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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존강림-225화 (225/250)

225화

쿵!

소식을 전해 들은 종리백이 감찰단 출신 사부들을 이끌고 기루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종리백이 기루의 최상층으로 올라가니 무림맹에서 나온 수사관들이 이미 곳곳으로 흩어져 조사하고 있었다.

그때 수사관 중 하나가 종리백에게 다가왔다.

“나으리, 이쪽입니다.”

그는 수사관이 안내하는 가장 안쪽 방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방 안에 가득 차 있는 주향이 코를 찔렀다.

탁상 위에는 여기저기 술병이 널려 있었고, 옷가지들 역시 흩어진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종리백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순식간에 방을 쭉 훑어봤다.

그러더니 음식 접시와 술병들이 널브러진 탁상 쪽을 바라보고서는 옆에 있던 언성표를 향해 턱짓을 했다.

그러자 언성표가 곧장 탁상 쪽으로 다가가 그릇들을 살피다가 작은 종지에 담긴 가루약을 발견했다.

그는 약지로 가루를 조금 찍어서 혀에 대보았다.

그리고는 눈살을 찌푸리고서는 침을 뱉으며 말했다.

“부단장님, 마약입니다.”

종리백은 인상을 찌푸렸다가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사관에게 말했다.

“놈은 지금 어디에 있나.”

“이쪽입니다.”

수사관이 빠르게 안쪽 방으로 종리백을 안내했다.

언성표와 다른 수하들이 종리백을 따라가려 하자 그가 손을 들었다.

수하들 없이 종리백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방에 머리를 풀어 헤친 냉소천이 손톱을 이빨로 물어뜯은 채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덜덜 떨고 있었다.

종리백이 냉소천에게 다가갔다.

“냉소천. 일어나라.”

냉소천은 종리백의 말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종리백이 다가가서 곧장 냉소천의 머리를 휘어잡고는 손바닥을 펴서 그의 목덜미를 내려쳤다.

짜악! 짜악!

목덜미를 수차례 얻어맞자 그제서야 냉소천의 눈빛이 돌아왔다.

“허억, 허억.”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냉소천을 종리백이 바닥에 휙 내던졌다.

그가 다시 손을 덜덜 떨면서 종리백에게 말했다.

“무, 물 좀 주시오. 목이 타서 죽을 것 같소.”

그 말에 종리백이 냉소천에게 다가가더니 발로 그의 가슴께를 밟고 눌렀다.

“끄으윽!”

냉소천이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듯 꺽꺽거렸다.

종리백이 감정 없는 눈빛으로 냉소천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놈 같은 흑도의 쓰레기 새끼들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개수작 부릴 생각 마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지. 내 조카 어딨나.”

냉소천은 종리백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릅, 모릅니다. 모릅니다.”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는 냉소천의 가슴께를 종리백이 더욱 강하게 밟았다.

“케에에엑!”

냉소천이 죽을 듯이 소리를 질렀다.

종리백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물어보겠다. 내 조카 지금 어디에 있나. 또 모른다는 말을 하면 이대로 심장을 터뜨려 죽여주마.”

점점 가해지는 압박이 강해지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냉소천이 발악을 하며 소리쳤다.

“끄아악! 몰라, 몰라! 어, 어떤 새끼가 갑자기 와서! 나한테 강제로! 약 먹이고! 종리혁 데려갔…… 진짜 몰라!”

종리백은 냉소천의 가슴을 밟던 발에서 조금 힘을 풀었다.

그는 냉소천을 벌레처럼 내려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누가 종리혁을 데려갔는지 정확하게 설명해라.”

조금 숨통이 트인 냉소천이 숨 가쁘게 말을 이었다.

“보, 복면을 쓴 흑의인…… 갑자기 쳐들어와서 우리를 때려눕히고, 강제로 약 먹이고, 종리혁을 둘러업고 갔습니다. 진짜, 그 이상은 모릅니다. 진짜예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하는 냉소천을 마치 해체하듯 샅샅이 노려보던 종리백은 천천히 발을 뗐다.

그리고는 다시 방 바깥으로 나갔다.

그때 언성표가 종리백 쪽으로 다가왔다.

“부단장님, 흑도맹의 총관인 독갈뇌옹이 정식으로 항의를 했습니다. 청살문의 소문주인 냉소천을 넘기라고 말입니다. 만약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강제 구금으로 판단하고 흑도맹과 청살문 쪽에서 조치를 취하겠다고 합니다.”

종리백은 순간 언성표 쪽으로 얼굴을 휙 돌린 뒤 손아귀로 그의 입과 하관을 꽉 잡았다.

그리고는 살기 띤 눈빛으로 읊조렸다.

“쓰레기 같은 흑도 새끼들이 짖어대는 것까지 내가 일일이 들어줘야 하나?”

언성표는 종리백에게 하관이 붙잡힌 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종리백은 이를 갈다가 언성표의 얼굴을 놔주고서는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안쪽에 냉소천이 있다. 심문실로 데려가라. 그리고 독갈뇌옹에게는 냉소천이 유력 살인 용의자이니 조사 후에 석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전해라.”

“아, 알겠습니다 부단장님.”

명령을 내린 종리백은 날카로운 표정으로 방을 다시 훑어봤다.

그런데 그때 달갑지 않은 얼굴이 수사관들 사이에서 보였다.

“부단장. 아, 아니지. 이제는 종리 사부라 불러야겠군.”

무림맹의 총관이자 총군사인 제갈목산이 직접 현장을 찾아온 것이었다.

제갈목산이 종리백 쪽으로 다가가 포권을 취했다.

하지만 종리백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총군사께서 여긴 어인 일로 오셨소.”

딱딱한 그의 목소리에 제갈목산이 특유의 여유 있는 미소 띤 표정으로 대답했다.

“종리 사부의 조카에게 변고가 있다는 말을 듣고 한달음에 왔소이다.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잠시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 것이 어떻소이까. 무림맹에서 협력을 해야 할 부분이 꽤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제갈목산의 말에 종리백은 잠자코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실종 현장인 기루를 나와서 옆에 있는 다원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점원이 내온 차를 마시며 제갈목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조카는 금방 찾을 수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이다. 무림맹에서도 모든 수사관을 동원해 흔적을 찾고 있으니 말이오.”

종리백은 찻잔에 손대지 않은 채 제갈목산을 노려보며 말했다.

“제갈목산, 왜 온 거냐. 엉덩이 무거운 네가 이런 일에 그냥 올 리가 없을 텐데.”

종리백과 제갈목산은 같은 시기에 신룡무관을 졸업한 동기였다.

제갈세가와 종리세가는 다른 세가와 달리 무림은 물론 조정으로 진출한 이들이 많은 편이라 서로 교류가 잦은 편이었다.

하지만 종리백과 제갈목산은 서로 썩 달가운 사이는 아니었다.

신룡무관을 다닐 때는 둘이서 항상 1, 2등을 다투는 사이였고 무림맹에 들어가서도 두 사람이 특출나게 뛰어났기에 언제나 서로의 비교 대상이었다.

무엇보다 제갈목산은 겉으로는 미소를 짓고 있기는 하나 항상 의뭉스러운 태도를 고수했기에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종리백은 감찰단을, 제갈목산은 총관부로 소속이 갈라지기는 했지만 서로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었다.

제갈목산은 종리백의 날카로운 말에 다시금 웃음을 지으며 찻잔을 내려놨다.

“자네는 언제나 나에게 날이 서 있군. 관생 때도 그랬지. 감찰단에 들어간 뒤로 의심을 하는 버릇이 너무 심해진 탓이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오늘은 정말 선의로 온 것이니 너무 날카롭게 생각하지 말라고.”

종리백은 제갈목산의 말을 듣고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저렇게 말은 하지만 언제든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제갈목산이었다.

종리백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제갈목산에게 말했다.

“왜 나를 보자고 한 것인지나 말해라.”

제갈목산은 턱을 잠시 매만지다가 종리백에게 말했다.

“다른 것은 아니라 혹여 이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해서 정보를 주러 왔네.”

종리백은 제갈목산의 말에 미간을 그러모았다.

종리혁을 찾기 위해서 정보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제갈목산이 주는 정보에는 함정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일단 들어보고 판단을 해야 했다.

“어떤 정보인지 말해 봐라.”

제갈목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무한 한복판에서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돌려 말하지 말고 빨리 말해라.”

그의 말에 제갈목산이 본론을 바로 꺼냈다.

“괴룡 유한백. 이런 일을 저지를 놈은 그 녀석밖에 없네.”

유한백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종리백의 미간 주름이 더 깊어졌다.

그는 감찰단 시절의 습관대로 제갈목산에게 반문했다.

“유한백이 이런 일을 벌였다는 증거가 있나. 놈이 내 조카를 납치해서 뭐가 유리하다는 거냐.”

제갈목산은 종리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유한백의 목적은 신룡무관을 혼란하게 만드는 것이야. 얼마 전에 놈은. 와룡을 이용해 사륜회를 손 안 대고 무너뜨리고, 흑공자를 바깥으로 끌어냈어.”

그가 종리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놈이 이런 일을 벌이는 이유는 하나일세. 바로 무림의 현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함이야.”

“현 체제?”

“그래, 무림맹을 세가가 쥐고 흔드는 상황. 더 나아가서는…… 남궁세가가 천하제일세가로서 무림을 한 손에 쥐고 흔드는 것을 무너뜨리기 위한 포석인거지.”

종리백은 제갈목산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너무 멀리 가는군. 유한백이 내 조카를 납치한 이유가 결국 남궁세가 때문이다?”

“내 말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야. 유한백이 신룡무관에 들어와서 해온 모든 일들의 끝에는 결국 남궁세가와 검존이 걸려 있었어. 이번 일도 맥락을 보자면 다르지 않아.”

제갈목산의 말을 들은 종리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보는 잘 들었다. 알아서 수사에 참조하도록 하지.”

그가 방을 나서려고 하자 제갈목산이 종리백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유한백, 그가 괴존의 후인이라는 말이 있더군.』

제갈목산의 전음을 들은 종리백이 나가려던 걸음을 멈췄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제갈목산을 내려다봤다.

“……사실인가.”

제갈목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리백은 고민하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유한백이 남궁세가와 현 무림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혼란을 일으킬 만한 사건을 벌인다는 말이 아까는 잘 와닿지 않았지만 그가 괴존의 후인이라면 상황이 달라졌다.

남궁강룡의 오른팔인 만큼 종리백은 괴존의 존재는 물론 남궁세가와 얽힌 악연 역시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만약 유한백이 진짜 괴존의 후인이라면 종리세가의 직계를 납치해 신룡무관을 흔들어 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황당한 이야기에도 신빙성이 생길 수 있었다.

그가 들었던 괴존이라는 존재는 그러고도 남을 괴인이었기 때문이다.

종리백이 다시 자리에 앉자 제갈목산이 말을 이었다.

“이 사실은 아마 아는 사람이 극소수일 거야. 다름 아닌 검존께서 정보를 제한하고 계시네.”

유한백이 괴존의 후인이라는 사실이 퍼져 나가는 것을 검존이 거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말뜻은 입을 함부로 놀렸다가는 검존이 직접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종리백은 이번 일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 심각하게 많은 것들이 얽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야 할 변수가 많아지니 수사의 방향을 잡기가 복잡해졌군.’

제갈목산이 표정이 굳은 종리백을 보며 말했다.

“유한백을 바로 건드리는 것보다는 우선 황룡관 쪽부터 쑤시는 것이 더 유리할 거야. 그곳에 있는 월소청이라는 아이는 흑월문의 유일한 적통이자 유한백의 정인이라 알려져 있지. 이전에는 청살문의 냉소천과 혼약을 맺었던 사이였고. 찔러보면 나올 게 많은 아이니까 먼저 소환을 해보게. 그럼 자연스럽게 유한백도 딸려 올 테니 말이야.”

종리백은 제갈목산의 말을 듣고서 아무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다시 제갈목산이 등 뒤에 대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말이야. 종리세가는 손이 귀하다지. 그래서인지 자네의 조카 사랑이 참으로 지극하군.”

종리백이 문 앞에서 우뚝 섰다.

그러자 제갈목산이 다시 말을 이었다.

“종리혁의 어머니, 왕설유라고 했던가. 몸이 약해서 출산을 한 뒤 일찍 죽었다지? 그러고 보니 그녀도 우리와 같은 동기 아니었던가. 종리백 자네와도 꽤 가깝게 지냈던 것으로 알고 있…….”

파앗!

뜯어낸 문고리가 제갈목산의 뺨을 스쳐 다원 벽에 박혔다.

“함부로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라.”

종리백이 제갈목산을 죽일 듯 노려보다가 이내 몸을 휙 돌린 뒤 다원 밖으로 나갔다.

제갈목산은 벽에 박힌 문고리를 보고 멋쩍은 듯 뺨을 매만진 뒤 미소를 지었다.

‘무대는 준비되었으니 백면호리, 어디 네가 원하는 대로 무대 위의 인형들을 조종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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