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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존강림-34화 (34/250)

34화

적성문주 강만홍은 자신에게 대가리 박으라고 당당하게 말한 청성파의 젊은 도사를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황당함이 분노로 바뀌었다.

“뭣들 하는 게냐! 당장 저놈을 끌어내라!”

강만홍의 노호성에도 바깥에서 뛰어 들어오는 무사들이 한 명도 없었다.

그때 창문을 뚫고 뭔가가 들이닥쳤다.

와장창!

붉은 두건을 맨 적성문 무사가 창문을 뚫고 들어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이를 본 강만홍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이어서 유한백이 부순 문 쪽으로 조명환과 백무흔이 차례로 들어왔다.

“평소에는 움직이라고 해도 꿈쩍도 않던 놈이 날뛸 때만 아주…….”

“조 사형, 그게 낫습니다. 평소에도 이렇게 날뛴다고 생각하면…….”

두 사제는 서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유한백은 검을 치켜든 채로 강만홍에게 외쳤다.

“오, 사, 삼, 이, 일. 좋아. 난 기회를 줬는데 네가 걷어찬 거다. 넌 뒤졌다. 양아치 새끼야.”

그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강만홍 쪽으로 다가서려 하자 조명환과 백무흔이 말리려 했다.

둘이서 각각 유한백의 두 팔을 잡으려 했지만 놀랍게도 두 사람은 헛손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휘이이익-

유한백의 신형이 바람처럼 흩어지며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었다.

조명환과 백무흔에게서 벗어난 유한백의 신형은 강만홍 바로 코앞에서 나타났다.

짜악!

유한백은 다짜고짜 강만홍의 따귀를 갈겼다.

느닷없이 처음 보는 젊은 도사에게 따귀를 맞은 강만홍은 어리벙벙했다.

동시에 뺨이 부풀어 오르며 아픔이 퍼져 나갔다.

“이런 미친 새끼가아!”

청성파의 도복을 입고 말고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강만홍은 손을 뻗어 옆에 둔 자신의 도를 뽑아 들었다.

후우우웅!

강력한 도격이 유한백의 정수리를 쪼갤 기세로 강하게 내리꽂혔다.

적성문을 세운 강만홍의 증조부는 청성파의 속가제자로 검법이 아닌 도법을 익혔다.

청성파의 벽운도는 무림에서도 이름 있는 일절이었는데, 그가 도로 일가를 이루어 무림 백대 고수 안에 든 뒤 성도에 적성문을 연 것이었다.

벽운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적성문의 독문도법인 적운도법은 강맹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적을 단숨에 제압하는 쾌도법이었다.

발도 자체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도술이었기에 강만홍은 유한백의 머리통이 쪼개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짜악!

찰지는 소리와 함께 강만홍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눈에 보이지도 않은 따귀를 맞은 것이었다.

연속으로 따귀를 맞자 강만홍은 눈앞에서 별이 보였다.

‘뭐, 뭐지?’

분명 자신이 먼저 발도했는데 정작 따귀를 맞은 것은 본인이었다.

강만홍은 따귀의 아픔을 참고서 다시 유한백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후우우웅!

강맹한 힘을 품은 적운도법의 도격이 다시 유한백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러자 유한백이 들고 있던 검을 검집째로 휘둘렀다.

콰앙!

유한백의 검집과 부딪힌 강만홍의 도가 뒤로 날아가 벽에 그대로 꽂혔다.

지이이잉!

도를 놓친 강만홍은 손바닥 거죽이 벗겨졌고, 팔을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강한 저림을 느꼈다.

‘마, 말도 안 돼.’

무공을 배웠어도 자신이 눈앞에 있는 도사보다 두 배의 세월은 더 익혔을 터인데 대충 휘두른 검 한 방에 완전히 무장 해제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유한백은 그런 강만홍을 보더니 검을 쥐지 않은 손을 들었다.

짜악!

다시 따귀를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한백은 연속적으로 강만홍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짜악! 짜악! 짜악!

“커헉!”

유한백에게 정신없이 따귀를 얻어맞은 강만홍은 체면을 차릴 겨를이 없었다.

입안이 죄다 터져 피거품이 절로 흘렀다.

“사, 살려 주시오!”

더 맞으면 죽겠다 싶어서 살려 달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유한백의 손은 멈추지를 않았다.

짜악! 짜악! 짜악!

찰지게 오가는 따귀 소리에 지켜보는 사람들조차 자신의 뺨을 매만질 정도였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총관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다.

‘여기서 일단 빠져나가야 한다.’

뒷돈을 대던 관군 쪽에 이 사실을 알리고 군사를 보내 이 무뢰배들을 붙잡을 생각이었다.

총관이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려 할 때였다.

“어디 가십니까.”

어느새 뒤를 지키고 선 백무흔이 총관을 가로막았다.

잘생김을 빚어 놓은 것 같은 백무흔이 도를 든 채 고아한 자세로 막아서자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마치 잘 벼려진 한 자루의 칼처럼 빛나고 있었다.

총관은 백무흔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젠장.’

어쩔 수 없이 붙잡힌 채 유한백에게 따귀를 얻어맞는 강만홍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반시진 정도가 지나자 겨우 유한백이 따귀를 치던 손을 거두었다.

“후우, 오랜만에 좀 격하게 움직였더니 숨이 다 차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유한백은 전혀 숨을 헐떡이지 않았다.

“끄르르륵.”

반면 강만홍은 아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양쪽 얼굴이 퉁퉁 부어서 원래의 생김새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유한백이 쓰러진 의자를 바로 세우고는 쓰러져 있는 강만홍 바로 앞에 앉았다.

강만홍이 그런 유한백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네, 네놈…… 가, 감히 나를…….”

유한백은 의자에 삐딱하게 앉은 상태로 그런 강만홍을 보며 말했다.

“감히? 이 자식이 어따 대고 감히래. 죽을래?”

그때 뒤에 있던 총관이 유한백을 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청성에서 온 젊은 도사들인 것 같은데! 어, 어찌하여 적성문을 핍박하는 것이오! 우리가 청성의 속가 문파였다는 것도 잊었소!”

총관의 말에 유한백이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이제 속가 문파 아니라며? 벽풍자 장로 죽고 나서는 입 싹 씻은 게 누군데 헛소리야.”

총관은 유한백의 말에 더 반박하지를 못했다.

강만홍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눈에 살기를 띤 채로 유한백에게 말했다.

“청성이고, 나발이고. 이 햇병아리 새끼들…… 감히 나를 건드린 걸 후회하게 해주겠다.”

그 말을 들은 유한백이 씨익 웃었다.

“오, 그래? 너를 건드리면 누가 또 나오나 보지?”

과거 괴존 시절 온갖 사건 사고의 중심에 있던 유한백은 적성문이 홀로 이런 일을 벌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분명 이 새끼들 뒤에 누군가가 있다. 그놈들을 잡아야 한다.’

유한백이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디 보자. 네놈 목을 따면 뒤에 숨어 있던 놈들이 나오려나?”

그가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죽은 벽풍자가 가지고 있던 명검 중에서 제일 화려한 검을 슬쩍한 것이었는데, 검집에서 뽑자마자 엄청난 예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를 본 강만홍이 순간 깜짝 놀라며 주춤했다.

‘진짜 나를 죽이려는 건가.’

구파일방의 일원인 청성이 아무리 막 나간다 해도 과거 속가 문파였던 적성문의 문주를 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보아하니 자신 앞에서 검을 들고 있는 젊은 도사는 일반적인 청성파 문도와 뭔가 달랐다.

벽풍자와 그 파벌들은 돈을 먹이면 말은 통하는 이들이었는데, 이 미친놈들은 전혀 말이 통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이 새끼,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이 틀림없어.’

자칫하면 저 미친놈의 검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미치자 강만홍의 태도가 변했다.

“소, 소협. 잠시만 우리 말로 합시다.”

유한백은 그런 강만홍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 일단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그 팔이랑 다리부터 하나씩 자르고 시작할까? 그래야 귀찮게 도망가거나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아무렇지 않게 팔다리를 자른다는 유한백의 말에 강만홍의 부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새끼는 진짜 자를 놈이다.’

청성에 어떻게 이런 미친놈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강만홍은 일단 여기서는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 소협. 진정하십시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필요한 것이 있다면 드릴 것이고, 물으시는 것이 있다면 대답하겠습니다.”

유한백은 태도가 바뀐 강만홍을 보고서 고민을 하다가 천천히 검을 내렸다.

“흐음, 그래? 그럼 한번 믿어 볼까?”

“미, 믿어 주십시오. 저 강만홍. 신뢰로 적성문을 이끌어 온 사람입니다.”

그 말에 유한백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신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런 놈이 뒤통수쳐서 멀쩡한 문파 하나를 개박살 내?”

강만홍은 유한백의 말을 듣고 눈빛을 번뜩였다.

‘황엽문 쪽 일로 온 것이로구나.’

자신들과 달리 황엽문은 청성파의 속가 문파로 여전히 남아 있었다.

황엽문주가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본산인 청성파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 틀림없었다.

‘빌어먹을 늙은이. 끝까지 귀찮게 하는군.’

어떤 이유에서 왔는지 알았다면 구슬리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강만홍이 몸을 최대한 낮추더니 유한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대청성의 협객들께서 친히 적성문을 찾아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소협, 아무래도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제가 차분하게 설명을 드릴 테니 노여움을 거두시지요. 청성에서 이곳까지 오시느라 여독이 쌓이셨을 텐데 우선 함께 식사부터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가 아주 좋은 곳으로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평소에 고관대작들을 접대하던 가락대로 청산유수로 말이 술술 나왔다.

이를 본 유한백이 눈을 가늘게 떴다.

“좋은 곳이라. 얼마나 좋은 곳인데?”

유한백의 반응을 본 강만홍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했다.

“하하하! 대청성의 영웅들을 대접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좋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고된 수련 때문에 쌓인 여독과 회포를 푸시면 자연스럽게 오해도 풀릴 것입니다.”

그의 말에 유한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그래? 흥미가 당기는데 말이야.”

“역시, 저는 처음부터 소협께 영웅호걸의 기운을 확 느꼈습니다. 자, 그럼 함께 가시죠. 제가 섭섭지 않게 대접을…….”

퍼억!

강만홍은 말을 더 잇기도 전에 명치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커헉!”

그리고는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타격에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퍼억! 퍼억! 퍼억!

유한백은 검집을 휘둘러 아픈 곳만 골라서 때렸다.

“아악! 뼈, 뼈!”

최대한 덜 맞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버티던 강만홍이었지만 구타에는 도가 튼 유한백이었다.

어떻게든 아플 만한 곳을 골라서 때리고 또 때렸다.

그런 유한백의 구타를 보며 뒤에 있던 조명환과 백무흔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건 직접 맞아 봐야 얼마나 아픈지 알지.’

‘독한 놈, 어떻게 저렇게 찰지게 때리는 거지.’

한참 검집을 휘두르던 유한백이 곤죽이 되어 버린 강만홍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더 맞고 싶지 않으면 당장 일어나서 대가리 박는다. 실시.”

온몸이 멍투성이가 된 강만홍이 유한백의 말에 퍼뜩 놀라며 바로 일어나 대가리를 박았다.

유한백은 그런 강만홍 앞으로 다가가서 검집으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이 새끼가 보니까 혓바닥에 기름칠을 했네. 뒷돈 먹여서 죄 없는 사람을 잡아넣기도 하고 그러겠어.”

강만홍은 유한백의 말에 대가리를 박은 채로 애써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청성의 영웅들을 흠모하는 마음에…….”

“흠모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런 놈이 보자마자 발도를 해서 대가리를 쪼개려고 해?”

유한백이 서늘한 검날을 강만홍의 목에 대고 말했다.

“뒤지기 싫으면 제대로 말하는 것이 좋을 거다.”

검이 목에 닿자 강만홍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때 유한백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너네 적성문이 황엽문 치도록 뒤에서 조종한 새끼 누구야. 눈알 굴리지 말고 빨리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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