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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저택에 취직했습니다-22화 (22/150)

22화

오랜 시간에 걸쳐 도착한 곳은 황성이었다. 그녀는 황관을 쓰고 있는 늙은 황제 앞에 무릎이 꿇려졌다.

{─── ────── ──}

그녀를 붙잡아온 남자들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황제에게 무어라 말했다. 하지만 황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건조하게 말을 뱉더니 물러가라는 손짓만 할 뿐이었다.

{─── ─────}

남자들이 당황하며 다시 무어라 이야기했다. 그러자 황제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 ────}

그러곤 다시 물러가라는 손짓을 했다.

결국, 이들은 황제가 있던 방에서 쫓겨나 버렸다. 방문이 닫히며 황제가 시야에서 벗어나자 남자들은 잔뜩 화가 난 듯 얼굴을 구겼다. 그러곤 옆에 있던 그녀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녀의 몸이 버티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머리가 울렸고 눈앞이 핑 돌았다.

하녀 귀신은 어지러운 정신을 붙잡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던 중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그녀는 천천히 얼굴을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하녀복을 입은 단정한 여자가 눈앞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여자의 뒤에선 남자들이 불만스럽게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혀를 차더니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리곤 복도 끝으로 걸어가 버렸다.

{────}

여자가 짧게 말하자 하녀 귀신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어디론가 향하는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다.

또 장면이 바뀌었다. 이번엔 마구간이었다. 하녀 귀신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말똥을 치웠고 마구간을 청소했다. 그녀는 굉장히 지저분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씻지도 않은 것인지 역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마구간과 가까운 거리 안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검은 제복을 입은 기사들이 훈련을 받는 중이었다. 하녀 귀신은 먼발치에서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다 다시 청소에 집중했다.

그런데 왜인지 그녀의 가슴속에 무언가 차오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 감정을 쉽게 구분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나 요란하게 날뛰는 감정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분노일까? 기쁨일까?

늦은 저녁이 되자 기사들은 훈련을 마쳤다. 그들은 모두 마구간 옆에 난 길을 스쳐 지나가며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금발 머리의 기사 하나가 하녀 귀신을 발견하곤 그녀에게 성큼 다가왔다.

그는 그녀의 앞에 한 발짝만 남긴 채 멈춰 서서 한쪽 손으로 제 얼굴을 쓸었다. 투명해 보이는 푸른 눈동자가 집요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하녀 귀신은 슬쩍 그 눈길을 피해 버렸다. 그건 건방져 보일 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금발의 기사는 그저 하하 웃더니 그대로 물러섰다.

{─── ────}

그는 어떤 말을 남기곤 자리를 떠나가 버렸다.

그날, 밤이 깊어지자 3명의 하녀가 그녀를 찾아왔다. 그들은 그녀를 욕실로 데려가더니 몸을 씻겼다. 그리고 깨끗한 흰옷을 입혀 어떤 방 안에 집어넣었다.

그녀는 몸을 움츠린 채 주변을 살펴봤다. 크고 넓은 방이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황성에 있는 방 중 이토록 화려한 것은 적어도 황족의 방일 것이었다. 적어도 사용인이 쓸 만한 방은 아닐 듯해 보였다.

곧 달칵하며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금발의 기사였다. 그는 씻고 온 듯 촉촉하게 젖은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때부터 하녀 귀신은 요란하게 떨기 시작했다. 심장도 크게 쿵쾅대며 날뛰었다.

기사가 그녀에게 다가섰다. 그녀는 흠칫하며 물러서려다 그만 발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그가 깜짝 놀라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힉.”

하녀 귀신이 겁먹은 소리를 내며 몸을 뒤로 뺐다. 그녀의 몸이 주체할 수 없이 크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금발의 기사는 말없이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다시 손을 거둬들였다.

{─── ────}

기사가 말했다.

하녀 귀신은 부들거리는 다리로 일어서더니 그 방에서 도망쳐 나갔다. 그대로 그녀는 마구간으로 달려갔고 말의 배설물을 지푸라기와 함께 모아 둔 더미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몸을 일부러 더럽히려는 양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그것을 그만두었다. 대신 몸을 일으켜 앉아 눈물을 쏟았다. 또 목놓아 울어 댔다. 그 소리가 무척이나 애처롭게 들렸다.

다음 날, 금발의 기사가 다시 마구간으로 그녀를 찾아왔다. 그는 하루아침에 더러워진 그녀를 말없이 지켜보기만 하더니 그대로 돌아서 버렸다. 하녀 귀신의 시선에서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이 뿌옇게 흐려지며 새까맣게 시야가 채워지고 있었다.

이번엔 빨래를 하는 두 손이 보였다. 아무래도 그녀가 빨래방으로 일을 재배치받은 모양이었다. 일의 강도가 낮아진 건 아니었지만 물을 가까이하기에 몸이 더러워질 만한 일은 없을 그런 업무였다. 확실히 그 이후부턴 그녀에겐 분뇨 냄새 대신 비누 냄새가 풍기게 되었다.

금발의 기사는 매일같이 빨래방으로 찾아와, 그녀의 주위를 떠돌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 만났던 날과는 달리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녀와는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으며 함부로 말을 걸지도 않았다. 어떤 날은 가만히 그녀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다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가 익숙해지자 그녀는 더 이상 그를 두렵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썩 달갑게 여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속에서 끓는 듯한 이 느낌은 불쾌함에 가까웠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그녀는 마구간 근처를 지나가다 발걸음을 돌려 그 안에 들어섰다. 그리고 반갑게 얼굴을 끄덕이는 말 한 마리를 쓰다듬었다. 그녀가 유난히 아끼며 돌봐 줬던 말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의 발소리가 다가왔다. 고개를 돌아보니 마구간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 ────}

그는 그녀를 발견하곤 무어라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몸을 돌려 말의 배변을 치워 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으로 몸을 던지기도 전에 그만 목 뒤가 붙잡혀 버렸다.

남자는 그대로 그녀를 끌어 짚더미 위로 내던졌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어깨가 붙잡혀 눌렸다. 눈앞에서 그 남자가 비릿한 웃음을 내비치고 있었다. 이 뒤의 일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녀가 겪은 일들이 너무도 끔찍했다. 나는 이만 빙의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원래 몸의 손끝을 움직여 신관에게 표시를 하고자 정신을 집중했다.

“크읍.”

그런데 갑자기 그가 입에서 피를 뱉으며 그녀의 몸 위로 엎어졌다.

“아아아악!”

그녀가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질러 댔다. 쓰러진 남자의 무게감이 묵직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곧 그의 몸이 들려지며 옆으로 치워졌다. 하녀 귀신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상황을 살폈다. 금발의 기사가 발끝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남자를 툭툭 밀어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의 등 뒤엔 칼이 깊숙하게 꽂혀 있었는데, 보아하니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 채 죽어 버린 듯했다.

하녀 귀신은 피범벅이 된 시체를 내려다보다 금발의 기사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는 피 한 방울 튀기지 않은 멀끔한 차림새로 단정히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쿵쿵쿵쿵.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그녀가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랑? 사랑……. 분명 냄새나는 마구간 안. 하마터면 겁탈당할 뻔했던 그 상황. 그리고 살인의 현장. 그렇기에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가히 괴이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그대로 마구간 밖을 나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길을 따라 걸었다. 고요한 밤이었기에 그녀의 발소리 뒤로 또 하나의 발소리가 선명하게 겹쳐졌다.

{─── ─── ────}

기사가 그녀의 뒤에서 무어라 말하자 그녀가 멈칫 멈춰 섰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가 그녀와 눈을 맞추더니 빙긋 웃어 보였다.

그녀의 심장이 또다시 쿵쿵쿵 하며 뛰었다. 요란한 울림에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 ───────}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기사의 얼굴이 확 굳었다. 나는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무슨 상황인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지만, 그 차가운 분위기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그의 얼굴을 잠시 응시하던 그녀는 몸을 돌려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금발의 기사는 더 이상 그녀를 쫓아가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또 한 번 장면이 바뀌자 이번엔 눈앞에 황제가 앉아 있었고, 하녀 귀신은 그와 같은 테이블의 건너편 자리에 있었다.

하녀가 황제랑 겸상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너무도 의아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의연히 또, 아무런 말 없이 차를 따랐고 그것을 그녀의 앞으로 밀어 건넸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쾅─

그 순간 문이 열리며 금발의 기사가 들어왔다.

{─────!}

그는 굉장히 놀라고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외쳤다. 그녀는 그런 그를 똑바로 바라보다 차를 입 안에 흘려 넣었다.

{───!}

기사가 소리치며 그녀에게 달려왔다. 곧 나는 혀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불을 삼키는 것 같은 뜨거운 감각이 목구멍을 따라 식도까지 내려갔다. 아무래도 황제가 건넨 잔은 독이 든 차였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옆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전 금발의 기사가 그녀들 양팔로 받았고 곧바로 자신의 품 안에 넣었다.

그는 그녀를 꽉 붙잡은 채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그의 뺨 위로 물기 어린 자국이 길을 내는 게 보였다. 하녀 귀신은 느리게 손을 뻗어 기사의 등 뒤에 팔을 둘렀다. 남아 있는 힘으로 그를 껴안으며 그녀는 묘하게 벅찬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엔 어떤 불순물 없는 투명하게 기쁜 감각이었다.

“로라!”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 눈을 반짝 떴다.

“……괜찮은가?”

그가 물었다.

“네. 괜찮아요.”

나는 몸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영혼이 무사히 빠져나간 듯해 다행입니다.”

옆에서 내 한쪽 어깨를 붙잡고 있던 신관도 한마디 끼어들었다. 그리고 작게 안심된 한숨을 내쉬며 내 어깨에서 손을 뗐다. 보아하니 이번엔 신관이 제대로 내게 들어왔던 영혼을 밀어내 준 모양이었다.

나는 곧장 주변을 살펴 하녀 귀신을 찾았고 내 뒤편에 서서 처량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엄청 슬픈 기억을 봤어요.”

그녀에게 시선을 꽂으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공작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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