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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저택에 취직했습니다-30화 (30/150)

30화

크렌티스 황성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정말 날이 밝을 때까지 이곳을 떠돌아야만 할 것 같았다.

“이번엔 이쪽으로 가 봐요.”

“그래.”

우리는 계속해서 성안을 빙빙 돌아다녔다.

“이번엔 이쪽으로도 가 보지.”

“네.”

하지만 미로를 빠져나갈 만한 출구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이곳의 지박령이라도 될 듯했다.

“머리가 셋인데 해결책이 보이지 않네요…….”

“……셋이라고?”

어…… 그러게요? 왜 셋이지? 우리는 두 명인데?

나는 조용히 고개를 돌아봤다. 그리고 나에게 붙어 있던 하녀 귀신이 스르륵 모습을 드러낸 채 뚱한 얼굴로 서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으아아아!”

동시에 비명을 지른 공작과 나는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하녀 귀신은 그런 우리를 보더니 다소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곤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서더니 우리를 돌아봤다. 어쩐지 그녀는 자신이 앞장서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따라……오라는 거 같은데요?”

나는 공작의 등 뒤에 붙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괜찮은 거야?”

공작 또한 그녀를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물론 괜찮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나조차도 몰랐다. 하지만 어떤 결론을 내리기도 전, 하녀 귀신이 먼저 발걸음을 재촉해 앞서 나가는 것이었다. 그에 우리는 서둘러 그 뒤를 졸졸졸 따라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고, 또 몇 번은 코너를 돌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서서히 익숙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작님, 공작님! 길 찾은 거 같아요!”

나는 공작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외쳤다. 우리는 어느새 연회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 있었다. 다시 말해, 그곳은 우리가 아는 장소였다.

세상에! 기특한 것! 우리가 승천을 도와주고 있다고 길을 찾아 줬구나!

감격한 마음에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돌아봤다. 하녀 귀신은 어깨를 한번 으쓱여 보이더니 제 할 일을 모두 끝냈다는 양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와……. 완전 멋있어!

“로라, 이쪽으로 와.”

그녀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나자 공작이 내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작을 따라 연회장을 지나쳐 계단을 올랐다. 그 후, 복도를 가로질러 건물 안쪽 끝까지 들어가자 비로소 공작이 말했던 테라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대로 달음질을 해 테라스의 창을 열어젖혔다.

펑─

밖으로 발을 디디자마자 요란하게 터지는 불꽃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건 붉고, 노랗고, 파란빛으로 화려하게 피어났다 스러지고 있었다.

“와…….”

절로 외마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지금껏 이토록 큰 불꽃을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실로 아름답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런 광경이었다.

“이런 장소는 어떻게 알았어요? 공작님.”

“이전에도 사절단 중 하나로 크렌티스에 온 적 있어. 그때 우연히.”

“아…….”

그랬구나. 덕분에 좋은 경치를 보네…….

“예쁘네요…….”

나는 짧게 읊조리며 다시금 고개를 들어 하늘 위를 올려다봤다. 또 한 번 예쁜 불꽃을 볼 수 있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

“…….”

그러나 더 이상으로 폭죽은 터지지 않았다.

“…….”

“…….”

“……어? 끝났나 본데요…….”

너무 오랫동안 황성을 헤맨 탓일 것이다. 아쉽게도 조금 전, 우리가 본 거대한 불꽃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았다.

“…….”

“…….”

“……길을 잃은 바람에 시간을 너무 지체한 것 같네…….”

공작이 나를 힐끗 보며 말끝을 끌었다. 그는 어쩐지 시무룩해 보였다.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이긴 했지만 나는 확실히 그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에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느끼는 모양이었다. 물론 공작이 불꽃놀이를 보러 가자 권하긴 했지만, 이 상황을 그의 탓이라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귀신이 보이는 우리 체질이 문제겠지.

당연하게도 그 점을 공작 또한 모르진 않을 터였다. 그래서 오늘따라 조급하게 구는 그가 다소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평소와는 너무도 달랐다. 조금 전엔 겁 없는 척 자신을 꾸미는 것 같더니 지금은 그럴 만한 일도 아닌 일에도 시무룩해졌다.

‘음……. 왠지 귀엽네.’

순간적으로 감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아차 하는 마음이 들어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곤 내 안에 있는 사회성을 발끝에서부터 끌어냈다.

“아니요. 충분히 멋있어요. 저 저렇게 예쁜 불꽃은 처음 봐요. 공작님은 어때요? 이전에도 이 나라에 오셨다니까. 혹시 그때 보셨어요?”

“그래. 그때도 불꽃을 쏘아 올렸었거든.”

“근사했겠네요. 전 아까 본 장면이 인상 깊어서 평생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말엔 조금도 거짓이 섞여 있지 않았다. 짧게 끝난 구경이 아쉽긴 했지만, 확실히 다신 볼 수 없는 근사한 광경이긴 했으니까.

“……나도 오늘을 평생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

공작이 느리게 나를 돌아보더니 대답했다. 나는 잠시 동안 말없이 그를 마주했다. 그의 등 뒤로 밤하늘이 새까맣게 메워져 있었다. 화려했던 불꽃이 사라진 자리엔 둥근 달과 수많은 별이 들어와 있는 게 보였다.

“예쁘다…….”

“…….”

“공작님. 꼭 불꽃이 없어도 되겠어요. 여기 엄청 예쁜 장소네요. 별이 쏟아질 것 같아요.”

“……그럼 조금 더 있다 가는 게 어때?”

그가 표정을 숨기기라도 할 듯 빠르게 몸을 돌리며 대답했다. 그러더니 테라스 한쪽에 놓여 있던 벤치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곧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냈고 그 위에 펼쳐 놓았다.

아니, 이 고전적인 방법은 뭐지? 굉장히 올드해. 오래된 방식이야.

나는 공작의 옆으로 쪼르르 다가가 펼쳐진 손수건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공작은 손수건을 가지고 다닐 사람은 아니었다. 하물며 여성에게 앉을 자리를 만들어 줄 만큼 섬세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고 말이다.

한데 내 눈앞에 보이는 이 상황은 대체 뭐지?

문득 시야 안에 들어온 손수건의 테두리가 무척이나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억 속을 이리저리 뒤져 깊숙하게 가라앉은 어떤 이미지를 끄집어냈다.

정장을 입은 키가 큰 노인. 그리고 그의 앞주머니에 있던 까만 줄무늬의 손수건…….

아! 이거 집사님이 늘 정장 앞주머니에 행커치프로 넣고 다니는 손수건이다!

집사님…… 공작님께 뭘 가르쳐 놓은 거야?!

“앉지.”

술렁이는 내 머릿속과는 별개로 공작은 아주 담담하게 내게 자리를 권했다.

“네…….”

나 또한 담담한 척 손수건 위에 앉았다. 그리고 공작은 내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대로 고개를 들어 보자 무수히 하늘에 박혀 있는 별들이 바로 눈 안에 들어왔다.

음……. 그런데 별 보는 거밖엔 할 일이 없네…….

“…….”

“…….”

“…….”

“로라. 일하는 데 불편한 점은 없어?”

한참을 어색하게 침묵하던 공작이 대뜸 내게 물었다.

“물론 없어요.”

일하지 않으니 그런 게 있을 리는 만무했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다행이네. 불편한 게 생긴다면 말해.”

“네. 그럴게요.”

“네가 가능한 한 잘 지내길 바라거든.”

그가 나를 돌아보진 않은 채, 혼잣말이라도 하듯 읊조렸다.

“……당연하죠. 잘 지내고 있어요.”

내가 잘 지내길 바라는 이유는 귀신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공작은 함께 귀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날 커버스할덴에 고용한 것이었으니까. 덕분에 나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으니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단지 그것뿐일 이유라면 조금 섭섭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고 있었다. 그건 다소 어색한 감정이었다.

* * *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일런 경이 저택 앞까지 나와 우리를 반겼다.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작이 가볍게 고갯짓을 했다.

“들어오십시오. 머무실 방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우리를 저택 안으로 안내했다. 크렌티스 외곽에 위치한 크렌타리온가 저택은 적어도 100년은 넘었을 것 같은 오래된 구조를 하고 있었다. 바닥재나 가구들 또한 제법 연식이 있어 보였다. 그렇다고 그저 낡기만 한 것은 아니었고 값지고 오래된 물건 특유의 고아한 분위기가 함께 느껴졌다.

나는 아드레인이 이곳의 지도권을 받을 때 이 저택도 함께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크렌티스의 건축 방식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없어진, 정확히는 아드레인으로 인해 점령당한 소국의 건축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다른 누군가의 집이었을 테고, 지금은 아드레인의 전리품이 된 셈이었다.

“죄송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주무시고 계십니다. 손님이 온다는 걸 알고 계셨지만, 몸이 안 좋으시니 아무래도 일어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잠이 많아지셨거든요.”

다일런 경이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예.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부디 쾌차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편히 쉬고 계십시오. 식사 시간이 되면 사람을 시켜 따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가 웃으며 대답하자 그의 뒤에 서 있던 사용인들이 얼른 우리에게 다가왔다.

“방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인 하나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대로 우리는 그 하인을 따라갔고 각각 방을 안내받았다.

내 방은 혼자 쓰기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또 큰 창문에선 빛이 길게 들어오고 있어 분위기가 무척이나 예뻤다. 나는 잠시 방을 구경해 보다 침대로 가 털썩 몸을 뉘었다. 온몸에 푹신한 이불이 부드럽게 감겨 왔다. 라벤더와 비슷한 향기도 나는 듯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 반짝 눈이 뜨였다. 아마도 나도 모르는 사이 살짝 잠이 들었었던 모양이었다.

“들어와요.”

나는 느리게 몸을 일으켜 앉으며 말했다. 내 말에 하녀 하나가 방문을 열곤 안으로 들어섰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그녀가 어눌한 듯한 루이션어로 말했다.

“식당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식당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갔다. 공작과 다일런 경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앉으십시오, 영애.”

다일런 경이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살짝 무릎을 굽혀 대답하곤 호화롭게 차려진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그러자 곧 접시와 식기들이 내 앞으로 놓였다.

“우리 요리사가 실력이 좋습니다. 원래는 황성 요리사였는데,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와 지금은 제 저택의 요리사가 되었습니다.”

“네. 보기만 해도 맛있을 거 같아요.”

크렌티스 황성에서도 느꼈지만, 크렌티스의 요리는 내게 잘 맞았다. 그렇기에 잔뜩 기대되는 마음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쾅─

그때,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나며 식당 문이 열렸다. 나는 음식을 먹다 말고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한눈에 봐도 건장해 보이는 노인이 성큼 식당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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