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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독식 (133)화 (133/200)

기연독식 (133)

어느 단체에 처음 발을 들여놓으면 약간이라도 주눅이 드는 게 일반적이다.

이렇게 태연하기 그지없다는 건 고위층 뒷배가 있거나 자신의 무공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지?’

궁금해서 슬쩍 물었다.

“주당주님과 이전부터 아는 사이였느냐?”

“오늘 처음 만났소.”

“황대상단에 아는 사람은 없고?”

“없다고 봐야죠.”

“봐야죠라니?”

“사이 안 좋은 옛 친구가 한 명 있는 것 같더군요. 보아하니 그 녀석도 말단인 것 같던데.”

뒷배는 없는 모양이다. 그럼 무공에 자신이 있다는 뜻인데.

‘잠시 후면 알게 되겠지.’

실력도 없는 자가 성우당 밥을 먹는 건 황두평이 용납할 수 없었다. 뒷배도 없고 실력도 없다면 당연히 쫓아낼 것이다.

마침 육조 조원들이 후원에서 연공을 하는 중이었다. 총 열 명의 조원이 있었는데 네 명은 근무를 나갔고 여섯 명이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사실 수련이라기보다는 비무에 가까웠다. 다들 익힌 무공이 달랐기 때문에 딱히 한 사람에게 지도를 받는 건 어려웠다.

가장 가까이서 비무를 하고 있던 두 사람이 도통달을 보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누가 그만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둘씩 비무를 멈추더니 종국에는 여섯 명 모두가 도통달을 보고 있었다.

황두평이 입을 열었다.

“다들 주목!”

이미 주목하고 있었다.

“여기 이 친구는…….”

눈매가 날카로운 서른 중반의 사내 문창서가 황두평의 말을 잘랐다.

“주당주님 뒷배로 들어온 놈이 그놈입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심하게 깽판을 쳤는데 주당주님 덕분에 벌을 면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여기로 영전까지 한 거 아닙니까?”

이 짧은 시간에 누가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트렸는지 모르지만 육조의 조원들은 다들 믿는 눈치였다.

“확실치 않은 소문에 휘둘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주당주님 뒷배가 아니면 저 녀석이 어떻게 성우당까지 올 수 있단 말입니까?”

도통달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떻게긴. 실력이지.”

다들 사나운 눈으로 도통달을 봤다.

“실력에 그렇게 자신이 있단 말이지?”

문창서의 물음에 도통달은 귀를 후비며 ‘뒷배도 실력이지.’라고 대답했다.

“뭐야? 무인으로서 그런 말이 부끄럽지도 않느냐!”

“무인? 너희가 무인이었어?”

“뭐?”

“아까 짝지어서 하는 거 보고 무희인 줄 알았지. 뭐, 춤으로도 형편없는 실력이었지만.”

“이런 개자식이!”

“뒈지려고 환장을 했구나!”

도통달에게 달려들려는 조원들을 황두평이 말렸다.

“모두 그만해라! 너도 말 함부로 하지 말고!”

조원들은 황두평의 말에 화를 눌렀지만 도통달은 입을 닫지 않았다.

“질투하는 꼴이 계집애들 같잖아요.”

“계집애? 이 씨X놈이!”

“조장님! 말리지 마십시오!”

조원들의 분노는 황두평이 말릴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 버렸다. 그리고 황두평도 도통달의 버르장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감정이 안 좋아진 이상 무림의 법으로 결정하는 수밖에!”

황두평의 말에 달려들려던 조원들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문창서가 물었다.

“비무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것 외에 뭐가 있겠느냐?”

“제가 하겠습니다.”

문창서의 말에 대머리 사내가 소리쳤다.

“부조장님이 나가다니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쓰는 격이죠!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나머지 사내들도 모두 자기가 상대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소란스러움 속으로 도통달의 음성이 파고들었다.

“그냥 한꺼번에 덤벼. 귀찮으니까.”

이번에는 황두평의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랐다.

“보자 보자 하니까 건방져도 너무 건방지구나!”

“모든 건…….”

도통달은 허리에 찬 칼을 툭 치며 말을 이었다.

“이 녀석이 말해 주지 않겠습니까?”

황두평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도통달을 물끄러미 봤다.

‘이 자식 미친 건가?’

황대상단의 무사들은 절대 하수가 아니었다. 특히 중대에 소속된 무사들의 실력은 일류에는 못 미쳐도 이류 상단은 차지할 정도는 되었다.

‘이놈이 상단 소속의 무사라고 깔보는 거로군.’

아마 표국의 흔한 표사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저런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겠지.

“왕청.”

황두평의 부름에 대머리 사내가 힘차게 대답했다.

“네! 조장님!”

“네가 상대해 줘라.”

왕청은 함박웃음을 지었고 선택받지 못한 다섯 명의 인상은 일그러졌다.

“흐흐흐…… 제가 성우당 제육조의 무서움을 똑똑히 각인시켜 주겠습니다.”

누군가 도통달을 향해 목검을 던졌다. 목검을 받은 도통달이 황두평에게 물었다.

“죽이는 겁니까, 승부만 내는 겁니까?”

“이 미친놈아! 비무 하는데 죽이긴 누굴 죽여!”

“그렇군요.”

도통달과 왕청은 오 장 거리를 두고 섰다. 승부만 내는 비무였는데 목검을 몸 중앙에 세운 왕청은 살기를 불태웠다.

“비무라는 걸 명심하고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황두평을 말을 하면서 슬쩍 왕청을 봤다. 그의 당부 따위는 아예 듣지 않고 있다는 게 보였다.

‘적당한 선에서 내가 말려야지. 뼈 하나 부러지는 건 괜찮겠지?’

황두평도 도통달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단단히 혼이 나기를 바랐다.

“시작!”

황두평의 음성이 떨어지자마자 왕청이 움직였다. 왕청이 땅을 박차자 오 장의 거리는 단숨에 사라졌다.

쉬이익―!

도통달의 어깨를 내리치는 왕청의 목검은 대기를 쪼개는 벼락처럼 빨랐다. 저대로 어깨를 맞으면 뼈 하나가 아니라 어깨가 완전히 박살 나 병신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왕청의 목검은 아무것도 박살 내지 못했다. 어느새 반보 옆으로 움직여 공격을 피한 도통달은 곁을 지나치는 왕청을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퍽!

그리 빠르지는 않았으나 시의 적절하게 휘둘러진 도통달의 목검은 왕청의 허리를 때렸다.

“간단하군.”

몸을 세운 도통달이 놀란 얼굴로 선 조원들을 향해 말을 하려 할 때였다.

허리를 맞은 왕청이 몸을 돌리더니 도통달의 뒤통수를 향해 목검을 내리쳤다.

마지막 순간에 도통달이 옆으로 움직였기에 뒤통수가 아닌 어깨에 목검이 적중했다.

찡그린 표정으로 주춤주춤 걸음을 옮긴 도통달이 돌아섰다.

“승부를 가리는 거 아니었나?”

“새끼야! 난 아직 멀쩡해!”

도통달의 시선이 황두평에게 향했다.

“여기 비무는 이런 식인 모양이죠?”

정상적인 비무였다면 허리에 목검을 맞는 순간 승부는 결정 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도통달의 손을 들어 줄 수는 없었다.

“비무는 상대가 승복하는 게 중요하지.”

황두평의 말에 도통달은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런 식이란 말이죠?”

도통달은 왕청을 목검으로 가리켰다.

“지금 이 순간을 네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시간으로 만들어 주지.”

“개소리 하지 마!”

거리를 좁히는 것도, 목검을 내리치는 속도도 처음처럼 빨랐다. 처음처럼 빨라서는 처음 나타난 결과를 바꿀 수 없었다.

슬쩍 몸을 돌려 공격을 피한 도통달은 왕청의 장딴지를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퍽! 하는 소리와 욱! 하는 비명이 동시에 터졌다.

당연히 그 한 번으로 공격을 끝내지 않았다. 주저앉으려는 왕청의 등으로 목검이 떨어졌다.

“끄윽!”

주저앉는 왕청은 다시 한 번 어깨에 격통을 느껴야 했다. 목검은 계속해서 왕청을 내리쳤다. 등짝과 어깨, 허벅지 할 것 없이 난타를 당했다.

“그…… 그만……!”

그 외침이 터지고 나서야 도통달은 때리는 것을 멈췄다.

“그거 승복이냐?”

왕청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대답을 망설이게 했다. 그러자 목검이 다시 어깨를 내리쳤다.

“아악! 스…… 승복이야! 승복!”

도통달이 때리는 것을 멈추자 힘겹게 일어서려던 왕청이 다시 주저앉았다. 전신의 뼈마디가 어긋나는 것 같고 맞은 다리는 퉁퉁 부어서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그런 왕청을 조원 한 명이 부축해서 멀어졌다. 도통달이 황두평에게 물었다.

“비무가 더 필요한가요?”

“당연하지!”

그 말은 황두평이 아닌 부조장 문창서의 입에서 나왔다.

“너 같은 자식은 딱 질색이야. 무공 좀 익혔다고 안하무인으로 구는 천둥벌거숭이. 내가 오늘 그런 네 녀석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마.”

도통달이 피식 웃었다.

“그런 실력이나 되나?”

문창서가 목검으로 도통달의 미간을 겨눴다.

“오늘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걸 알려 주마!”

하지만 문창서의 장담은 지켜지지 못했다. 확실히 왕청보다는 빠르고 날카로웠다. 하지만 도통달을 이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먼저 배를 맞았고 허리를 숙이다 등을 내줬다. 그다음은 왕청이 맞았던 과정과 비슷했다. 그래도 끝내 졌다는 말은 뱉지 않았다.

황두평이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면 그 후로도 한참이나 두들겨 맞았을 것이다.

엎드려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문창서를 살피던 황두평이 도통달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앞으로 한솥밥 먹을 식구를 이렇게 대하면 어쩌겠다는 거냐!”

“말은 바로 합시다. 앞으로 한솥밥 먹을 식구를 무시하고 깔아뭉갠 사람이 누군데?”

“그 정도야 새로운 곳에 들어오는 신입은 누구나 겪는 것이야!”

“난 조장이 말하는 누구나가 아니오. 무림은 무공이 곧 법이라고 했으니 그 법이 누구에게 있는지 더 확인해 보겠소?”

황두평이 으르릉거리는 목소리를 뱉었다.

“그래. 오만한 네 그 법, 내가 확인해 보마.”

솔직히 황두평은 도통달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방금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은 문창서와 그의 실력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았다.

그런데 도통달은 그런 문창서를 어린애를 상대하는 것처럼 간단하게 제압해 버렸다. 어쩌면 여기에 있는 조원들 모두가 달려들어도 이기지 못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황두평은 분연히 나섰다. 부딪쳐 깨질지언정 비굴하게 머리를 숙일 수는 없었다.

“부끄러움과 고통을 동시에 느끼고 싶다면 그 멍청함에 기꺼이 화답해 드리지.”

황두평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도통달의 오 장 앞에 섰다. 양손으로 목검을 잡은 그의 기세에서는 생사결의 비장함이 묻어 나왔다.

크게 숨을 들이쉰 후 호흡을 멈춘 황두평은 땅을 박찼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분노가 육체를 지배하도록 놔두지는 않았다.

문창서와 왕청은 큰 공격을 하다가 역습을 당해서 속절없이 패했다.

황두평은 도통달의 허리를 노렸다. 허리를 향해 횡으로 들어오는 공격은 막기가 힘들다. 예상대로 도통달은 뒤로 물러서서 그의 공격을 피했다.

황두평은 따라붙으면서 찌르기로 가슴을 노렸다. 도통달이 목검을 쳐내자마자 빙글 돌아서 허리를 쓸었다.

도통달은 변변한 공격조차 하지 못한 채 뒷걸음질을 쳤다.

‘이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찌르는 그의 목검을 겨드랑이 사이로 흘린 도통달이 목을 공격해 왔다.

“헙!”

화들짝 놀란 황두평은 허리를 뒤로 눕혀서 가까스로 공격을 피했다. 그 한 번의 공격으로 도통달은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다.

딱! 딱! 따닥!

연신 뒷걸음질을 치는 황두평과 압박하는 도통달의 목검이 허공에서 쉴 새 없이 부딪쳤다.

수세에 몰리기는 했지만 못 해 볼 싸움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치열한 공방은 일각이 넘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잘하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가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황두평은 이상함을 느꼈다. 가까이서 느끼는 도통달의 호흡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일정했다.

숨이 가슴을 가득 채워 거친 호흡을 토하는 황두평과 달랐다. 거기에 부딪치는 목검에서 느껴지는 힘도 지친 황두평에게 맞춰져서 전해졌다.

황두평은 일각이 넘어가고 나서야 도통달이 봐주면서 싸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새끼가 왜?’

의문이 드는 순간 답도 나왔다. 도통달은 황두평의 체면을 세워 주려는 것이다.

황두평이 조원 둘을 단숨에 쓰러뜨린 도통달과 호각을 이룬다면, 조장으로서의 위상은 더 올라갈 수 있었다.

‘새끼, 아주 망나닌 줄 알았는데 사회생활 할 줄도 아네.’

이 자리에서 봐 주지 말고 싸우라는 만용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그는 혈기방장 한 십대가 아니었다.

“그만!”

쩌렁한 목소리는 원치명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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