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쿠구구구궁!
무거운 철문이 열리자 험상궂은 얼굴의 사내 둘이 단단한 벽으로 만들어진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팔다리가 사슬에 묶여 있는 초췌한 얼굴의 사내 하나를 끌고 나왔다.
그 사내는 다름 아닌 수룡채 부채주인 귀견수, 마교에서 장강수로십팔채에 파견한 간자였다.
유한백에게 정체를 들킨 후 밀밀령을 찾는 일에 협조하기로 한 뒤 초주검이 되어 강물에 내던져졌던 그가 감옥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험상궂은 사내들은 귀견수를 끌고 경비가 삼엄한 감옥 건물을 나왔다.
철썩! 철썩!
바깥쪽 절벽 아래에서 강물이 요란스럽게 회오리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앞쪽은 거친 소용돌이가, 뒤쪽은 천혜의 절벽이 지켜 주고 있는 곳에 장강수로십팔채의 총본부인 수룡채가 존재했다.
사내들은 귀견수를 끌고 총채주가 있는 본부로 올라갔다.
쿵!
절벽에 돌을 깎아 만들어 놓은 요새에 올라 사내들은 귀견수를 앞으로 내던졌다.
“끄으으.”
귀견수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자 그의 앞에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채주, 상당히 힘들어 보이는군.”
험상궂은 수적들의 인상과 달리 마치 유생처럼 유약한 인상의 사내가 뒷짐을 진 채 귀견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귀견수는 자신 앞에 있는 사내를 보자 마른침을 삼켰다.
‘수룡왕(水龍王).’
장강의 지배자는 보이는 인상과 달리 누구보다 잔혹하고, 냉철한 인물이었다.
의심이 많아 그 누구도 완전히 믿는 법이 없었고 언제나 의심을 하며 다른 이들을 이용해서 이득을 얻을 생각만 했다.
귀견수는 수룡왕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왕이시여. 제 말에 한 점 거짓이 없음을 믿어 주십시오.”
삼아채를 격파해 장강수로채에 망신을 준 청성의 후기지수를 잡아 오라는 임무를 실패한 귀견수였다.
화포가 실려 있는 귀하디귀한 수룡선을 잃은 것은 물론 백골채주와 혈루채주 역시 수왕귀처럼 관아로 넘겨졌다.
장강수로십팔채 중 세 개가 같은 놈들에게 당한 셈이었다.
수룡왕은 의자를 끌고 와 귀견수 앞에 앉았다.
그는 다리를 꼰 채로 귀견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청성괴협 유한백. 그 녀석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이다?”
귀견수가 수룡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놈은 수왕귀를 일검에 해치웠습니다. 저 역시 놈에게 당해 죽기 일보 직전에 배에서 뛰어내려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수룡왕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귀한 배는 물론 수하들 역시 죄다 버리고 와놓고서는 아주 당당하기 짝이 없구나. 어디 보자. 부채주 때문에 내가 입은 손해가 얼마지.”
그가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고서는 귀견수에게 말했다.
“자그마치 오천 냥이야. 이것도 최소 금액만 친 거지. 장강수로채의 명성이 깎이면서 잃게 될 미래 가치를 생각하면 이만 냥 아니 이십만 냥 이상의 손해를 본 것이나 다름이 없지.”
수룡왕이 의자에 앉은 채로 귀견수 쪽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이 손해를 어떻게 메워 줄 텐가? 부채주의 몸뚱이만으로는 도저히 채울 수가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수룡왕의 날카로운 눈빛이 귀견수의 몸을 전부 훑었다.
손해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수룡왕은 수하의 실수를 자애롭게 넘어가 주는 법이 없었다.
자신이 입은 손해를 메울 때까지 죽도록 노예로 부리다가 몸이 상하면 흑시장의 매춘굴에라도 팔아서 대가를 치르도록 했다.
그렇기에 귀견수 역시 웬만하면 수룡왕이 있는 곳으로 오고 싶지가 않았다.
‘살 길은 하나뿐이다.’
그는 숨을 가다듬고 수룡왕에게 입을 열었다.
“총채주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방금까지와는 다른 분위기로 입을 연 귀견수를 보고 수룡왕이 턱을 괸 채로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봐라.”
“사실 저는 마교의 간자입니다.”
느닷없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귀견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귀견수가 자신의 정체를 밝혔는데도 수룡왕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표정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를 본 귀견수는 속으로 유한백의 지시 사항을 떠올리며 감탄했다.
‘설마 진짜로 수룡왕이 내 정체를 알고 있었을 줄이야.’
유한백이 적어 준 지시 사항에는 수룡왕은 그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니 신분을 밝혀야 오히려 신뢰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 적혀 있었다.
이런 상황을 정확히 예견한 유한백의 지시에 따라 귀견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마교의 간자로서 제가 받은 임무는 다름 아닌 무림맹의 비밀 병기를 감시하는 역할입니다.”
그의 말에 수룡왕이 눈썹을 그러모았다.
“무림맹의 비밀 병기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현재 무림맹의 상황을 총채주께서도 알고 계실 겁니다. 남궁세가와 무림맹주파 사이의 갈등을 말입니다.”
수룡왕은 비열하지만 영민한 사내였기에 귀견수가 말한 무림맹 내부의 갈등에 대해서 이미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귀견수의 말에 흥미가 생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 봐라.”
“청성괴협 유한백. 그는 무림맹주와 원로회가 남궁세가의 독주를 막기 위해 비밀리에 키워 낸 비밀 병기입니다.”
수룡왕은 귀견수의 말에 손가락으로 의자 손잡이를 툭툭 치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놈이 무림맹의 비밀 병기기 때문에 수왕귀를 일검에 해치울 수 있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마교에서는 이전부터 무림맹의 비밀 병기에 대해 파악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누구인지 특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구파일방의 후기지수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고 주요 문파인 무당과 화산을 중심으로 조사를 했었습니다.”
“하, 그런데 뜬금없이 청성의 제자가 그 비밀 병기였다?”
“남궁세가의 눈을 피하기 위해 허를 찌른 선택을 한 듯합니다.”
“좋아, 부채주. 내 흥미를 끄는 데 성공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말해 봐라.”
귀견수는 호흡을 가다듬고 본론을 꺼냈다.
“청성괴협 유한백. 그를 잡아야 합니다.”
“어째서 놈을 잡아야 한다는 거지. 진짜 무림맹의 비밀 병기라면 철저하게 보호를 받고 있을 텐데.”
“지금 놈은 강호의 경험을 쌓기 위해 다른 후기지수들과 움직이는 중입니다. 지금이 놈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귀견수의 말에 수룡왕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무림맹주파가 키운 비밀 병기라. 놈을 붙잡으면 가치가 얼마나 될까.’
수룡왕의 머릿속에서 계산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리고는 유한백을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곳을 떠올렸다.
‘좋아, 거기라면 놈을 제일 비싸게 사 줄 수 있겠군.’
계산을 해보니 수룡왕 자신의 입장에서는 딱히 나쁠 것이 없었다.
어차피 떨어진 장강수로채의 명성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는 유한백에게 철저한 복수를 해야 했다.
그런데 마교 쪽에서도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면 오히려 놈들을 이용해 돈을 더 뜯어내는 것도 가능할 듯싶었다.
수룡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귀견수에게 말했다.
“부채주,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계획이야. 근데 말이지.”
그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귀견수를 바라봤다.
“네가 나를 속인 것에 대한 값은 일단 치러야 하지 않겠나?”
마교의 간자로서 장강수로채에 침투한 것에 대해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여기서 물러났다가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귀견수는 어금니를 꽉 물고 고민하다가 이내 자신의 오른팔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곧장 왼팔의 수도를 들어 오른팔을 내리쳤다.
사악!
잘린 오른팔이 바닥을 굴렀다.
귀견수는 피가 흐르는 오른팔을 붙잡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수룡왕에게 말했다.
“총채주를 속인 죄를 제 오른팔을 바쳐 참회합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수룡왕은 자신의 팔을 잘라 용서를 구한 귀견수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에이, 그냥 용서만 구하면 되는데 부채주가 너무 나갔네.”
그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가서 의원 불러와. 저 팔은 다져서 잉어 먹이로 주고. 부채주는 치료받고 정신이 들면 나 찾아와. 사업 얘기를 마저 해야 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수룡왕이 양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 유한백이라는 빌어먹을 애송이는 지금 어디에 있다고 했지?”
* * *
콰앙!
남궁세가 무한 지부에 머무르고 있던 남궁성은 탁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고 남궁학을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봤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놈이 나타나 비동을 무너뜨리고 그 안에 있던 제왕검을 가지고 도망쳤다. 이거냐?”
남궁성의 질책에 남궁학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태상가주님.”
나이가 들어 남궁세가의 장로가 된 남궁학이었지만 남궁성 앞에서는 혼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남궁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궁학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냅다 그의 뺨을 갈겼다.
짜악!
남궁학의 얼굴이 완전히 돌아갈 정도로 세게 뺨을 때린 남궁성이었다.
“똑바로 고개 들어라.”
남궁성은 남궁학이 고개를 들자 반대편의 뺨도 갈겼다.
그렇게 십수 대나 뺨을 후려치고 나서야 남궁성은 겨우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남궁학의 얼굴은 시뻘겋게 부어 있었고, 입에서는 피가 흘렀다.
그런 남궁학을 보며 남궁성이 고개를 내저었다.
“학아, 내가 도대체 언제까지 너를 챙겨 주고 뒷수습을 해줘야 하냐. 아주 쉬운 부탁이었다. 비동을 발굴해서 그 안에 있는 제왕검을 가져오라는 것. 그렇게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지 않느냐.”
남궁성의 말에 남궁학은 말없이 뒷짐을 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남궁학의 태도에 남궁성은 숨을 몇 번 들이켜고서는 혀를 차며 자리에 앉았다.
그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남궁학에게 말했다.
“똑바로 말해 봐. 도대체 어떤 놈이 나타나서 그랬다는 거냐. 아니, 잠깐. 그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놈. 결국 비동 안을 들어갔다는 소리 아냐?”
남궁성 쪽으로 다가선 남궁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스스로 비동에 들어가 제왕검을 가져오고 그곳을 무너뜨렸다고 밝혔습니다.”
남궁학의 말에 남궁성이 고민을 하면서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 안에 있는 지독한 진법을 뚫고 들어갔다라. 모산파 그 돈귀신들도 십오 년 동안 뚫지 못한 것을…….”
남궁성이 고민을 하다가 남궁학을 보며 말했다.
“너와 싸웠다는 그놈. 인상착의를 정확히 말해 봐라.”
남궁학은 자신이 봤던 놈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얼굴에 기이한 문양을 그려 놔서 생김새를 알 수 없었다는 것과, 비겁한 수를 써서 자신의 허를 찔렀다는 것, 생각보다 젊은 청년으로 보였다는 것 등을 숨기지 않고 자세히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남궁성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기괴한 움직임에 권을 썼다고? 설마…….’
남궁성은 처음에 괴존의 후인이 나타난 것인지를 의심했다.
하지만 삼십 년의 세월 동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괴존의 후인을 찾았지만 그런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워낙 성격이 괴팍했던 위인인지라 제자를 남기지 못했던 것이었다.
동시에 남궁성이 떠올린 것은 신기자였다.
‘신기자는 아니다. 놈은 그때 분명히…….’
그는 더 곰곰이 생각을 하며 제왕검을 가져간 자의 정체를 유추해 봤다.
그때 남궁성이 남궁학을 보며 말했다.
“그놈이 나타났을 때 주변에 뭔가 다른 이상 징후는 없었나. 뭐든 좋다. 작은 것이라도 다 말해 봐라.”
그러자 남궁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비동이 무너지기 전 신룡무관과 청성파가 축융봉에서 형산파와 연합 훈련을 한다는 전언을 보냈습니다.”
그의 말에 남궁성의 눈동자가 커졌다.
“신룡무관? 청성파?”
순간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그 자리에 청성의 유한백이 있었더냐?”
다급한 목소리로 묻는 남궁성의 모습에 남궁학이 더 놀란 채 대답했다.
“……그 부분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곧장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남궁학이 뒤를 돌아 집무실을 나가려 할 때였다.
“학아.”
남궁성의 부름에 그가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남궁성이 목소리를 낮추고 입을 열었다.
“제왕검을 들고 있다던 놈. 혹시 검붉은 빛의 도를 하나 들고 있지 않더냐?”
“도 말씀입니까? 그런 것은 따로 들고 있지 않았습니다.”
남궁학의 대답에 남궁성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손짓했다.
“알겠다. 이만 나가 봐라.”
남궁성의 축객령에 남궁학이 포권을 취하고 집무실을 나갔다.
홀로 자리에 앉은 남궁성의 눈동자가 복잡하게 흔들렸다가 이내 기이한 빛을 띠며 번뜩였다.
‘혈천마도. 그걸 찾아야 한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