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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독식 (60)화 (60/200)

기연독식 (60)

식탁을 빙글 돌아 걸어 나오는 남궁철현에게 연자연이 말했다.

“다른 손님들한테 방해되지 않게 해 주세요. 기물 파손도 주의하시고요. 아니, 어차피 도조정관님이 변상할 테니 부서지면 이번에 새 걸로 갈 수 있겠네요.”

도통달이 ‘안 부서지게 조심해라.’라고 말했다. 사내들 앞에 선 남궁철현이 도통달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디까지 패도 되는 거냐?”

“죽이지만 않으면 돼. 아니, 무림인이니 넌 죽여도 되겠다.”

“그럼 조심할 필요 없겠네.”

“이 새끼가 우릴 앞에 두고!”

두 사내가 동시에 남궁철현을 덮쳤다. 무림인이라고 했는데 건달의 몸짓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약한 상대와 싸운 적이 없는 남궁철현은 약간 당황했다. 까딱 힘 조절 잘못했다간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피하기만 하는데 남궁설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빨리 끝내! 아까운 술 다 깨잖아!”

높임말도 생략했다. 본능적으로 손이 나갔다.

덜컥!

주먹을 휘두르던 녀석은 턱을 맞고 털썩 쓰러졌다.

짜악―!

나머지 한 녀석은 뺨을 맞고 저 멀리 나뒹굴었다. 꼼짝도 하지 않는 두 사내를 보고 남궁철현이 말했다.

“살살 때렸으니 죽지는 않았겠지?”

스릉―!

“한 가닥 하는 놈이구나!”

중년인은 검을 빼면서 고함을 질렀다. 도통달이 말했다.

“하늘도 깨부수는 검이야. 조심해.”

“파천신검을 이기면 오라버니는 진정한 검중지왕이 되는 거지! 힘내!”

“하앗―!”

중년인이 검을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무림인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 앞의 두 사내보다는 빨랐다. 남궁철현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치는 검에도 제법 힘이 있었다.

턱!

물론 속도도 힘도 충분하지는 않아서 남궁철현의 맨손에 잡혀 버렸다. 손가락 세 개로 검의 옆면을 잡은 남궁철현이 힘을 줬다.

챙강!

검은 유리로 만든 것처럼 쉽게 부러졌다. 중년인은 반으로 부러진 검을 멍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어…… 어떻게 맨손으로 검을…….”

무림의 일류고수가 아닌 이상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고작 흑사회 건달이 일류고수일 리가 없었다.

중년인에게는 그걸 다시 확인할 기회가 오지 않았다.

콰직!

남궁철현은 중년인의 콧등을 박살 내 버렸다. 무기를 들었으니 앞의 두 사내에 비해 심한 응징을 받아야 한다.

주변을 둘러본 남궁철현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집기 박살 난 것도 없고 깔끔하군.”

남궁철현의 시선이 방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는 사내에게 향했다.

“또 데려올 놈 있냐?”

남궁철현의 물음에 흠칫 놀란 사내가 좌우로 고개를 열심히 저었다.

“그럼 이놈들 데리고 가라.”

“네, 알겠습니다!”

그때 도통달이 혀를 차며 나섰다.

“쯧쯧쯧…… 철현이 넌 흑사회 되려면 아직 멀었다.”

“흑사회 될 생각 없는데…….”

“죄에 대한 응징은 공평하면서 철저해야지.”

“이 정도로 부족하다고?”

“좀 부족하긴 하지만 네가 혼낸 세 명한테는 아량을 베풀 수도 있지. 줘 봐.”

남궁철현은 손에 든 검 조각을 도통달에게 건넸다. 검 조각을 받은 도통달이 엉거주춤 서 있는 사내에게 물었다.

“남궁호법 엉덩이 만진 손이 어느 쪽이냐?”

“네?”

“어느 쪽이냐고?”

“아니, 그게…….”

“기억 못 하면 너만 손해지.”

도통달이 발목을 차자 사내가 앞으로 거칠게 넘어졌다. 도통달은 그런 사내의 두 팔을 앞으로 펴서 손바닥이 겹쳐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손등에 검 조각을 박아 넣었다. 사내는 너무 아파서 입만 쩍 벌릴 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이 새끼야, 감히 누구 엉덩이를 만져!”

그 모습을 보던 연자연이 남궁설린에게 속삭였다.

“좋으시겠어요?”

남궁설린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저러면서 절 안 좋아한다고 우긴다니까요.”

“술 당기게 질투 나네. 뭐 해요? 빨리 치워요!”

뒤늦게 허겁지겁 올라온 건달들이 사내들을 데리고 나갔다. 자리로 돌아가려던 도통달은 흠칫 걸음을 멈췄다.

그를 향한 남궁설린의 눈길이 너무 뜨거워서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나…… 나 오줌 좀…….”

후다닥 나가면서 머리를 두드렸다.

“괜한 짓을 했어! 괜한 짓을!”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화가 가슴에 오래 남을 것 같았다. 자책을 하며 복도를 걸어가는데 곁을 지나친 노인이 ‘어이!’하고 불렀다.

환갑 정도 되어 보이는 노인은 반백의 머리에 짧은 수염을 길렀고 배는 지나치게 튀어나왔다.

“네가 도통달이로군.”

“누구……?”

“내가 무려 삼 년이나 공들인 애를 네가 채갔지. 현령이 그 애를 샀다고 했지만, 사실은 네놈이 수작을 부린 거지?”

얘기가 거기까지 이르자 노인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항주삼대거상 중 하나로 자수영의 첫날밤을 사기로 예약했던 공소양이었다.

하지만 도통달은 짐짓 모른 척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괜히 시비 걸지 맙시다.”

“네 명성이 항주 밤거리에 자자하더구나. 항주가 네 세상 같겠지.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넌 그냥 버러지 같은 건달이라는 거다.”

“하고 싶은 말이 뭐요?”

“현령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모르지만, 널 비호하는 현령이 천년만년 항주에 있을 것 같으냐? 현령이 사라지는 그때가 네 제삿날이다.”

“내 제삿날까지 정해주고. 친절하신 분이네. 누구 제삿날이 빠른지 내기라도 하고 싶지만 내가 좀 급해서.”

빠른 걸음을 옮기는 도통달의 뒤에 대고 공소양이 소리쳤다.

“항주에서 나한테 밉보인 놈은 절대 무사할 수 없다!”

*    *    *

원대연은 주자방을 바닥에 던지고 혈도를 풀어 주었다. 그늘진 산비탈은 새벽에 내린 서리를 아직 품고 있었다.

혈도가 풀렸음에도 주자방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눈에는 어떤 체념 같은 게 보였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

원대연은 정말 그렇게 느꼈다.

“큭큭큭…… 너한테 고맙단 소릴 듣다니. 산 보람이 있네.”

주자방을 만나면 많은 말을 할 줄 알았다. 최소한 한 시진 동안 욕이라도 퍼부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를 터트려 버릴 것 같던 분노는, 막상 주자방 앞에서 얼음처럼 차갑게 식었다.

너무 오랜 세월이었던 모양이다. 십 년이 넘는 그 세월 동안 상상 속에서 주자방을 수만 번 죽였기에, 현실의 그는 차가울 수 있었다.

“죽여라.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는데, 씨X 생각보다 오래 살았네.”

주자방이 살려 달라고 애원했으면 지금보다 기분이 나을까? 아니, 지금 기분이 어떤지 원대연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벅찬 기쁨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아야 옳은데 이런 담담함은 무엇일까?

“어떻게 죽여 줄까? 네가 우리 애들한테 그런 것처럼 검으로 찔러 줄까, 내 아내를 죽인 것처럼 목을 졸라 줄까?”

말로 뱉자 어제 일처럼 가족의 주검이 떠올랐다. 그 선명한 그림이 식었던 그의 분노를 서서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씨X, 마음대로 해. 어떻게 죽든 죽는 건 죽는 거지.”

“그래?”

원대연은 밧줄을 꺼냈다.

“널 어떻게 죽일까 많은 상상을 했지. 널 잡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죽음을 내리는 방법이 달라질 텐데…….”

그는 주자방의 다리를 밧줄로 묶었다.

“이…… 이봐! 뭐 하는 거야!”

밧줄을 나뭇가지에 걸어 잡아당기자 주자방이 거꾸로 매달렸다.

“여기는 산이고 나는 밧줄을 가졌으니 이 방법이 가장 적당하겠지.”

허리춤에서 단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죽음이 다 같은 죽음이라고? 틀렸어. 고통조차 느낄 사이도 없는 죽음이 있는가 하면, 영겁처럼 길게 느껴지는 죽음도 있지.”

“새끼야! 그냥 죽여!”

원대연은 주자방의 손도 등 뒤로 묶었다.

“이렇게 거꾸로 묶어 두면 피가 머리로 쏠려서 이각 안에 죽게 되지.”

“이각 동안 실컷 즐겨라! 이 변태새끼야!”

“이각? 너무 편한 죽음을 바라는군. 염치없게.”

원대연은 주자방의 목에 손가락을 댔다.

“여기가 경동맥이야. 여길 자르면 과다출혈로 단숨에 죽게 되지. 그리고 여기가 정맥이야. 잘라도 피가 천천히 흐르지. 머리로 가야 할 피가 정맥을 통해서 서서히 빠져나올 거야. 네 몸에서 피가 어느 정도 없어져야 죽을 수 있을까?”

단검이 정맥을 잘랐다. 왈칵! 흐른 피가 주자방의 뺨과 귓등을 타고 흐르다 관자놀이 어름에서 뚝뚝 떨어졌다.

“씨X 새끼야! 그냥 죽여! 죽이라고!”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건 상당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주자방을 몸부림치게 만드는 건 고통보다 공포였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으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살아 있는 것의 본능이었다.

따뜻한 피가 피부를 타고 서서히 빠져나가는 느낌은 세상에서 가장 큰 두려움일 수밖에 없다.

원대연은 바위에 앉아서 몸부림치는 주자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가족을 몰살한 원수가 피를 흘리며 커다란 벌레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뛸 듯이 기쁜 감정은 없었다. 가슴이 턱하니 내려가는 그것은 그냥 안도였다. 온몸을 꽁꽁 묶고 있던 밧줄이 끊긴 것 같은, 마음이 탁 트이는 안도.

“끝났군.”

그의 시선이 먼 산봉우리를 보았다.

“이제 뭘 하지?”

*    *    *

“조만간 북경으로 갈 것 같네.”

양수판의 말에 찻잔을 들던 도통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는 많이 늦었군요.”

“자금성이 원래 괜찮은 자리 나기 어려운 곳이야. 이 정도면 빠른 거지.”

“어디로 가는데요?”

“그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네.”

“정해지지 않았는데 북경으로 부른다고요?”

“대기하고 있으라는 거지. 좋은 자리는 오래 기다리지 않거든.”

“골칫덩이 현령님 떠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좀 아쉽기는 하군요.”

“내가 영원히 떠날 것 같나?”

“네?”

“우리 인연이 이렇게 끝날 정도로 가볍지 않잖아. 안 그래?”

“저 같은 건달하고 인연을 이어 가고 싶으세요?”

“내 목숨을 구해 주고 일용할 양식을 해결할 수 있는 뇌물을 주고, 출세할 수 있는 동아줄까지 잡게 해 줬는데. 당연히 이어 가고 싶지. 흐흐흐…….”

“쳇! 다음에 오는 현령한테 얘기나 잘 해 주세요.”

“걱정 말게. 내 단단히 일러 둘 테니까.”

관아를 떠난 도통달은 본부로 가는 길을 밟았다. 새벽에 온 눈이 녹지 않아 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냈다.

“그 양반 떠난다고 하니 정말 서운하네.”

여유가 생기면 북경에 한 번 놀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본부로 들어섰다.

인사를 하는 건달들을 뒤로하고 2층으로 올라가자 의외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원대협.”

그를 보는 원대연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 얼굴에 웃음이 그려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일은 잘 해결된 모양이군요.”

“자네 덕분에.”

“굳이 인사하러 올 필요 없는데.”

“인사가 아니라 취직을 하러 왔네.”

“취직이요?”

남궁설린이 나섰다.

“원대협께서 적호회에 입회하시기로 했어요.”

“뭐?”

“나라도 괜찮다면 받아 주겠나?”

“아니, 잠깐만요. 무림제일협객이잖아요? 무공도 그 천하십대고수에 버금간다면서요?”

“과장이네.”

“과장이건 뭐건 어쨌든 엄청난 고수잖아요. 그런 양반이 왜 건달이 돼요?”

“내가 가장 절박할 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그 건달이니까.”

남궁설린이 ‘그게 저 사람 특기예요.’라고 속삭였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흑사회는 말하자면 흑도라고요. 치사한 짓도 많이 하고 잘못하다가는 관에 잡혀가서 옥고를 치를 수도 있고. 어쨌든 협하고는 거리가 먼 곳이에요.”

“내 평생 협객으로 살아왔네. 무림인이 걸어야 할 유일한 길이 협과 의라고 믿었지. 그런데 원수를 갚고 우두커니 앉아있자니 그 협의라는 게 너무 우스운 거야. 대체 누구를 위한 협이고 무엇을 위한 의란 말인가? 천하제일협객이란 이름은 십 년도 지나지 않아 잊혔고 그 자리에 남은 건 아편쟁이밖에 없는걸. 그리고 깨달았지. 천하제일협객은 내 가족이 죽은 순간 같은 죽은 거야.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원수를 갚기 위해 중원을 떠돈 자는 그냥 시체였을 뿐이야. 그 시체를 살린 사람이 자네고. 그러니 살린 책임을 져야지.”

눈을 꿈뻑이던 도통달이 말했다.

“협객하고 흑사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더니, 날 책임지라는 대답으로 돌아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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