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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존강림-242화 (242/250)

242화

백보신권은 소림의 절기 중의 절기로 소림의 무승이라 하여 모두 익힐 수는 없었다.

복천이 이를 익힐 수 있었던 이유는 소림 무승 중 정예라 할 수 있는 백팔나한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주먹에서 번쩍이는 광원이 주먹의 형태를 띤 채 홍정광을 향해 날아갔다.

워낙 빠른 권격이었기에 홍정광 역시 피할 수가 없었다.

홍정광은 날아드는 백보신권의 권격을 향해 들고 있던 타구봉을 미련 없이 내던졌다.

휘이이익!

날아간 타구봉이 백보신권의 권격과 충돌했다.

아무리 진기를 불어넣었다 해도 권격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타구봉이 그대로 부서져 나가며 파편이 흩어졌다.

권격과 타구봉이 부딪치며 생겨난 그 찰나의 순간 동안 홍정광은 자세를 잡고 기운을 끌어올렸다.

쿠구구구구!

진기를 끌어모은 홍정광이 뒤로 물러서며 쌍장을 내질러 항룡십팔장을 펼쳤다.

쿠어어어어어!

용의 울부짖음이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용의 형상을 띤 장력이 튀어나와 백보신권의 권격과 충돌했다.

콰콰콰콰콰!

주먹의 형태를 띤 권격과 용의 형상을 한 장력이 부딪치자 충격파가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그 기운이 만만치 않자 석장을 들고 있던 무승들이 주변을 감싸더니 기운을 끌어올렸다.

충격파가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진기로 결계를 친 것이었다.

홍정광과 복천이 내지른 권격과 장력이 서로 맞붙으며 뭉치더니 곧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했다.

콰콰콰콰콰콰쾅!

기운이 폭발하며 발생한 충격파가 생각보다 강해 석장을 든 무승들 역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양손으로 석장을 들고 기운을 상쇄시키려 했지만 그 여파를 모두 막아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바깥으로 흘러 나가는 기운들이 주변에 있는 민가를 덮칠 찰나였다.

촤라라라락!

뒤에서 나타난 검막(劍幕)이 충격파를 막아냈다.

쿠구구구구!

검막으로 인해 모든 충격파가 상쇄되자 겨우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석장을 들고 있던 무승들 역시 갑작스럽게 터져 나간 충격파 때문에 급하게 진기를 끌어올린 듯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갑작스럽게 백보신권을 쓴 복천 역시 내상을 입었는지 얼굴과 민머리가 모두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맞은편으로 밀려난 홍정광은 내상은 입지 않았으나, 백보신권에 대항해 항룡십팔장을 펼친 스스로의 행동에 자책을 했다.

‘홍정광아, 이 멍청한 놈. 민가 근처에서 이런 큰 기술을 쓰다니.’

만약 누군가가 펼친 검막이 아니었다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홍정광의 뒤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림, 개방 둘이서 쌍쌍이 X랄 염병을 하고 있네.”

냉소적인 말투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유한백을 보며 복천이 목소리를 높였다.

“웬 놈이더냐! 감히 소림을 욕보이…….”

“닥쳐, 소림을 욕보이는 건 지금 땡중 너다.”

단호한 유한백의 말에 복천은 순간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지존검을 어깨에 걸친 유한백이 천천히 앞으로 나와 복천을 비롯한 다른 무승들을 보며 말했다.

“소림의 무승들이 여기까지 내려온 건 좋다 이거야. 그럼 옛날처럼 거들먹거리거나 말썽 피우는 놈들이나 잘 계도할 것이지. 지들이 와서 사고를 쳐?”

예전 소림 방장이었던 혜인 선사가 알았다면 경을 칠 일이었다.

말은 거칠지만 온건한 태도로 모든 이를 품었던 혜인 선사가 유일하게 용서치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소림의 무승이 무공을 남용하여 다른 이를 해하는 것이었다.

혈패천이 무림을 습격했을 때도 혜인 선사는 마지막까지 소림이 움직이는 것을 반대할 정도였다.

정파 무림에서 단일 문파로 가장 큰 힘을 가진 소림이 잘못 움직일 경우 더 큰 피해가 생기는 것을 걱정한 것이었다.

그런 혜인 선사의 가르침을 어기고 무승들이 호승심에 무공을 마구잡이로 펼치다가 민가에까지 피해를 줄 뻔한 것을 보고 유한백은 눈이 뒤집힌 것이었다.

유한백은 들고 있던 지존검을 옆에 내려두고 허리춤에 꽂아두었던 옥피리를 꺼내 들었다.

“운 좋았다. 만약에 아까 그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다치기라도 했으면 땡중 너는 대가리 깨지는 걸로 안 끝났을 거야.”

뒤에서 유한백의 말을 들은 홍정광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칫 잘못했다가 자신 역시 유한백에게 호되게 당할 뻔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제자의 눈치를 보고 사는 신세라니. 아니지 이번에는 내가 백번 잘못했으니 당해도 싸지.’

앞서서 잘못을 저지른 이들의 손목이 날아갔다는 걸 알았다면 홍정광은 이렇게 침착하게 스스로를 반성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옥피리를 들고 앞으로 나선 유한백을 보며 복천이 이마에 힘줄이 가득 돋친 채로 노호성을 내질렀다.

“건방진 놈! 청성의 후기지수가 감히 소림을 위협한단 말이더냐!”

유한백은 복천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말끝마다 소림, 소림거리는 게 지겹네. 소림이 대단한 거지, 땡중 네가 뭐 되는 줄 아냐?”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유한백이 대놓고 반말을 하자 복천은 성질이 있는 대로 뻗쳤다.

“네 이노오오옴.”

그런 복천을 보며 유한백이 옥피리를 휙휙 휘둘렀다.

“백팔나한 중 하나라며? 어차피 내가 올라가서 다 깨버릴라 했는데 잘됐네. 몸풀기로 딱 좋겠어.”

유한백의 말에 복천의 인내심이 끊어졌다.

“내가 오늘 살계를 열지도 모르겠구나.”

복천의 몸에서 다시 기운이 들끓었다.

백보신권을 무리하게 펼치는 바람에 내상을 입었지만 이 상태라도 후기지수인 유한백을 손봐 주는 데는 문제없을 것이라 여긴 것이었다.

그런 복천을 홍정광이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냥 나랑 좋게 끝냈으면 좋았을 것을. 스님께서 굳이 벌주를 선택하였구나.’

열받은 유한백은 홍정광도 말릴 수가 없었기에 뒤로 물러나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유한백이 복천을 향해 말했다.

“내가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니까 먼저 가도 되지?”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복천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유한백은 기다렸다는 듯이 들고 있던 옥피리를 집어 던졌다.

콰콰콰콰콰!

유한백의 진기가 담긴 옥피리가 돌풍을 일으키며 복천을 향해 날아갔다.

옥피리에 담긴 범상치 않은 기운에 복천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 이건?’

그는 재빨리 양팔을 가슴께로 모으고 부동자세를 잡았다.

그리고는 진기를 급하게 끌어올려 몸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콰콰콰콰콰!

복천의 깊은 내공이 단련된 육신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도검으로 내리쳐도 복천의 몸을 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한백의 옥피리는 달랐다.

콰드드드드드!

회전하며 날아오는 옥피리가 복천의 교차된 양팔과 충돌했다.

콰콰콰콰콰!

옥피리를 온몸으로 막아낸 복천은 거대한 폭풍이 작게 압축되어 자신의 몸을 분쇄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마, 말도 안 돼.’

굳건하던 그의 육신이 옥피리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폭풍에 휩쓸리는 것이 느껴졌다.

복천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마치 스스로가 뿌리 깊은 나무가 된 것처럼 어떻게든 버티고 섰다.

그런데 그때였다.

빠악!

어느새 공중에서 모습을 드러낸 유한백이 뒤꿈치로 복천의 정수리를 내리찍어 버린 것이었다.

“커헉!”

방심한 사이에 정수리가 찍힌 복천은 정신을 잃을 듯 혼미했다.

이를 본 유한백이 착지를 하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역시 소림승은 단단하네. 아주 때릴 맛이 있겠어.”

스쳐 지나가듯 내뱉은 유한백의 말에 복천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유한백이 팔을 뻗자 복천을 공격하던 옥피리가 저절로 날아들어 그의 손에 안착했다.

옥피리를 쥔 유한백의 눈동자에서 광기가 흘렀다.

“얼마나 버티는지 한번 보자고.”

그 말과 함께 옥피리가 현란하게 움직이며 복천의 온몸을 파고들었다.

퍼버버버벅!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진 옥피리가 정확하게 혈도만을 노리고 타격을 가했다.

혹독하게 육신을 단련한 복천마저도 유한백의 옥피리가 주는 고통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커헉! 컥!”

한 대 맞을 때마다 숨이 멎는 듯한 고통이 일었다.

몸에 힘을 주고 어떻게든 버텨 보려 했는데 그럴수록 더 깊게 파고들어서 고통이 배가 됐다.

유한백은 아주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며 복천의 급소만을 골라 두들기고 또 두들겼다.

퍼버버버버벅!

단단한 복천의 몸이 구타가 계속될수록 풀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버티던 복천 역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자, 잠깐!”

어떻게든 유한백의 구타를 멈추기 위해 두 손을 든 복천이었다.

하지만 유한백이 여기서 멈출 리가 없었다.

“잠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소림의 백팔나한이 왜 이렇게 혀가 길어!”

옥피리를 휘두르는 유한백에게 꼼짝없이 얻어터지는 복천을 보며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홍정광과 조명환, 백무흔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림승도 저렇게 개 패듯 패다니 내 제자지만 정말 대단하다.’

‘한백이의 구타가 이제는 예술의 경지에까지 올랐구나.’

‘이 기세라면 정말 백팔나한을 깰지도?’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유한백의 신랄한 구타를 지켜보는 세 사람이었다.

그때였다.

쿠우웅!

이를 지켜보고 있던 무승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대사가 석장으로 바닥을 찍으며 앞으로 나섰다.

아까 복천이 내리찍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깊은 울림이 느껴졌다.

그러자 유한백은 옥피리를 잠시 멈춘 뒤 고개를 들었다.

그가 대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대사께서도 몸이 근질거려 한판 하시렵니까?”

유한백의 말에 대사가 얻어맞은 복천을 힐끔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주께서는 어인 일로 이곳을 찾으신 것이오.”

유한백은 대사의 말에 옥피리를 휙휙 휘두르며 말했다.

“여기까지 왜 왔겠어요. 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사 구경하려고 왔지.”

까칠한 말투로 대답하는 유한백을 보며 대사의 눈썹이 잠시 꿈틀거렸다.

그가 반합장을 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소림은 초청받지 않은 손님에게는 입산을 허하지 않소이다.”

그 말에 유한백이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왜요? 우리는 돈을 안 내서 입산증을 못 받나요?”

소림이 입산증을 돈 받고 팔았다는 걸 대놓고 말하는 유한백을 보며 대사는 물론 뒤에 있는 무승들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자 유한백이 옥피리를 척 들고 무승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림이 돈 받고 입산증 파는 거 자체는 맞잖습니까. 누구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사업 수완이 좋네요.”

유한백의 말에 얼굴이 굳어진 대사가 다시 석장을 들었다.

“소림을 모욕한 자를 사찰에 들일 수 없소이다. 더 이상 무례한 행동을 한다면 소승 역시 참지 않을 것이니 조심하시오.”

대사의 말에 유한백이 옥피리를 허리춤에 꽂으며 물었다.

“대사,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지금 소림의 방장이 누굽니까.”

그가 알기로는 혜인 선사가 입적을 한 뒤 다음 방장은 그의 사제가 맡았고, 그다음으로는 혜인 선사의 제자였던 영신 대사가 맡기로 되어 있었다.

영신은 괴존 시절 유한백도 자주 봤던 사이였다.

혜인 선사처럼 모든 것을 품는 성격은 아니지만 일 처리가 꼼꼼하고 매사가 정확한 강직한 성품이었다.

그런 영신이 방장을 맡았다면 소림이 결코 이렇게 되지 않았을 터였다.

유한백의 말에 대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외인에게 소림의 일을 말해 줄 수는 없소.”

그의 말에 유한백의 표정이 변했다.

‘이것 봐라?’

아무리 폐쇄적인 소림사라 하더라도 방장이 누구인지까지 감추지는 않는다.

유한백은 소림사 내부에 뭔가 일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고민을 하던 그가 순간 대사를 향해 씨익 웃더니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런 유한백을 본 대사가 석장을 들고 경계를 했다.

유한백이 품속에서 꺼낸 것은 다름 아닌 돈주머니였다.

그가 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사님, 뭔가 오해가 있었네요. 제가 말이죠. 가진 건 돈밖에 없거든요.”

유한백이 자세를 낮추고 두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사실 제가 여기 온 이유는 다름 아니라 평소에 존경하던 소림사에 통 큰 시주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얼마나 기부를 할지 올라가서 함께 얘기를 나눠 볼까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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