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조명?”
나는 너무 놀라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니다.
조명이 같은 게 아니었다.
별똥별의 꼬리처럼 생긴 그 빛은.
중력을 거스르고 포물선처럼 휘었다.
그러더니 곧장 나에게로 돌진해 왔다.
그리고.
나의 몸을 둥글게 감쌌다.
나를 올가미처럼 감쌌지만 얽매진 않았다.
천천히 좁게 다가오더니, 내 몸에 스르르 흡수되듯 사라졌다.
[사용 완료! 체력이 10 회복되었습니다!]
“…….”
1분 전만 해도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은 어느 순간부터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위캐니즈! 정말 상큼하면서도 절도 있는 무대였습니다. 무대 반응도 굉장히 뜨거운데요.”
이규빈이 무대를 끝낸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가뿐해진 몸으로.
어두운 관객석을 한참을 쳐다봤다.
함성은 여전히 뿜어져 나왔다.
나는 방금 육안으로 그 에너지를 확인하고, 받은 셈이었다.
“유영 님! 어떠셨나요?”
이규빈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말 없이 양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방금.
팬들에게 순수한 마음을 받았고.
그것으로 회복한 것이다.
“……팬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무대를 하면서 한 번 더 깨달았습니다.”
“무엇을요?”
“팬분들이 주신 사랑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걸요.”
“팬 사랑이 대단합니다!”
“그리고…….”
“네.”
“팬분들의 존재가, 저를……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는 걸요.”
그것이 이 개 같은 세계에서 살아남고 싶은 또 다른 이유가 되었다는 것을요.
마지막 말은 꾹 삼키고.
나는 90도로 깊게 고개를 숙였다.
* * *
“1위는! 첸스틴의 <러브 어택> 입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멤버 매치 결과]
[이호 : 560]
[해든 : 130]
그룹 1등에 이어, 각 그룹의 포지션별 투표 결과가 나왔다.
첸스틴과 위캐니즈의 경합은 당연히 해든과 이호의 승부처럼 여겨졌었고.
결과는, 압도적인 이호의 승리였다.
“뭔가…….”
하람이 입을 열었다가,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닫았다.
카메라의 압박을 피하지 못한 것일 거다.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이호 님의 퍼포먼스 정말 멋있었습니다.”
해든은 차분하게 인터뷰했다.
“네, 이제 마지막 경연만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마지막 경연은 현장 투표수와 실시간 문자 투표수로만 집계하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그룹을 응원해 주세요!”
이규빈의 클로즈 멘트로 경연이 마무리됐다.
대기실로 돌아와 녹화 공지를 기다리는 멤버들은 다소 침울한 분위기였다.
나는 하람의 옆에 털썩 앉았다.
“방금 말이야, ‘뭔가 이상하다’라고 이야기하려고 했지?”
“……어떻게 알았어? 형도 그렇게 느꼈어?”
“못 느끼면 바보지.”
나는 일부러 유쾌하게 웃어 보였다.
“야, 서해든.”
“……왜.”
딱딱하기 그지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서해든은 이미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것 같았다.
“상심하지 마. 네가 이겼어.”
“니 나 놀리나?”
“아니, 진심이야.”
나는 서해든을 올곧게 쳐다봤다.
서해든은 그런 나를 쳐다보다가 칫 하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내 말에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
“뭔 소리야?”
“마지막 경연, 파이팅하자.”
“…….”
“그리고, 너무 풀 죽지 마.”
나는 멤버들을 쭉 둘러봤다.
이 천방지축 놈팽이들 모으느라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빌고 달래고 사정하고 농사일 돕고 야반도주하고, 그리고 어? 때리고 맞……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다 모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뭐다?
“우린 우승할 거니까.”
세상은 일단, 기세거든.
* * *
“축하해. 현장 투표 결과 좋더라.”
“네?”
침대에 웃옷을 내려 두던 김문수가 나를 향해 뒤돌아봤다.
“축하한다고, 뭘 그렇게 놀라?”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 제가 정신을 좀 빼 놓고 있어서요, 하하. 고마워요, 형! 위캐니즈도 엄청 잘하던데요. 우리랑 표 차이가 거의 없었잖아요. 마지막 경연, 긴장되네요, 하하.”
김문수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이죽거렸다.
조작으로 1등 해 놓고 저렇게 뻔뻔하다니.
하긴, 그나마 제일 멀쩡해 보였던 이호마저 맛이 갔다.
이미 조작이 아니라고 자기 세뇌까지 뚝딱 끝내서 조작이라는 말에 발끈하고 있던데.
“그래. 긴장해.”
“네?”
“긴장하라고. 긴장된다며?”
“아, 네, 하하.”
“마지막 경연도 잘 부탁해?”
김문수는 찡그리는 듯 웃는 듯 표정을 구겼다.
그래, 많이 웃어 둬.
어느 팀이 이기든, 마지막 경연은 충격적일 테니까.
* * *
경연이 끝난 후, 다음 녹화 날.
개인 순위가 공개됐다.
[이호 : 1위]
[해든 : 2위]
[유영 : 10위]
[백겸 : 20위]
[이로 : 21위]
[태오 : 18위]
[하람 : 12위]
다행이 태오 순위가 많이 올랐다.
저번 무대가 도움이 된 듯했다.
해든이 2위.
이로가 21위.
19위 차이가 난다.
20위 이상 벌어지면 해든의 순위가 무효가 된다.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마지막 경연은 팀별, 개인별 현장 및 문자 투표가 각각 이뤄집니다.”
마지막 경연은 발매된 곡 중 하나를 골라 최대치의 능력을 보여 주는 방식이었다.
상대 팀이 곡을 골라 준다거나 하는 조건이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가장 잘하는 것을 가장 멋있게 보여 줘야 하는 무대였다.
“데뷔곡, 하자.”
“……데뷔곡? 괜찮아?”
내 제안에, 태오가 우려를 표했다.
위캐니즈의 데뷔곡
참고로, 개망한 곡이다.
데뷔곡답게 엄청나게 후지다.
편곡의 신, 백겸이 어디까지 수리할 수 있냐에 첫 번째 사활이 걸려 있었다.
“왜 하필 데뷔곡이야?”
하람이 물었다.
“사실 위캐니즈의 데뷔곡은, 좋다고 알려진 곡이 아니지.”
나도 수긍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이미지를 좀 바꿔 보고 싶어. 데뷔곡이야말로 너희, 아, 아니, 우리를 있게 한 곡인데. 그걸 그냥 구리다는 이유로 묻어 두긴 아깝잖아.”
“그, 구리다고까진 안 했거든요.”
“백겸이 너도 지금 편곡할 생각에 머리 아프다는 표정 짓고 있거든?”
“그렇긴 하죠…….”
멤버들은 각자 데뷔곡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느라 잠시 조용해졌다.
반면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는 나는 멀거니 그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다른 의견 있다면 제시해도 좋아.”
“아니, 데뷔곡으로 가자.”
서해든의 대답이었다.
“나도 그거 좀 짜증 났어. 흑역사라니 뭐니, 무대 퀄리티도 손보고 싶은 게 많았고. 이참에 업데이트하는 것도 좋겠네.”
“그치? 그치?”
저 녀석이 웬일로 내 편을!
나는 활짝 웃으며 멤버들을 돌아봤다.
2인자, 아니 실질적 1인자에 가까운 해든의 동의에 모두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근데 팬들이 보고 싶어 할지…….”
“잘하면, 다시 보고 싶은 무대는 될 수 있겠지.”
어차피 위캐니즈가 지금 아무리 잘해 봤자이다.
순수한 실력으로는 1등을 할 수 없다.
다른 맛다시가 필요하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다.
“그럼, 편곡은 백겸이. 기획 회의는 내가 자료를 준비해 볼게. 서사가 중요해, 알지?”
“네~.”
“무대 모니터링하면서 각색할 부분부터 찾아보자.”
“응? 형은 어디 가요?”
“잠깐 화장실.”
“엇, 또 20분 있다 오는 거 아냐?”
“미안! 나 변비라.”
나는 자리를 박차고 미친 듯이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멤버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튜디오 정문으로 빠져 나와 숙소로 뜀박질한 건 무언가를 놓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급하게 뛰던 것을 멈추고, 상체를 앞으로 뺀 채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저기 있다.”
내가 쫓는 것은, 이호였다.
스튜디오에서도 내내 이호를 의식하고 있었다.
이호는 팀 회의를 하던 도중, 자신의 옆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그러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스튜디오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호가 문밖으로 사라지자마자 그를 따라왔다.
“……원이……렇……네.”
멀리 있어 잘 들리진 않았지만, 이호는 풀숲 앞에 서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휴대 전화 소지 금지라는 룰 따윈 완벽하게 어기고 있는 모습이군.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좀 더 다가가 보기로 했다.
“아, 네. 그럼요. 괜찮습니다.”
이호는 상대방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차려 말하고 있었다.
“저희 대표님은 아마 좋아하실 겁니다, 네. 그럼요, 문제없을 겁니다. 하하. 의원님도 건강 잘 챙기시고요.”
‘의원님?’
내 머릿속에 커다란 물음표가 떴다.
“의원님이 잘 봐 주신 덕입니다……. 아, 저, 그런데, 죄송하지만, 왜 PD님이 아니라 저한테 직접 연락을…….”
수화기 너머로 무언가를 듣는 이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 네, 그건 진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PD님도 괜찮을 거라고 했고요. 그 사진 원본 파일 자체가 저한테도 없습니다. 아마 PD님한테…… 작가들도 모를 거고요.”
사진?
무슨 사진을 말하는 거지?
“네. 신경 쓰이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 예은 하차 건은 그냥 내부적으로 저희 멤버랑 분란이 조금 있어서요. 애들끼리 싸우다가 홧김에 지들이 나간다고 한 거니까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짜로요. ……네, 관리 잘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뒤로도 이호는 한참을 납작 엎드린 것처럼 사과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전화를 끊을 때쯤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 숙소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사진? 예은? ……의원?”
주워들은 단어들이 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예은이, 문수와 싸우다가 하차한 건가?
그러고 보니, 예은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었다.
‘김문수한테 한마디 했지?’
‘그러니까 네 차례라고. 다음은.’
‘왜 그 사진이 이 순간에 딱 떴을까?’
‘너랑 비슷한 짓을 했거든.’
김문수는 예은을 악의적으로 떨어트렸다.
이호는 사진의 존재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이호가 통화하는 의원도 그 사진을 의식하는 듯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예은만이 존재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예은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인지할 수 없게끔 ‘조치’되어 있었다.
“…….”
사진의 원본을 확인해야 했다.
김 PD만이 가지고 있다는 그 사진을.
나는 배에 끌어안고 있던 패드를 꺼냈다.
음성 녹음 파일의 파장은 몹시 진폭이 작았지만.
―……네 의원님. 사진은 PD님 한테…….
무사히 녹음 되었다.
자아.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