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회사의 난리를 겨우 수습하고 나자, 이번에는 재동이가 난리였다.
“이 자식은 왜 또 난리야.”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데, 녀석은 계속해서 휴대폰을 울려댔다.
처음에는 무시. 두 번째, 세 번째도 무시.
그러나 10번이 넘어가자, 더 이상은 무시할 수 없었다.
“왜. 무슨 일이야.”
- 너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지금 회사야. 일하고 있잖아.”
- 일은 지금 너만 해? 너는 새끼야 고작 대리지만, 나는 대표야!
나도 대표인데. 우리 공동 대표 아니었나?
“무슨 일인데 그래?”
- 큰일 났다. 영진 건. 우리가 송이 안 팔겠다고 했었잖아.
그랬지.
“그런데?”
- 영진 회장이 직접 보자더라.
응? 내가 잘못 들었나?
“영진 회장이 직접?”
- 어, 직접.
재동이의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심장이 다 떨렸다.
그 난리를 쳤으니, 높은 사람이 나설 줄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장이라니!’
올 게 왔구나.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약속 잡아. 주말. 우리 창고 근처로.”
- 괘, 괜찮겠지?
“괜찮아. 어차피 예상했던 거잖아. 그리고 그것보다…”
나는 주머니에서 방금 전, 공 차장님한테서 받은 명함을 꺼내 들었다.
“너 여기 연락해서 헌 옷 좀 네고해봐. 싸게 살 수 있는지. 번호가…”
* * *
토요일. 서울 근교의 조용한 카페.
재동이와 나는 나란히 앉아, 장 회장을 기다렸다.
“후우… 지금 나만 떨려…?”
재동이는 테이블 아래에서 다리를 연신 떨고 있었다.
아무래도 잔뜩 긴장한 모양이었다.
“진정해라. 왜 그래?”
“지, 진정하게 생겼냐? 영진 그룹의 회장이 직접 온다는데.”
사실 나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낱 대리인 내가 거대한 기업의 총수를 마주한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확실히 나도 재동이와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진짜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손이 다 떨리는 걸 보면.’
하지만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었고, 부딪쳐야 할 상황이었다.
정말로 그래야만 한다면?
물러서지 말아야지. 나는 두 손을 꽉 맞잡으며 말했다.
“야. 대범하게 가자.”
“어, 어?”
“지나고 나면, 옆집 아저씨보다 못한 인연일 수도 있잖아.”
이렇게 말하고 나니, 긴장이 가시는 게 느껴졌다.
대기업 총수가 뭐 대수냐? 내가 가진 원유만 따지면 내가 더 부자다.
게다가 송이를 가진 건 우리 쪽. 칼자루는 이쪽이 쥐고 있었다.
내 대답을 들은 재동이는 한동안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가, 갑자기 왜 이렇게 변한 거야? 예전에는…”
“야, 왔다.”
갑자기 느껴지는 창밖의 인기척에 나는 재동이를 팔꿈치로 쳤다.
녀석이 움찔하던 순간.
“흐음.”
노년의 신사가, 중년 남성을 대동하고 카페에 들어섰다.
‘저 남자가 장태삼 회장인가?’
나이에 걸맞은 꼬장꼬장함이 엿보이는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처, 처음 뵙겠습니다.”
우리가 일어서서 인사를 하자, 장 회장은 맞은편 자리에 털썩 앉았다.
“서울도 아닌, 이런 카페에서 보자고 하다니…”
주변을 둘러보던 장 회장이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하겠는데.
“저희가 아직 사무실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여기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송이가 있는 저온 창고도 가깝고요.
“허, 참. 사무실이 없어?”
대답을 들은 장 회장은 혀를 찼다.
아무래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굳이, 내 소개를 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 누가 대표라고?”
재동이가 허둥대며 명함을 꺼내던 차.
“아, 저는…”
“공동 대표입니다. 이쪽은 엄재동. 저는 김인석이라고 합니다.”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 * *
카페에 들어선 순간부터, 소개를 받은 지금까지 장태삼 회장에게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대부분이 김인석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이 녀석 보게?’
뚱뚱한 녀석은 자신의 예상대로였다.
지금껏 봐 왔던 여느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회장이라는 직함과 자신의 기세에 눌려, 한껏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놈은 다른데. 이놈이 진짜 대표인 건가?’
분명 자신이 회장임을 알 텐데도, 눈앞의 젊은 놈은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한낱 장사치는 아니란 말이지?’
오히려 여유를 보이는 게, 자신이 눌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으흠. 그래. 세 배를 불러도 팔지 않는다 들었는데.”
아뿔싸.
말을 뱉은 장회장은 살짝 후회했다.
자신이 먼저 카드를 오픈한 셈. 그러나 주워담을 수 없었다.
장 회장은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얼마를 원하는 겐가?”
지금, 그에게는 송이가 간절했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아내를 위해서라도.
‘그 사람, 얼굴이 그렇게 좋아진 건 다 이 마법의 송이 덕분인 게지.’
그것뿐일까? 일말의 가능성도 없던 자식까지 만들어 준 송이였다.
병원에 갔다 오고 나서야 그날 아내의 행동은 입덧이었다는 걸 확인한 장 회장이었다.
젊을 때도 실패했던 임신을 오십 대에 한 것이다.
그걸 가능하게 만든 송이를 가지고 있는 놈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억만금을 불러봐라. 내가 물러서나.’
장 회장이 속으로 단단히 벼르던 그때.
김인석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이게 영진에게는 더 이상 판매가 어렵습니다. 이미 10킬로를 구매하셔서요.”
“그게, 그게 무슨 소리야!”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그런데 팔지 않겠다니.
콰앙-!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장 회장은 테이블을 힘껏 내려쳤다.
“지금 나를 가지고 노는 게야! 사람을 여기까지 불러 놓고!”
그 바람에 찻잔이 넘어지며 커피가 흘렀다.
장 회장 뒤편의 남자는 움찔했고, 엄재동은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분노의 대상인 김인석은 오히려 태연했다.
“진정하시죠, 회장님. 저희는 돈이 목적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응?”
이게 무슨 소리야? 돈이 목적이 아니라니?
무릇 장사라는 것은, 이윤을 남기는 게 목적.
하지만 눈앞의 놈은 이상한 궤변을 내뱉었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니?”
“그게… 돈도 돈이지만, 일단은 회사를 좀 알리고 싶어서요.”
김인석은 넘친 커피를 닦으며 답했다.
“뭐?”
장태삼 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 참.”
김인석의 말을 듣고 의미를 알아챈 것이다.
‘그러니까 송이는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일종의 간판 상품으로 내건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매점하는 것보다는 널리 퍼트리는 게 효과가 있었다.
이미 자신이 효능을 겪어 본바, 아마도 저 젊은 놈의 의도대로 될 것이다.
하지만, 장태삼 회장은 실망하지 않았다.
저렇게 말하면서도 자신과 자리를 잡았다는 건, 원하는 게 따로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자네는 내가 찾아온 걸 행운이라 생각하게.”
장태삼 회장의 말에, 엄재동이 얼떨떨한 얼굴로 김인석을 바라봤다.
콧방귀를 뀐 장 회장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 송이, 효능이 좋아도 너무 좋거든. 확실히 날파리가 꼬일 만한 미끼야. 돈이나 힘이면, 뭐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날파리들 말이지.”
“저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회장님을 먼저 뵙게 된 게.”
김인석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태삼 회장은 그런 김인석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일단 귀하디귀한 아이를 얻게 해 주었으니 호감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반응을 보니 뭔가 믿는 게 있는 모양인데.’
저런 무덤덤한 표정으로 부리는 배짱도 맘에 들었다.
후계문제로 주변에서 굽실거리기만 하는 놈들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게다가, 이 송이가 나한테까지 도달한 것도 행운이라는 걸 알고 있나?”
그 말을 들은 김인석은 수긍이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업 그룹 회장의 자택에 물건을 들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사실 그는 그동안 송이를 이곳저곳에 뿌렸었다.
그러나 대기업 회장 정도의 거물과 연락이 닿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 송이가 주인을 찾아갈 운명이었던 거죠.”
“뭐? 허허. 이 친구 보게?”
김인석의 뻔뻔한 답변에 장태삼 회장은 웃으며 시치미를 떼었다.
“내가 아는 놈들이 많아. 알지?”
“예.”
“그래서 내가 선물을 좀 구입하려고 하는데. 어떤가?”
“선물… 말입니까?”
“그래. 그런데 포장을 좀 하는 게 좋겠어. 기왕이면 포장에 자네 회사 상호도 아름답게 들어가게 말이야. 그래야 선물을 하는 효과가 있지 않겠나?”
그제서야 회장의 의도를 눈치챈 김인석은 싱긋 웃었다.
”뭐, 샘플은 우리 비서실장을 통해 전달해 주도록 하지.”
그가 고개를 숙여, 회장에게 감사를 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대신 저도 원칙상 팔지는 못하지만, 감사 인사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 인사는 송이로 대신하겠다는 말.
장태삼 회장 역시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내 짐작이 맞았어. 이 녀석. 돈이 아닌, 재계의 인맥을 이윤으로 남기려던 거였군.’
송이라는 이 대단한 물건을 통해서.
‘그리고 저 감사 인사라는 건, 나와의 친분 또한 얻고 싶다는 뜻이겠지.’
그제서야 오해를 전부 푼 장 회장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다하지 않겠네. 송이 덕에 요즘 내 안사람 얼굴이 좋아.”
“그럼 송이가 식탁에 계속 올라가야겠네요?”
“뭐? 으하하하!”
뻔뻔하기까지 한 대답에 장태삼 회장은 화통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 * *
“재미있는 놈일세.”
장태삼 회장이 피식하니 웃음을 흘렸다.
의도야 어찌 되었건, 제법 싹수가 있는 녀석이었다.
보통은 돈에만 눈이 멀 법도 한데 말이다.
"이 실장. 저 녀석들 번호 가지고 있지?”
조수석의 비서실장은 뒷좌석을 돌아보았다.
“엄재동 대표의 번호는 가지고 있습니다만, 혹시…”
“그래, 김인석인가 하는 그 친구 번호. 알아봐 그리고…”
장 회장은 송이 하나를 들어, 코를 가져다 대었다.
그 어떤 자연산 송이보다도 강렬한 향이 느껴지자, 역시나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녀석이 재계의 인맥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 줘야지.
‘대신, 나는 정계 쪽의 인맥을 다져야겠다.’
이 기적의 송이로.
장 회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비서실장의 표정은 반대였다.
“저… 회장님… 저번에도 여쭈어 봤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냐고?”
장 회장은 비서실장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 그 정도 안목도 없어서야.’
하지만, 비서실장의 나이는 이제 겨우 50.
그래. 새파랗게 젊은 놈이 뭘 알겠냐.
게다가 이 녀석은 송이의 효능을 모르지 않던가?
장 회장은 속으로 수긍했다.
“자. 받게.”
그리고는 곧바로 송이 한 움큼을 집어, 실장에게 안겼다.
비서실장은 당황하면서도 받아 들었다.
“회, 회장님?”
“먹어 봐. 직접 먹어 보면 그런 말 안 나올 테니까.”
장 회장은 껄껄 웃으며 좌석에 몸을 묻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황급히 몸을 뻗어, 비서실장 품에서 송이 하나를 낚아챘다.
“하, 하나는 빼도록 하지…! 자네는 젊잖아! 안 그래?”
* * *
“와… 나는 아직도 꿈같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재동이는 연신 볼을 꼬집었다.
“이거, 김첨지의 럭키데이 그런 건 아니지?”
이게 미쳤냐? 재수 없는 소리를. 나는 녀석의 팔뚝을 퍽 하고 쳤다.
악하고 소리를 지른 재동이는 갑자기 나에게 사과를 했다.
“인석아. 미안하다.”
“뭐. 재수 없는 소리 해서?”
“잠시나마 너를 의심해서. 진짜 돈이 되는구나. 송이가.”
장 회장에게 판 송이는 대략 5킬로 가까이 되었다.
처음 가격 60에서 재동이가 100으로 올렸고, 그걸 다시 장 회장이 세 배로 올렸다.
그 정도 가치는 돼야 선물할 수 있는 법이라면서.
“됐고, 그건 알아봤어?”
“뭐, 헌 옷?”
재동이가 둔해 보여도, 눈치는 빠르다.
나의 물음에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봤지. 킬로당 300원. 10톤 이하로는 안 팔고. 배송까지 합치면 320만 원 정도? 그런데 헌 옷은 어디에 쓰려고?”
10톤?
그 정도면 영지민들에게 다 돌아가고도, 남을 것 같았다.
“구매하자. 될 수 있으면 빨리. 그리고 묵은 쌀 아직 남았지? 그것도 전부 결제해 주고.”
“쌀? 나, 나야 고맙지만… 아니, 그런데 헌 옷을 왜 사냐고.”
아, 이 자식. 호기심은 많아 가지고.
나는 녀석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야, 재동아. 아직도 나 못 믿냐?”
“미, 믿지.”
“그럼 묻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나중에 다 돈이 될 테니까.”
“아, 알았어.”
여전히 미심쩍은 눈치의 재동이었으나, 상황은 일단 종료되었다.
나의 성화에 못 이긴 녀석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 순간.
“어?”
재동이의 폰이 윙 하고 울리면서, 액정에 이름이 떴다.
영진 그룹의 이진명 비서실장이었다.
“뭐, 뭐지?”
잠시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 재동이는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어, 네. 실장님. 네, 저희도 지금 서울 올라가고 있습니다. 네? 어… 네…”
길지 않은 통화가 끝나고, 녀석은 내게 수화기를 넘겼다.
“왜?”
“바꿔 달래.”
“나를?”
왜지?
나는 의문과 함께 전화를 받아 들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 김인석 대표님? 영진의 이진명입니다. 아까 회장님을 모시고 왔던.
“네. 실장님.”
- 혹시 전화번호를 알려 주실 수 있으실까요?
“예, 물론이죠.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그런데, 무슨 일 있으신가요?”
- 아… 다름이 아니고…
이 실장이 담담하게 이유를 말했다.
- 저희 장태삼 회장님께서, 대표님과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하고 싶으시다고 하셨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