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휘이이익!
수룡왕에게 따로 명령을 받고 움직이던 복면인들은 은밀하게 숲속을 내달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유한백이 숨어 있는 장소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흑혈문.’
유한백이 흑혈문에 신룡무관의 기재들을 붙잡아 둔 채 머무르고 있다는 첩보를 받은 것이었다.
구월루 쪽으로 향한 수적들과는 별개로 이들은 흑혈문 쪽으로 움직였다.
흑혈문이 같은 사파 계열이기에 습격을 하는 데 껄끄럽다거나 하는 감정은 애초에 없었다.
흑도방파들끼리 세력 다툼으로 전쟁을 벌이는 일은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애초에 복면인들이 하는 일이 이런 은밀한 임무였다.
그들은 수룡왕의 숨겨진 비수로서 장강수로십팔채와 관련된 문제가 생겼을 때 투입되어 문제를 마무리하는 해결사 역할이었다.
이런 일을 하면서도 여태껏 정체가 들통나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 진짜 살수들이었기 때문이다.
휘이이익!
그들은 살수다운 몸놀림으로 기척을 죽인 채 흑혈문의 장원 앞에 도착했다.
살수들은 이미 흑혈문 장원의 구조를 모두 파악했다는 듯 익숙하게 잠입할 틈새를 찾아 움직였다.
밀수 사업으로 세력을 키운 곳이라서 흑혈문의 장원 앞쪽에는 짐을 보관할 창고가 몇 개나 지어져 있었고, 짐수레들이 십수 개가 앞에 나와 있었다.
수룡왕이 보낸 살수들은 창고 쪽으로 파고 들어가 유한백이 머무르고 있는 내원 쪽으로 향했다.
어찌나 움직임이 은밀한지 주변을 지키고 있던 흑혈문의 무사들은 이들이 내원으로 들어가는지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살수들이 유한백이 머물고 있는 내원의 객당에 도달하자 서로 수신호를 보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살수 중 하나가 지붕 위로 올라가서 유한백이 있는 방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는 틈새로 침상에 누워 있는 청년의 용모파기를 확인했다.
‘약관의 남성. 왼쪽 눈 아래 흉터. 목표물이 맞다.’
지붕 위에 올라간 살수가 다른 이들에게 확인이 됐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유한백이 잠들어 있는 방 안으로 휙 던지는 것이었다.
치이이이익!
살수들이 던져 넣은 것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목표물의 의식을 잃게 만드는 마비초를 향의 형태로 만든 것이었다.
향이 방 안에 충분히 퍼지자 살수들이 조심스럽게 기척을 죽이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침상 위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유한백을 향해 은밀하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은 것을 확인 한 뒤 납치하려는 순간이었다.
삐이이이익!
갑자기 바깥에서 경계 신호를 울리는 호각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는 것이었다.
당황한 살수들이 기절한 유한백을 죽이고 곧바로 탈출을 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의식을 잃은 줄 알았던 유한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곧장 살수들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었다.
“덤벼라 이 자식들아!”
우악스럽게 달려드는 그는 유한백이 아닌 변장한 진무치였다.
콰콰콰콰!
엄청난 기세로 달려드는 진무치를 피하기 위해 살수들이 급하게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쿠다당탕탕!
바닥에 나동그라진 살수들을 향해 조장이 수신호를 보냈다.
[각자 흩어져서 퇴로를 찾는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려 했다.
그런데 살수들이 도망을 치기도 전에 흑혈문의 무사들이 달려드는 것이었다.
“마교 놈들이 저기에 있다!”
흑혈문도들이 요란스럽게 호각을 불며 무기를 꼬나쥐고 살수들의 퇴로를 막았다.
살수들은 흑혈문도들이 자신들을 마교라 칭하는 것을 듣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함정이다.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한다.’
살수 조장이 퇴로를 찾으려 할 때 어느새 흑혈문주가 수하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으리의 말씀이 맞았군. 간악한 마교 놈들이 진짜 살수를 보내 습격을 해올 줄이야.”
그는 뒤에 서 있던 궁수대를 향해 손을 치켜올렸다.
“뭣들 하고 있느냐! 당장 저놈들을 쏴라!”
살수에게 궁수는 최악의 상성이었다.
보통 살수들은 무림 고수들을 죽이기 위해 갖가지 수법을 익히고, 일격필살의 비장의 한 수를 연마한다.
그렇기에 무공 자체를 수련하는 것보다는 살인의 기술을 익히는 것에 더 집중한다.
문제는 살수의 기술이라는 것 자체가 노출된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이었다.
고수들이라면 날아오는 화살을 튕겨 내거나 경신술을 펼쳐 사정거리 바깥으로 피할 수 있었지만 살수는 그렇지 않았다.
활에 화살을 먹인 궁수들이 살수들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피이이이잉!
화살들이 날아와 살수들의 몸을 가차 없이 꿰뚫었다.
휘이익!
그중에서 몇몇은 다른 살수들을 방패 삼아 화살을 피하고는 곧장 뒤로 돌아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퇴로를 막고 있는 흑혈문도들을 향해 던졌다.
치이이이익!
치명적인 산성 용액이 흩뿌려지자 흑혈문도들이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끄아아악!”
“아아아악!”
혼란한 틈을 타 살수들이 곧장 탈출을 했다.
그러자 흑혈문주가 수하들을 향해 외쳤다.
“멍청한 놈들! 빨리 놈들을 잡아라! 어서!”
흑혈문도들은 문주의 말에 무기를 꼬나쥐고 도망친 살수들을 쫓기 위해 달려 나갔다.
살수들은 도망치면서도 쫓아오는 흑혈문도들을 향해 암기를 던졌다.
퍼억!
“컥!”
암기에 맞은 흑혈문도들이 쓰러지기는 했지만 숫자가 워낙 많았다.
살수들이 방향을 바꾸며 열심히 도망치는 와중에 앞쪽에서 뭔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휘이이익!
흑혈문 쪽으로 다급하게 달려오는 이는 다름 아닌 귀견수였다.
그는 유한백이 쪽지에 적어 놓은 약도를 보고 바로 이 흑혈문 쪽으로 온 것이었다.
멀리서 귀견수의 얼굴을 확인한 살수 조장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귀견수를 쫓는 다른 살수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설마 우릴 함정으로 몰아넣으려고……?’
그의 상념이 끝나기도 전에 측면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파지지지지직!
모용후가 날린 전격이 실린 검이 살수들을 덮친 것이었다.
“끄으으윽!”
“끄르륵!”
전격에 맞은 살수들은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러자 귀견수를 쫓던 살수들도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려 했는데 이미 그들의 뒤를 쫓고 있던 조명환과 당무혁이 퇴로를 막아섰다.
살수들은 합격진으로 이들을 단숨에 제치고 나가려 했다.
당무혁이 이들을 향해 암기를 날리려 하자 조명환이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당 소협, 저들은 내가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검을 치켜들더니 호흡을 가다듬고는 청운적하검의 기수식을 취했다.
츠츠츠츠!
그 순간 그의 검에서 주홍빛 검기가 치솟아올랐다.
단순히 흉내만 낸 검기가 아닌 건곤의 묘를 깨달은 진정한 청성의 검기였다.
“하아앗!”
조명환이 기합을 내지르며 살수들을 향해 청운적하검을 내질렀다.
사아아아악!
주홍빛 검기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검격이 합격진을 펼친 살수들의 몸을 단숨에 휩쓸었다.
콰콰콰콰!
조명환이 펼친 날카로우면서도 강맹한 검격에 살수들이 제대로 반격도 하지 못한 채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뒤에서 이를 지켜본 당무혁 역시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조 형의 무공이 이토록 고강했다니. 태룡의 검막과 비견했을 때 결코 무위가 낮지 않다.’
조명환의 검격에 살수들의 대부분이 쓰러지자 뒤이어서 흑혈문도들을 이끌고 온 흑혈문주 방원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검을 들고 있는 황룡관원들을 보며 가소롭다는 듯 조소했다.
“잡힌 동료들을 구하러 온 것이더냐? 안됐지만 녀석들은 이미 제압되어 옥에 갇혀 있다. 동료들이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얌전히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해라!”
방원강의 말에도 조명환과 당무혁, 모용후는 거리낌 없이 무기를 치켜들고 그들과 거리를 좁혀 갔다.
이를 본 흑혈문주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뭐, 뭣들 하는 것이냐! 동료들의 목숨이 아깝지 않더냐!”
보통 정파의 후기지수들은 동료들을 인질로 삼고 협박하면 멍청하게도 무기를 버리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눈앞에 있는 놈들은 살기를 번뜩이며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뭐 이런 놈들이…….’
방원강은 뒤에 있는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저놈들을 쳐라! 붙잡아서 당장 옥에 가두……?”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방원강이 뒤를 돌아봤다.
“헉?”
분명 옥에 가둬 놨던 황룡관원들이 멀쩡하게 걸어 나와 어느새 흑혈문도들을 죄다 때려눕혀 놓은 것이었다.
백무흔이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방원강 쪽으로 다가섰다.
“흑혈문주 방원강. 밀수 혐의를 비롯해 살인 교사, 살인 등의 증거를 찾았으니 반항하지 말고 얌전히 투항해라. 신룡무관의 이름으로 너를 관아에 넘기도록 하겠다.”
그의 말에 방원강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젠장, 젠장!’
그런 방원강의 뒤를 백무흔이 빠르게 쫓았다.
휘이이이익!
봉황신무를 찾은 뒤로 봉황궁 무공의 공부가 깊어진 백무흔의 움직임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움직임이 강맹하나 거칠고 우악스러웠다면 지금은 훨씬 유려하고 부드러워졌다.
백무흔이 우아한 기세로 방원강의 뒤를 쫓아가 오히려 그 앞을 가로질렀다.
“헉!”
자신을 가로막은 백무흔을 보며 방원강이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옷소매를 흔들어 백무흔을 향해 뭔가를 뿌리는 것이었다.
파앗!
이런 비상 상황을 대비해서 소매에 감추고 있던 독모래가 백무흔을 향해 흩뿌려졌다.
독을 먹여서 모래 알알이 독성이 깃든 독모래는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이었으며 특히나 한 호흡만 들이마셔도 폐가 굳어져 버릴 만큼 독성이 강했다.
그렇기에 독을 다루는 당문에서도 독모래를 만드는 것을 금지하고 거래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그 정도로 지독한 독모래를 사파인 방원강은 거리낌 없이 사용한 것이다.
독모래가 백무흔을 독성으로 녹여 버릴 것이라 의심치 않은 방원강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결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백무흔이 자신을 향해 흩뿌려진 독모래를 보고선 유엽도를 옆으로 세워 들고 도면으로 크게 휘둘렀다.
후우우웅!
마치 봉황이 날갯짓을 하듯 도를 휘두른 백무흔의 몸에서 거대한 도풍이 일어났다.
콰콰콰콰!
강력한 도풍이 방원강이 뿌린 독모래를 죄다 날려 버렸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되돌려 버린 것이었다.
“케게게겍!”
역으로 돌아온 독모래를 미량이지만 삼킨 방원강이 목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는 목과 가슴이 타는 듯한 고통에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사, 살려…….”
자신이 쓴 암수에 거꾸로 당하고만 방원강이었다.
하지만 백무흔은 그런 방원강을 차가운 눈길로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가 흑혈문을 통해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질렀는지 알고 있었기에 고통스러운 죽음이 오히려 어울렸다.
결국 방원강은 목에서 피를 토하며 고통스럽게 최후를 맞이했다.
백무흔이 죽은 방원강을 내버려 둔 채 황룡관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미 다른 이들이 붙잡은 살수들을 제압한 채 무릎을 꿇리고 있었다.
제갈소소가 눈을 번뜩이며 살수들의 우두머리를 찾아냈다.
그녀가 살수 조장에게 물었다.
“너네 총채주가 있는 곳 어디야. 말해라. 동정호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말해.”
제갈소소의 심문에도 살수 조장은 입을 꾹 다물고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제갈소소가 옆에 있던 모용후에게 손짓했다.
그가 전격을 일으키며 다가왔다.
“꼴에 살수라고 버틴다 이거지? 오냐 오늘 아주 따끔한 맛을 봐 봐라.”
그녀가 모용후를 시켜서 살수 조장을 전격으로 지졌다.
파지지지지직!
모용후의 전격에도 살수 조장은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전격에 당했음에도 반응은 똑같았다.
제갈소소가 그런 살수 조장을 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하, 이런 독한 새끼. 이걸 참아 내다니…….”
그러자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살수 조장이 조소를 날리며 말을 했다.
“멍청한 놈들. 네놈들이 아무리 그래 봐야 소용없다. 주인님께서는 결코 수룡채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으실 것이다.”
“빌어먹을. 진짜 수룡채에서 계속 틀어박혀 있을 거란 말이야?”
“그곳은 천연의 요새. 그 누구도 뚫을 수 없다.”
“정말이지? 거기에 정말 계속 있는 거지?”
“당연하…….”
살수 조장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제갈소소가 씨익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놈이 지금 수룡채에 있다는 거네. 월매, 당장 대장한테 연락해. 수룡왕이 거기에 있는 게 맞다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