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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독식 (117)화 (117/200)

기연독식 (117)

남궁설린의 물음에 도통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더라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무기나 영약도 가지고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대체 황궁비고에는 뭐가 있는 거야?”

“삼황자가 황제가 되면 너도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원대연이 탁자 끄트머리에 놓인 긴 상자를 가리켰다.

“그런데 저건 뭔가?”

“북사도련 련주를 요리할 수 있는 재료죠.”

*    *    *

강북의 사파 연합인 사도련은 최소한 규모 면에서는 구대문파를 넘어섰다.

북사도련의 본산은 시내에서 떨어진 봉주산의 중턱에 자리해 있었다.

시내에서부터 북사도련까지 대로가 뚫려 있어서 오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북사도련의 본산은 도통달이 지금까지 본 건물 중에서 자금성 다음으로 컸다.

“나쁜짓 해서 돈 많이 벌었나 보네.”

도통달의 말을 남궁설린이 받았다.

“건달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남궁세가 사람이 북사도련 편을 드는 거냐?”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면 안 된다는 거지.”

도통달이 남궁설린을 흘겨봤다.

“똥 묻은 개를 왜 굳이 따라와서 시비 거는 건데?”

“심심하잖아.”

남궁설린과 장유섬, 원대연은 그야말로 할 일 없는 건달이었다.

적호회에 위기가 없으면 딱히 할 일도 없는 지위가 호법이다. 그러니 매일 하는 게 비무였는데, 하루 종일 비무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네가 일을 가져와서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해.”

“목숨이 걸린 일이야.”

“싸우다 죽는 게 심심해서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얘기를 하는 사이 북사도련에 도착했다. 마차 네 대가 나란히 지날 정도로 거대한 문 앞에는 두 명의 경비가 서 있었다.

“멈추시오!”

고작 이 장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경비는 필요 이상으로 고함을 질렀다.

“말에서 내려 용건을 말하시오!”

고압적인 태도에 기분이 상했지만, 순순히 말에서 내렸다.

“황련주를 만나러 왔소.”

도통달의 말에 경비는 인상을 쓰고 도통달과 남궁설린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어디서 오신 뉘시오?”

삐딱한 물음에는 ‘너희처럼 어린놈들이 감히 련주님을 만나려고?’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항주에서 온 도통달이라고 하면 알 것이오.”

“용건은?”

“만나야 말을 하죠.”

“하! 우리 련주님이 만나고 싶다면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식당 주인인 줄 아시오? 신분은 어떻게 되시오?”

“흑사회 건달.”

“네?”

“흑사회 건달.”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던 경비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건달 따위가 련주님을 만나겠다고!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로구나!”

버럭 하는 기세가 금방이라도 허리에 찬 검을 뽑을 것 같았다. 기분이 상한 남궁설린이 나섰다.

“일각 줄 테니까 련주님께 도통달이 왔다고 전해라.”

“어린 년놈들이 어처구니가 없네. 넌 또 누구냐?”

“난 남궁…… 아니, 항주 적호회 건달이다.”

“여자가? 어이구, 미친 것도 가지가지네. 좋은 말로 할 때 가라.”

“일각 준다고 했다.”

“이것들이 북사도련을 아주 우습게 아는구나! 난 너희들에게 일각도 못 주겠다!”

아주 쉽게 본 게 분명했다. 도통달의 얼굴을 향해 내지르는 주먹에 무공의 초식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도통달은 그 주먹을 손바닥으로 쳐서 흘린 후 경비의 뺨을 때렸다. 짜악! 소리와 함께 비틀비틀 밀려난 경비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련주 영감 불러오라니까.”

“이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나머지 한 경비가 달려들었지만 역시 뺨을 맞고 주저앉았다.

삐익―!

처음 맞았던 경비가 목에 걸린 호각을 힘껏 불었다.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고 숨 몇 번 쉬기 전에 북사도련 안에서 무사들이 몰려나왔다.

“무슨 일이냐!”

가장 먼저 뛰쳐나온 중년인이 소리쳤다. 날카로운 눈매에 왼쪽 귀의 반이 잘려 나간 중년인은 곧 도통달과 남궁설린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당주님! 저자들이 와서 행패를 부리는 중입니다!”

호각을 분 경비가 재빨리 고자질을 했다.

“많이도 몰려나오네.”

남궁설린의 말대로 정문에는 순식간에 이백여 명의 무사들이 북적거렸다.

그럼에도 소란스럽지 않고 질서정연한 걸 보면 평소 북사도련이 무사들을 얼마나 잘 훈련시키는지 알 수 있었다.

“너희들은 누군데 감히 북사도련의 본산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도통달이 말했다.

“일단 말은 바로 해야지. 저자들이 공격해서 방어를 한 것뿐이야.”

중년인의 시선이 호각을 분 경비에게로 향했다.

“어떻게 된 것이냐?”

“무작정 련주님을 만나겠다고 해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저들이 누군데?”

“항주 흑사회 건달이라고 합니다.”

중년인의 미간이 좁혀졌다.

“건달?”

“네. 어찌 감히 건달 나부랭이가 련주님을 뵙겠습니까?”

중년인이 도통달에게 물었다.

“저 말이 사실이냐?”

“사실이면 련주 영감 불러 줄 텐가?”

“이놈이 북사도련의 본산에서 감히 련주님을 그런 식으로 부르다니! 정녕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노기 충천한 중년인을 보던 도통달이 돌아서며 남궁설린에게 말했다.

“가자.”

“그냥 가자고?”

“나 안 만나면 련주 영감만 손해지.”

그런 도통달의 뒤에 대고 중년인이 버럭 소리쳤다.

“이놈 게 섰거라! 북사도련이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더냐!”

“나 잡고 싸우면 후회할 텐데?”

“그런데 이놈이!”

중년인이 손짓을 하자 무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더니 두 사람을 포위했다. 언제든 뺄 수 있게 무기 손잡이를 잡은 그들에게서는 살기마저 피어올랐다.

남궁설린이 도통달에게 속삭였다.

“여기서 싸워도 되는 거야?”

“안 될까?”

“자칫 누구 하나 죽기라도 하면 난감하잖아?”

황미달이 도통달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북사도련의 무사를 죽이면, 호의가 적의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지?”

“눈에 보이는 놈들뿐이라면 모르지만, 저 안에는 이보다 스무 배는 더 있을걸?”

도통달의 판단은 빨랐다. 그는 양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항복!”

“아니, 그렇게까지 비굴할 필요는 없는데…….”

“잡혀가는데 체면 같은 게 어디 있어? 너도 빨리 손들어.”

“쳇!”

남궁설린이 양손을 들자 무사 두 명이 다가왔다. 그리고 주먹으로 그들의 명치를 때렸다.

“욱!”

도통달은 배를 잡고 주저앉았지만 이미 준비를 하고 있던 남궁설린은 멀쩡했다. 남궁설린을 때린 무사가 ‘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 정말 아픈 거야? 그 무공에 그 내공을 가지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도통달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아픈 척해. 그래야 한 대라도 덜 맞지.”

“자존심도 없는 놈.”

“실용적인 거지.”

갑자기 날아든 주먹이 도통달의 얼굴을 때렸다. 내공으로 보호할 수 없는 안면이었기에 제법 아팠다.

도통달은 때린 무사를 노려봤다.

“뺨에 사마귀 있는 놈. 내가 너 기억해 둘 거야.”

“미친놈!”

무사가 다시 손을 올리는데 뾰족한 외침이 들렸다.

“멈춰라!”

모두의 시선이 문을 나오고 있는 면사 여인 하수란에게 모아졌다.

“모두 물러나라!”

“하군사님…….”

“당장 물러나래도!”

중년인을 비롯해서 무사들이 황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저렇게 화가 난 하수란을 그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도통달에게 온 그녀가 허리를 숙였다.

“도공자님, 죄송합니다. 제가 미리 수하들에게 일러 놨어야 했는데.”

“연락도 없이 찾아온 제 잘못이죠.”

“연락 없이 찾아오실 걸 예상했어야죠. 제 아둔함 때문에 봉변을 당하셨으니 이 일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도통달의 시선이 뺨에 사마귀가 있는 무사에게 꽂혔다. 그의 시선을 받은 무사가 움찔 놀라더니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실수를 한 련의 무사들을 엄히 징계…….”

도통달이 손을 저어서 하수란의 말을 막았다.

“됐습니다. 하급 무사에게 징계를 내려서 뭐 하겠습니까? 빚을 받으려면 련주 영감한테 받아야죠. 아주 거하게 받을 생각입니다.”

하수란이 피식 웃자 면사가 펄럭였다.

“언니, 저 인간한테만 미안한 거예요? 난 안중에도 없고?”

남궁설린의 말에 하수란이 냉큼 다가가 그녀를 안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 우리 동생 반가워.”

그제야 남궁설린도 웃는 얼굴로 하수란의 등을 두드렸다.

“그런데 어쩐 일로 여기까지 행차한 거야?”

“그건 저 인간한테 물어봐요.”

하수란의 시선을 받은 도통달이 문을 향해 휘적휘적 걸어갔다. 이제 그의 앞을 막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일단 련주 영감부터 만납시다.”

“련주님께서 아주 반가워하실 거예요.”

“그럴 리가.”

도통달의 생각이 틀렸다. 황미달은 그 험악한 얼굴에서 저렇게 밝은 표정이 나올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도통달을 반겼다.

“하하하! 항주 건달께서 웬일로 이리 귀한 걸음을 하셨나?”

“건달이라고 오자마자 맞았는데 영감님께서는 참 밝게도 웃으시는군요.”

“응? 어떤 놈이 감히 자넬 때렸단 말인가?”

“왜요? 목이라도 치시게요?”

“특진시키려고. 흐흐흐…….”

“어이구, 등에 있는 게 왜 이렇게 무겁지?”

접객실을 비틀거리며 이동한 도통달이 등에 비스듬히 멘 길쭉한 상자를 탁자에 놨다.

도통달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영감님 하는 걸 보니 이건 괜히 가지고 왔네.”

“그게 뭔데?”

“몰라도 돼요. 어차피 다시 가져갈 거니까요.”

황미달이 도통달에게 비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네 낚시질에 속을 정도로 내가 어리석어 보이느냐?”

도통달이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알고 보니 똑똑한 분이셨네. 역시 이건 내가 써야겠네. 그런데 난 무기가 칼인데…… 이건 검이고…….”

도통달의 시선이 남궁설린에게 향했다.

“너 줄까?”

사실 남궁설린도 상자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열 번은 물어봤지만 도통달은 ‘나중에 알게 될 거야.’라는 말로 궁금증만 키웠다.

“검이야? 내가 가진 것보다 좋아?”

그녀가 사용하는 검도 명검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아마 좋을걸? 일단 보여 줄까?”

“응.”

도통달은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도통달이 검을 꺼내는 순간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이 숨 쉬는 걸 멈췄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황미달이었다.

“그…… 그거 호…… 혹시 마…… 마…… 막야검인가?”

남궁설린도 황미달처럼 말을 더듬었다.

“저…… 정말 마…… 막야검이야?”

“생긴 게 막야도하고 비슷하긴 한데 나야 잘 모르지.”

도통달이 남궁설린에게 막야검을 내밀었다.

“네가 한 번 봐봐.”

황미달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걸 왜 남궁 애송이가 봐! 내가 감별해야지!”

“저도 막야검 정도는 알아볼 수 있거든요!”

“네가 그걸 알아봐서 뭐 하게! 그 검의 주인은 난데!”

“이게 어떻게 련주님 거예요! 통달이가 주인이지!”

“내 고조부님께서 소지하셨던 거야! 어쩌다가 우리 가문의 손을 떠났지만 막야도와 막야검을 다시 찾는 게 우리 가문의 최고 숙원이다!”

“정말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소유권을 주장하는 거예요? 아예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그러세요?”

“어쨌든 막야검은 내 거야! 내 거!”

“웃기지 말아요! 통달아! 그 막야검 나한테 줘!”

“응?”

“내가 목숨 걸고 지킬 거니까.”

남궁설린이 황미달에게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이 막야검을 가지려면 절 죽여야 할 거예요.”

황미달도 지지 않았다.

“막야검을 가질 수만 있다면 시산혈해라도 만들 수 있다.”

“누구 죽이지 않아도 영감님이 막야검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있는데…….”

도통달의 중얼거리는 것 같은 말에 황미달의 시선이 휙 돌아갔다.

“그게 뭐냐! 네 가랑이 사이라도 기어가라면 들어가마!”

“영감님이 왜 내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우리 그러지 말고 단둘이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얘길 할까?”

“통달아! 저 음흉한 늙은이 꾐에 넘어가면 안 돼!”

“음흉하다니! 나 북사도련 련주야!”

“그냥 사파 두목도 음흉한데 그런 사파를 몇십 개나 모아 놓은 곳의 두목이니 얼마나 음흉하겠어요!”

도통달이 두 사람을 말렸다.

“두 분 다 그만하시죠. 제가 여기까지 막야검을 가지고 온 이유가 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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