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명치가 너무 조여 숨이 찰 지경이었다.
나는 씨근덕거리면서 침을 삼켰다.
화장실에 처박혀서 혼자 모니터링하겠다는 나의 선택은 실로 완벽했다.
지난 선공개 인터뷰 때부터 제작진이 해든과 나의 사이, 나의 버르장머리 없어 보이는 태도 등을 빌미 삼아 나를 ‘찍은’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출연권부터가 PD를 협박해서 얻어 낸 것이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서사’를 활용하라며 거의 입으로 신체 포기 각서를 썼으니까 말이다.
“어쩌라고…… 몰라몰라. 죽이든지 말든지.”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흩뜨리며 중얼거렸다.
“…….”
그런데 이상했다.
나의 이 배짱.
어디서 자꾸만 솟아나는 거지?
방송으로 이미 엄청나게 물먹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저 숱한 악플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할 일만 잔뜩 쌓이는 지금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진짜 끝까지 가 보고 싶게 만드네, 이 사람들.”
나…… 변태인가?
즐기는 것까진 아니지만, 갈수록 오기가 생겨나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좌절이 지겨워진 탓인 걸까.
[한편]
[연습이 끝나고 돌아가는 태오]
또 다른 댄스 그룹인 태오가 연습실을 나와 걸어가는 모습이 방송에 나왔다.
[그때 코너에서 등장한 유영]
아, 저 때, 기억난다.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쳤었지.
특별한 대화 없이 인사하고 지나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편집점이 어디에 있다고 이 방송을 내보내는 건지 모르겠다.
[태오 : 어, 형!]
[반가워하는 태오]
[유영 : 어…… 안녕.]
[유영은 피곤해 보인다]
[태오 : 어디 가? 연습 잘 돼?]
[유영 : 뭐, 그냥…… 그렇지.]
[태오 : 아…… 그래~.]
[짤막한 대화 후 헤어진 두 사람]
[어쩐지 서먹서먹해 보인다]
자막 치는 사람 입을 틀어막아 버릴까?
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저 때는 태오도 피곤해 보였고 나도 피곤했다고.
지금 대화가 좀 짧다는 이유로 위캐니즈 멤버들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건가?
그런 것 같았다.
오히려 연습하다 말고 복도에서 같은 팀 멤버끼리 잡담하고 있으면 그걸로 편집점 잡아 가지고 욕먹게 했을 거면서…….
“……진정하자. 통편집보단 낫다.”
[Q. 팀을 떠날 생각을 한 적 있나요?]
[해든 : 아뇨. 없어요.]
[Q. 리더 유영이 말하기를 해든이 연락 두절이었다고 하던데요.]
[해든 : ……그래요?]
봤다.
봐 버렸다.
인터뷰 질문을 받은 해든의 동공.
일순간 조명이 꺼지듯 안광이 싹 사라졌었다.
……젠장, 제작진 구워삶는 것보다 쟤 하나 데리고 오는 게 1000배는 더 어려운 난이도일 것 같은데.
고통과 걱정으로 등에 식은땀이 주륵주륵 흘렀다.
내가 자초한 일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당황한 듯한 해든]
그런 해든의 아래로 자막이 떴다.
제작진이 저 순간을 놓쳤을 리가 없지.
[Q. 해체랑 탈퇴 때문에 오래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고 유영이 말했거든요.]
[해든 : ……네.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요.]
기특하다, 서해든!
나를 죽이고 싶은 눈빛을 하고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수습을 하려고 입을 놀리고 있구나.
너란 남자를 다시 보게 됐다.
[Q. 리더는 해든 씨가 솔로 기량을 살리고 싶어서 단독으로 ‘댄오프’에 나갔다고 설명했는데요.]
[해든 : …….]
서해든이 무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까진 안 물어봤거든.”
나는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딴지를 걸었다.
그렇게까지 ‘서해든의 욕심이 개인 활동을 자초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긴 않았거든.
이제 제작진에게 별 기대도 없어서 그런지 화도 안 났다.
[해든 : 틀린 말은 아니죠.]
서해든은 웬일로 덤덤하게 시인했다.
[해든 : 그렇지만…… 저는 팀 활동도 좋아요.]
서해든은 그렇게 말하고선,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인터뷰는 그렇게 끝났다.
“와, 방금…….”
서해든이 팀 활동이 좋다고 얘기한 게 맞나?
이거 진짜인가? 일부러 나중에 크게 한 방 먹이려고 저러는 건 아니겠지?
난 분명 서해든이 예전에도, 지금도, 나중에도 솔로 활동을 더 원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댄오프> 대기실에서 그를 설득할 때 너무나도 힘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팀 활동이 좋다고? 이제 와서?
그러면 내 속은 왜 썩인 거냐?
[온라인 내 언급이 줄어들어 악명 수치가 내려갔습니다.]
[악명 수치 : 89
악명 키워드 : 속물, 무능, 의지박약, 꿔보]
키워드는 여전히 개판이지만 악명 수치는 확실히 떨어졌다.
서해든의 개인 팬들이 서해든의 저 말로 인해 사격을 일시 중단한 것 같았다.
하긴, 팀이 좋다는 놈을 두고 그놈이 속한 팀을 욕하는 건 그 놈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니까.
그들도 인간이라면 당황해서라도 악플 쓰던 손가락을 멈췄겠지.
[연습 3일 차]
[유영의 댄스팀 연습실]
[열정적으로 연습에 참여하는 멤버들]
여러 팀의 인터뷰와 영상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느덧 다시 우리 팀이 분량을 받을 차례였다.
[찬영 : 형, 어디 가?]
[유영 : 아, 물 좀 뜨러…….]
[갑자기 밖으로 나가 버리는 유영]
[새미 : 어…… 유영이 형 빈 자리는 어떡하지?]
[이호 : 그냥 해. 오면 다시 맞춰 보자.]
[그러나 물을 뜨러 간다는 유영은 오래 동안 돌아오지 않고]
[새미 : 사실 유영이 형이 한 번 자리를 비우면 좀 오래 걸려서, 음…… 배가 많이 아픈가, 이렇게 생각했죠.]
[찬영 : 저희끼리 그냥 맞춰 보고, 유영이 형은 중간에 들어와도 잘 따라와서 크게 걱정이 없긴 한데…….]
[한편 유영은]
[정수기에서 물을 받고]
[그 앞에 주저앉아 버린다]
정수기 앞의 관찰 카메라에 내가 주저앉는 모습이 그대로 나왔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유영]
응, 저때 고민이 많긴 했지.
밤새 첸스틴 무대 100번 돌려 보면서 안무 딸 생각에 아주 근심 걱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거든.
음, 예상대로다.
[악명 수치 : 90
악명 키워드 : 싸가지, 괘씸]
어느덧 방송에서 내 이미지는 기본 연습에 제대로 참여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멤버들을 불신하고 아이돌을 ‘돈’ 때문에 하는 괘씸한 속물 아이돌로 자리매김 한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김 PD에겐 내가 더할 나위 없는 먹잇감이라는 사실을 잠깐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뭐, 이제는 크게 상관없었다.
노이즈 마케팅도 마케팅이다.
무플보단 악플이 나은 세상이다.
죽지만 않는다면야 악플 정도야…… 나는 이제 슬리퍼라는 쪽팔린 써방명도 ‘관심’이라는 좋은 단어로 치환해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 슬리퍼 쟤는 오디션 재현 때 대체 왜 운 거임? 일케 무성의하게 할 거면서>
└ 전형적인 자기 연민임…… 지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듯
└ ㅁㅊ 내일 출근하는 내가 제일 불쌍함
└ 222
달글에서도 나만 나오면 욕하는 댓글이 달렸다.
나와 악플로 호각을 다투는 멤버는 솔직히, 아이오너 예은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예은조차도 방송에서는 좀 틱틱 대는 장면만 나왔을 뿐이었다.
그가 욕을 먹는 대부분의 이유는 방송이 아닌 원래 행실에 기인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 얘은 쟤 진짜 성격 뭐야? 아는 사람>
└ 걍 싸가지 없음…… 머리도 비었고…… 근데 뭐…… 팬덤 분위기도 똑같아서 이런 분위기 좋아하면 재밋게 덕질 가능
└ 까빠 천국
└ 까빠도 빠다
└ ㅋㅋㅋㅋㅋㅋ]
까빠도 빠다. 엄청난 발언이군.
나는 새삼 이들의 달글 수위에 감탄했다.
현재 덕덕포레스트 <최강아이돌> 달글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었는데.
나는 그중에서 가장 악독한 편에 속하는 달글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팬 달글도 있었지만,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았다.
보면 기분이야 좋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내가 공략하는 타깃층은 바로 이 달글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모니터링해 본 결과, 나의 생명을 위협하는 부류는 두 가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첫 번째, 나를 초반부터 집요하게 괴롭혀 온 주역들.
서해든의 팬들이다.
이들은 수면 위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고로 실시간 모니터링 불가.
시간이 많았다면 위장 잠입이라도 했겠지만 지금은 핸드폰도 만지는데 제한이 걸린 공간이라 나대기가 여의치 않았다.
두 번째는,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자극적인 콘텐츠에 미친 여자들이었다.
이들은 달글이라는 나름의 울타리에 자신들을 가두어 놓고, 열심히 입을 털어 줬다. 내가 잘 볼 수 있게 말이다.
이들의 특징은 특정 출연진의 팬이 없고(있어도 티를 내면 쫓겨나는 분위기다), 아이돌 판에서 구를 대로 구른 베테랑의 멘탈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비록 나를 슬리퍼로 부르는 가차없는 사람들이지만.
어차피 이들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회초리를 든다.
이런 자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청취한다면 얻어 걸릴 만한 게 많이 나올 지도 몰랐다.
어느새 방송은 끝물에 다다랐다.
이번 방송은 따로 무대가 없었다.
다음 주는 드디어 팬들을 처음 만나는 생방송 경연이었다.
“후…….”
나는 변기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악명 수치는 여전히 90에 이르렀다.
감기 몸살처럼 근육통이 몰려왔다. 열도 조금 나는 것 같았다.
“스물다섯이라면서 왜 이렇게 허약하냐 이거.”
나는 무거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곧 서른줄인 내 원래 몸뚱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정도면 방송 녹화를 시작한 이래, 상태창에게 저주받아서 매번 60%의 스턴 상태에 걸려 있는 몸이나 다름없는 것 같았다.
“후…….”
방송이 끝났으니 아마 이제 다시 연습일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연습이라곤 쥐뿔도 안 하는 이미지로 낙인 찍히긴 했지만, 멤버들에게까지 찍히면 곤란하다.
‘그나저나 걔네는 왜 날 뽑은 거야?’
찬영, 새미, 기웅은 이번 인터뷰만 보아하더라도 나보다는 이호를 따르는 것 같았다.
그게 눈치에서 비롯된 아부이든지, 진짜이든지간에 말이다.
그런데 센터 경쟁전이라는 결정적이자 ‘정치적’ 이기까지한 투표에서 날 뽑은 건 조금 이해가 안 갔다.
일부러 멕이는 건가, 이 녀석들?
‘……그 정도의 지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래도 사회생활 짬밥이 저들보다는 다양하고 많다. 20대 초중반 아이돌 애들? 눈빛만 봐도 대충 무슨 생각 하는지 읽어 낼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저것들은 아무 생각이 없다. 우승에도, 수납에도.
브이오브이와 루프세븐, 아이오너 멤버들 간에 공유되는 정서인 것 같았다.
‘결국 첸스틴이 자연스럽게 1위를 하는 구조겠군.’
악바리가 없으니 당연한 수순이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연습을 가서 찬영, 새미, 기웅과 놀아 줄지, 그냥 잠이나 조금 더 자고 갈지 고민이 됐다.
연습 시간은 1시간 정도 남았다.
잠든다면 쉽게 일어나긴 힘들겠지.
“일단 나가자…….”
그렇게 문을 열었는데.
“……어?”
“뭐 하고 있었어요?”
뜻밖의 인물이 내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