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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존강림-87화 (87/250)

87화

‘뭐야 저 꼴통은.’

스스로를 짱이라고 말하는 진무치를 보며 황룡관원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다.

모두 어이가 없어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는데 진무치는 자신에게 쫄았다고 생각하고 거드름을 피우며 말을 이었다.

“훗, 다들 겁먹었나 보군.”

그는 콧잔등을 슥 문지르더니 가만히 있는 모용후를 가리켰다.

“너, 얼굴은 비리비리하게 생겼지만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 않은데 말이야. 네가 여기 짱이지?”

그가 모용후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와봐라! 황룡관의 진정한 짱이 누구인지 자웅을 겨뤄 보자!”

모용후는 말없이 진무치를 바라봤다.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진무치의 오만한 발언에 화가 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낯을 많이 가리는 모용후는 갑자기 진무치가 말을 걸자 어찌할 바를 몰라 그대로 굳어져 버린 것이었다.

그때 백무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자마자 왜 소란을 피우는 거냐. 여기는 짱이고 뭐고 그런 게 없으니 얌전히 방을 받아서 올라가라. 참고로 저녁 시간은 술시(戌時)니까 늦지 말도록.”

백무흔의 말에 진무치가 주먹을 꽉 쥔 채 앞으로 나섰다.

“하! 짱이 없는 곳은 없다! 어디에나 우두머리는 있기 마련이지. 설마 네놈이 이곳의 짱인가. 얼굴만 번드르르한 것이 별로 세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야.”

진무치의 말에 백무흔은 고개를 저었다.

“왜 짱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는 아니다.”

그 말에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제갈소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그래, 우리 대장은 따로 있어! 근데 지금 여기는 없다 이 망나니야!”

진무치는 대장이 따로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 그렇군. 그럼 여긴 지금 조무래기들만 모였다는 소리였군.”

그가 두 주먹을 쾅쾅 부딪치며 말했다.

“우두머리가 오기 전에 네놈들에게 내가 얼마나 강한지 먼저 보여 주마! 그럼 내가 황룡관의 짱에 어울린다는 걸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뭐가 됐든지 간에 한판 붙자는 소리였다.

‘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거야. 어차피 싸울 거면서.’

진무치의 고집에 백무흔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정 그렇다면 내가 상대해 주마.”

“크흐흐, 얼굴만 번드르르한 것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왜냐면 나는 장난 아니게 쎄니까 말이야.”

백무흔은 진무치와 함께 황룡관 앞에 있는 공터로 나갔다.

어차피 할 것 없었던 황룡관원들 역시 밖으로 나가 귀면회가 만들어 놓은 평상에 줄지어 앉았다.

어차피 백무흔이 이길 것이라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당무혁은 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무치가 광동의 유명한 망나니인 것은 맞지만 그 실력은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동진가에서도 따로 제재를 하지 못한 것이고요.”

광동진가는 광동성의 성도인 광주에 적을 둔 곳으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세가 중 하나였다.

광동성은 물론 복건성과 광서성을 포함해 남쪽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이었다.

만약 광동진가가 중앙 무림에 진출을 하고자 마음먹었다면 능히 오대세가에 들 수 있을 정도로 저력이 있는 문파였다.

광동진가는 무공으로는 권법과 곤법이 유명했는데 그보다 더 알려진 것은 다름 아닌 약학이었다.

대대로 약학을 계승하여 발전시켜 온 곳으로 무림인이라면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금창약을 만드는 곳이 바로 광동진가였다.

진가 말고도 금창약을 만드는 곳은 꽤 있었지만, 진가 금창약만큼이나 효과가 좋은 것이 없었기에 이곳에서 만든 약이 금창약의 대명사가 된 셈이었다.

매년 만들어서 파는 금창약만으로도 그 수입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광동진가는 탄탄한 재정을 자랑했다.

약학은 물론 유려한 권법을 가전무공으로 삼는 광동진가의 사람들은 성격이 온순하고 다툼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유독 진무치만 호전적인 성격을 타고나 가문의 골칫거리였다.

진무치는 두 주먹을 쾅쾅 부딪치며 백무흔을 향해 말했다.

“자, 어디 한번 와보라고. 단숨에 짓밟아 주지!”

백무흔은 유엽도를 뽑아 들고 진중하게 기수식을 취했다.

이를 본 진무치 역시 표정을 바꾸더니 자세를 잡았다.

쿠구구구!

무게 중심을 낮추고 자세를 잡은 진무치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백에 백무흔은 자신도 모르게 도를 꽉 쥐었다.

‘강하다.’

마주한 것만으로도 진무치의 강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순간 진무치가 진각을 밟고서 곧장 백무흔을 향해 튀어 나갔다.

파아앗!

돌진하는 진무치를 보고 이를 지켜보던 황룡관원들 역시 깜짝 놀랐다.

“궁신탄영?”

몸을 활처럼 휘었다가 앞으로 튕기는 탄력을 이용해 빠르게 돌진하는 절정 신법이 바로 궁신탄영이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진무치가 백무흔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콰콰콰!

백무흔보다 오히려 덩치가 작은 진무치였지만 그가 내뻗은 일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콰콰콰쾅!

백무흔이 재빨리 도면을 내밀어 진무치의 권을 막아 내자 진기가 부딪치며 폭발하는 소리가 공터 전체에 울려 퍼졌다.

공격을 막아 내긴 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무치가 날랜 몸짓으로 공중에서 선회를 하더니 백무흔의 정수리를 향해 비각술을 펼쳤다.

후우우웅!

단단한 발뒤꿈치가 백무흔의 정수리를 향해 직각으로 떨어졌다.

백무흔은 다시 도를 들어 올려 도면으로 진무치의 발차기를 막아 냈다.

쩌어어엉!

발차기를 막아 낸 도에서 강한 충격음과 진동파가 일어났다.

‘크윽.’

백무흔은 상상 이상으로 묵직한 진무치의 공격에 순간 다리가 꺾여 버릴 뻔했다.

심양자에게 고된 훈련을 받고 난 뒤였기에 힘이 빠진 상태라 진무치의 강력한 공격을 막기가 버거웠다.

휘이이익!

자신의 공격이 모두 막히자 진무치는 뒤로 물러나며 착지를 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공격이 막힌 것이 놀랍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하! 내 공격을 연속으로 막아 내다니! 아무래도 네가 여기서 젤 쎈 놈인 것 같은데 말이야!”

광동에 있을 때 진무치의 별명은 바로 일격필살이었다.

단 한 방으로 대부분의 적을 쓰러뜨렸던 진무치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자신의 공격을 두 번이나 막은 상대를 만나니 놀라울 뿐이었다.

진무치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더 쎈 걸로 간다!”

쿠구구구구!

아까보다 더한 기세가 진무치의 몸을 휘감았다.

이를 본 백무흔이 미간을 그러모았다.

‘정면으로 부딪쳤을 때 제대로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렇다면…….’

백무흔은 놀랍게도 진무치가 달려들기 전에 먼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콰콰콰콰콰!

마치 폭풍처럼 달려드는 백무흔을 보며 진무치의 눈이 커졌다.

“하! 그래 어디 와봐라!”

그는 백무흔의 공격을 막기 위해 중심을 뒤로 옮기고 방어 태세를 취했다.

그런데 그때 백무흔이 예상치 못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었다.

파밧!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휘이이익!

돌멩이가 빠른 속도로 날아들자 진무치가 어금니를 꽉 물고 주먹을 뻗었다.

“어림없다!”

빠악!

날아드는 돌멩이에 진무치의 주먹이 정확하게 꽂혔다.

그러자 돌멩이가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동시에 진무치의 사각에서 도가 날아들었다.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뒤돌려차기로 도를 휘두르는 백무흔을 날려 버리려 했다.

콰콰콰콰!

완벽한 각도로 날아든 발차기가 백무흔의 얼굴을 후려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뒤돌려차기가 아무런 느낌이 없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뭐지?’

뒤를 돌아보니 놀랍게도 자신을 향해 내리꽂힌 도만 있고 도를 휘두르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당황해 자세가 흐트러진 진무치는 측면에서 서늘한 인기척을 느꼈다.

순간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늦은 상황이었다.

퍼억!

사각을 파고든 백무흔의 장력이 진무치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커헉!”

옆구리를 온전히 내준 진무치는 갈비뼈가 부서지는 통증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백무흔의 공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촤악!

이미 승기를 잡았음에도 백무흔은 손에 쥐고 있던 흙을 뿌려 진무치의 시야를 가렸다.

“크억!”

숨을 쉴 수 없는데 눈에 흙까지 들어가니 정신을 차리지를 못했다.

백무흔은 균형을 잃은 진무치를 쓰러뜨린 뒤 땅에 떨어진 도를 집어 들고 목을 겨누었다.

“승부는 난 것 같군.”

상당히 더럽고 치졸한 방법으로 얻어 낸 승리였지만 승리는 승리였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황룡관원들은 백무흔의 실전 공격에 입을 쩍 벌렸다.

‘얼굴과 달리 진짜 지저분하다.’

‘저렇게 지저분한 공격 방법이 있었다니. 놀랍다.’

유일하게 함께 실전 공격을 전수받은 조명환만이 백무흔의 방식에 놀라지 않고 뿌듯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훌륭해 백 사제.”

이미 유한백의 인성질에 물들어 버린 조명환과 백무흔이었다.

눈에 흙이 들어가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는 진무치가 부들부들 떨면서 입을 열었다.

“……더럽고 치사한 방법이지만 승부는 승부. 나 진무치. 패배를 인정하겠다.”

의외로 패배를 인정하는 진무치였다.

그는 겨우 눈에 들어간 흙을 털어 내고 숨을 가다듬은 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백무흔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단판 승부로는 이 승부를 규정지을 수 없지! 다시 자웅을 겨뤄 보자!”

그의 말에 백무흔의 표정이 굳어졌다.

안 그래도 훈련을 받고 와서 힘든데 또 비무를 하자고 억지를 부리는 진무치의 말에 피로감이 마구 몰려들었다.

그는 진무치를 보며 말했다.

“승부는 이미 난 것 같은데.”

“아니, 내가 인정하기 전까지 승부는 끝나지 않는다.”

“그럼 네가 쓰러질 때까지 승부를 멈추지 않겠다는 건가.”

“당연하지!”

왜 진무치가 광동의 망나니로 불렸는지 알 것 같았다.

백무흔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쓰러지면 좀 조용히 있을 건가.”

“훗, 나 진무치. 절대 쓰러지지 않는 남자. 광동 오뚜기라 불렸다.”

“아까는 광동 일격필살이라 하지 않았나.”

“아무튼 다시 승부다!”

진무치가 다시 일어나 백무흔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백무흔이 뒤로 빠지더니 진무치의 뒤를 다른 황룡단원들이 덮쳤다.

“커헉! 뭐, 뭐냐! 승부는 일대일로!”

그 말에 팔이 축 처진 제갈소소가 진무치를 짓밟으며 소리쳤다.

“일대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남의 집에 쳐들어왔으면 이 정도 각오는 하고 왔어야지!”

제갈소소와 함께 조명환, 당무혁, 낯을 가리는 모용후와 월소청까지 시원스럽게 진무치를 짓밟아 줬다.

사방에서 내리꽂히는 공격에 진무치는 웅크린 채 제대로 반격도 하지 못하고 두들겨 맞기만 했다.

기초 검술 실습으로 화가 쌓여 있던 황룡관원들은 진무치를 두들겨 패면서 맺힌 응어리를 해소했다.

곧 구타가 끝나자 진무치가 부들거리며 바닥에 퍼져 있었다.

제갈소소가 손을 탁탁 털면서 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좀 조용하겠네. 에휴, 내일도 보충 실습인데 빨리 가서 씻고 좀 쉬어야지.”

황룡관원들은 쓰러진 진무치를 공터에 그대로 두고는 모두 기숙사로 들어가 버렸다.

홀로 남은 진무치가 분한 표정으로 어금니를 꽉 물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보, 복수다. 감히 나를 이렇게 만들다니 황룡관의 짱이 되어서 네 녀석들을 모두 내 수하로…….”

콰직!

그때 누군가가 진무치의 등을 밟고 지나갔다.

“커허어억!”

진무치는 허리가 쪼개지는 아픔에 비명을 내질렀다.

“응? 이건 뭐야.”

천무서고에서 나온 유한백이 자신에게 밟혀 있는 진무치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웬 거적때기 같은 놈이 남의 집 앞에서 나동그라져 있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다.

“거지인가? 훠이, 훠이. 여기 주워 먹을 거 없으니까 딴 데 가라.”

유한백의 말에 진무치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끄아아악! 나 광동 미친개 진무치야! 네놈들 오늘 다 뒤졌……!”

퍼억!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진무치의 머리에 옥피리가 작렬했다.

“끄르르륵!”

강렬한 일격을 맞고 그대로 다시 바닥에 쓰러진 진무치였다.

유한백은 그런 진무치를 보고 혀를 찼다.

“그냥 거지가 아니라 미친 거지였네. 사지 멀쩡한 놈이 할 게 없어서 거지질이야. 에잉, 야! 왕삼아. 와서 여기 소금 뿌려라!”

어느새 왕삼이 되어 버린 이무량이 재깍 달려와서 진무치와 그 주변에 왕소금을 뿌렸다.

기절한 진무치 머리 위에 하얀 소금이 소복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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