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콰르르르릉!
굉음과 함께 거대한 바위 하나가 길목을 막아서고 있는 남궁세가의 초소 쪽으로 굴러 내려오고 있었다.
“피, 피해!”
초소 밖을 지키고 있던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무서운 속도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보고서 기겁하며 각자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드드드드드!
바위가 초소를 그대로 깔고 지나가며 밑으로 굴러갔다.
남궁세가의 무사들은 완전히 초토화된 초소를 보고 완전히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이, 이게 무슨…….”
그때 무너진 초소 쪽으로 한 무리의 인원이 뛰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휘이이이익!
팔에 파란 띠를 매고 있는 황룡관원들이었다.
그들은 눈에 광기를 띤 채 무너진 초소를 휙 지나가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이를 본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화들짝 놀랐다.
“침입자! 침입자다!”
황룡관 인원들이 죄다 지나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남궁세가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다급하게 품에서 호각을 꺼내 경계 신호를 보내려 했다.
그런데 남궁세가 무사들이 호각을 불기 전에 뭔가가 날아왔다.
빠악!
무사들의 머리통에 갑자기 날아온 돌이 작렬했다.
“크어어억!”
“커헉!”
머리통에 정확히 돌을 맞은 무사들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남궁세가 무사들이 죄다 쓰러지자 수풀 속에서 돌멩이를 들고 있는 유한백이 모습을 드러냈다.
“좋아, 여기는 됐고.”
그가 고개를 돌려 수풀 너머를 바라보며 청력을 돋우었다.
챙! 챙! 챙!
우당탕탕탕!
잡아! 잡으라고!
삐이이이익-
수풀 너머 형산파 쪽 인원이 오르는 길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위를 굴려 초소를 초토화시킨 유한백과 달리 형산파는 요령 없이 정면으로 돌파를 하려 하니 중간에 충돌이 계속 있었다.
덕분에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형산파의 인원이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유한백은 씨익 웃으면서 다시 고개를 돌려 축융봉 위쪽을 바라봤다.
“남궁세가 놈들아, 남의 집 마당을 무단 점거하고 있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마.”
그 말과 함께 유한백이 위쪽으로 몸을 날렸다.
* * *
휘이이익!
남궁상진은 수하들을 이끌고 축융봉의 통제 구역으로 향했다.
삼십 년 전 무림을 무너뜨릴 뻔했던 형산혈겁이 일어났던 자리이자, 위대한 무적검존의 위명이 무림사에 남게 된 기념비적인 장소.
그곳을 남궁세가 본가에서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입구를 막아서고 통제했다.
심지어 축융 지부를 관리하는 지부장인 남궁상진조차도 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가 통제 구역 앞으로 달려오자 역시나 본가의 무사들이 앞을 가로 막았다.
“이곳은 통제 구역입니다. 돌아가십시오.”
어조 없는 목소리로 정해진 말만 내뱉는 본가의 무사를 향해 남궁상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침입자들이 축융봉으로 오고 있는 상황이다. 긴급 상황이니 만큼 지부장인 내가 지휘를 하겠다. 길을 열어라. 그렇지 않으면 세가의 법도에 따라 처분하겠다.”
남궁상진의 서릿발 같은 경고에도 본가의 무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콰르르르릉!
봉우리 밑에서 또 알 수 없는 굉음이 들려왔다.
그러자 남궁상진이 다시 무사들에게 소리쳤다.
“감히 상급자의 말을 어길 셈이냐! 하극상으로 즉결 처분당하고 싶지 않으면 당장 비켜서라!”
그의 말에도 무사들은 미동이 없었다.
남궁상진은 아무리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무사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가 이내 수하들에게 손짓했다.
그가 수하들을 이끌고 통제 구역으로 들어가려 하자 본가의 무사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촤아앙!
남궁세가 특유의 중검을 치켜들고 무사들이 남궁상진과 축융 지부 무사들을 막아섰다.
“이곳은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설마 자신에게까지 본가의 무사들이 검을 들이밀 줄은 몰랐던 남궁상진이었다.
이쯤 되자 지부장으로서의 자존심 싸움이 되어 버렸기에 물러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파라라락!
통제 구역 안쪽에서 누군가가 나무 위쪽을 뛰어넘어 날아오더니 남궁상진 앞에 착지를 한 것이었다.
남궁세가 특유의 남색 옷을 입은 노인이 본가의 무사들과 남궁상진 앞에 섰다.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노인을 보고 남궁상진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설마 창궁신검(蒼穹神劍) 남궁학 장로님?’
삼십 년 전 혈패천과의 전쟁에서 무적검존 남궁성과 함께 일선에서 무수히 많은 공을 세웠다 알려진 창궁신검 남궁학.
남궁세가의 장로이자 무적검존이 가장 신뢰한다 알려진 인물이 바로 축융봉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남궁학은 남궁상진을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금 무엇을 하는 겐가.”
근엄한 남궁학의 목소리에 남궁상진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곧장 남궁학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포권을 취했다.
“차, 창궁신검 어르신을 뵙습니다. 저는 전 섬전검대 소속, 남궁세가 축융 지부 지부장 남궁…….”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는 것이냐 물었다.”
남궁상진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남궁학이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가의 원로인 창궁신검과 정면에서 마주하자 남궁상진은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것이 축융봉을 오르려는 무도한 무리가 있어 혹여나 통제 구역에 문제가 생길까 하여…….”
“멍청한 소리로 네 무능력함을 감추려 드는 것이냐.”
남궁학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쿵!
한 걸음이 가까워졌을 뿐인데 남궁상진은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압박이 몇 배는 더 커졌다고 느꼈다.
남궁학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침입자가 있다면 놈들이 이곳에 이르지 못하도록 막으면 된다.”
정론을 펼치는 남궁학의 말에 남궁상진은 입을 제대로 열지 못했다.
다시 남궁학의 말이 이어졌다.
“침입자를 제대로 막지 못한 것은 네놈의 무능력 때문이다. 이곳은 무적검존께서 통제하라 직접 지시를 하신 금지(禁地). 만약 지켜내지 못한다면 네놈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야.”
남궁학의 말에 남궁상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굳어졌다.
그는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숙였다.
“그, 그럴 일 없을 것입니다. 침입자는 이곳까지 얼씬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남궁상진의 말에 남궁학이 차가운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무능력한 자는 남궁세가에 필요 없음을 상기하도록 하라.”
그 말과 함께 남궁학은 다시 통제 구역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깐 동안의 대화였지만 남궁상진은 식은땀으로 온몸이 축축이 젖었다.
‘제길…….’
다급한 마음에 괜히 이곳까지 올라왔다가 본전은커녕 잘못하면 남궁세가 안에서 축출당할지도 몰랐다.
그는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당장 내려가서 1급 경계령을 내려라! 침입자 놈들이 절대로 이곳을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아!”
남궁상진의 말에 수하들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들이 재빨리 봉우리 아래로 내려갔다.
곧 형산 곳곳에 경계령을 알리는 봉화가 피어올랐다.
* * *
남궁상진을 다그친 뒤 다시 통제 구역으로 돌아간 남궁학은 아까보다 더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통제 구역 안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남궁세가 본가 무사들뿐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흑의를 입은 이들까지 곳곳에 숨어 있었다.
무적검존 남궁성이 금지를 지키기 위해 직접 심어 놓은 이들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었다.
남궁세가의 무사들은 물론 남궁학 역시 마뜩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남궁성의 말을 거역하거나,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충실하게 이행을 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남궁학은 방계 출신임에도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여 검존에게 버림받지 않고 끝까지 곁을 지킬 수 있었다.
키이이이잉!
남궁학은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결계의 영역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니 놀랍게도 결계 안쪽에 수많은 인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발굴 현장이 드러났다.
어디선가 데려온 인부들이 땅을 파고, 돌을 깨서 옮기고 있었으며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있는 수상쩍어 보이는 흑의를 입은 이들이 발굴 현장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남궁학이 지나가자 흑의를 입은 이들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었지만 남궁학은 개의치 않았다.
모두가 결국 무적검존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었기에 그것이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남궁학이 발굴 현장을 지나 절벽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큰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는데, 밑으로 통하는 사다리가 놓여 있었다.
남궁학은 이를 지키고 선 무사들을 지나치고 구멍 안으로 몸을 날렸다.
휘이이이익!
빠른 속도로 동굴 아래로 내려간 남궁학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지하에 착지를 했다.
쿵! 쿵! 쿵!
지하와 연결된 통로 끝에서 지속적으로 뭔가가 울리는 소리가 났다.
남궁학은 몸을 살짝 숙이고서는 지하 통로를 따라 걸어갔다.
그러자 곧 통로 끝에서 꽤 넓은 공동이 나타났다.
그곳에 역시나 흑의를 입고 얼굴을 가리고 있는 수상쩍은 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공동 한쪽으로 통하는 통로에 붙어서 뭔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바로 통로를 가로막고 있는 결계를 분석하여 그 파훼 진식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었다.
십수 명의 흑의인들이 달라붙어 결계를 분석하고는 있었지만 쉽지 않은지 접근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끄아아아악!”
한쪽에서 흑의인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것이었다.
사지를 바들바들 떨며 거품을 물고 쓰러지자 다른 흑의인들이 다가와 익숙하게 들것을 가지고 왔다.
곧 들것에 쓰러진 흑의인이 실려 나갔다.
워낙 강한 결계였기에 분석을 하다가 휩쓸리면 이런 식으로 실려 나가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결계를 파훼하는 작업을 지켜보고 있던 남궁학 쪽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창궁신검께서, 여기까지는 어인 일이십니까.”
다른 흑의인들과 마찬가지로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품이 넓은 검은 학사의를 입은 흑서생이 남궁학 쪽으로 다가왔다.
남궁학의 얼굴에 일순 그에 대한 혐오감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금세 원래 표정으로 돌아왔다.
남궁학이 흑서생을 향해 말했다.
“작업은 언제 완료가 되는 건가.”
그의 질문에 검은 학사의를 입은 흑서생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이야 알 수가 없지요. 이곳까지 파고 들어오는 데만 십오 년이 걸렸습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강한 진법과 기관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얼마나 걸릴지 미지수입니다.”
흑서생의 대답에 남궁학이 인상을 찌푸렸다.
“검존께서 언제까지나 인내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지 말도록.”
남궁학이 낮은 목소리로 위협하듯 말했다.
“그분의 자애로움을 무기 삼아 네 놈들의 무능력함을 감추려 하면 내 검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에 흑서생이 입은 자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파하하하! 역시 창궁신검께서는 재미있으신 분이로군요.”
그가 남궁학 쪽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이곳을 만든 이는 다름 아닌 신기자입니다. 무림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진법가이자 기관진식을 통달한 천재지요. 그가 설치한 결계를 풀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대단한 일임을 어찌 증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흑서생이 다시 남궁학 쪽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만약 제가 마뜩지 않으시면 검존께 말씀드리십시오. 저는 언제든지 손을 털고 나갈 의향이 있으니 말입니다.”
검존이 이곳을 발굴하려 한 것은 형산혈겁이 끝난 그 직후였다.
처음에는 남궁세가의 힘만으로 발굴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가장 앞쪽에 있는 진법조차 뚫지 못하고 몇 년의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리고 십오 년 전 무적검존이 이들을 불러오고서야 겨우 안쪽으로 파고들어 조금이나마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흑서생이 이토록 뻣뻣하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남궁학이 더 말이 없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믿고 인내하십시오. 그리하면…… 괴존의 비동을 반드시 검존께 안겨 드리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