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대리의 비밀영지-145화 (115/250)

<145화>

“영진 식품이 이름을 바꾼다면서?”

“그렇다던데? 듣자 하니 영진 생활 건강으로 바뀐다더라.”

“아니, 이름은 왜 갑자기 바꾸는 거야?”

느닷없는 영진 식품의 사명 변경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글쎄, 뭐 새로운 제품을 출시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래? 하긴 영진 식품은 그 피부미용 제품도 전문적으로 내는 곳이니까.”

“이야, 이번에는 또 뭘 출시할 생각인 거지?”

정말로 사명 변경과 동시에 영진 쪽에서 신제품 출시를 예고하자, 사람들은 기대감에 차올랐다.

덕분에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모두의 머릿속에 영진의 신제품이 단단히 각인되었다.

“그래서 무슨 제품이래?”

“발모제라던데? 의약외품으로 등록할 거라나 봐.”

“뭐? 발모제? 이런 미친…!”

하지만 신제품이 발모제라는 소식에, 그 기대감은 곧 차갑게 식고 말았다.

지금까지 발모에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 약품은 거의 없던 탓이었다.

게다가 의약외품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효과마저 의심했다.

“에이, 텄네, 텄어.”

“영진도 감 잃었네. 무슨 무안단물도 아니고. 발모제를 의약외품으로?”

“제품명도 이게 뭐야? 자라모리? 누굴 놀리는 것도 아니고.”

“가격도 개 비싸잖아? 샘플도 아니고 이렇게 작은 병 하나에 100만 원이라고? 이런 미친놈들!”

그런 여론 때문에 실제로 제품이 출시되자 시장은 철저히 제품을 외면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간절함이 남달랐던 탈모인들 몇몇은 제품을 향해 손을 뻗었다.

“…혹시 알아? 이게 효과가 있을 지.”

“고작 100만 원? 나는 다시 풍성해질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어!”

그렇게 신제품 ‘자라모리’는 먼지가 쌓여가는 가운데에도 알게 모르게 하나둘씩 재고가 소진되어 갔다.

* * *

죽음의 땅의 최심부. 다크 엘프들의 근거지에서 조금 떨어진 드래곤의 묘지.

오크들은 경건하고 엄숙해야만 하는 묘지를 곡괭이와 삽으로 사정없이 파헤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오크들을 감시하며 닦달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다크 엘프들이었다.

“날래 날래 하라우. 손이 기렇게 굼떠서 어디 써먹기나 하갔네!”

“자네들은 됴심이라는 걸 모르네? 그러다가는 죄 박살나고 말 거이야!”

“해질 때까지 팔 생각이간? 날래 좀 파라!”

“오살할 놈들! 조심히 좀 파라! 날래 파란다고 마구잽이로 삽질하면 되간? 원유가 되다 만 놈들인 거 모르는 거이야? 그러다 부셔먹으면 써 먹지도 못하는 거 알잖니!”

다크 엘프들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 기가 막히는 오크들이었지만, 어떤 오크도 항의를 하진 못했다.

놈들은 곡괭이질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인상을 구기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우우…!”

“대칸께서 살아계셨다면…!”

지난 번, 영지와의 전투에서 오크로드 우르그를 잃은 오크들은 전부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그와악! 이, 인간들한테 대칸이 목숨을 잃었다고?”

“인간들… 이번 인간들은 지난번과는 다르다! 그우우우!”

“그워어어! 우리도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

결국 오크들은 생존을 위해 자존심을 굽히고 다크 엘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의외로 다크 엘프들은 그 요청을 선뜻 받아들였다.

‘그으으…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다크 엘프들에게 엎드렸던 건…!’

그 결과, 살아남은 오크들 모두는 지금과 같은 노예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기렇디! 기렇디! 그걸 날래 꺼내라우!”

“조심, 또 조심하라우! 알간?”

노예가 된 오크들이 캐내고 있는 건, 죽음의 땅에 묻힌 드래곤의 뼈였다.

아직 액화가 되지 않은 덕분에 비교적 원래의 형태를 갖춘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뼈를 캐는 이유는 당연히 본 드래곤을 만들어내기 위함이었다.

“곡괭이질 조심해서 안하네? 루까스 대사제께서 원하시는 거이니, 차근차근 깔끔하게 캐야디!”

“날래 날래 안 캐네? 하루 죙일 곡괭이질만 할 거간?”

어쨌든, 도통 종잡을 수 없는 명령 속에서 오크들은 계속해 드래곤의 뼈를 캐낼 수밖에 없었다.

“그으윽윽! 뭘 어쩌란 말이냐!”

“하나만 해라! 하나만!”

오크들의 불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묘지의 한 쪽에는 드래곤의 뼈가 잔뜩 쌓이고 있었다.

“흐흐, 이거이 신선한 레드 드래곤의 뼈 아니겠슴메?”

“기렇디, 기렇디. 이것들을 이용해서, 남쪽 인간 놈들의 영역을 아주 불바다로 만들어 주갓서!”

그리고 그 뼈들은 다크 엘프들의 마법을 통해 곧바로 아귀를 맞춰가며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 * *

웨스트엔드 영지의 남동쪽 숲.

촌장 보세우스의 집무실.

“허어, 이거 참.”

숲으로 돌아온 떠버리우스는 눈을 질끈 감고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다크 엘프들이 본 드래곤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에 극심한 두통을 느끼고 있던 그였다.

게다가 얼마 전, 정찰을 나갔던 정찰대가 전해온 소식은 더욱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그게 사실이여?”

“아, 그럼유. 여신의 사도가 준 쌍안경이라는 물건 덕에, 제대로 살피고 왔잖아유.”

놈들이 드래곤들의 묘지를 무참히 파헤치고 있다는 소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놈들은 더 많은 본 드래곤을 만들려고 저러는 겨. 아예 단 번에 여길 싸그리 밀어버릴 생각인 게여!”

결국 두통은 걱정과 한데 어우러졌고, 떠버리우스의 입에서 경악의 형태로 터져 나왔다.

“그 뿐만이 아녀! 저 본 드래곤이 여길 쑥대밭으로 만들고 나면, 놈들이 어디로 향하것어? 바로 본토여, 본토!”

경악은 그대로 버버리우스에게 전염되었다.

버버리우스는 공포에 질린 눈빛을 촌장인 보세우스에게로 돌렸다.

“아니 촌장님, 우리도 본토에서 지원을 받아야 하지 않것어유?”

“지원?”

“그리핀이나 뭐 그런 애들 있잖어유. 쟈들은 본 드래곤인디. 전략적으루다가 우리가 열세 아녀유?”

“…본토에서 지원을 어떻게 받어. 수장께서 여기 계시는디.”

보세우스는 무지갯빛 반짝이 옷을 입고 있던 떠버리우스를 힐끔 쳐다보았다.

‘저걸 얻자고 목숨까지 내걸고 이곳까지 건너오시다니….’

게다가 해룡과 싸우다가 벽에 똥칠을 할 뻔하지 않았던가.

결국 우여곡절 끝에, 떠버리우스는 자신이 원하던 걸 손에 넣기는 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엘프들이 잃은 것들이 더 컸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유사시에 지원을 요청할 길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후방에서 모든 것을 지휘해야 하는 지휘관이 최전선 참호에 있는 격 아녀? 수장을 대신해서 비상시에 지휘할 인재도 없는디.’

곧바로 보세우스의 머릿속에는 몇몇 엘프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천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평화에 절여져 있을 멍청한 얼굴들이었기에 머리가 아팠던 탓이었다.

‘그런 놈들이 수장을 대리한다면, 그저 어버버 하다가 끝이 나고 말겨.’

떠버리우스를 대신할 수 있는 엘프는 없다는 게, 보세우스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해룡 또한 큰 변수였다.

떠버리우스의 마법에 걸렸다고는 하나, 지금으로서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확실치 못한 지금 상황에서 바다를 오고 가는 건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내 참. 미치겠네. 인간들처럼 그런 불경한 방법을 쓸 수도 없고.’

떠버리우스의 옷에서 시선을 거둔 보세우스가 고개를 내젓자, 떠버리우스는 움찔하고 말았다.

모든 게 이 옷을 얻으러 온 본인 때문이라는, 힐난 섞인 행동임을 눈치 챈 탓이었다.

“바, 방금 전에 그 눈빛 뭐여?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은디.”

“허이구, 언제 또 독심술은 배우셨대유? 알게 되셨으면 됐슈.”

“뭐, 뭐여? 지금 그 태도는? 나한테 반항하는 겨?”

분위기가 격해지자, 버버리우스는 황급히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잖아유. 빨리 어떻게든 방법을 세워야 하잖아유.”

“허, 허흠!”

떠버리우스가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붉히던 그때.

“이, 일단은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작전을 세워 봐야쥬. 안 그려유?”

버버리우스는 양피지로 된 지도를 펼치고는 곧 여러 가지 전략을 내놓았다.

기습과 전면전, 그리고 엘프 족 특유의 날렵함을 이용한 게릴라전까지.

동맹군인 영지까지 고려한 전략이었지만, 이들이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 작전도 안 되야. 갸들은 본 드래곤을 가지고 있잖여….”

“크윽…!”

본 드래곤의 엄청난 화력을 상대할 방도가 전혀 없던 탓이었다.

“하아… 하다못해 세계수의 씨앗이라도 있었으면… 방어전이라도 펼쳤을 텐디….”

결국 진이 빠져버린 버버리우스는 마음속에 있던 말을 꺼내고 말았다.

“지, 지금 그 이야기를 왜 꺼내는 겨! 그건 실수였다니께!”

그 소리를 들은 떠버리우스는 또 한 번 얼굴이 새빨개지고 말았다.

떠버리우스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보세우스가 입을 열었다.

“아니, 실수가 아니쥬.”

“뭐, 뭐여? 너 진짜 사춘기라도 되는 겨? 왜 또 반항을 하고 그랴!”

“잘 하신 거라는 말을 하는 거에유. 인간 족들에게 세계수를 넘긴 건.”

보세우스는 침착하게 고개를 저었다.

“으응?”

그에 떠버리우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버버리우스의 전략은 인간들의 저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거에유. 그런 의미에서, 세계수를 인간들에게 넘긴 건 잘했다는 의미에유. 일단 이들이 안전해야 그 저력을 볼 수 있으니께유.”

보세우스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지도를 가리켰다.

“저력이유? 아니 인간들이 어떻게 본 드래곤을 이겨유? 지난번의 오크야 그럴 수 있다 쳐유. 하지만 이거는 본 드래곤 아녀유? 드래곤이자 언데드인디?”

“인간들을 우습게 보지 말어. 잠재력이 큰 종족이여.”

“잉? 뭔 소리래유?”

버버리우스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보세우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난 번, 본 드래곤에 대한 소식을 전할 때의 김인석의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위기 앞에서 흔들리던 자의 표정이 아니여….’

보세우스가 소식을 전하자, 떠버리우스는 물론 영지의 영주까지도 크게 경악하고 말았다.

경험 많은 마법사도 그럴진대, 다른 일반인들은 어떻겠는가.

모두가 경악과 공포로 덜덜 떨던 그 순간, 오직 김인석만이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위기를 극복하려는 자의 표정. 바로 그거였잖여.’

그는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속으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뭔가 있는겨. 이번에도.’

사실 김인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세우스는 전혀 몰랐다.

하지만 지난 번, 전세를 단숨에 역전시켰을 때에도 그랬지 않았던가.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느닷없이 괴상한 무기로 오크들을 싸그리 박멸했던 게 바로 김인석이었다.

“…우리끼리 짜는 작전은 소용이 없어유. 인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바탕으로 작전을 짜야, 조금이나마 승산이 있는 거에유.”

그랬기에 보세우스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분명, 김인석이 해결책을 찾아 낼 거라고.

* * *

콰아아앙-!

영지는 때 아닌 폭음으로 뒤흔들리고 있었다.

지난 번, 가고일을 이용해 하늘에서 투하했던 오크통 폭탄을 개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다 작게, 그리고 보다 안전하게. 이번 개량의 목표는 바로 그것이었다.

“어떻소? 이 정도면 괜찮겠소?”

저 멀리 작은 야산에서 먼지 구름이 일어나는 걸 본 드워프 장인 레드는 귀마개를 빼며 말했다.

그의 물음에 김인석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크으, 확실히 화력은 엄청나네요.”

레드를 비롯한 드워프들과 마법부가 함께 개발한 폭약의 위력은 상당했다.

먼지 구름이 가라앉자 구릉 하나가 그대로 사라진 게 보였으니까.

“흐흐. 그럴 수밖에 없소. 이번에는 신의 보석이라는 자수정에 폭발의 기운이 담긴 마력을 사용했으니. 지난번과는 차원이 다를 게요.”

그 말에 김인석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수정이 이렇게 강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구나.

괜히 신의 보물이라고 하는 게 아니네.

“어때요, 영주님? 이 정도면 본 드래곤한테 먹힐까요?”

그리고는 옆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던 영주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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