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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리의 비밀영지-122화 (92/250)

<122화>

김인석이 다급히 손수레로 달려가던 그때.

살점 거인이 내려치는 손을 황급히 고삐를 당겨 피한 버버리우스가 보세우스에게 소리쳤다.

“초, 촌장님! 우리 여기서 죽는 거에유?”

“죽기는 뭘 죽어! 살려고 하는 일 아녀! 그렇게 입 나불댈 시간 있으면 한 발이라도 더 쏴!”

보세우스는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는 엉망이 된 관문을 기어오르던 거인에게 발사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박힌 화살에 거인은 움찔하긴 했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그들의 덩치에 비해 화살촉이 작아도 너무 작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효과가 출중하다 해도, 어느 정도 크기가 되어야 먹히는 법이었다.

그게 아니면 물량공세로 찍어 누르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화살통에 남아있는 화살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어이구, 죽것네! 준비할 시간만 더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화살을 더 구했을텐디!”

“이러면 완전 나가리 아녀유!”

보세우스를 비롯한 엘프들이 자신 있게 나섰던 건, 파마의 화살 덕분이었다.

그들의 화살촉에는 주술을 몰아내는 신묘한 기운이 서려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마저도 물량이 부족하면 의미가 없었다.

고개를 돌리는 살점 거인의 모습에 보세우스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저런 덩치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드르르르륵-!

갑자기 맹렬하고 요란한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지더니.

퍼버버버벅-!

관문에 매달려 있던 거인 놈의 대가리가 터져나감과 동시에, 살점이 뒤편으로 마구 날렸다.

순간적으로 육체의 제어권을 잃어버린 놈은 허우적대며 땅에 쿵 하고 떨어졌다.

“뭐, 뭐여?”

“어떻게 된 거여?”

엘프들은 물론이고, 다른 거인들까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관문을 올려다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모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김인석이었다.

그는 커다란 탄약통을 등 뒤에 멘 채로, 성벽의 여장에 왼발을 올려 두고 있었다.

“아아…!”

그리고 그가 멘 탄약통에서부터 이어져 나온 탄약줄과 연결되어 있었던 건.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엄재동이 심혈을 기울여 설계했던 마지막 신무기, 개틀링 기관포였다.

물론 일반적인 기관포와는 달랐다. 인챈트 덕분에 마법이 새겨져 있었으니까.

8㎜ 탄환을 미친 듯이 연사 하는 동안, 빛의 화살도 함께 날아가도록 만들어진 미니건이었다.

김인석이 그런 미니건을 고쳐 잡자, 미스릴로 만든 총신의 끝이 일순 반짝였다.

“이 지긋지긋한 새끼들아! 너넨 다 뒤졌어!”

이를 악문 김인석은 곧바로 총구를 관문에서 가장 가까운 거인의 머리로 돌렸다.

손잡이에 작게 새겨진 마법진을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세게 짓누르자.

드르르르륵-!

요란한 소리가 또 한 번 전장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총구가 맹렬하게 회전하며 불을 뿜었다.

퍼버버버버벅-!

결과는 역시 놀라웠다.

한 순간에 머리가 터져버린 거인은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쓰러져 버렸다.

터져 나간 목에서 기괴한 모양의 촉수가 빠르게 솟아났지만.

“어딜!”

김인석은 미니건으로 곧바로 쓰러진 놈의 몸통 한가운데를 일직선으로 빠르게 훑어 버렸다.

퍼버버벅-!

그러자 거인의 남은 육체는 사방으로 살점을 튀기며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버렸다.

그 광경에 관문 위의 병사들은 크게 놀랐다.

“재, 재생력이…!”

“노, 놈의 재생력이 따라가질 못해! 못한다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칠 듯한 재생력을 보여주던 거인이었다.

그러나 미니건의 맹렬한 화력 앞에서는 전혀 맥을 추지 못했다.

“으와아아! 됐다! 됐어!”

“이제 살았다! 우린 살았어!”

그 모습에 병사들은 경악 섞인 환호성을 질러댔다.

“저, 저게 뭐여?”

“이, 인간들이 지금 뭘 쏜 겨?”

“파, 파마의 화살이 먹히지도 않는 걸… 지금 어떻게…?”

영문을 모르던 엘프들과 관문을 공격하던 살점 거인들.

그리고 남아있던 붉은 오크들은 병사들과 정 반대였다.

방금 전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 자리에 서서 얼어붙었다.

그러던 차에, 오크 쪽의 놈들은 돌아가는 사태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그으으으…!”

과열되었던 전장의 열기가 빠르게 소강상태에 들어가면서, 오크들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고.

쿠웅-!

관문에서 훌쩍 아래로 뛰어내린 김인석은 무릎을 굽히며 착지했다.

천천히 몸을 곧추세우며 고개를 들어 올린 김인석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이 새끼들아! 이 지랄을 해놓고 어딜 도망가려고!”

그리고는 곧바로 발사 버튼 역할을 하던 마법진을 짓눌렀다.

* * *

“그와아악! 뭐, 뭐, 뭐냐?”

능선 위, 전장을 내려다보던 우르그는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이제 곧 전투가 끝나겠다 싶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인간 하나가 전황을 뒤집어 놓았으니까.

그가 든 괴상한 무기가 맹렬하게 불을 뿜자, 살점 거인들은 순식간에 삭제되었다.

말 그대로 순삭. 난생 처음 보는 황당한 모습에, 당황하던 우르그는 경악 섞인 목소리를 터뜨렸다.

“저, 저놈! 대체 저 놈은 뭐냐! 살아있는 오크들까지 바치면서 공을 들였던 주술이 어떻게 저리도 쉽게 깨어진다는 말이냐!”

우르그가 부관에게 다급하게 외쳤지만,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어….”

부관은 그저 김인석의 활약에 말문이 막힌 듯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에도 살점 거인은 물론, 붉은 오크들마저 다짐육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와아악!”

“도망쳐라!”

자신감 넘치게 돌진했던 우르그의 병사들은 이제 허둥지둥 능선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한 놈도 살려두지 않는다!”

지금껏 당하기만 했기에, 약이 바짝 오른 김인석은 오크들을 집요하게 쫓기 시작했다.

그는 무거운 탄통에 미니건까지 들고 있었지만, 뛰어난 근력 덕분에 뒤쳐지지 않을 수 있었다.

오히려 도망치는 오크들을 쉽게 따라잡으며, 하나하나 착실하게 육편으로 다져 버렸다.

어느덧 도망치던 오크들은 빠르게 능선 위까지 올라왔고.

“그오오옷! 이, 이놈들! 물러서지 마라!”

우르그는 해골 모양의 왕홀을 필사적으로 휘저었다.

왕홀을 휘두르며 내리는 명령은 절대적. 거역한다는 건, 오크들에게 있어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미 공포에 휩싸여 전의를 상실한 오크들은 왕홀도 소용없다는 듯 명령을 듣지 않았다.

“무, 물러서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 그와아아악!”

절규에 가까운 우르그의 명령에도, 공포에 사로잡힌 붉은 오크들은 오합지졸처럼 흩어졌다.

심지어는 우르그의 곁을 지키던 부관마저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우우윽! 감히 나 대칸의 명령을 무시하는 것이냐!”

도망치는 오크들의 뒤통수를 항해 우르그가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던 그때.

“…너 이 새끼.”

우르그는 뒤편에서 들려오는 오크 언어에 흠칫하고 놀랐다.

확실히 능숙한 오크의 언어였으나, 낯설기만 한 목소리였다.

우르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가쁘게 숨을 내쉬는 김인석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네가 대장이지?”

그가 붉게 달아오른 미니건의 총구를 들어 올리자, 당황한 우르그는 다급히 양팔을 들어 올렸다.

“자, 잠깐만!”

“잠깐이 어디 있어! 이 개새끼야!”

버럭 소리를 지른 김인석은 엄지손가락을 세차게 짓눌렀다.

* * *

“거, 쉬고 있지 말고 탄피 좀 주우시오!”

“여기! 여기 바위틈에도 있네!”

붉은 오크들과의 치열했던 전투가 끝난 후.

영지의 드워프들은 전장을 부리나케 돌아다니며 탄피를 주웠다.

덕분에 앉아서 전투의 피로를 달래던 병사들은 주춤거리며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냥 다시 만들면 되는 걸, 굳이….”

“이거 참, 이 많은 걸 언제 줍는단 말이오?”

“무슨 그게 그냥 뚝딱 하면 만들어지는 줄 아시오? 거, 잔소리 말고 빨리 주우시오. 이게 다 돈이오!”

그 순간, 마법 공학부서의 바인은 헛기침과 함께 병사들 사이로 들어갔다.

“자자, 그렇게 해서 언제 줍겠나? 기다려 보게, 섭정께서 부탁해 연구한 마법이 있으니.”

“마법 말입니까?”

“그렇네. 탄피는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하셔서 연구한 마법일세.”

바인은 기다란 주문과 함께 손을 하늘 높이 뻗었다.

그러자 바닥에 있던 탄피들이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곧 그의 머리위에 구의 형태로 뭉쳤다.

“집어! 집어!”

“아, 아니! 이게! 이게 무슨!”

“허,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니 좋긴 하지만…!”

”빨리! 팔 떨어져!”

바인의 성화에 병사들과 드워프들이 펄쩍펄쩍 뛰며 팔을 휘적거리던 그때.

엘프족의 촌장 보세우스가 말을 더듬거리며 김인석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김인석이 들고 있던 미니 건이었다.

“그, 그건 대체… 뭐에유?”

방금 전, 커다란 살점 거인들을 단번에 삭제 시켜 버릴 정도로 놀라운 위력을 보여준 무기였다.

심지어, 오크 로드까지 힘 한 번 못 써보고 신선한 다짐육이 되지 않았던가.

“대, 대체 어떻게 그런 위력이 나오는 거에유?”

보세우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털었다.

“아, 이거요. 제가 있던 세상에서 사용하던 무기인데, 화력이 엄청나거든요. 그래서 놈들의 재생력도 이겨 낼 수 있을까 했는데, 역시 통하네요. 하하.”

해맑게 웃는 김인석의 모습에, 보세우스는 조용히 방금 전의 혈투를 복기했다.

‘피부가 붉은 오크들. 그 놈들은 분명 마귀화 된 놈들이었는디….’

마귀화 된 놈들은 상상 이상의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놈들을 상대하려면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화살로 마(魔)를 몰아내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의 살점 거인으로 변한 놈들은 파마의 화살조차 통하지 않던 놈들이었다.

게다가 놈들은 공격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육체를 재생하지 않았던가.

‘그란디, 그런 놈들을 저런 기괴한 무기로 녹여 버려? 그게 말이 되는 겨?’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보세우스의 표정에 김인석은 머쓱하게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왜 전에 그랬잖아요. 때려죽이는 게 빠를 거라고. 이게 물리력을 최대한도로 쏘아 댈 수 있는 무기라….”

“무, 물리…? 파, 파마(破魔)의 기운도 이기지 못한 걸?”

“뭐, 이게 물리의 형태를 한 파마나 다름없죠. 사실 효율은 극악하긴 하지만요.”

대답을 한 김인석은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쏟아 부었던 화력을 생각하자 마음이 살짝 복잡해졌다.

이게 다 돈인데. 피 같은 돈인데….

어두운 표정을 짓는 김인석과는 달리, 보세우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파, 파마(破魔)… 물리….”

중얼거리는 그를 제쳐 둔 김인석은 바닥에 놓인 왕홀을 들어 올렸다.

해골 모양의 장식이 그 끝에 박혀 있는 기괴한 모양이었다.

“나 참. 오크들은 뭐 이런 기괴한 걸 다 들고 다니지?”

“그건 오크 로드의 왕홀이오.”

김인석이 고개를 갸우뚱 하던 그때, 어느새 곁에 다가온 버크가 아는 체를 했다.

“왕홀요?”

“그렇소. 오크들의 왕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지.”

그가 바닥의 육편 덩어리 하나를 툭 하고 차 버리자, 보세우스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허어, 오크 로드는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닌디… 나는 삼 일 밤낮을 싸울 생각으로 왔던 건디….”

여전히 경악이 가시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보세우스는 왕홀을 힐끗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건, 마귀화 된 존재를 조종하는 역할을 했을 거에유. 흑마법의 기운이 진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확실해유.”

“그런 거예요?”

“그럼유. 사용자의 의지력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인 엄청난 물건이쥬. 저런 살덩이들을 조종했던 걸 보면, 만만치 않은 놈이었을 거에유.”

보세우스는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을 이해하는 걸 포기한 듯한 얼굴로 육편을 내려다보았다.

‘흑마법을 조종하는 물건이라고? 대체 이런 걸 어디다 쓴다고.’

왕홀을 든 김인석은 보세우스의 말을 들었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가 가방을 열어 왕홀을 집어넣으려던 그때.

“아마도 도망친 놈들을 그걸로 찾을 수 있을 거에유. 마귀화 된 오크 놈들이랑 왕홀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하니께.”

보세우스가 들고 있던 활의 시위를 당기는 등, 무장을 점검하며 말했다.

당장이라도 도망친 놈들을 추격해서 척살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

그 말에 왕홀을 집어넣으려던 김인석은 멈칫하며 가방을 닫았다.

“그럼 잘 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잔당도 토벌할 겸, 미스릴 광맥도 확보할 겸 이대로 진격할 생각이었는데.”

이게 있으면 놈들을 찾기에 훨씬 편하겠지.

버크 역시도 김인석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요. 마침, 이번엔 나도 활약할 수 있을 것 같거든. 허허.”

그리고는 관문 쪽에서 수레를 끌고 달려오던 드워프들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레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 보세우스는 한숨을 쉬며 정비하던 활을 힘없이 집어넣었다.

“그럼, 앞장서유. 우리는 따라갈 테니께. 가도 뭐, 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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