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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저택에 취직했습니다-55화 (55/150)

55화

고양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저택의 분위기는 한참이나 우울했다. 시녀들은 말이 없었고 집사님의 콧수염은 눈에 띄게 아래로 내려갔다. 나 또한 꽤나 슬픈 상태였기에 별말 없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영혼을 승천시키는 일을 계속해서 이어 갔다. 그래서 저녁때가 되면 늘 고양이의 영혼을 보기 위해 정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녀석은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던 그날 이후, 더 이상 모습을 보이질 않고 있었다.

‘오늘도 안 나오려나…….’

나는 개박하 앞에 털썩 주저앉아 생각했다. 한 번도 이런 경우가 없었기에 이게 무슨 상황인지 쉽게 판단이 서지도 않았다.

“언니!”

그때, 션이 내 옆으로 쪼르르 달려 나왔다.

“여기서 뭐 해?!”

아이는 잔디밭에 풀썩 주저앉은 채,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나? 고양이 기다리고 있지.”

“고양이?!”

“그래. 고양이. 그런데 나타나질 않네. 갑자기 뿅하고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아.”

“승천했나 봐.”

“승천? 그럼 내가 모르는 사이에 승천했을까?”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도 같았다. 어느새 승천해 버려 이렇게 나타나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이승에서 바라는 걸 모두 이뤄야 가능한 일일 텐데.”

나는 혼잣말이라도 하듯 작게 속삭였다.

“이제 주인을 기다릴 필요도 없잖아. 그러니까 승천했겠지!”

그러자 션이 대뜸 목소리를 높이며 대꾸했다.

음?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그 고양이 영혼이 주인을 만나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래서 그런 이유로 승천했을 거라고?”

“응! 언니가 고양이 데리고 주인 장례식까지 갔다 왔잖아. 이제 주인이 어디 있는지 아니까 더는 기다릴 필요가 없는 거지!”

아…….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그건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는 달랐다. 나는 얼마 전 죽은 녀석이 아닌, 이전부터 커버스할덴에 떠돌던 영혼을 찾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션. 나는 네가 데리고 온 고양이 영혼 이야길 하고 있는 거야. 항상 여기 있던 애 있잖아.”

“응.”

“장례식에 데리고 갔던 그 애가 아니라.”

“어휴. 언니는 그것도 몰라?”

“어?”

“그 고양이가 그 고양이잖아. 똑같이 생겼는데 왜 모르고 그래.”

“응?”

얘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람.

물론 두 고양이가 똑같이 생기기는 했다. 까만 털과 푸른빛의 눈동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머리 위로 생긴 흉터까지도 정말 똑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두 고양이가 같은 존재라는 건 말이 안 됐다.

“션. 들어 봐 봐. 장례식에 데려갔던 고양이는 얼마 전에 죽었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 영혼이 이전부터 여기 있었을 수가 있겠어? 그러니까 둘은 다른 고양이인 게 맞지.”

“아냐. 아냐. 그건 내가 길을 잃었을 때 그 고양일 데려와서 그래.”

아이가 입술을 쭉 내밀며 양손을 옆구리로 가져갔다.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은 본인인데 도리어 나를 답답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언니. 들어 봐 봐. 내가 그날 ‘어디쯤 왔지?’ 해서 발을 내렸었거든. 거기에 빨간 간판이 있는 큰 찻집이 있었어. 그리고 고양이도! 고양이가 주인 기다린다고 해서 내가 도와준다 그러고 데려왔어.”

“……뭐……. 그래서?”

“그다음엔 내가 이곳에 왔지. 근데 그때는 아직 고양이가 태어나기도 전이었어.”

“……어……. 잠깐만 나 지금 헷갈리거든? 그러니까 시간 여행이라도 했다는 소리야?”

나는 한 손으론 이마를 짚고 한 손으론 션의 앞을 가로막으며 의문스럽게 물었다. 어린아이의 환상이 섞인 상상력은 이미 어른이 된 내 머리론 감히 따라가기도 어려웠다.

“아니. 난 그런 거 못 해.”

“그러면?”

“음……. 어떻게 가야 하는지 잘 몰라서 어쩌다 보니 길을 잃은 거야. 시간 여행을 했다기보단 정말 정말 우연히 고양이를 만났었어.”

“……그럼, 그때 어디 가려고 했었는데?”

“몰라. 기억 안 나.”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정리해 보자면 이랬다. 션은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딘가로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가는 길을 몰라 아마도 미래…… 아니면 미래와 비슷한 어느 시점을 헤매게 됐고, 그러던 중 우연히 고양이의 영혼을 줍게 된다. 그러곤 그 고양이가 태어나기도 전인 과거로 흘러가 정착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덧붙여서 고양이의 영혼이 이승에 묶여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라는데, 그게 지금은 이루어졌기에 승천했단다. 이유인즉슨, 내가 고양이의 과거를 주인의 장례식에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그게 말이나 되냐?

“오. 그렇구나! 멋진걸!”

하지만 션에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지켜 주는 건 어른의 몫이 아니겠는가?

“언니……. 제대로 들은 거 아니지? 지금 내 말 안 믿고 있는 거지?”

션이 미심쩍다는 듯 나를 쏘아봤다. 아무래도 내 말투가 너무 연기 톤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영혼을 담아 진심을 가장해 봤다. 그러곤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그걸 어떻게 믿어.”

‘아니야. 난 너 믿어.’

앗. 머릿속 생각과 입 밖으로 내야 할 말이 바뀌어 버렸다.

나는 빠르게 입술을 꾹 물곤 션을 바라봤다. 하지만 션은 이미 잔뜩 삐죽거리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어……. 션. 장난이었어.”

“…….”

“미안해.”

“…….”

날 향하는 아이의 눈이 곧 그렁그렁해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것만 같은 그 모습에 얕은 죄책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 건 정말 장난이었고 아이의 말을 믿고 있다는 적극적인 어필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너 믿어! 진짜로! 왜냐면……. 어……. 있지. 션. 그러고 보니 고양이가 죽은 날, 딱 그 시점에 여기 있던 고양이 영혼이 함께 사라졌던 것 같아.”

나는 서둘러 머릿속을 뒤져 어떤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러니까, 과거의 고양이가 승천한 바람에 미래의 고양이도 그대로 사라져 버렸나 보다?! 어때? 나 이제 완벽하게 잘 알겠어!”

사실 정말로 이해된 건 아니었다. 그래도 막상 내뱉고 보니 제법 그럴듯한 가설처럼 들렸다. 하필 같은 날, 같은 때에 두 고양이가 죽고 사라진 것이 아닌가. 그건 따지고 보면 대단한 우연이었다.

나는 곧 생각을 더 이어 가기 시작했다.

가만. 션이 주워 온 영혼은 네오 스트리트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지? 그럼 원래는 주인이 늘 거기에 있었는데, 어쩌다 돌아오지 못하게 되기라도 한 걸까? 고양이는 그런 상황 속에서 죽어 버린 거고…….

곧이어 얼마 전 죽어 장례를 치른 거리의 남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그 남자도 항상 네오 스트리트에 있었어……. 그 사람 건강도 안 좋아 보였는데, 그러다 다른 곳에서 죽기라도 했으면 네오 스트리트론 돌아가지 못하지 않았을까?

어라? 생각보다 션의 상상에 뒷받침될 만한 근거가 많은걸? 정말로 같은 고양이 같기도 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상한 건 이상한 거였다. 션이 어마어마하게 기운 센 귀신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과거와 미래를 오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 사연은 들어 본 적도 없다.

“…….”

나는 다소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끼며 잠시 동안 말없이 아이를 바라봤다. 션 또한 금빛의 눈동자로 나를 마주했다. 유난히 반짝이는 그 눈빛엔 고의적인 거짓은 없어 보였다.

“션, 너 뭐야?”

물론 아이의 환상 같은 이야기를 믿는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허황한 소리라 치부해 버리기에도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무슨 소리야?”

아이가 여전히 그렁그렁한 눈을 한 채 되물었다.

“너 말이야. 네 이름도 기억 안 난다고 그랬었지? 그럼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런 것도 기억 안 나?”

“딱히 몰라. 그리고 별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

“그래…….”

일전에 아이는 자신이 션이라고 불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이름은 오로지 황가에서만 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저 애가 황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황녀치고는 자유분방한 태도에 일단 접어 두곤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션이 정말로 황녀라면……?’

물론 황가의 핏줄이라고 해서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건 아니었다. 그들도 일반적인 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머릿속엔 그것이 가능할 만한 한 가지 가설이 떠오르고 있었다.

루이션에는 조금 특별한 건국 신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바로 드래곤의 후손들이 황가를 이어 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피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이따금 황실엔 드래곤의 능력을 갖춘 존재가 태어난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이긴 하지만, 혹시 그 신화가 사실일 가능성이 있을까? 그러니까 션이 드래곤의 능력을 타고난 황족 중 하나일 수 있는 걸까?

“션. 아니, 션 님? 혹시 황실에서 살진 않았어……? 요?”

나는 미묘한 예의를 차리며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물었다.

“언니, 왜 갑자기 존칭을 써! 나랑…… 나랑 내외하기로 한 거야?!”

아이는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원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금빛 눈동자는 조금 전보다 더욱 그렁그렁해져 있었다.

“아. 아니. 아냐.”

“…….”

“그리고 내외한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도 아니고…….”

“…….”

“아무튼, 아냐. 션. 내가 션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

션은 말없이 입술만 삐죽거리더니 내 옆으로 바짝 붙었다. 그러곤 내게 기대는 척을 했다. 진짜로 기대어 봤자 저가 나를 통과할 게 뻔했기에 적당한 거리에서 타협을 본 것 같았다.

“나도 언니 좋아. 그러니까 놀리지 마.”

“아. 알았어. 미안해.”

어린아이들은 언제나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들인 것 같다. 몇 년을 함께 살아왔어도 쉬워지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양팔로 아이를 토닥거리는 척을 하며 열심히 그 애를 달랬다.

‘그나저나 얜 어떻게 승천시키지? 생전의 자신에 대해선 기억하고 있는 게 거의 없는 것 같은데…….’

그러다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애에 대해선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승천시키는 것 또한 분명 쉽지 않을 터였다.

‘황성……에 한번 가 볼까? 황녀가 맞는지 확인할 수만 있다면 그다음부턴 방향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황성이 그리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이름 없는 남작가의 여식일 뿐이지 않은가. 황가의 그 누구도 그런 나를 초대해 주진 않을 것이다.

‘그럼 어쩌나…….’

나는 잠시 턱을 쓸며 고심했다. 그러다 불현듯 한 가지 방안을 떠올렸다.

‘맞아. 황태자 생신 연회를 가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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