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체면이고 뭐고 다 잊은 채 용삼 하나를 입에 넣자….
‘히야….’
이내 아이든의 입 속에서는 천국이 펼쳐졌다.
혀끝에서부터 저 안까지 퍼져나가는 농밀하면서도 참을 수 없는 꿀의 달콤함.
온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하던 그 순간, 용삼의 쌉싸름한 맛이 정신을 붙들어 주었다.
Knocking on heaven’s door.
그러자 정말로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것만 같은 황홀경이 느껴졌다.
“미, 미스터 프레지던트!”
구름 위의 천국에 다다른 듯한 착각에서 그를 끄집어 낸 건, 보좌관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응? 으응?”
“괜, 괜찮으십니까? 방금 전에 흰자가 보였습니다!”
아차…. 너무나도 환상적인 맛에 나도 모르게 눈을 까뒤집었구나.
아이든은 손수건을 꺼내 입가에 잔뜩 묻은 꿀을 닦아냈다.
그리고는 그 손수건을 쭉쭉 빨아먹기 시작했다.
“미, 미스터 프레지던트!”
“…아!”
이거 너무 맛있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군.
마치 악마의 유혹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든은 황급히 뚜껑을 닫았다.
“후우…. 이거 대체 성분이 뭡니까? 마약이라도 들어 있는 거 아닙니까?”
“그 정도로 맛이 좋은 겁니까?”
침을 꿀꺽 삼키는 보좌관 맥플라이를 바라보며 아이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례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아무래도 성분을 분석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맥플라이는 병을 집어 들었다.
재빠르게 남은 수를 세어보자, 남은 용삼은 넷.
한 뿌리 정도는 사라져도 모르겠지.
또 한 번 군침을 삼킨 그가 막 방문을 나서려던 그때.
“아! 잠깐만!”
어느새 자신의 뒤편까지 달려온 아이든이 그를 멈추어 세웠다.
활력이 샘솟는다는 게 정말이었나?
“미, 미스터 프레지던트!”
두 눈을 크게 뜬 맥플라이의 모습에 아이든 또한 살짝 놀라고 말았다.
자신이 이렇게나 빠르게 움직였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여태껏 마력이라는 걸 경험해본 적이 없던 탓에 아이든은 그게 마력이 일으킨 변화라는 걸 알지 못했다.
“허어, 이거 참. 갑자기 몸에 활기가 도는 것이…. 그보다 보좌관, 잠시 병을….”
“미, 미스터 프레지던트? 갑자기 왜… 이, 이익!”
맥플라이는 순간 솟구친 욕심에 병을 꽉 쥐었지만, 아이든을 이길 수는 없었다.
80 넘은 노인네가 왜 이렇게 힘이 세?
정말로 드래곤 진생에 그런 효능이 있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효능이 이렇게나 빨리 퍼진다고?
병을 빼앗긴 맥플라이가 경악을 금치 못하던 차에, 아이든은 뚜껑을 열고 용삼 하나를 꺼냈다.
“흐흠, 성분 분석을 하는 데에 그렇게 많은 뿌리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군요.”
이런 쪼잔한…. 지금 고작 한 뿌리만 가져가라는 건가?
그 모습에 맥플라이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 성분을 분석하는 데에 이 게 다 필요하지는 않겠지. 이빨로 반을 뚝 끊어먹으면 되겠다.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그랬던 거지?
하지만 맥플라이가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들던 그 순간….
똑-!
그는 아이든의 다음 행보에 입을 쩌억 벌리며 경악하고 말았다.
“이 정도면 되겠지. 자, 가져가시오.”
아주 작은 잔뿌리 하나를 뜯어낸 아이든이 머쓱하게 웃으며 맥플라이에게 그걸 내밀었던 것.
얼어붙은 맥플라이의 손바닥에 잔뿌리를 올려준 아이든은 병을 소중하게 안은 채, 꺼낸 용삼을 씹기 시작했다.
으적으적-!
이번에도 역시 눈을 까뒤집으면서.
“히야아아….”
* * *
신논현의 동석종합상사.
커다란 소파에 앉은 엄재동은 대형 TV에 나온 아이든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와아….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바뀌냐….”
80 먹은 노인네가 골프 필드를 힘차게 활보하는 게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다른 나라의 정상들은 힘이 달리는지 그 뒤를 쫓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든은 드라이버로 장타를 뻥뻥 날려댔다.
웬만한 골프선수 못지않은 모습이었다.
“타이거 우즈도 저렇게는 못 치겠다.”
“그러게, 약발이 제대로 받나보다.”
때마침 지하로 내려온 김인석은 엄재동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넥타이를 거칠게 풀었다.
“어, 왔어? 야, 고생했다, 인석아.”
요사이 김인석은 동석의 이미지를 포장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걸 알기에 엄재동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쉽지 않아, 그치?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로비를 한다는 게.”
“…이런 일은 딱 질색인데. 그래도 영지에서 퍼 올린 원유를 팔아먹으려면 어쩔 수 없지.”
김인석이 이렇게 애를 쓰며 이미지를 포장하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원유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몰랐기에 미리 우군을 만들어 놓으려는 것.
김인석은 엄재동의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대꾸했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용삼이 없었으면 다들 만나주지도 않았을 텐데.”
지난 번, 영진과 태산의 회장에게 용삼을 가져다준 대가로 그 이후 VIP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재계와 언론계는 물론이고, 정계의 인사들까지 소개를 받은 김인석이었다.
물론 만날 때마다 샘플이라며 잘 포장된 용삼을 한 병씩 챙겨주었기에, 만남은 언제나 성공적이었다.
“나 참. 이게 불법도 아닌데 어렵게도 돌아간다.”
“그러게 말이다. 그보다 오늘 연락은? 구매 의사를 밝힌 곳 없어?”
“그렇지 않아도, 오늘 김상덕 의원한테서 문의가 왔더라. 여섯 병 더 사고 싶다던데? 저기 과일 세트는 김상덕이 보낸 거야.”
“재고가 모자라다고 했는데, 뭘 또 저런 걸.”
“야, 오재수 의원은 한우다, 한우. 열 병을 구매하고 싶대. 어제 박광덕한테 네 병 보낸 거 빼면 재고가 딱 맞게 떨어지기는 해.”
엄재동은 휴대폰을 들어 메모해 둔 내역을 읊었다.
“그럼 다들 애 좀 타게 며칠 시간 끌다가 보내 줘.”
한우 다음에는 뭐가 나오는지 봐야지.
“다들 돈도 많아. 한 병당 2억씩이나 하는 걸 이렇게 넙죽 넙죽 구매하는 걸 보면.”
“흐흐, 효과를 보니까 그렇게 팔리는 거다. 한 번 먹어보고 나면 다들 눈이 뒤집어지는 거지.”
김인석은 게이트 너머 본토의 백색 아카데미를 떠올렸다.
그곳의 마법사들도 경쟁적으로 용삼을 구매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덕분에 김인석은 귀한 마법서들을 잔뜩 챙길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영주도 모르고 있던 마법들도 들어 있었다.
‘그것 덕분에 중요한 실마리를 얻기는 했지만.’
김인석이 현실도 그곳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엄재동이 질문을 해왔다.
“그래서, 이번엔 어딜 만나고 왔냐? 야당? 여당? 근데 정치권은 거의 다 포섭했잖아?”
“오늘은 CIA 한국 지부, 브라운 지부장을 만나고 왔어.”
그 말에 엄재동은 지난번의 일을 떠올렸다.
브라운에게 자라모리를 가져다주면서 나중에 소원 두 개를 들어주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뭐래? 뭐라고 하디?”
* * *
“허허, 어서 오십시오! 미스터 킴! 허허허.”
CIA의 지부장 아서 브라운은 너무도 밝은 미소로 김인석을 반겼다.
“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봐요?”
지난번에 보았을 때보다 격하게 자신을 반기는 모습에, 김인석은 뭔가 있구나 싶었다.
“아, 그게 말입니다. 이번에 VIP께서 아주 기뻐하시더군요. 감사합니다, 미스터 킴.
일전에 김인석이 선물했던 드래곤 진생, 용삼의 효과를 너무나도 톡톡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덩달아 선물에 대한 고마운 인사를 받게 된 브라운이었기에, 그는 김인석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저도 그 후광을 조금 쐴 수 있었습니다.”
브라운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아마 승진을 앞두고 있다는 말이겠지.
“축하드립니다, 지부장님.”
“이게 다 미스터 킴 덕분입니다, 하하하.”
“그럼 이제 본토… 아니 본국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예. 아무래도 이번 인사 개편에 맞추어서 돌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브라운은 곧바로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아, 걱정 마십시오.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두 가지 부탁에 대한 건, 제가 본국에 가서도 유효하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미국 대통령 아이든이 김인석에게 적절히 보답할 방법을 찾아보라고 한 상황이었다.
용삼이라는 걸 조금 더 얻어 오면서 말이다.
그의 말에 김인석은 씨익 웃었다.
“예. 오늘 온 건 그 두 가지 부탁 중에 하나를 요청하기 위함입니다.”
갑작스런 김인석의 미소에 브라운은 잔뜩 긴장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하게 된다면 다른 대안을 제시해야만 했으니까.
그런 긴장감 속에서 곧바로 김인석은 입을 열었다.
태산 플랜트를 통해 원유를 추출하게 된다면, 미국 측에서 그걸 사줄 수 있냐고.
그것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적당한 가격 선에서.
“…추출한 게 아니라, 추출하게 된다면 입니까?”
“어, 네. 그렇게 말했습니다. 제 영어가 이상했나요?”
“어, 아뇨. 그럴리가요. 저는 사실 더 대단한 걸 부탁하실 줄 알았습니다.”
브라운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잔뜩 긴장했던 자신이 우스워진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태산 플랜트는… 가지고 있는 유전이 없지 않습니까?”
“미리 조사를 해보셨군요.”
“죄송합니다. 자리가 자리이다 보니, 몰라도 되는 정보까지 들어오는군요.”
“괜찮습니다. 이미 알고 계셔서 설명이 더 빠를 것 같네요. 하지만 그 전에 정정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걸 말입니까?”
“태산 플랜트는 가지고 있는 유전이 없다는 말 말입니다. 그보다는 가지고 있는 유전에서 기름이 나오지 않았다는 걸로 정정하고 싶습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 브라운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순간 멈칫했다.
“설마… 미스터 킴?”
“예. 지금 태산 플랜트가 가지고 있는 유전들부터 다시 시추 작업을 해볼 생각입니다.”
“하,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폐유전 아닙니까? 이미 원유가 나오지 않는 걸 오래전에 확인한 셈이잖습니까?”
지금까지는 미국의 입장에 서서 김인석을 대했던 브라운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김인석의 말에는 그도 진심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아… 미스터 킴.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원하신다면 제 직권으로 석유가 나올법한 최적의 장소를 찾아 드릴수도 있습니다.”
검은 황금을 캐겠다는 헛된 꿈을 꾸던 사람들.
그들의 비참한 말로를 제법 잘 알고 있던 브라운이었기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브라운의 진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인석은 손사래를 쳤다.
“에이 아닙니다. 그저 문서 하나면 됩니다.”
“문서요?”
“네. 말씀 드렸듯이, 나중에 제가 추출할 원유를 제가 원하는 만큼 적당한 가격으로 미합중국이 매입한다. 뭐 그런 서류를요.”
이쯤 되자, 브라운도 더 이상은 말리지 못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미국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전혀 없는 부탁이었다.
못 캐도 그만이고, 캐더라도 적당한 가격으로 팔겠다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미스터 킴. 정 그러시다면 서류를 작성해 드리죠.”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대통령이 적절한 보상을 얘기해 둔 상태였으니.
‘하지만… 기분이 이상하게 묘한데….’
혹시라도 정말 김인석이 성공하게 된다면?
‘아니, 그럴 리가 없지.’
계속해서 그런 느낌이 들자, 브라운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 * *
“흐흐. 어려운 산 하나는 넘었네.”
영지로 넘어온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마법 공학부로 향했다.
그런 내 모습이 못마땅했던 걸까? 재동이는 혀를 끌끌 차며 나를 타박했다.
“어휴. 그런 평범한 소원을 빌다니. 차라리 최적의 장소를 찾아달라고 하지 그랬냐. 그랬으면 지금보다 더 조작이 쉬울 텐데.”
“이 자식, 뭘 모르네. 그런 걸 받아서 조작하면 금방 들키는 거야, 임마.”
“어?”
“생각을 해봐라, 걔들이 매장량도 체크 안 하고 주겠냐? 게다가 샘플이라도 체크 해본 상태라면?”
내 말에 재동이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 생각을 못했네. 야, 진짜 조질 뻔했다. 와아, 그동안 작업했던 걸 다 날릴 뻔했어.”
“그리고 미국이 사주기로 한 거면 됐어. 구매처를 구하느라 이리저리 고생할 필요가 없으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네.”
“그리고, 미국이 사주는데 다른 국가가 안 사겠냐? 흐흐.”
나는 재동이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어려운 산 하나는 넘었지만, 또 하나가 남아 있었다.
오늘 이렇게 영지를 찾은 것도 그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기 위함이었다.
“어쨌든 일단 실마리는 찾았다니, 어디 한 번 가서….”
내가 다시 재동이의 어깨를 두드려주던 그때.
쿠와아아앙-!
갑자기 마법공학부가 있는 쪽에서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