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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리의 비밀영지-105화 (75/250)

<105화>

평창동. 장태삼 회장의 저택.

트럭을 몰고 도착한 택배 기사는 트렁크에서 커다란 나무 상자를 낑낑대며 내리기 시작했다.

파손주의라고 써있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기에, 택배 기사는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뭡니까?”

이번에는 손수레에 상자를 올리던 차에, 대문을 지키던 경호원들이 인상을 쓰며 다가왔다.

“그, 택배인데요. 장태삼 씨 앞으로 왔네요. 보낸 사람은 김인석 씨구요.”

택배 기사는 송장을 보라는 듯 나무 상자를 가리켰다.

경호원들은 내용을 확인했음에도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상자가 너무 커서 사람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였으니까.

“잠시 대기 부탁드립니다.”

이들이 이렇게 경계하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몇 개월 전 있었던 장 회장 부인 암살 미수 사건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경호원은 무전으로 저택 내부와 연락을 했다.

“경호 실장님, 지금 택배가 와 있는데 내용물을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내용물을 확인한다고? 무슨 택배길래 확인을 한다고 그래? 뭐 폭발물로 의심되는 그런 거야?

“그건 아닙니다만, 상자가 워낙에 큽니다. 사람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라서요.”

-그래? 보낸 사람은?

다시 한 번 송장을 확인한 경호원은 이름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그, 김인석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곧바로 무전을 통해 들려온 건 경호실장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 김 대표가 보냈구만? 그냥 들여보내줘요.

장태삼 회장 본인의 목소리였다.

“거 참, 김 대표는 대체 이런 걸 왜 보낸 건지….”

택배로 받은 나무상자가 열리자 장태삼 회장은 난색을 표했다.

그 안에 들어 있었던 게 난생 처음 보는 기괴한 석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미리 연락을 받았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크게 놀랄 뻔한 장 회장이었다.

“그… 이게 뭐라고 하던가요?”

상자를 나서서 열었던 이진명 비서실장도 마찬가지.

흉흉한 인상을 한 석상의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수호석상이라더군. 집안을 지켜줄 녀석이라고 보냈다던데….”

장 회장이 받은 건, 다름 아닌 가고일 석상.

김인석이 엘프에게서 받은 것 중 하나를 장 회장에게 선물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김인석은 석상을 온전히 준 게 아니었다.

“대체 이건…?”

장 회장은 석상의 목에 채워진 개목걸이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다.

스파이크가 달린 붉은 색 목걸이가 고풍스러운 석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허, 거 참. 이해할 수가 없구만.”

장 회장은 그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신을 생각해서 선물을 보냈다니 기쁘기는 했지만, 얼굴에 뜬 난감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이건 아무래도 정원에 둬야 할 것 같군. 집 안에 두기에는 워낙 흉흉하니. 손님들이 보시고 놀라실까 걱정되는구만.”

“알겠습니다. 그럼 정원 한쪽에 두도록 하겠습니다.”

장 회장의 말에 비서실장이 꾸벅 고개를 숙이던 그때.

“저는 좋은데요?”

장태삼 회장의 부인 신윤심 여사가 부른 배를 받쳐 들고는 안방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석상의 생김새가 늠름한 게, 정말로 수호석상 같잖아요. 그리고 생긴 게 꼭 독수리 같지 않나요?”

신 여사가 가고일의 부리를 가리키자, 장 회장과 비서실장은 석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닮긴 했구만.”

“부리가 있어서 그런지, 여사님 말씀대로 그런 것 같습니다.”

“독수리는 예로부터 잡귀를 쫓는다잖아요. 그래서 예전에는 집안에 독수리 그림을 거는 집도 종종 있었구요.”

“하긴, 그랬지.”

장 회장이 수긍하자, 신 여사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김 대표님이 주신 거면, 뭔가 특별한 게 있지 않겠어요? 김 대표님이 저희한테 어떤 분이신데요. 이런 물건을 함부로 주실 분이 아니잖아요.”

그 말에 장 회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김인석의 비범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김인석 덕분에 몇 번 겪어보지 않았던가.

장 회장이 생각을 쉽게 바꾼 건 당연했다.

“그러면… 이건 거실에 두는 게 좋겠군. 우리 집에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이미 김인석에 대한 그의 신뢰는 쉽게 깨질 정도가 아니었다.

* * *

송파의 동석종합상사.

“이게 움직인다고?”

내 설명을 들은 재동이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가고일 석상을 바라보았다.

“응. 주인에 대한 적개심을 느끼면 움직인다더라.”

“와아, 말로만 듣던 가고일 석상이라니. 그것도 메이드 인 엘프!”

녀석은 석상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이리저리 살폈다.

“그런데 이렇게 가져와도 되는 거야? 영지는 어쩌고.”

“이미 두 개를 뒀어. 하나는 관문 쪽에, 또 하나는 해안 쪽에. 그 정도면 일단은 충분할 것 같아서.”

엘프에게서 받은 석상 중에 둘은 영지에, 나머지 둘은 현실로 가져왔다.

하나는 동석종합상사에 두었지만, 다른 하나는 장 회장에게 보냈다.

암살 미수 사건이 내내 마음에 걸렸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위험할 가능성이 있는 석상을 그냥 줄 수는 없었지.’

장 회장에게 준 석상에는 인챈트가 된 목걸이를 걸어두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전장치를 해두기로 했던 것이다.

‘그 석상이 움직일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면 분명 도움이 되겠지.

그러던 차에 재동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리도 보안에 신경을 쓰긴 해야지. 뭐, 경보 장치가 있다지만 우리 재고가 어디 평범한 재고냐?”

재동이는 사무실 한쪽에 놓아 둔 커다란 금고를 힐끗 바라보았다.

인챈트를 마친 헤드셋 부품을 보관하는 금고였다.

나와 재동이는 만장일치로 석상을 금고 옆에 두기로 했다.

“그보다, 요새 헤드셋 판매는 어때?”

“어, 이상하게 요새 들어 더 잘 나가네. 판매량이 유의미하게 늘었어.”

이미 완연한 봄인 영지와 마찬가지로 현실의 계절 또한 겨울을 막 지나 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긴 겨울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될 터였기에, 판매량이 늘어난 것 같았다.

“아마, 개학이 가까워져서 그런 가 보다.”

재동이는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지. 그래서 판매량이 늘어난 건가? 그럼 어쩌면 더 늘어날 수도 있겠는데?”

“그러게. 아무래도 생산량을 좀 늘려야겠어. 수요가 더 늘어날 테니.”

학기가 시작되고, 헤드셋을 낀 학생들은 두각을 나타낼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입소문 때문에라도 판매량이 늘어날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게 가능해? 요새는 나도 잘 못 가잖아.”

아무래도 마나 공급을 담당하던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생산을 늘릴 지가 궁금한 것 같았다.

“아, 요번에 마법사들이 좀 많이 들어왔다. 제드 가문이라고, 이혼한 왕비의 친인척들이.”

* * *

“에취히!”

외벽 건설이 한창인 영지의 귀양자 마을.

큼지막한 석재 벽돌을 마법으로 들어 올리던 바인 제드는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그 바람에 허공에 뜬 벽돌이 휘청거리자….

“크악!”

“피해욧!”

주변의 일꾼들은 놀라며 사방으로 몸을 날렸다.

“아, 미안하네. 갑자기 코가 간지러워서.”

“그, 감기 걸리신 거 아닙니까?”

“요새 무리하시는 것 같았는데. 들어가 쉬시죠.”

모두는 바인을 걱정하는 투로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다.

저렇게 커다란 돌이 머리 위로 떨어지게 된다면 결과는 뻔했으니까.

“아닐세, 건설을 미룰 수는 없네.”

하지만 바인 제드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오크에 대한 공포심이 마음속에서 그를 연신 채찍질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역적 몰이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고, 해룡을 피해 겨우 바다를 건넜더니. 이제는 오크?’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음을 잘 알고 있던 바인은 이를 악물었다.

오크들이 어떤 놈들인데. 잔혹하기 그지없는 놈들이 아닌가.

그가 다시 정신을 집중해서 벽돌을 들어 올리던 그때.

“바인 공, 섭정께서 찾으시니 성으로 가보시오.”

병사 하나가 집중력을 깨트리는 바람에 그만 벽돌을 놓치고 말았다.

“으악!”

“내,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황급히 회피한 일꾼들이 한 마디씩 불평을 던졌지만, 바인의 귀에는 들어올 리가 없었다.

“저, 저를요?”

“예.”

“왜, 왜요?”

“예?”

그가 마음속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건, 어느새 해룡도 오크도 아닌 섭정이 되어 있었다.

* * *

‘가, 갑자기 나를 부르다니… 이게 무슨….’

바인 제드는 김인석에게 향하면서도 연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난 번, 영지를 이탈하겠다고 한 뒤에 호되게 혼쭐이 난 뒤부터 공포심이 생긴 탓이었다.

‘바, 반발심을 가지고 있던 귀족들의 마음까지 무참히 꺾어 버리지 않았던가. 그것도 잔인하게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서. 아주 사정없이.’

그리고 그날, 오크들의 대군에 대해 언급한 게 화룡점정이었다.

놈들이 몰려온다는 공포심에, 바인은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지금 이렇게 쎄가 빠지게 일을 하고 있는데.”

그때의 그 미운털이 박힌 게, 조금은 빠졌을까?

하지만 김인석이 두려운 건, 그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비범한 자야. 아주 비범해. 방심할 수 없을 정도로.”

사실 해룡을 물리치고 귀양자들 전원을 살려 냈던 인물이라, 대단하다 생각하긴 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 메를린과의 대화에서 김인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왕비 마마께서도 섭정이라는 자를 그렇게나 높이 평가하시니….”

메를린은 왕비의 자리에 오르면서 각종 고급 교육을 받았던 몸.

그런 그녀의 입에서 김인석이 왕이 될 재목이라는 놀라운 말까지 들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김인석은 비범한 자였다. 왕의 재목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자를 혼자서 대면해야 하다니, 이거 오금이 다 저리네.’

문뜩 고개를 돌려 뒤편의 과수원을 바라본 바인은 다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섭정이라는 자가, 밸런벅의 해군들마저 사로잡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바인이었다.

사로잡기만 했을까.

충성심 높기로 유명한 그들의 충심을 아예 영지 쪽으로 돌려 버리기까지 했다.

‘그 자, 분명 청새치 호의 선장인 게리오스였다. 사교 파티에서 몇 번 보았으니 확실해.’

그런데, 밸런벅 해군의 에이스라는 자가 이곳에서 땅을 갈고 나무를 관리하다니.

그것도 매우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아무리 비범하다고는 해도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다시 떠올린 바인은 때마침 모래사장에 도달했다.

‘정말로… 왕이 될 재목인 겐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잠깐 발걸음을 멈칫했다.

바인의 마음속에 김인석에 대한 경외심이 순간 비집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바인이 턱을 쓸어 만지며 고민하던 그때.

“아, 오셨네요.”

그를 발견한 김인석이 먼저 말을 건넸다.

목소리를 알아들은 바인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부, 부르셨습니까. 섭정 나리.”

오른손을 가슴에 얹으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김인석은 고개를 저었다.

“에이, 뭐 그렇게까지 인사를 하고 그러세요.”

“아, 아닙니다. 섭정 나리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지요. 헤헤.”

바인은 오금이 찔끔 저려오던 그때, 드워프들이 낡은 함선을 마구 부수는 장면을 발견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일을 하시는 건지….”

“아, 여러분들이 타고 온 배의 파편을 본토로 흘려보내려구요. 다들 살아 있다는 걸 본토에서 알게 해서는 안 되니까요.”

정말로 철두철미한 자로구나.

그로 인해 바인의 마음속에서 김인석에 대한 공포심과 경외심이 깊어지던 찰나.

“시체라도 몇 구 흘려보내면 확실할 텐데. 그건 아쉽네요.”

김인석이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바인은 하얗게 질리며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시, 시체요? 서, 설마 저를 여기로 부르신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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