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대리의 비밀영지-156화 (126/250)

<156화>

장 회장의 되물음에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어차피 판매량은 보장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내수용으로 우선 판매를 한다고 하면, 영진의 이미지가 좀 개선될 것 같거든요. 이번 가격 인상 때문에 워낙에 말이 많았잖아요?”

첫 번째는 내수 시장부터 잘 다져 놓은 다음에 해외 진출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재고 문제도 있었지만, 현재 영진생활건강이 가진 좋은 이미지에 쐐기를 박고 싶었다.

-하긴, 그랬지. 성난 민심을 달래려고 육 사장이 인터뷰까지 했을 정도니.

“예. 그래서 재고 관리도 할 겸, 민심도 달랠 겸,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우선권을 준다고 할 생각입니다.”

장 회장은 동의 한다는 듯한 말투로 대꾸했다.

-그래. 자네 말 대로 당장의 이윤보다는 이미지를 관리하는 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오히려 나을 수도 있네.

“사실, 그보다는 두 번째 이유가 핵심입니다.”

-핵심이라?

“해외의 되팔이들을 막고 싶다는 게 바로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늘 콜라겐 때에는 보따리 상인들이 극성이었다.

물건을 바리바리 싸 들고 자국으로 돌아가서 몇 배나 비싸게 되팔았으니 말이다.

곧바로 해외 수출을 시작하게 되면서 그런 되팔이들이 싹 사라지긴 했지만.

“이번에도 지난 번처럼 그런 꼴을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랬기에 일부러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매수 독점권을 주었던 것이었다.

이런 제품은 간절한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줘야한다.

근본 없고 도덕성 없는 장사치들보다는.

‘쌍놈의 새끼들. 내가 영지에서 힘겹게 가지고 온 걸로 장사를 해?’

그런다고 되팔이들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크게 억제할 수는 있을 게 틀림없었다.

-흐음, 그래서였구만. 쇼핑몰을 이용해서 독점 판매를 하려고 했던 건.

“예. 회원 가입 시에 기입한 정보로 외국인들을 가려 낼 생각이었으니까요.”

물론 우리나라 국민들의 아이디를 도용하는 일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얼마나 살 수 있겠는가?

지금도 재고가 뜨는 족족, 찰나의 순간에 매진이 되고 있는 상황인데.

몇 가지 장치를 더 해두면 되팔이 새끼들을 걸러낼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해외 수출을 고려한다면, 내수에서 먼저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나중에 가격을 올려서 수출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설명을 들은 장 회장은 동의를 표했다.

-알겠네. 그럼 김 대표 생각대로 하도록 하지. 자네 덕에 영진 자동차도 잘 나가고 있으니 말일세. 자네랑 엮이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야? 허허.

처음의 탐탁찮다는 목소리가 아닌, 완벽하게 수긍한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영진 자동차에 납품하고 있던 경량화 부품이 한 몫을 해준 것 같았다.

연비가 확연히 줄어든 덕분에, 후발 주자임에도 선두 주자인 태산을 바짝 따라잡을 수 있었으니까.

-좋네. 그렇다면 영진은 먼저 에스테틱 사업부터 발주하도록 하겠네. 결과는 나중에 지켜보도록 하자고.

장 회장의 말에 나는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을 떠올렸다.

대한민국 뷰티 산업 시장의 규모가 16조 원을 넘는다는 자료를 봤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원유를 뽑아다 파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뷰티 시장에서도 원유만큼이나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예, 회장님.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흐흐.”

* * *

한국관광공사의 정주택 선임은 자료를 정리하다 말고 고개를 갸우뚱 했다.

“책임님. 이거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요…?”

“뭐가?”

그런 정주택의 반응에 그의 사수인 구명회 책임은 옆자리를 향해 고개를 쭉 뺐다.

“아니… 이번 달 입국 관광 통계를 정리 중인데요. 지난달보다 더 늘었어요.”

“지난달? 두 배로 늘었던 달보다 더 늘었다고?”

구명회는 화들짝 놀라며 의자를 끌고 왔다.

지난달이라고 한다면, 외국인 관광객이 전 달의 두 배를 기록했던 달이었다.

오죽했으면 8시 뉴스의 헤드라인으로 그 내용이 보도까지 되었을까.

“보세요, 여기 보시면….”

정주택이 자리를 슬쩍 비켜주자 구명회는 화면의 숫자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덕분에 조용하던 사무실에는 억! 하는 비명이 크게 울려 퍼졌다.

“이, 이백만? 그럼 지난번보다 대략 1.5배나 늘어난 거잖아?”

이제 막 겨울이 끝을 보이는, 비수기 중의 비수기에 이백만 명의 관광객이라니.

구명회는 순간 온몸에서 소름이 돋아나는 걸 느꼈다.

“지, 지금까지 최다 관광객이 몇 명이었지?”

“그게… 19년도 8월에 165만 명쯤 달성 했었죠.”

“그런데 이백만이라니…. 원인이 대체 뭐야?”

“글쎄요…. 그건 저도 잘…. 이거 아무래도 확인해 봐야겠죠?”

정주택이 슬며시 묻자, 구명회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상관인 오만봉 수석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최대한 빨리. 항공사에 연락을 돌리든, 여행사를 다그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분명 저 양반이 물어 볼 거라는 데에 내꺼 두 쪽 건다.”

얼마 후.

구명회의 호언장담은 사실이 되었다.

입국 관광 통계 보고를 받은 오만봉 수석이 정말로 펄쩍 뛰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 그래서? 원인이 뭔데? 빠, 빨리 확인해봐!”

놀란 오만봉은 눈이 동그랗다 못해 사백안이 되어 버렸다.

그 모습에 정주택은 재빨리 다른 보고서를 올렸다.

“…이걸 보시면 아실 겁니다. 관광객들도 관광객들이지만, 보따리 상인들이 눈이 띄게 크게 증가했습니다.”

“보따리 상인? 뭘 샀는데?”

“뭘 산 게 아니라, 뭘 사려고 했는데 결국 못 산 것 같습니다.”

“응?”

오만봉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정주택은 대답 대신 오만봉의 풍성한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아.’

덕분에 오만봉은 보따리 상인들이 노리던 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자신의 머리는 민둥산이나 다름이 없지 않았던가.

얼굴이 새빨개진 오만봉은 헛기침을 하며 부끄러움을 몰아냈다.

“으흠! 그래서 보따리 상인들이 아무것도 못 샀겠네?”

“예. 전혀요.”

오만봉은 자라모리를 구입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던 때를 떠올렸다.

‘나 참. 보따리 상인들이 그걸 무슨 재주로 사.’

아이디당 구매할 수 있는 수량에 제한이 걸려 있었는데도, 제품은 금세 동이 나기 일쑤였다.

그 미칠 듯한 경쟁을 겨우겨우 뚫고 나자, 이천만 원이라는 거금은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풍성해진 머리카락 덕분에 만족감은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자라모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더 그랬다.

“흐흐. 그 놈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겠구만. 그래서 다들 그냥 출국했대?”

“대다수는 떠난 것 같은데… 몇 명은 떡고물이라도 바라고 청담동으로 간 것 같습니다.”

“응? 청담동?”

뜬금없이?

* * *

서울의 WJ 엔터테인먼트.

이곳의 소속 배우 도애리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입술을 씹으며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짜증나, 진짜. 짜증나! 짜증나 미치겠다고!”

지금 그녀가 보고 있는 건, 주말 드라마의 한 장면.

바로 중견 탤런트 정홍미가 주연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니, 정홍미가 어떻게 주말 주연이냐고! 어떻게!”

도애리가 이렇게 분노를 터뜨리는 건, 갑자기 급상승한 정홍미의 인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그런 아침 드라마의 조연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어 왔던 정홍미였다.

하지만 갑자기 미모가 꽃을 피우더니, 한 순간에 덜컥 주말 드라마의 주연이 되고 말았다.

그것도 나이 40에.

“저게, 저게 말이 되냐고! 저 나이에 주말 주연을 맡는다는 게!”

사실 도애리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말 드라마의 주연 자리는 그녀의 독차지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주말에서 아침 드라마 주연으로 격이 확 떨어지고 말았다.

그 때문에 도애리는 한 순간에 신데렐라가 되어 버린 정홍미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다.

“어떻게! 어떻게 이러냐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홍미는 내 밑이었잖아! 지난 작품에서 쟤, 나한테 김치 싸다구 맞았던 애였어!”

도애리의 옆에서 숨죽이고 있던 WJ의 대표 정우진은 작심이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야, 애리야. 진정 좀 해라. 정홍미, 어려지고 이뻐졌잖냐. 예전의 그 촌스럽던 주부 이미지가 아니야, 이제.”

“뭐? 정 대표! 지금 뚫린 입이라고…!”

“사, 사실이 그렇잖아. 저 얼굴을 누가 40으로 보겠어. 20대라고 해도 믿을 텐데.”

정우진은 때마침 화면 속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던 정홍미를 가리켰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주름 하나 없는 피부. 그리고 풍성한 머리카락까지.

도애리는 잠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피부야 시술을 했다고 쳐도, 저렇게 윤기가 넘치고 풍성한 머리카락이라니….’

브라운관을 뚫고 나올 듯 빛이 나는 정홍미의 머릿결은 마치 샴푸 광고를 보는 듯했다.

그 모습이 도예리의 콤플렉스이자 발작버튼을 자극하고 말았다.

자신의 푸석하고 비어보이기만 하는 머리카락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오죽했으면 안티들이 자신을 부르는 별명이 바로 골룸일까.

“…짜증나, 진짜. 대체 어느 샵이야? 저런 건 붙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데. 설마 청담동?”

“청담동은 맞는데, 헤어샵이 아니래요, 누님.”

도애리의 혼잣말을 받은 건, 그 옆에서 휴대폰을 매만지던 매니저 우은섭이었다.

“그럼?”

“YJ 에스테틱요. 청담동에 새로 오픈했잖아요.”

“YJ 에스테틱…?”

“하아… 우리만 이렇게 정보가 늦다니까요? 영진 그룹에서 새로 차린 건데, VIP들 피부 관리랑 헤어관리랑 다 해주나봐요. 정홍미 누님도 거기서 받은 거구요.”

그 말을 믿으라고?

“너 지금 한낱 에스테틱 때문에 정홍미가….”

“진짠데? 다른 곳도 아니고 영진인데? 누님이 먹는 그 콜라겐도 영진 거잖아요.”

콜라겐이란 소리에 도예리가 멈칫하자, 우은섭은 말을 이어갔다.

“홍미 누님도 YJ에서 관리해 준거래요. 아, 윤미가 그랬다니까요?”

“윤미? 윤미가 누군데?”

“정홍미 누님 코디요. 제 여친.”

우은섭이 휴대폰을 들어 대화 내용을 보여주자, 눈치를 보던 정우진이 그의 뒤통수를 후렸다.

“에, 에라이 이 새끼야! 지금 적군이랑 연애를 해? 어?”

“아오! 대표님! 아파요!”

“야, 임마! 지금 우리 예리 기분이 어떻겠어?”

도예리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한 일격이었지만, 정작 도예리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지금 머릿속에 마구 떠오른 단서들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상황을 조합하고 있었으니까.

영진. 에스테틱. 정홍미의 소속사는 주한나랑 같은 HM 엔터.

게다가 주한나는 영진이랑 꽤나 친하잖아?

‘그리고 최근에 그 자라모리라는 발모제가 영진에서 나왔고….’

순간 도예리는 불에라도 데인 듯이 앉은 채로 펄떡 뛰었다.

그제야 저 풍성하고 윤기가 넘치는 머리가 영진의 작품이라는 것을 납득했기 때문이었다.

“저, 정 대표!”

“어, 어?”

“은섭이가 말한 에스테틱! 지원 좀 해 줘봐!”

“어?”

“저거야! 저거! 정홍미가 어려진 이유!”

어쩌면 나이를 거꾸로 먹은 듯한 피부 역시도 영진의 솜씨일지 몰랐다.

“가, 갑자기?”

“아, 빨리! 내가 잘 되면 정 대표도 좋은 거잖아! 이참에 나도 다시 주말 주연으로 돌아가야…!”

도애리가 간절한 표정으로 정우진을 조르던 그때.

“소용없어요. 내후년은 물론, 3년 뒤까지 예약이 꽉 찼다고 하니까.”

우은섭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 말에 다른 두 사람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 진짜야?”

“아, 홍미 누님이 저렇게 변했는데 다들 가만히 있었겠어요? 대한민국에 내로라하는 탑급 연예인들은 물론, 정치인들까지 죄다 몰려갔다니까요?”

곧바로 우은섭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명단을 주욱 읊기 시작했다.

“지, 진짜야? 송혜지에 그 한예진까지?”

경악한 도예리의 얼굴빛이 시시각각 변하던 그때.

우은섭의 그 다음 한 마디는 그녀를 경악으로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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