 담당자가 적어 둔 안내글이 보였다.
<시청자 여러분, 토요일에 있을 3화 본방송, 다들 기다리고 계시나요?
본격적인 방송이 나오기에 앞서서, 녹화 초반에 진행했던 인터뷰를 선공개합니다.
<최강아이돌> 참가자들이 가진 여러 진솔한 생각과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낸 생생 인터뷰!
이번 클립을 시작으로 기습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인터뷰라면…….
나의 그 ‘매출’ 드립과 제물로 바친 ‘서해든’ 인터뷰밖에 기억이 안 나는데.
위캐니즈 영상은 하나. 백겸이 썸네일이었다. 일단 보기로 했다.
[백겸 : 어…… 우리 리더요? 글쎄요…….]
[하람 : 음…… 마음이 좀 여린 것 같은데 말을 잘 안 해서.]
[이로 : 착하죠, 뭐.]
[태오 : 사실 잘 모르겠어요.]
[산호 : 요새 좀 바뀐 것 같기도 하고…….]
[해든 : ……흠.]
“…… 저게 뭔데?”
스튜디오가 어두워지고, 화면에 뜬 건 우리 멤버들의 인터뷰였다.
[Q. 우리 리더를 소개해 주세요.]
[하람 : 우리 리더…… 이름은 안유영이고, 기본적으로 좀 착해요. 막 영악하고, 자기 거 잘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저희 말 잘 들어 주려고 하고.]
음, 애매한 평가인걸.
[백겸 : 이거 나쁜 점도 이야기해야 하는 거죠?]
“아니…….”
벌써 피곤하군.
의미 없는 나의 대답이 비상구로 퍼졌다.
[이로 : 아마 많은 혼란을 겪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표정이 좀 솔직한 편인 것 같아요. 말은 잘 안 해도.]
[태오 : 좋으면 말이 많아지는데, 화나면 말이 아예 사라지는 편인 거 같아요.]
[Q. 어떨 때 화를 내나요?]
[태오 : 엄…… 사실 저, 유영이 형이 화내는 거 본 적 한 번도 없어요. 아, 있다. 지난번 연습 때…… 아, 이거, 제가 진실 말해도 되는 건가요?]
‘아니!!!’
백겸까진 예상을 했는데 태오까지 이렇게 나를 배신할 속셈인가.
나는 문득 몰려온 불안감에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산호 : 좀 무서운 면이 있어요. 원래는 되게 순하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느꼈어요.]
그야 내가 최근에 윤산호를 잡으러 그의 집까지 찾아간 전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겸 : 솔직히 좀 기분파예요.]
“아 놔.”
백겸의 인터뷰와 동시에 내 입에서 작은 탄식이 터졌다.
[백겸 : 종잡을 수가 없어요. 기분 좋아 보일 땐 잘 받아 주다가 좀 맘에 안 드는 거 있으면 뭐라 하기도 하고……. 아직 제가 유영이 형을 잘 모르는 걸 수도 있고.]
백겸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놀렸다.
저러면 본인에게도, 나에게도 완전히 악영향이 온다는 걸 전혀 모르는 걸까?
너도 아이돌이잖아. 나는 당장이라도 찾아가 백겸의 멱살을 잡아채고 싶었다.
그렇게 한다면 나는 아마 다음 주 방송이 나오는 바로 그날 미리 관에 들어가 있는 편이 좋겠지.
이렇게 머리 아픈 절차도 없이 끔살 쌉가능이다.
[산호 : 백겸이 형이 모르겠다고 했어요? 하하, 진짜 솔직하게 얘기했네. 그런데 저도 마찬가지긴 해요. 기본적으로 말을 잘 안 했거든요, 그 형이. 요새는 잘하는 편인 것 같기도 하고…… 형이 좀 바뀌었다고 느껴질 때도 있어요.]
[Q. ‘요새’는 언제인가요?]
[산호 : 어, 그게, 음, 사실, 그러니까…….]
[Q. 그 ‘라방’ 이후인가요?]
[산호 : 어…… 네. 제가 거짓말을 잘 못 해서…… 하하. 그땐 유영이 형이랑 대화로 잘 풀었습니다.]
산호가 고개를 숙였다.
하긴, 그때 내가 공개적으로 댓글을 다는 바람에 한 줌 팬덤에 살짝 난리가 나긴 했었지.
제작진 모니터링 능력이 꽤 준수하다고 생각했다.
[Q. 동갑내기 리더는 어떤가요?]
[해든 : 음…… 그냥 뭐, 리더는 리더고, 저는 저니까요.]
이 인터뷰에서는 입을 많이 놀릴수록 나락으로 가는 형국이었다.
말을 아끼고 단답으로 대답하는 서해든이 가장 믿을 만한 녀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재수가 없더니, 얘도 쓸 만할 때가 있구나.
[Q. 싸운 적은 없었나요?]
[해든 : ……글쎄요. 저는 잘.]
다소곳하게 손을 무릎 위에 올려 둔 서해든이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오호, 저 녀석 봐라, 꼴에 사람 좋은 척도 하네?
[Q. 다른 멤버들은 리더가 ‘요즘’ 조금 변했다고 말하고 있어요. 좀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는데. 해든 님의 생각은 어떤가요?]
해든은 작가의 질문을 듣고 고개를 갸웃하며 잠깐 생각하는 듯했다.
[해든 : 변했다라…….]
서해든의 고민이 길어질수록 내 등도 축축하게 젖어 갔다. 그 입에서 무슨 폭탄 발언이 나올지…….
[해든 : 변했다기보다는,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Q. 돌아간다고요?]
[해든 : 네. 예전으로요.]
[Q. 좋은 의미인가요?]
[해든 : 나쁜 뜻은 절대 아닙니다.]
서해든은 애매한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그룹으로선, 나로선 잘된 일이지만, 이번엔 내가 궁금해져 버렸다.
뭘 돌아간다는 걸까.
게다가 서해든, 이런 자리에서 나를 미친 듯이 깔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장 말을 아끼고 있다.
“설마…….”
……나를 생각해서 저러는 건가?
“그럴 리가.”
나는 바로 내 생각을 부정했다.
저놈이 그럴 리가 없지.
팀의 미래가 걱정되어 그러는 거라면 몰라도.
[Q. 리더의 단점도 솔직하게 말 해 주세요.]
[산호 : 자기 얘기 잘 안 한다는 점?]
[하람 : 좀 답답해요. 최근엔 아닌데. 혼자 해결하려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백겸 : 약간 일이 생기면 좀 회피하려는? 그런 게 있어요.]
[태오 : 겁나 삐져요.]
[이로 : 저까지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긴 한데…… 이해해요. 리더니까.]
[해든 : 하람이가 답답하다고 했어요? 뭐…….(끄덕)]
“하…….”
나는 참담한 표정으로 악명 수치를 확인했다.
[악명 수치 : 87
악명 키워드 : 무능, 싸가지, 괘씸, 속물]
“뭐, 한두 가지가 아니네. 이번에는.”
무능은 저들의 인터뷰로 확인했고, 나머지도 확인해 봐야겠다.
[<최강아이돌> 인터뷰 선공개! 리더들의 속마음은?]
이 인터뷰는 정확하게 내가 참여했던 기억이 났다.
[유영 : 제 이름은 안유영입니다. 위캐니즈 리더입니다. 데뷔한 지 5년 차 됐습니다. 리더고, 음, 서브 댄서와 보컬을 맡고 있습니다.]
잔뜩 긴장한 안유영의 모습이 보였다.
자막에도 ‘꽤 긴장한 듯한 유영’이라고 표시됐다.
비호감은 아니지만…… 어쩐지 부끄럽다.
[유영 : 솔직히 활동하면서 계속 끝을 생각하게 됐거든요…….]
[Q. 끝이면 해체요?]
[유영 : ……네.]
[Q. 왜요?]
[유영 :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매출 때문이 아닐까요.]
망했다.
이거구나.
이거 때문에 내 대가리가 터질 위기에 놓였던 거야!
[카메라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유영, 말을 아끼는 걸까?]
자막이 짧게 나간 후, 망할 안유영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유영 : 사실 모두가 아시다시피 이 업계는 완벽한 압정 구조지 않습니까? 엄밀히 말하면 프리랜서이니 연봉제나 호봉제는 꿈도 못 꾸고요……. 아 물론 제가 연봉제나 호봉제를 꿈꿨다면 당연히 아이돌을 하지 않았겠죠?]
[유영, 잠깐 고민하더니]
[유영 : ……현실적으로 어떤 꿈이든 생활이 극히 어려워지게 되면,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솔직 인터뷰야 탈퇴 발표문이야?
내가 ‘현실적으로’라고 말하기 이전에 줄줄줄 깔아 놨던 쿠션이 다 사라졌다.
요컨대, 팬들을 너무 사랑한다거나, 팬들을 돈으로 보고 있지 않다거나 따위의 말들 말이다.
내가 얼마나 길게, 절대 자를 수 없게 일장연설을 해 놨는데 그걸 다 편집하다니!
[Q. 돈 얘기하셨잖아요. 얼마나 생활이 어려웠던 거예요?]
[유영: 어…… 말 그대로 정산을 거의 못 받았습니다.]
정산 이야기도 고스란히 실렸다.
아, 쪽팔려, 나도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느껴지는데 팬들이나 다른 시청자들은 얼마나 우리를 얕볼까.
엄청난 후회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사이 통증은 더욱 격해졌는지,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을 꽉 쥐고 있었다.
[Q. 멤버 해든 씨가 연락 두절이었다면서요?]
[유영 : 아…….]
나 이 인터뷰 다 보기 전에 죽는 건 아니겠지?
[유영 : ……맞습니다. 이 프로그램 합류 전에 멤버 해든이랑 잠깐 연락이 끊겼습니다. 사실, 저희 팀은…… 최근에 이런저런 이유로 지속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말이 나왔고, 그래서 해든이랑 오래 갈등을 빚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Q. 해체인가요?]
[유영 : ……해체는 안 합니다.]
[Q. 그럼 멤버 해든 님의 탈퇴인가요?]
[유영 : 해든 씨는 아시다시피 댄서입니다. 춤을 잘 만들고 잘 추죠. 그걸 더욱 살리고자 기회를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응원해 줬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화면이 전환됐다.
해든의 등장이었다.
리더 인터뷰에 이렇게 다른 멤버가 막 등장해도 되는 거야?
[Q. 멤버들의 <댄오프> 출연 반응은 어땠나요?]
[해든 : 어…… 그냥 잘하고 오라고.]
[Q. 리더의 반응은?]
[해든 : 음…….]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는 해든, 무슨 이유일까?]
그리고 바로 다시 내 인터뷰로 전환됐다.
[유영 : 서로 싸웠던 건 아니고, 바빴던 거죠. 각자. 하하!]
“와.”
이걸 이렇게 편집하네.
나는 분명히.
‘해든이라면 더 많은 사람에게 그 대단한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라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저 말은 다 날아가고, 결국 서해든과 안유영은 소소하게 쌈박질이나 해서 감정의 골이 생겼고, 그로 인해 아이돌 생활에까지 차질이 빚어졌다는 식으로 방송이 되어 버렸다.
안유영은 리더인 주제에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멤버들에게 ‘무능력’에 가까운 질타를 받은 것까지 완벽했다.
이것이 제작진의 시나리오였다.
이것이 김 PD가 나와 서해든으로 한탕 하고 싶었던 이유인 것이다.
“젠장…….”
멤버들에게도 신뢰를 얻지 못했고.
제작진에게는 제대로 찍혔다.
지금 조에서는 완벽히 리더 자격을 박탈당한 찌끄레기다.
“뭐 한 거냐, 나…….”
나는 결국 계단에 앉은 채.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