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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존강림-39화 (39/250)

39화

‘당문에 이간질을 일으킨 자가 있다?’

쉽사리 믿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당문의 은인이 된 유한백의 말이었기에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당이군은 고민을 하다가 다시 유한백에게 물었다.

『유 소협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누가 그러한 일을 벌였는지 찾아보겠소.』

그러자 유한백이 고개를 저었다.

『당문 내부에서 직접 놈들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허면?』

유한백이 당이군을 보며 말했다.

『가주님, 저를 한번 믿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세가의 가장 중요한 비전을 되찾아준 유한백이었다.

‘당문은 그 어떤 곳보다 은원에 확실한 곳이다.’

유한백을 은인으로 여긴다 했다면 이를 믿고 따르는 것이 도리였다.

당이군은 유한백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 소협을 믿겠소.』

그러자 유한백이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웃었다.

‘됐다.’

가장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셈이었다.

유한백이 다시 전음으로 당이군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했다.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당 가주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 이건…….”

“가주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두 문파가 전쟁의 겁화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당 가주는 유한백의 말에 고민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유 소협이 말한 대로 하겠소이다.”

유한백이 그려 둔 큰 그림에 사천당문이 걸려든 순간이었다.

* * *

“아니, 그러니까 저 안에 우리 사제가…….”

뒤늦게 유한백을 쫓아온 조명환은 당문의 정문 앞에서 경비 무사들에게 막혀 안으로 들어가지를 못했다.

유한백과 달리 상식이 있는 조명환은 자신을 가로막는 경비 무사들을 거칠게 밀어낼 수 없었기에 이도 저도 못 하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놔! 이 새끼들아! 놔!”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당문의 내당 무사들에게 이끌려 오는 유한백의 모습이 보였다.

쿵!

내당 무사들은 유한백을 정문 바깥으로 내던졌다.

그리고는 정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었다.

굳게 닫힌 정문을 향해 유한백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들이! 지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 놓고 이따위로 나오다니! 사천당문이 언제 이런 무뢰배가 된 거냐!”

당문에게 문전 박대를 당한 유한백을 향해 조명환이 급히 달려갔다.

“한백아! 괜찮으냐?”

유한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도복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그리고는 조명환에게 이를 갈며 말했다.

“빌어먹을 당문 놈들이 황엽문 일은 자신들과 상관없다며 입을 싹 씻지 뭐예요! 망할 놈들! 두고 봐라! 청성에서 이를 그냥 두고 볼 줄 아냐!”

유한백은 정문을 발로 쾅쾅 차고서는 뒤로 돌아섰다.

* * *

유한백과 조명환이 황엽문 쪽으로 돌아오니 예상치 못한 인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방의 성도 지부 지부장 황개라고 한다.”

다섯 매듭을 지닌 개방의 지부장이 심원자와 함께 있었던 것이었다.

유한백은 황개를 보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성도 지부장이라. 그럼 우리 사숙에게 사기를 친 그 거지로군요.”

황개는 유한백의 말에 열을 내며 소리쳤다.

“안 그래도 심원자 대협께 그 말을 들었다! 이제 무림에 발을 들인 햇병아리가 뭘 안다고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린 게냐!”

그의 말에 유한백이 눈을 가늘게 뜨고 황개를 보며 말했다.

“그럼, 4급 정보를 준 게 아니라는 거예요?”

유한백의 질문에 황개가 말을 얼버무렸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아니, 애초에 개방 문도가 아니면서 문서에 넣어 둔 표식을 어떻게 읽는다는 것이냐! 그게 말이 안 되는…….”

“말 이상하게 하지 마시고. 그래서 4급 정보 맞아요 아니에요? 사숙한테 물어보니까 돈은 2급 정도로 받으신 것 같던데. 개방 총단에 정식으로 검증 요청해 볼까요?”

황개는 아직 삼대제자밖에 안 된 유한백이 너무 능수능란하게 대처를 하자 순간 당황했다.

‘뭐, 뭐야 이놈.’

개방의 문서 표식을 읽을 줄 아는 것뿐 아니라, 순진해 보이는 심원자에게 정보료를 바가지 씌운 것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유한백의 반응에 심원자와 조명환까지 황개를 영 못 미더운 표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개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으으윽! 아, 알았다. 다 말해 줄 테니까 진정하라고!”

황개는 한숨을 쉬며 유한백과 심원자, 조명환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본래는 해당 정보가 2급 정보인 것이 맞다. 하지만 그에 해당하는 정보가 아직 정확히 취합이 되지 않아서…….”

말을 하면서도 황개는 유한백의 표정을 살폈다.

여전히 마뜩지 않다는 듯 팔짱을 낀 채 자신의 말을 듣는 유한백을 보며 그가 다시 두 팔을 휘저었다.

“으으, 젠장. 알겠다. 내가 툭 터놓고 말하지. 저놈.”

황개가 구석에 붙잡혀 있는 이무량을 보며 말했다.

“총단에서 보내온 정보로 하오문의 흑조대가 이곳에 파견되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놈들이 있는 곳에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는 하니까 우리 쪽에서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던 거다.”

황개의 말에 유한백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흐음, 그러니까 개방은 하오문 흑조대의 존재를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놈이, 말을 해도! 그게 아니라 정보가 정확히 파악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지. 부정확한 정보가 주는 피해가 얼마나 큰지 알면 그런 소리 못 할 거다!”

“됐고요. 그래서 여긴 왜 온 건데요. 설마 정보료 바가지 씌웠다는 걸 고백하려고 온 것 같지는 않고.”

유한백의 말에 황개가 움찔하더니 이내 지저분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이런 어린 도사에게 밑천 다 까발릴 줄은 몰랐는데. 에이 그래, 지부 차원에서 청성에 정식으로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온 거다.”

황개의 말에 유한백의 눈빛에 이채가 띠었다.

‘개방 놈들이 먼저 와서 협조 요청을? 진짜 급하긴 급했나 본데.’

개방은 압도적인 방도의 숫자와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실전 무공으로 일방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문파다.

하지만 그런 개방의 가장 큰 무기는 다름 아닌 정보다.

그러다 보니 개방에서는 웬만하면 다른 곳과 정보를 공유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

이렇게 정식으로 협조를 요청할 정도라면 개방 전체에서도 이 사건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정식 협조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유한백은 다리를 꼬고 아까보다 더 거들먹거리는 태도를 보였다.

“정식 협조 요청이라. 글쎄요. 우리가 그럴 필요가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협상의 기본은 일단 먼저 튕기고 보는 것.

전생의 괴존 시절 무림에서 독고다이로 오랫동안 살아온 유한백은 이런 일이 익숙했다.

황개는 유한백의 태도를 보고 미간을 찡그렸다.

‘뭐 이딴 놈이 다 있어.’

아직 약관도 안 되는 놈이 하는 짓은 능구렁이 열 마리를 품고 있는 노고수 같았다.

눈치 하나로 오결 지부장의 자리까지 올라온 황개는 유한백이 보통 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복심을 드러내기로 했다.

“유 소협, 잘 생각해 보자고. 이건 청성 쪽에도 나쁠 일이 아니야. 개방과 정식으로 협조하게 되면 우리 역시 관련 정보는 모두 청성 쪽에 제공하도록 되어 있으니까 정보료만 생각해도 완전 이득이지.”

그 말에 유한백이 고개를 저었다.

“급한 건 개방 아니에요? 어차피 공조하려면 정보를 까는 건 기본인데 마치 그걸 큰 혜택으로 주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영 기분이 안 좋네요.”

예상은 했지만 그보다 더 만만치 않은 놈이었다.

황개는 한숨을 푹 쉬면서 유한백에게 말했다.

“그, 그럼 유 소협이 생각해 둔 공조의 조건이 따로 있나?”

원하던 대답이 나오자 유한백이 씨익 웃었다.

“공조의 조건이라. 어쨌든 개방 쪽에서 원하는 정보가 우리 쪽에 있는 모양이죠? 그럼 그건 공조의 조건으로 걸 게 아니라 일단 정보료를 지불해서 구매를 하시는 걸로 하고, 공조 관련한 세부 사항은 따로 정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요?”

유한백의 수려한 말에 황개가 입을 쩍 벌렸다.

‘젠장, 제갈세가 녀석들이랑 협상을 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완전 다 털리게 생겼잖아.’

심원자만 보고 청성 쪽 놈들이 어리바리할 것이라 생각해 대충 윽박지르다가 정보를 알려 주면 쉽게 협조를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 큰 오산이었다.

삼대제자에 이런 놈이 있을 줄을 누가 알았겠나.

유한백이 머뭇거리는 황개의 표정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왜요? 싫으세요? 그럼 마시고요. 저희야 뭐 아쉬울 건 없어요.”

황개는 유한백의 말에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시, 싫은 건 아니고. 그럼 이 정도 조건이면 어떨까.”

그가 밑으로 손을 내려 손가락으로 액수를 표시했다.

유한백은 이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럼 이건?”

다시 숫자를 바꾸었지만 유한백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숫자를 두 번은 더 바꾸고 나서야 유한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망했다.’

예산으로 쓸 수 있는 공작비를 모두 내주고 나서야 겨우 협조를 얻어 낼 수 있었다.

개방의 돈을 모두 털어먹은 뒤 개운한 표정을 한 유한백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래서, 개방에서 원하는 정보가 뭔데요. 일단 그거부터 들어보는 걸로 시작하죠.”

황개는 유한백의 말속에 숨겨진 저의가 뭔지를 알아챘다.

일단 질문부터 들어보고 답은 돈 받고 나중에 알려 주겠다는 것이었다.

‘질문을 노출하면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를 유추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급한 것은 개방 측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유한백을 보며 말했다.

“……적성문에게 황엽문을 치도록 시킨 쪽, 그게 사천당문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싶다.”

유한백이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무림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항이었기에 개방 쪽에서도 정보 탐색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황개의 질문에 유한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아요.”

시원스러운 그의 대답에 오히려 황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 맞다고? 진짜 사천당문이 적성문을 시켜서 황엽문을 공격한 게 맞다는 거냐?”

“속고만 사셨나. 적성문주가 그렇게 얘기했어요. 저도 그래서 진짜 맞나 싶어서 아까 사천당문도 갔다 왔단 말이에요.”

히끅!

유한백의 대답에 황개가 딸국질을 했다.

“뭐? 어디를 다녀와?”

“귀 안 좋아요? 아님 거지라 귀지가 너무 쌓여서 말을 못 듣나. 사천당문 갔다 왔다고요.”

황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고개를 돌려 심원자 쪽을 돌아봤다.

“시, 심원자 대협. 저게 진짜 사실입니까?”

심원자는 황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관계를 확인할 때는 정면 돌파가 가장 좋다면서 사천당문으로 갔던 건 맞습니다.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시무시한 일을 태평하게 말하는 심원자를 보고 황개는 오히려 자신의 심장이 더 떨렸다.

‘그걸 확인하겠다고 직접 사천당문에 가는 놈이 어딨어!’

유한백은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

“도대체 뭔 짓을 한 건지 물어볼라고 가서 당문 가주랑도 대면했는데, 켕기는 것이 있는지 말을 안 해주던데요? 밥이라도 한 끼 줄 줄 알았는데 사람을 짐짝처럼 들어서 쫓아내기나 하고. 하여간 이번에 와서 사천당문에 대한 인상이 별로 안 좋아졌어요.”

황개는 이제 아예 입을 쩍 벌리고 다물 줄을 몰랐다.

“다, 당 가주. 그러니까 독왕을 대면했다고?”

“독왕? 그 애송…… 아니, 독왕이고 뭐고 사람이 물어보면 말을 제대로 해줘야지 괜히 큰소리만 치더라고요. 아마도 자기들이 한 짓이 켕겨서 그런 것 같아요.”

황개는 유한백의 말을 듣고 더러운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망했다.’

원하던 정보를 듣긴 했지만, 그 정보를 가져온 놈이 이렇게 미친놈인 줄은 몰랐다.

만약 유한백의 말이 사실이라면 청성 쪽에서 당문에게 시비를 걸고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황엽문이나 적성문의 문제가 아니라 청성과 당문의 싸움으로 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당장 총단에 알려야 한다.’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는 황개를 보며 유한백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딱 필요할 때 거지 놈이 들어왔군. 잘됐어.’

안 그래도 불길에 바람을 불어넣어 줄 역할이 필요했는데 개방이 적절하게 나타난 셈이었다.

유한백은 개방의 힘을 빌려 청성과 당문 사이의 불길을 더욱 키울 셈이었다.

‘불길이 일면 부나방들이 날아드는 법이지. 그때가 놈들을 일망타진할 기회다.’

그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물들며 번뜩이는 빛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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