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회, 회장님…?”
“지금 무슨 말씀을…?”
태산 그룹의 중역들은 순간 흠칫하며 놀랐다.
방금 전 태관석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왜 다들 그렇게 놀래? 내가 좋은 일 하겠다는 게 이상해?”
태관석이 했던 말은 바로, 태산 그룹을 사회적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말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극한으로 이윤만을 추구하던 게 바로 태관석 아니었던가.
그랬기에 모두는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저….”
“그게 말입니다….”
당혹감 가득한 주위를 잠시 둘러 본 태관석은 자신의 의지를 다시 한 번 표명했다.
“태산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겠나? 바로 우리 사회가 뒷받침을 해주었기 때문 아닌가? 그렇게 받았으면 뭐, 돌려주기도 해야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갑자기 이렇게, 그것도 뜬금없이 회사의 방침을 바꾼다니.
‘갑자기 왜 저러시는 거야?’
‘165도 바뀌신 줄 알았는데 진짜 180도로 바뀌신 건가?’
‘그렇게 되면 수익이 대폭 줄어들 텐데….’
중역들이 걱정 때문에 입을 다물자, 그들을 슬쩍 바라본 태관석은 에잉 하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 걱정 마. 차츰차츰 천천히 할 거니까 말일세. 갑자기 그룹 전체에 적용하겠다는 건 아니야.”
그 말에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튀어 나왔다.
“아, 여기도 딸린 식구가 몇인데! 거 참, 이 사람들. 날 뭐로 보는 겐가?”
때문에 태관석은 기가 차다는 듯이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허, 참. 그 동안 내가 못되게 굴기는 굴었었나 보구만.”
그랬으니 다들 이런 반응이겠지.
태관석이 이렇게 변하게 된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과거의 일들이 후회가 되었던 것.
더불어 심보를 못되게 쓰면 또 다시 암이 재발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태관석이 자신의 심장을 매만지던 그때.
“저, 회장님….”
부드러워진 분위기에 힘입어, 중역 중에 한 사람이 손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그래, 뭔가?”
“외람되지만, 갑자기 이렇게 변심하신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욕먹지 않고 오래 살고 싶어서 그러네. 허허.”
“예?”
“그런 게 있네, 그런 게.”
태관석은 얼마 전 김인석과 장 회장이 찾아왔던 일을 떠올렸다.
* * *
“이걸 팔고 싶습니다.”
김인석이 슬며시 내민 유리병에, 그 내용물을 알아 본 장태삼 회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내 자네 입에서 그 말이 왜 안 나오나 했네.”
하지만 태관석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헌데… 이게 뭔가?”
생긴 게 꼭 인삼 같은데, 당근만한 크기에 색깔도 희한하게 보라색이었다.
이런 걸 꿀에 절여 둔 건가?
그간 갈아놓은 것만 마셨던 그였기에 그 정체를 모를 수밖에 없었다.
“응? 자네, 이걸 모르나?”
“형님은 알고 계시우?”
여전히 태관석이 감을 잡지 못하자 김인석이 나섰다.
“에이, 매번 제가 갈아서 우유에 타 드렸잖아요.”
“응? 으응? 이게?”
그제야 태관석은 화들짝 놀랐다.
“그, 그럼 이게 그 써버리우스 선생께서 말씀하셨던 그 치료제라는 말인가?”
“네. 용삼이라는 제품이에요. 이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계시죠?”
알다마다. 이것 때문에 목숨을 건졌는데.
태관석은 다시 한 번 김인석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런데, 이건 직접 재배한 건가?”
“예.”
“어디서?”
“에헤이. 그런 건 묻지 마세요. 사업상 비밀, 잘 아시잖습니까.”
김인석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미소를 짓자, 태관석은 쩝 입맛을 다셨다.
저놈의 욕심이 이전의 나와 닮았다는 걸 내 잠시 깜빡했구만.
“으흠, 어쨌든 이걸 팔고 싶다라…. 자네가 이걸 나한테 내민 건 도움이 필요해서겠지?”
저 대사는 예전에 나도 한 번 했던 것 같은데….
태관석의 말을 들은 장태삼은 데자뷰를 느꼈다.
그때, 살짝 흥분한 태관석이 콧김을 뿜으며 말을 이었다.
“그간은 내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판단을 못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대단한 물건이란 말이지. 자네가 우유에 타서 나에게 먹인 그 치료제 말일세.”
“이 용삼이요?”
“그렇지! 바로 이거! 세상 천지에 암을 고치는 약재가 어디 있겠나? 게다가 암세포를 죽이는 게 아니라 그 세포를 원래대로 돌려놓다니.”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되돌아 온 이후. 태관석은 자신의 치료법에 대해 오랜 시간 사색하고 또 고민했다.
그랬기에 김인석과 떠버리우스가 치료법에 대해 말을 아꼈어도 대부분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의학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걸세! 이런 걸 팔게 되다니.”
이제는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버린 태관석은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그런 태관석의 모습에 김인석은 속으로 난처해했다.
아직은 그렇게 대중화 할 정도로 많지가 않은 수량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가 두 회장들에게 용삼을 팔고 싶다고 한 건, 대중들이 타깃이 아니었다.
“사실, 용삼에는 다른 효능도 있습니다.”
일단은 좀 더 얘기를 진행해 볼까?
“응? 다른 효능?”
“예. 아주 놀랄만한 효능이죠.”
김인석이 둘도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태관석 또한 덩달아 진지해졌다.
“그, 그게 뭔가?”
김인석은 그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양피지 두 장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에 또 한 번 데자뷰를 느낀 장 회장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영지에 초대 받았을 때, 저 양피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영주께서 만드신 겐가?”
“예.”
“효과는 확실하겠군.”
“그렇죠 뭐.”
한숨을 내쉬는 장태삼의 모습에 태관석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님은 뭔가를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수?”
“나야 이 친구와 한두 번 보는 사이가 아니니…. 그래, 김 대표. 이번엔 뭘 약조해야 하는 겐가? 이 용삼에 대한 비밀?”
“그걸 포함한 제 비밀에 대한 모든 거죠.”
김인석은 빠르게 마나의 맹약이라는 것을 설명했다.
“뭔 그런 허무맹랑한….”
태관석은 김인석의 말을 듣고서도 그 내용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장태삼의 손바닥으로 양피지가 푸른빛을 내며 사라지자, 그제야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다.
“으헛! 그, 그 말이 거짓이 아니었어?”
놀라는 태관석을 향해 김인석은 양피지를 들어보였다.
그러나 태관석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 싫네…. 거 무서워서….”
“아, 거 참. 앞으로 사업을 벌일 때 기회가 있으면 끼워달라고 하셨잖아요. 그러자고 아드님들을 제 자회사에 취업시키신 거 아닙니까?”
김인석의 말에 태관석은 자신의 아들 셋을 떠올렸다.
태산 그룹 밑에서는 직위가 없어도 황태자 취급을 받았기에, 녀석들을 김인석에게 맡기지 않았던가.
그로 인해 삼형제는 지금, 태영해운과 대진해운, 그리고 태산플랜트에 뿔뿔이 흩어져서 팔자에도 없는 고생을 하고 있었다.
“이, 이거 참….”
이윽고 태관석은 벌벌 떨며 손을 뻗었고, 양피지는 곧 태관석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프지는 않구만….”
“맹약을 어길 때에만 발동하는 거니까요.”
태관석이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앙다물던 그때, 장태삼은 김인석을 재촉했다.
“그래, 그 용삼이라는 것의 다른 효능이 뭔가?”
“그러니까, 장수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에이, 수명 증가에요. 수명 증가. 뭐 외부에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안 되겠고, 장수 식품 정도로만 이야기를 할 생각이에요.”
“수, 수명 증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김인석과는 달리 장태삼은 경악하고 말았다.
사람의 수명을 늘려주는 약재가 있다니. 그럼 이게 불로초란 말인가?
하지만 태관석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허 참….”
“태 회장님. 요새 막 몸이 가볍고 활력이 샘솟고 그러지 않으세요?”
“응?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계단 하나도 오르기가 힘들었던 태관석이었다.
그러나 요새는 한 번에 두 칸씩 번쩍번쩍 넘어 다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에도 그랬지. 혼자서 걷기 시작했을 때, 다들 기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김인석은 그게 체내의 마력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력이 증가할수록 신체 능력은 물론, 동시에 수명 역시도 증가한다고.
김인석의 설명에 두 회장은 경악하며 유리병을 향해 고개를 쭉 뺐다.
“김 대표, 이거 얼마에 팔 생각인가?”
“장 회장님이 사시게요?”
“그래, 내가 사겠네. 조만간 우리 금동이도 태어날 텐데, 내가 오래 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 그렇지. 나도 사겠네. 이거 그냥 우리한테 팔지 그래?”
청년과 노인이 생각하는 시간의 가치는 전혀 다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흘러가는 게 점점 더 아깝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시간 아니던가.
“자자, 진정들 하시구요.”
김인석은 양손을 들어올려 흥분하는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두 회장님께는 제가 각각 한 병씩 공짜로 드릴게요.”
“오오!”
“저, 정말인가?”
화색을 감추지 못하는 두 사람을 보고 김인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VIP분들의 소개를 좀 부탁드려야겠습니다.”
“응?”
“VIP분들이라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두 회장을 보며 김인석은 씨익 웃어보였다.
“제가 왜 두 분한테 이걸 보여드린 건지, 아시겠죠?”
* * *
미합중국, 백악관.
아이든은 자신 앞에 놓인 유리병을 바라보며 두 눈을 끔뻑였다.
“이게… 한국 대사관을 통해서 온 거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먹는 거라던가요?”
아이든이 의문을 표하자, 보좌관 맥플라이는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야채는 안 먹는데….
더군다나 이렇게 수상하게 생긴 뿌리채소는.
“알겠습니다. 일단 지금은 가져가도록 하세요.”
그러나 맥플라이와는 달리, 아이든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눈앞에 놓인 유리병을 가져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 탓에 다급해진 건 바로 맥플라이였다.
“저, 미스터 프레지던트. 이건 특별한 겁니다.”
“특별하다니?”
“지난번에 그 머리… 있잖습니까?”
그 말에 아이든은 자신의 빽빽해진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CIA를 통해 들어왔던 자라모리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덕을 봤던가.
지지율까지 반등해서 재선까지도 가능하다고 보는 게 지금의 상황이었다.
“설마? 그… 그때의 자라모리?”
“예, 맞습니다. 동석종합상사의 김인석 대표가 직접 선물한 겁니다.”
“오오! 미스터 킴! 미스터 킴이 보낸 겁니까?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죠!”
자신을 살려준 고마운 은인의 이름이 언급되자, 아이든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럼 이것도 뭔가 특별한 효능이 있겠군요?”
“그… 고든 주한미국대사가 말하기를, 이 약초가 대한민국의 정치권에서 아주 유명하답니다. 장수 식품 중에서도 아주 효과가 좋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장수 식품? 먹으면 건강해지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예. 그저 소문이기는 하지만, CIA의 첩보에 따르면 복용한 사람의 활력이 기적같이 향상된다고 합니다.”
아이든은 그 말에 귀를 쫑긋했다.
그렇지 않아도 힘이 달리는 걸 느끼는 요즘이었으니까.
겉모습은 젊어졌지만, 나이라는 게 무시할 수 없는 건지 걸음도 무겁고, 입맛도 없었다.
더군다나 날이 갈수록 손아귀에서 힘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이러다 재선이고 뭐고, 천국의 문부터 먼저 두드릴까봐 겁이 나는 상황이었는데.’
아이든은 망설임없이 그대로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향긋한 향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와 집무실을 가득 채웠다.
아이든과 맥플라이는 살포시 눈을 감은 채 코를 벌름거렸다.
그러자 동시에 입가에서 침이 살짝 흘러나왔다.
“흐흠…. 헌데 이 약초의 이름이 뭐라던가요?”
“드래곤 진생이라고 하더군요.”
미국에도 진생이라고 불리는 인삼은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드래곤이라는 이름이 붙다니.
“드래곤이라…?”
“아마도 드래곤처럼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호오, 그래요? 그럼 혹시 이건 한국의 산삼 같은 겁니까?”
“예.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일반적인 인삼보다 산삼이 훨씬 좋다는 상식은 아이든도 맥플라이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어쨌든 더 이상 주저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든은 씻지도 않은 검지와 엄지를 통 안에 쑥 집어넣었다.
“미, 미스터 프레지던트? 포크와 나이프를 준비할까요?”
“아, 됐습니다. 못 기다리겠어요. 그냥 이렇게 먹고 말지.”
이내 아이든은 손가락으로 꺼내든 용삼 하나를 그대로 으적 씹었다.
마치 홀리기라도 한 듯이 체면이고 뭐고 다 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