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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리의 비밀영지-104화 (74/250)

<104화>

보세우스는 머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가 성의가 부족한 것 같아가지구서는, 조금 더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보낸 거니께 조금만 기다려 주셔유.”

“아아, 감사합니다. 덕분에 작물을 길러서 그걸 팔아 돈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황공하다는 표정에 보세우스와 버버리우스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아니, 그럼 그 돈으로 저 옷을 사오는 거여?”

“아마도 그런 것 같은데유?”

“그럼 이거, 생명수를 더 주면 더 많이 나오는겨?”

“아마도 그럴 것 같은데유?”

나는 그들의 대화는 못 들은 척, 금빛 반짝이 상의를 들어 보세우스의 가슴에 슬쩍 대보았다.

“이건 확실히 촌장님한테 어울릴 것 같네요. 머리 색이랑도 어울릴 것 같고.”

“그, 그래유?”

“한 번 걸쳐 보시죠. 이건 저희 영지가 촌장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어후, 이런 걸 선물로 다 주시고.”

보세우스가 입이 귀에 걸린 듯 싱글벙글 하던 그때, 영주는 전신 거울을 가져다주었다.

그러자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본 보세우스는….

“이, 이야아! 야들아, 이것 좀 봐라! 와! 와하하! 기가 맥힌다 진짜!”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 펄쩍 펄쩍 뛰면서 좋아라 했다.

“허이구, 축하드려유. 그런 걸 덥석 받구.”

“옷이 날개구만유.”

선물을 받지 못한 엘프들은 부러워 죽겠다는 눈빛과 함께 질투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내 참. 생긴 건 북유럽 모델처럼 생겨가지고는 하는 짓은 영락없는 초딩이네.’

게다가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투리까지.

그 오묘한 언밸런스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아차. 이건 외교 결례지.

“으흠. 흠. 그, 아직 한 벌이 남았는데….”

황급히 헛기침을 한 나는 재빨리 붉은 색 반짝이를 들어 보였다.

“이거는 저희 영지민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색이거든요.”

“우리 인간들에게는 정열을 상징하는 색이오. 붉은색이.”

“예, 영주님 말씀대로 이 붉은 색이 남았는데, 이건….”

이건 누굴 줘야 하나.

내가 적절한 엘프를 찾으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그 때.

“응…?”

엘프들은 순간 기묘한 반응을 보였다.

“제발….”

“저를 간택해 주셔유….”

엘프들 모두가 하나같이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중얼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 옷이 얼마나 가지고 싶으면 기도하는 것처럼 양손까지 모으는지….

“이거 뭔, 판타지판 짝짓기 프로그램도 아니고….”

옆에서 중얼거리는 재동이의 말대로였다.

다들 하나같이 간절해 보였기에 아무나 고르려던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막 주면 안 되겠는데?’

나는 빠르게 엘프들을 스캔했다.

촌장 다음으로 높아 보이는 엘프에게 주어야지만 뒤탈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이윽고 발견한 건, 제법 비싸 보이는 브로치를 단 여성 엘프였다.

“이건, 크기가 작아서 체구가 작은 사람에게 어울리겠네요.”

“지, 지한테 주시는 거에유? 어휴, 감사해유!”

내가 붉은 상의를 내밀자, 그걸 받아 든 여성 엘프는 환희의 목소리를 냈다.

“에휴, 인간들은 보는 눈이 없는개벼. 내가 여기 있는디.”

“임자는 따로 있는디, 그걸 몰러.”

“텄네. 텄어.”

하지만 간택 받지 못한 엘프들은 불만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옳지. 이 때다. 나는 내게 서운함을 표현하는 엘프들의 모습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후우… 이거, 죄송합니다. 수량이 부족해서. 다음에는 더 많이 가져올 수 있도록 작물을 열심히 길러 보겠습니다.”

연기가 먹혀 들어간 건지, 아니면 반지의 힘 때문인지.

엘프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던 불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오히려 머쓱함과 함께 죄책감을 심어주었는지, 미안하다는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으흠, 그거 참 번잡시럽고 수고스럽겠네유.”

“그러게 말여. 저 옷이 워낙에 비싸다면서.”

“이거 참, 생명수라도 많이 챙겨 드려야것네.”

민망해진 건 보세우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그, 어려운 일 있으면 슬쩍 얘기해 봐유. 우리가 도와줄테니께.”

헛기침을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말해보라는 듯 손짓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도와준다니, 나야 고맙지.

나는 촌장인 보세우스가 미끼를 물자마자 확 채기기로 했다.

“아아! 도와주신다니! 그렇지 않아도 저희가 어려움을 겪고 있던 게 있었거든요!"

곧바로 꺼낸 건, 지난 번 산맥에서 있었던 전투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몰려드는 오크들을 상대로 생사의 사투를 벌였음을 덤덤하게 설명했다.

“아니, 오크들을 상대로 싸웠다구유?”

과장 하나 보태지 않았는데도, 보세우스는 크게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런데도 멀쩡했다는 말이에유?”

“아뇨. 멀쩡하지는 않았죠. 저희도 부상자가 많았고. 관문도 무너졌었는데요.”

“사망자는 없다는 말이잖아유. 허 참, 내가 오늘 여러 번 놀라네.”

잠시 혀를 내두른 보세우스는 이어서 설명을 했다.

“그 오크들은 아마 몇 백 년 전에 인간족을 멸망시키고, 우리덜 숲 앞까지 몰려왔던 놈들일 거에유. 우리도 간신히 숲을 끼고 혈투를 벌여서 겨우 물리쳤던 놈들인디, 아니 어떻게 평야에서 놈들을 전멸시켰다는 말이에유?”

보세우스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엘프들도 놀랐는지 저마다 웅성거리던 그때, 보세우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오크들은 복수심이 엄청난 놈들이에유. 지들 윗세대가 당한 걸 잊지 않고 그 자손들이 몰려와 복수를 할 정도니께유. 아마 놈들은 또 몰려올 게 분명해유.”

그리고는 내게 뿔 나팔 하나를 내밀었다.

영지민들이 쓰는 뿔 나팔과는 달리, 금으로 된 아름다운 곡선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뿔 나팔을 받아 든 나는 유심히 그것을 살펴보았다.

“혹여나, 그 놈들이 다시 나타나면 이걸 우리 쪽을 향하고 씨게 불어유. 우리가 나서서 도와줄 테니께.”

그때, 진중한 얼굴로 보세우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순간, 나는 엘프와 성공적인 관계를 맺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내가 원하던 건, 이런 소극적인 협력이 아닌 이이제이가 아니던가.

그랬기에 나는 짐짓 불쌍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혹시 모를 상황이 벌어질까 두렵네요.”

“혹시 모를 상황유?”

“예. 이 뿔 나팔을 불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 말입니다. 그런 때가 만약 오게 된다면, 뿔 나팔을 불어도 늦지 않을까요?”

그 말을 들은 엘프들은 저들끼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긴 그랴. 정신없이 싸우다 보면 뿔 나팔을 어떻게 불것어.”

“분다 해도 너무 늦는 거 아녀? 우리가 암만 빠르다 해봤자, 이미 쑥대밭이 될 지도 모르는디.”

옳지. 나는 조금 더 목소리를 높여 한탄하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아마 뿔 나팔을 불기도 전에, 이 영지는 쑥대밭이 되고 말 겁니다. 이 영지가 불타고 난 다음은, 아마 엘프들 차례겠죠.”

그 말을 들은 엘프들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오크들과의 싸움을 떠올린 건지, 하나같이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모두들 이 영지가 바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임을 다시 한 번 깨달은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쐐기를 박을 생각에 보세우스가 걸친 반짝이를 가리켰다.

“그리고 저 옷도… 더 이상 구할 수 없겠죠….”

그 순간, 엘프들은 처음보다 더욱 크게 흠칫하고 놀랐다.

새하얗게 질린 표정이 아마도 머릿속으로 최악의 상황을 그려 본 것 같았다.

그제야 보세우스는 무슨 결심이라도 한듯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 알겠슈. 이곳이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그럼 우리가 주기적으로 병력을 끌고 와 오크들이 나타났던 곳까지 순찰을 쭉 돌게유.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면 안 되니께.”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이이제이지.

처음 생각했던 계획이 차츰 구색을 갖추기 시작하자,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표정을 관리하며 고맙다는 눈빛을 보세우스에게 보냈다.

“아아,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그리구, 저짝에 관문을 세웠다고 들었는디, 우리가 가서 덩굴로 관문의 벽을 감싸서 보강해 줄 게유. 지난번에 한 번 무너졌다고 했으니께.”

덩굴로 벽을 보강한다고? 그게 도움이 되는 건가?

나는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영주는 놀라움을 터뜨렸다.

“오오, 고귀하신 분이시여. 엘프의 신성한 덩굴로 벽을 감싸주시겠다는 겁니까?”

“이이. 맞아유. 그렇게 되면 성벽도 제법 단단해질 테니께유.”

“그런 귀한 축복을 내려주시다니! 감사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 덩굴로 벽을 단단하게 감싼다는 거구나.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영주의 말과 보세우스의 표정 덕에 그 덩굴이 심상치 않은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나는 적잖이 기뻤으나,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가, 감사합니다…!”

그저 고마움에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을 뿐이었다.

내 연기가 먹혀 들어간 건지, 보세우스는 양손을 내밀고는 세차게 흔들었다.

“아휴, 감사는 무슨 감사에유. 이웃사촌끼리. 서로 돕고 그러고 사는 거쥬.”

십 몇 년 전, 이 땅의 인간들을 멸망시켰던 오크들을 물리친 엘프족들.

그들이 스스로를 이웃사촌이라 칭하는 모습에 나는 마음속이 다 든든했다.

오늘 영지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막강한 동맹을 얻은 셈이었으니까.

“그리고, 저희가 선물 하나를 더 드릴 게유. 아무래도 오크들 이야기를 들으니 안심이 안 되어서.”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보세우스는 정말로 우리가 걱정이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버버리우스를 바라보았다.

“야, 버버리우스야. 그 가서, 거시기 그거 네 개만 가져와라.”

* * *

“허어… 이런 귀한 걸….”

“그, 이런 걸 실제로 보는 건 또 처음입니다.”

“처음이라? 이런 건 우리 집에도 있었는데?”

“…백작께서는 금수저니까 그랬겠죠.”

가신들은 엘프들이 남기고 간 선물들을 바라보며 각자 한 마디씩을 던졌다.

선물은 엘프들이 예고한 대로 생명수 네 병, 그리고….

“…이건 어떻게 움직여요?”

큼지막한 가고일 석상 네 개였다.

양손과 양발을 바닥에 대고 쭈그려 앉은 모습의 녀석은 마치 스파이더맨 같았다.

커다란 날개와 얼굴의 부리만 아니었다면, 정말 딱 그 모습이었을 게 분명했다.

“이건 주인에게 적개심을 가지는 자를 발견하면 자동으로 움직이네.”

영주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고, 버크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섭정, 왜 있잖소. 살기 같은 거 말이오. 예전에 같이 연습했던.”

아하. 버크의 말에 나는 암살자를 상대하는 법을 배우던 그때를 떠올렸다.

그럼 일종의 경비견 같은 건가? 내가 그렇게 묻자, 영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하지만 조금 더 포괄적이지. 일종의 마법 아이템이라, 마법을 이용해서 적개심을 판별하는 걸세.”

“성능은 내가 보장하지. 과거 우리 집을 털려던 놈들을 백이면 백, 전부 다 잡아 들였었으니까. 흐흐.”

백작은 과거라도 떠올린 건지 팔짱을 낀 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와아, 도둑도 잡는다고? 경비견 같은 건 줄 알았는데, 그것보다 더 강한가 보네.’

나는 순간 욕심이 생겼다.

이런 걸 대량으로 만들면, 오크들을 상대로 병사들을 아낄 수 있을 텐데.

내가 영주를 지긋이 바라보자, 그는 내 생각을 읽은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골렘을 만들려면 드래곤 하트가 필요하네.”

“아, 이게 골렘이에요?”

“가고일도 골렘의 일종이지. 하지만 급이 낮은 녀석들이라, 드래곤 하트까지 쓰이진 않고 와이번 하트를 사용한다네.”

그럼 와이번 하트라는 것만 있으면 대량 생산이 가능한 건가?

나는 또 다시 눈빛을 보냈고, 영주는 방금 전과 같이 또 한숨을 내쉬었다.

“섭정, 자네는 이곳에서 지내면서 와이번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나?”

“없죠. 하지만 아델 상단이 있잖아요. 교역품으로 한 번 가져다 달라는 건 어떨까요?”

내 말에 영주는 잠시 멈칫했다.

“…쉽지 않을 걸세. 마석처럼 간단히 캐올 수 있는 게 아니니. 하지만 지금의 아델 상단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와이번 하트라는 게 그렇게나 얻기 힘든 건가?

그럼 드래곤 하트는 얼마나 더 얻기 힘든 거야?

어쨌든 영주의 말에 희망을 얻은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 와이번 하트만 있다면, 만들 수는 있는 거죠?”

“마법 명가인 제드 가문도 이제 영지 소속이고 마법사들도 제법 많이 늘어났으니, 무리는 없을 걸세.”

“그럼 혹시 이것들의 개조도 가능할까요?”

이왕 가고일이 생긴 거, 효율을 높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팔을 여러 개 달아 한 번에 여러 명을 상대하거나, 등에 로켓포를 달거나 하는 형태로.

마개조에 대한 계획이 떠오르자, 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 그 미소는 뭔가!”

아차. 내가 너무 사악한 미소를 지었나?

황급히 입을 가리자, 영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이미 완성된 건 개조할 수 없지만 새로 만드는 건 가능할 걸세.”

에이, 아쉽네. 나는 입맛을 다셨다.

“그럼 아무래도 와이번 하트를 얻고 난 뒤에 다시 이야기 해야겠네요.”

“그, 그러도록 하지. 그런데 이것들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영주는 네 마리의 가고일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 이 녀석들요?”

이미 써먹을 방도를 생각해 둔 나는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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